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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님의 서재입니다.

백작가 서자는 발경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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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작품등록일 :
2022.07.13 20:58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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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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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9
추천수 :
63
글자수 :
83,785

작성
22.07.18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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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의문

DUMMY

몸 주인의 이름을 알게 된 소년, 리엘은 환히 열린 천막의 틈새를 지켜보다 다시 눈을 감았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낮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서 쉬고 있는 거로 보였겠지만 사실 소년은 지금 굉장히 바빴다. 독살당한 몸을 수복하기 위해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엘의 안에 있는 남자는 본래 세계에서 어떤 생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강자였다. 그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평범한 생물이라면 의식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영역을 자유자재로 컨트롤 할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예를 들면 지금 리엘의 몸에 잔류한 독성의 기운이 퍼지지 않게 유지되고 있는 점이 그랬다.


작게는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 혈류의 흐름부터 시작해 크게는 몸에 작용하는 호르몬까지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게 가능했는데 이것들은 모두 그가 싸움을 거듭해가며 조금씩 몸의 통제권을 넓히는 과정에서 홀로 터득한 것들이었다.


지금 리엘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건 손상된 장기의 세포들을 수복하면서 몸의 기본이 되는 골격을 더 단단하게 보강하는 작업이었다.


소년의 몸은 아직 성장할 여지가 남아있는 여물지 않은 육체였기에 강제로 몸의 뼈대를 부수고 수복시키는 게 전보다 훨씬 수월했다. 그럼에도 지금 소년이 하고있는 건 조금만 방심해도 몸의 신경이 끊어져 불구가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작업이었다.

고요한 밤에 홀로 치열한 싸움을 거듭하고 있을 때 천막의 틈새로 누군가 들어왔다.


"리엘 도련님. 잠자리가 준비되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낮부터 계속 리엘의 주위를 맴돌던 있던 하쿤이었다.

소년은 혼란스러운 내부를 진정시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쉬웠지만 그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었다. 인간관계라는 걸 소홀히 하면 때로는 쉽게 돌아가는 길을 어렵게 만든다는 걸 소년은 잘 알고 있었다.

하쿤을 따라 마차의 밖으로 나오자 보비라는 소녀가 들고 왔던 솜이불이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걸까?

이불이 필요하냐는 말에 바쁜 와중에도 친절히 대답해주었건만 오히려 화를 내며 나가버렸다.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실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건 자기 자신이었다.


소년은 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경어를 사용하지 않았던 걸까.


모든 사람에게 존대를 사용하는 건 전에 있던 세계의 버릇이었다. 타인의 마음에 공감하기 어렵기에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일부러 어조나 태도에 유의하던 게 버릇처럼 굳어진 건데 이상하게 소녀에게만큼은 자연스럽게 반말을 사용하고 말았다.


왜?

이 몸의 주인이 원래 알고 있던 사이라서?


소년은 해소할 수 없는 의문을 상기하며 널브러진 이불을 두 손으로 안아 들었다. 보고 있던 하쿤이 강직한 얼굴로 대신 들어줄 때까지 그 생각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


다음날

리엘은 바쁘게 움직이는 하녀들을 보고 있었다. 지금 그녀들이 하는 일은 병사들을 위한 식사 준비였다. 하녀 장 마리네의 지시에 따라 식재료를 손질하고 있는 하녀들을 바라보다 다른 마차에서 끙끙대며 무거운 짐을 옮기고 있는 어떤 하녀에게 시선이 갔다.


본인의 머리 색과 같아질 정도로 벌게진 얼굴은 누가 봐도 그녀가 힘겨워하고 있다는 게 보였다. 걸음도 똑바로 못 걷고 비틀비틀 간신히 앞으로 가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물론 다른 하녀들은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느라 미처 신경 쓰지 못한 거였지만 마차에 기대어 한가하게 동료들과 잡담하고 있는 병사들은 도와줄 법하건만 도움은커녕 오히려 그녀의 얼굴을 가리키며 킥킥대며 웃고 있었다.

잠시 그들을 관찰하던 리엘이 하녀에게 다가가 들고 있던 짐을 받쳐 들었다.


"어···?"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무거웠던 짐이 단숨에 가벼워지자 하녀는 놀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다 리엘과 눈이 마주치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도, 도련님?!"


"돕겠습니다."


"아, 아니에요! 이건 당연히 저희가 해야 하는 일인···어어?"


리엘이 강제로 그녀의 짐을 끌어당기자 잡고 있던 하녀의 몸도 순식간에 소년의 쪽으로 기울었다. 몸이 끌려올 정도로 엄청난 힘에 놀라 두 손을 놓고 멍때리는 사이 어느새 리엘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도련님!"


헐레벌떡 뛰어가지만, 소년의 걸음은 누구보다 빨랐다.

그녀의 일은 무거운 짐을 솜털처럼 가볍게 들고 왕복하는 리엘의 도움으로 평소보다 일찍 끝날 수 있었다. 서열이 낮아 식재료 같은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일은 전부 그녀의 몫이었기에 이렇게 일이 일찍 끝날 줄 몰랐던 그녀는 리엘에게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도련님. 도련님 덕분에 일이 정말 빨리 끝났어요."


"아닙니다. 이름이···?"


