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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님의 서재입니다.

백작가 서자는 발경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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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작품등록일 :
2022.07.13 20:58
최근연재일 :
2022.08.15 14:20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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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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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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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07.13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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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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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프롤로그

DUMMY

내 아버지는 술만 들어가면 주먹부터 나가는 다혈질적인 사람이었다.

어떤 날은 어머니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자신을 못 그렸다는 이유로 내 배를 걷어찼던 적이 있다. 말리던 어머니도 같이 맞고 쓰러져 사이좋게 바닥을 뒹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장면이 조금 웃겼던 것 같다.

시간이 조금 지나 아무리 방치된 가정이라도 의무교육을 무시할 순 없었는지 당시 어린 나도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그 학교는 특이하게 반마다 다같이 작은 동물 한 마리를 키우는 교칙이 있었다.

나의 반은 하얀 토끼였는데, 당번은 하루에 한 번씩 우리를 청소하고 먹이를 주는 일을 해야했다.

하루는 내 옆자리에 있던 친구 한 명이 청소하는 게 귀찮았는지 당번의 일을 빼먹었고 선생님에게 걸려 호되게 혼이 난적이 있었다.

서럽게 우는 친구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모두를 힘들게 하는 원인을 제거하자고.

그러면 분명 모두 행복할 거라고.


"이렇게 두 손으로 잡고 목을 비틀었어요. 하얗고 조그만 그 토끼는 금세 눈알과 입에서 새빨간 액체를 토해냈고 제 손에서 꿈틀대다가 어느 순간 움직임을 멈췄죠."


남자의 표정은 기괴했다. 어떤 죄악감도 후회도 없는 순수한 그 얼굴은 마치 과학 시간에 흥미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 악동에 가까웠다.

남자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던 카운셀러가 벌레를 씹어먹은 듯한 얼굴로 물었다.


"···그걸 봤던 다른 사람들은 어땠나요? 당신의 생각에 공감하지 못했을 거 같은데요."


"맞아요. 아이들은 저마다 뿔뿔히 흩어져 도망가거나 울기 시작했고 선생님도 그 자리에 한참을 서서 가만히 지켜보다 헛구역질을 하며 자리를 떠났어요. 나중에 따로 교무실로 불려가 면담을 해야했죠. 조금 의아했어요. 저는 분명 좋은 의도로 했던 건데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싫어할 줄은 몰랐으니까요."


끼릭

카운셀러는 핼숙한 얼굴로 자신의 의자를 고쳐앉았다.

책상쪽으로 가까이 붙어 양 손을 모두 아래로 내렸는데, 태연을 가장하며 남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책상 안쪽에 비치된 권총을 확인하고있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일이 꼭 나빴던 것만은 아니에요. 그걸 계기로 더이상 고민거리가 사라졌거든요."


"고민이라면···?"


"제 아버지요. 그분이 그때 그 토끼처럼 움직이지 않게 된다면 더 이상 저나 어머니가 피해볼 일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맞잖아요?"


남자의 티없이 맑은 미소에 카운셀러가 꺼림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요."


"당시에 저는 너무 어려서 아버지보다 몸집이 훨씬 작고 힘도 모자랐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술이 거하게 취한 밤에 계획을 실행하자고. 어머니와 저를 괴롭히다 골아떨어진 아버지는 아무리 주변이 시끄러워도 항상 죽은듯이 조용히 잠만 잤거든요. 그날 밤 어머니까지 잠드는걸 뜬 눈으로 지켜보다 부엌에서 식칼을 꺼내 이렇게 역수로 잡았어요. 술에 취해 대자로 뻗은 아버지의 몸 위에 올라타 그 목을···"


"그, 그렇게까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저···크흠, 다음으로 넘어가죠. 그래서 아버지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 환자분이 그···런 환각을 보게 된건가요?"


마치 자신이 그때의 소년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천진한 얼굴로 무언가를 썰어내는 동작을 재현하던 남자가 카운셀러의 물음에 의미심장한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


"후후, 맞아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매일은 아니고 거울을 확인할 때마다 가끔 다른 세상에 있는 아기를 보게됐어요."


남자는 그때부터 거울 속 세상의 어떤 아기가 점점 커가는 걸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세상은 이곳과 다르게 과학 문명이 거의 발달하진 않은 곳인데 대신에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마법적인 현상이나 괴물들도 가끔 보인다고 한다.

어느 오래된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소재였지만 말하는 남자의 얼굴은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했다.

카운셀러는 속으로 전혀 공감하지 못했지만 그럴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어쩌면 아버지를 잃은 과정에서 겪은 경험이 외상 후 스트레스로 남아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후로 어머니는 어떠셨나요?"


