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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님의 서재입니다.

백작가 서자는 발경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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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작품등록일 :
2022.07.13 20:58
최근연재일 :
2022.08.15 14:2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5,680
추천수 :
63
글자수 :
83,785

작성
22.07.21 20:00
조회
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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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0쪽

위기(1)

DUMMY

미리 수통에 물을 채워놓길 천만다행이었다. 눈꽃처럼 투명했던 호수는 어느새 시커멓게 변색 되어 처음의 그 청량한 느낌은 온데간데없었다.

지금까지 쭈그려 앉아 바위에 열심히 문대고 있던 천 옷들이 원래 얼마나 더러웠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평소에 얼마나 씻고 다니지 않았으면 깨끗했던 호수가 이렇게 더러워지는 걸까. 보비는 아직도 자신의 옆에 탑을 쌓아 놓은 남은 빨래 더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더러운 놈들."


땀에 젖은 머리를 귀 뒤로 쓸어넘기며 슬슬 남은 빨래도 시작해보려는데 뒤쪽에 있는 풀숲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누굴까. 아직 요리가 완성되려면 시간이 조금 남았을 텐데. 의아해하며 뒤를 돌아보자 누군가 풀숲을 해치고 나오는 게 보였다.


"크흐, 카락톰 이놈아. 봤지? 여기 있을 거라 했잖아! 이래도 내 감이 못 미더워?"


"호오, 정말이네? 이야, 아둠 웬일이야. 네가 맞는 말을 할 때도 다 있고."


"···"


풀숲에서 나온 세 사람 모두 보비에게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수많은 용병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사람들이었는데 그것이 꼭 좋은 의미만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셋이 항상 뭉쳐 다니며 사사건건 우리 쪽 병사들에게 시비를 걸거나 지나가는 시종에게 폭언을 일삼는 건 예삿일이었고 하녀들의 몸을 훑어보거나 희롱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본래라면 책임자인 파비르가 당장 내쫓아야 했겠지만, 워낙 고용된 용병 수가 부족하기도 했고 그들이 행실에 비해 각자 특출난 실력을 갖고 있었기에 모두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사람보다 큰 도끼를 등에 짊어지고 머리를 민둥산으로 밀어버린 거인이 아둠. 다리와 허리에 수많은 투척 무기를 소지한 키가 작은 남자가 카락톰 마지막으로 얼굴을 전부 가리는 로브를 뒤집어쓰고 활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 거스였다.

거대한 손바닥으로 자신의 민머리를 한차례 쓸어 담던 아둠이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호숫가에 서 있는 보비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아둠을 선두로 카락톰과 거스가 뒤따라 온다.


"···무슨 일이죠? 당신들 임무는 마차를 지키는 것일 텐데요."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낀 보비가 그들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뒷걸음질 쳤지만, 푹 꺼지는 지면을 착각해 몸을 휘청이고 말았다. 물에 빠질 뻔한 몸을 겨우 가눈 보비가 자신의 등 뒤로 깊은 호수가 가로막고 있는걸 깨닫고 식은땀을 흘렸다.


"우리 임무를 네까짓 하녀가 신경 쓸 일은 아니고."


"어허, 카락톰 애 무섭게 왜 그래. 그러니까 네가 여태껏 여자도 없는 거 아니야? 거기 꼬마야, 거기서 더 가면 위험하니까 얼른 이쪽으로 와. 그냥 조금 대화만 하려고 온 거니까. 얼른?"


아둠이 카락톰을 말리며 보비에게 손짓하자 그녀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죄송하지만 이럴 시간 없어요. 저는 빨리 제 일을 끝내고 가봐야 합니다."


"네 일이라면 이 더러운 걸 세탁하는 걸 말하는 건가?"


카락톰이 빨랫감 하나를 집게손가락으로 들어 올리며 묻자 보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잘됐네! 사실 우리가 너한테 깜박하고 못 건네준 옷이 있거든. 그거 주려고 온 거야."


세 사람의 행동은 보비의 예상보다 훨씬 정상적이었다. 물론 첫 등장부터 지금까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입을 다물고 있는 거스는 조금 무서웠지만 적어도 그들의 언행에 폭력적인 기색은 없었다.

다소 안심한 보비가 긴장을 풀었다.


"어디 있죠? 어차피 하던 게 더 남아있어서 지금 주셔도 됩니다."


보비가 새침한 얼굴로 손을 내밀자 앞에 있던 거구의 사내, 아둠이 카락톰과 음흉한 눈빛을 교환하며 자신의 허리춤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어, 잠깐만 기다려봐. 여기 어디였는데 내가 기억력이 조금 안 좋아서 그게 ···여기있네?!"


"꺅!"


주섬주섬 자신의 품을 뒤적이던 아둠이 갑작스레 바지를 내리자 그의 흉물스러운 고간이 보비의 눈앞에 흔들거렸다. 보비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흉물스러운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기에 뇌리에서 끔찍한 광경이 플래시백 되고 있었다.


"크흐흐흐··· 아하하하-!! 이거 아주 오랜만에 보는 신선한 반응인데? 아주 걸작이야 걸작! 거봐, 내가 뭐랬어. 이년 남자 맛도 모르는 처녀일 거라고 했지? 돈이나 내놔 아둠."


배꼽을 부여잡고 걸신들린 듯 웃고 있는 카락톰과 그옆에서 바지를 내린 채 분한 얼굴로 이를 가는 아둠의 모습에 보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다리가 덜덜 떨리고 머릿속이 새하얘져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제길, 그럴 리가 없다고! 꼬마야, 너는 뭘 처녀인 척 고갤 그렇게 돌려? 어차피 귀하신 도련님하고 다해봤을 거 야냐! 반반하게 생겨서 아주 가만 놔두질 않았겠구먼!"