"아, 잔느입니다. 성은 없어요. 도련님."


빨간 곱슬머리에 주근깨 가득한 둥근 얼굴.

보비를 제외하면 하녀들 중에 가장 어린 그녀는 보비와 항상 함께 다니는 동료 잔느였다.

사실 리엘은 조금 전부터 보비가 보이지 않아 의도적으로 그녀를 관찰하고 있었다. 왜인지 어제부터 풀리지 않는 의문이 신경 쓰여 보비와 직접 대화를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 정도 호의를 줬으면 경계하진 않겠다 싶어 즉시 원하는 걸 물었다.


"잔느. 항상 같이 다니는 여자애는 지금 어디 있나요?"


"아아, 보비라면 분명 ···병사들의 옷을 빨러 갔을 거예요. 이 주변에 호수가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런 일도 하는 건가요? 안 그래도 일이 많아 보이던데 차라리 병사들이 직접 하도록 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요?"


"네? 아아··· 그렇군요. 기억을 못 하신다더니 정말로···"


"예. 저는 지금 기억나는 게 별로 없습니다. 어떤 말이라도 괜찮으니 편하게 말해주세요."


글썽이는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던 잔느가 어두운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저··· 아실지 모르겠지만 도련님은 지금 가문에서의 위치가 조금 불안합니다. 자세한 사정은 저도 잘 모르지만 사실 여기 있는 병사들은 대부분 용병이라고 들었어요."


"용병이요?"


"예. 돈을 주고 고용한 거라고··· 도련님도 아시다시피 그린트 백작가의 행렬이 용병을 고용했다고 소문나면 가문의 어르신들이 도련님을 더 안 좋게 생각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용병들 전원에게 가문의 장비를 지급해 우리 병사로 위장시킨 겁니다."


사실 리엘은 이세계의 용병체계에 대해 잘 몰라 되물은 거였지만 돈을 주고 고용한다는 점에서는 그가 있던 세계와 거의 동일한 모양이었다.


"용병들은 돈만 준다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족속들이지만 반대로 돈을 주지 않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려 하거든요. 저희야 잘은 모르지만 일단 그린트가문 병사로 위장한 사람들이니까 냄새가 나면 도련님이 하시는 일이 더 힘들어지지 않겠어요? 그래서 저희끼리 돌아가며 용병들의 옷을 세탁하고 있었어요."


"으음, 그럼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자진해서 하고 있다는 말인가요?"


잔느는 입가로 희미한 미소를 띠며 소년을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도련님은 기억을 잃기 전에도 저희에게 항상 상냥하신 분이셨어요. 우리 같은 아랫것들에게도 절대 함부로 안 하시고 오히려 신경 써주셨죠. 이번 일이 잘 되면 도련님도 상황이 괜찮아진다고 들었어요. 저희는 하루라도 빨리 도련님이 가문에서 인정받았으면 좋겠어요."


리엘은 방금 잔느가 무거운 짐을 옮기고 있을 때 그녀를 구경하며 비웃던 병사들이 떠올랐다. 과연, 유명한 명가의 병사들 치곤 장비도 형편없고 너무 체계 없이 풀어진 느낌이 강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다니.

이제야 비로소 납득이 갔다. 낮에 잠깐 하쿤에게 들은 바로는 이 행렬의 목적이 자신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들었는데, 대체 얼마나 사정이 안 좋으면 병사의 대다수를 용병으로 고용했던 걸까.


"저 도련님···? 혹시 괜찮으시다면 막내한테 한 번 가보시는 건 어떤가요? 보비가 아직 요령이 없어서 일하는 게 조금 서툴거든요."


"글쎄요, 한번 내키면 가보겠습니다."


"아, 네! 저, 호수로 가는 길은 저기 보이는 나무 옆길로 돌아서 쭉 가면 나올 거에요. 오늘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소년은 몸을 거의 반으로 접을듯이 인사하고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떠나는 잔느를 바라보다 마차에 등을 기댔다. 겉으로 티 내진 않았지만, 아직 몸이 전부 회복된 건 아니었기에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리엘은 몸을 점검하며 주변에 있는 병사들의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과연 잔느의 말대로 병사들의 대다수가 용병이라는 게 사실이었는지 대부분 삼삼오오로 모여 자기 동료 이외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몇몇은 진짜 병사들인지 각이 잡힌 모습으로 자신들이 머물 장소에 마른 장작더미를 모아 불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구경만 하고 있을 뿐 도울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병사들의 경직된 모습을 흉내 내며 비웃는 자도 보인다.


어느 쪽이든 절대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대로 전에 만났던 늑대 괴수가 한 마리라도 난입한다면 단숨에 전멸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용병들을 관찰하던 소년의 두 눈이 어느 순간부터 한 장소에 고정됐다.


그곳에는 병사 세 명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은 은밀한 움직임으로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슬쩍 뒤로 빠져 숲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평소라면 별로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그들이 들어간 곳은 잔느가 알려준 호수로 가는 길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소년이 조용히 한숨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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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위기(2) 22.07.22 366 5 11쪽
5 위기(1) 22.07.21 395 5 10쪽
» 의문 22.07.18 436 5 10쪽
3 도련님이 돌아왔다. 22.07.15 483 5 11쪽
2 생존 22.07.14 577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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