"당시에는 괜찮으셨어요. 충격을 받고 쓰러지긴 하셨지만 다행히 금방 회복하셨고 저는 주기적으로 정신과에 상담을 받으면서 나아지는 모습을 '연기'했으니까요. 지루하고 쓸모없는 시간이었지만 나쁘지 않았어요. 지금도 잘은 모르겠지만 그분이 웃고있는걸 보는게 좋았던 거 같아요. 아무튼 그렇게 몇 년간은 별일 없이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는데··· 언젠가부터 어머니가 이유 없이 쓰러지기 시작했어요."


"저런···"


"그때 제 나이가 열다섯이었어요."


"그럼 지금 그분은···?"


"돌아가셨죠. 한국에서는 한 번도 나온적 없는 희귀 질환이라고 들었는데 치료하려면 이식받을 심장이 필요하다더군요. 다행히 운 좋게 심장을 구하긴 했었는데 당시에 무슨 이유에선지 수술받는 당일에 이식받을 심장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하지 뭐예요. 하루, 이틀, 사흘 기약 없이 기다리다 결국 수술도 하지 못하고 가버리고 마셨어요.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아쉬워요. 그렇게 죽을 분은 아니었는데."


"그···렇군요."


카운슬러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뒷돈을 받고 이식용 심장을 빼돌리던 행위는 과거 그가 한국에 있을 때 자주 해왔던 일이었다.

머나먼 타지에서 브로커에게 신분을 세탁하고 카운슬러 행세를 하고 있기에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는데

눈 앞의 남자의 입에서 그 얘기가 나오는 게 우연일까 그게 아니라면···


"장례식장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어요. 혼자 어머니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곰곰이 생각했죠. 당시 담당 의사분이 얘기한 이식용 심장이 도착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분명 그가 처음 전해준 말에는 거짓이 없었는데 말이죠.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그의 눈동자의 움직임, 호흡의 깊이, 무의식중에 표현한 수많은 비언어적 표현들. 그것들은 절대 거짓이 아니었단 말이죠. 그럼 도착해야 될 물건은 지금 대체 어디 있을까?"


"..."


"대체 누가 내 어머니의 심장을 빼돌린 걸까요?"


남자의 얼굴이 천천히 다가왔다.

과장되게 치켜뜬 두 눈알의 새까만 먹물 속에 파르르 떨고 있는 자신이 비치고 있었다.

결국 참지 못한 카운슬러가 책상 아래에서 방아쇠를 당겼다.

아니, 당기려고 검지 손가락에 힘을 주는 순간

남자의 왼손이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쿠웅!!

정신이 들었을 때, 어떤 쇠로된 손잡이 하나가 원목 테이블 위에서 부르르 떨리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끔직한 고통이 그의 오른손에 엄습했다.


"끄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악---!"


마치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오른손의 말초신경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온몸을 들썩였지만 정작 고통의 근원지인 총을 잡고 있는 오른손이 무언가에 고정되어 빠지지 않았다.

그제야 카운슬러는 자신의 오른손이 칼날에 꿰뚫려 있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워워. 진정하세요. 그렇게 격하게 움직인다고 안빠지니까요. 이건 제가 특수제작한 칼인데 양쪽 검날에 낚시 바늘 같은 게 잔뜩 달려있어서 억지로 뽑아내려면 상처 부위보다 훨씬 큰 살점을 전부 뜯어내야 할 겁니다."


"···끄으으어어억··· 흐흐윽··· 허억, 허억, 왜, 왜 이러시는거에요··· 대체, 흐으으··· 대체 저한테 왜···"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녹슨 쇠냄새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지만 미칠듯한 고통이 기어이 카운슬러의 의식을 억지로 붙들고 있었다.

이미 눈과 코, 입에서 새어나오는 분비물이 얼굴의 절반을 덥었지만 더럽다고 느낄 새도 없이 1분 1초가 일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처럼 느껴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러나 테이블에 엎드리다시피 한 카운슬러의 간절한 애원에도 눈앞의 남자는 히죽 웃으며 그저 재밌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오래 걸렸어요. 제 예상보다 훨씬 더. 10년. 데이비드 팍. 아니, 박준식 씨. 당신을 찾기 위해서 한국에서 여기까지 찾아오는데 자그마치 10년이 넘게 걸렸다구요. 아니 고작 남의 장기나 빼돌리는 브로커 주제에 무슨 인맥이 그렇게 넓은 겁니까? 비결이 뭐죠? 부끄럽지만 제가 아직도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건 좀 힘든 편이라 진심으로 궁금해질 정도였어요."


"···어흑, 흐으으윽···"


"한국에서 장기매매와 관련된 중국의 조직들을 들쑤시다 보니 러시아로 옮겨간걸 알게 되고 러시아로 찾아가니 또 이번엔 미국으로 가버리고 결국엔 남미에 있는 멕시코까지··· 후우, 그사이에 저는 저랑 관련 없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죽여야 했어요. 불가항력이었죠. 알고 있는거에요? 당신 때문에 죽어야 했던 사람이 너무나 많다고요."