결국, 떨리는 다리를 지탱하지 못한 그녀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어? 이거 이거 내 걸 보고 흥분해서 빨아주려는 거 같은데? 이거 봐! 사실은 엄청난 색녀라니까!"


아둠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피식 웃은 카락톰이 주저앉은 보비에게 다가가 그 창백한 얼굴에 손을 가져간다. 싸움으로 다져진 굵고 투박한 손가락이 보비의 새하얗고 보드라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보비는 그 꺼끌꺼끌한 감촉이 느껴질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미약하게나마 얼굴을 흔들어 뿌리치려 했지만, 그조차도 억센 손아귀에 붙잡혀 저항할 수 없었다.


"얼굴이 말이 아니네? 그렇게 무서워하면 우리가 나쁜 사람 같잖아."


"이, 이러지 마세요. 다, 다른 병사님들도 제가 여기 있는 거 다 알아요."


"아하, 그 애송이 병사들? 괜찮아 와도 상관없어."


보비가 겨우 '왜'라고 중얼거리자 카락톰이 얼굴을 쓰다듬던 손가락 하나를 입술 안으로 집어넣었다. 으읍, 신음하며 고갤 흔들지만 집요하게 파고드는 손가락이 빨갛게 무르익은 입술 속을 거침없이 유린했다.


"그 녀석들이 봐도 모른 척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겨우 하녀 한 명을 위해 골드 패를 가진 용병들과 척을 질 리가 없잖아?"


"푸하하, 그래, 그래. 아가씨 같은 핏덩이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같은 골드 등급의 용병은 기사와도 견주어도 그리 밀리지 않는다고. 우리랑 눈만 마주쳐도 내리깔던 것들이 뭘 하겠어?"


보비의 입술을 유린 하던 카락톰이 손을 빼 보비의 이마를 튕겼다.

툭. 툭.

굵은 손가락이 그녀의 머리를 밀어낼 때마다 보비의 몸도 힘없이 휘청였다.


"그리고 대단하신 하녀님. 머리가 달렸으면 생각을 좀 해보세요. 높으신 분들 입장에서 우리 같은 실력 있는 용병들이 중요할 거 같나요, 아님 너 같은 일개 하녀 년이 중요할 거 같나요? 너도 그린트가 사람이라면 귀동냥으로라도 들어봤을 거 아니야 지금 상황이 어떤지? 우리같이 자비로운 사람들이 아니면 애초에 이런 위험한 곳에 오려는 용병은 아무도 없다고!"


"···흐윽"


결국 보비가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하자 아둠이 다시금 음흉하게 웃었다.

카락톰이 나직이 속삭였다.


"그러니까 괜히 일을 시끄럽게 만들지 말자고. 며칠 동안 우리가 여자 냄새를 제대로 못 맡아서 그러니까 조금만 빼주면 알아서 얌전히 돌아갈게."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잖아? 너도 바쁜 거 같으니까 빨리 끝내줄게. 서로 시간 낭비하지 말···응?"


보비의 얼굴이 공포에서 체념으로 물들고 있을 때 조용히 카락톰과 아둠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던 거스가 갑작스레 손을 들어 올렸다.


"무슨 일이야 거스?"


동료들은 거스가 필요한 일이 아니면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조용히 그의 얼굴을 주시했다. 그러나 일자로 다문 입은 여전히 굳게 닫혀있어 열릴 생각이 없었다. 다만 거스는 등에 메고 있던 활을 조용히 꺼내 들어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그러자 장난스럽게 웃고 있던 카락톰과 아둠도 표정을 고치고 각자 무기에 손을 가져가 언제든지 꺼낼 수 있도록 준비하기 시작했다. 심상찮은 분위기에 구석에서 주저앉아있던 보비의 얼굴에 실낱같은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 설마 돌아오지 않는 자신을 누군가 찾으러 온 건 아닐까?


슥.


미약한 풀잎이 스치는 인기척이 들렸다. 거스가 재빨리 풀숲을 조준해 활 시위를 당겼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자세로 거스의 신영은 그 자리에서 꿈적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당겨져 힘이 들어간 활에는 미세한 떨림조차 없었다.

곧이어 다시금 풀숲에서 미세한 소음이 그의 귀로 포착된 순간,

한 호흡 반

그가 노린 최상의 타이밍에 시위를 놓아버렸다.


쉭!


눈앞에서 보고 있어도 놓칠 만큼 빠른 화살의 속도에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던 보비의 얼굴이 다시 절망으로 얼룩졌다. 그녀도 그린트 가문의 하녀였기에 눈대중이나마 병사들의 훈련을 견식 해본 적이 있었다. 그녀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린트가의 날고 기는 병사들도 거스라는 사람처럼 빠르게 화살을 쏘아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쏘아낸 화살을 바로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녀조차 화살이 시위를 떠나는 순간을 놓칠 정도로 빨랐는데 목표대상이 어떻게 알고 피한단 말인가

화살은 정확히 풀숲이 흔들린 장소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자 긴장하고 있던 카락톰이 손에든 쌍날 단검을 제자리에서 돌리며 피식 웃었다.


"거스가 목표를 놓칠 리는 없으니까··· 이거 화살이 머리에 꽂힌 거 아냐?"


장난스럽게 들고 있던 단검의 날 부분으로 보비의 머리를 툭툭 치자 그녀의 깨끗한 이마에 얇은 생채기가 생겼다.


"지, 지금 뭐하시는 거죠! 만약에 그 사람이 저희 병사라면 어떻게 하려고···!"


"어떡하긴 뭘 어떡해? 우린 단지 숲에 숨어있던 수상한 놈을 죽였을 뿐이라고. 이건 단지 사고야."


"···다행이네요. 사고가 나지 않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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