"이런···어흡, 짓을 벌이면··· 당신이 무사할 것 같아! ···나, 나는 이동네 니콜라스 패밀리의 비호 아래에 있어! 그, 그들은 카르텔과도 연줄이 닿아 있다고···!"


박준식의 허세에 남자가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가슴을 크게 들썩거리며 낄낄대다 테이블 위에 꽂힌 손잡이를 잡고 지긋이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구부정하게 업드려 있던 박준식의 몸이 활어처럼 펄떡였다.

말도 안되는 고통이 엄습한 탓인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시뻘개진 얼굴로 덜덜 떨고있는 박준식을 웃는 얼굴로 지켜보다 돌연 정색하며 말했다.


"제 말을 허투로 들었네요. 말했잖아요. 죽여야했던 사람이 많았다고. 제가 어떻게 당신을 찾았을 거 같아요? 당신이 말한 그 카르텔이란 곳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원하는 사람을 찾아줄테니 이제 그만하자고 말이죠."


"끄으윽···어흑···그 거어짓말···흐으으···"


천천히 다가오는 남자에게서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느낀 박준식이 고통스러워하는 와중에도 멀어지려 발버둥을 치지만 묶여있는 손을 잘라내지 않는 한 허망한 몸짓일 뿐이었다.


"흐흐, 제가 장담하나 할까요? 아마 지금 이 순간이 준식 씨가 살아있는 순간 중에 가장 행복한 순간일 거에요. 당신을 찾아오면서 사람을 죽이는 기술만큼 고문하는 법도 많이 알게 되었거든요. 우선 먼저 그 뱀같은 눈꺼풀을 전부 잘라내 예쁜 눈으로 만들어줄거고요. 코를 베어내고 입술을 찢고 얼굴의 가죽을 모두 벗겨낼 거에요."


"······"


"그렇게 얼굴을 망쳐놓은 다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온 몸의 가죽을 벗겨낼 거에요. 얇게. 출혈이 최소한으로 일어나 절대 죽지 않을 만큼만요. 그 위에 소금을 잔뜩 뿌리는 거에요. 쓰리겠죠. 아프겠죠? 그래도 절대 쉽게 죽지 못하게 할겁니다. 믿어보세요. 지금까지 그렇게 16시간을 버틴 사람도 있었거든요."


"···사, 살려주세요. 제···발···"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린 준식의 얼굴을 남자는 한동안 눈도 깜박이지 않고 가만히 지켜봤다.

바닥에 실금을 해버린 준식의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남자와 준식이 있던 방안은 박준식의 비명소리를 듣고 도중에 난입해온 라틴계 갱들로 인해 발 디딜 틈도 없을 만큼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남자는 피에 젖은 자신의 손을 닦을 물건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지만 이미 방안이 전부 새빨갛게 물들어 있다는걸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별수 없이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정장에 대충 슥 문질러 닦아내곤 스프레이처럼 빨갛게 덧칠된 거울을 보며 어느새 내려간 자신의 앞머리를 다시 위로 넘겨 평소에 즐겨하던 포마드 스타일로 손질하기 시작했다. 태연히 머리를 만지고 있는 거울 속 남자의 뒤편에는 도저히 사람으로는 볼 수 없는 붉은 고깃덩이가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제법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것은 간헐적으로 움찔하고 있었다.

꽤나 즐거웠지만 그것도 이제 곧 마지막이었다. 인생의 절반을 추격으로 살아왔기 때문일까 목표를 이뤄냈다는 달성감보다는 뭔가 조금 허무했다.

멍하니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거울 표면이 일렁이더니 이곳이 아닌 다른 세상의 풍경이 비치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의기소침한 소년의 일상을 보여주나 싶었는데 오늘은 뭔가 조금 달랐다.

숲속에서 어떤 지저분한 남자 두 명이 안색이 거무죽죽해진 소년의 몸을 짐짝처럼 들고 어딘가로 옮기고 있던 것이다.

아직 완전히 생명이 꺼진 건 아니었지만 미약한 호흡과 치켜뜬 두 눈의 초점이 맞지 않는 걸로 보아 남은 생이 길어보이진 않았다.

어쩐지 위태로워 보이더니 이제 소년의 일생도 막을 내릴 타이밍인가보다.

완전한 타인이지만 그래도 인생의 전부를 일방적으로 지켜본 입장으로서 소년이 죽는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아쉽게 느껴졌다.

자신과는 달리 평생을 굴복하며 살아온 그의 일생이 그렇게 답답해 보일 수 없었는데

아쉬움 때문일까 무의식적으로 뻗은 손이 거울 속 소년에게 점점 가까워졌다.

남자의 손가락이 소년에게 닿는 순간

온 세상이 암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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