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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님의 서재입니다.

백작가 서자는 발경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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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작품등록일 :
2022.07.13 20:58
최근연재일 :
2022.08.15 14:2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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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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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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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사냥(1)

DUMMY

수색대로 자원한 다섯 명의 용병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톨킨은 과거 먼발치에서 기사들이 오크 한 마리를 둘러싸고 사냥하는 모습을 직관한 적이 있었다. 운이 나쁘게도 자신이 머물던 마을로 중형 몬스터 한 마리가 침입했던 때의 일이었는데 당시 여관에 머물던 톨킨은 방안에 틀어박혀 덜덜 떨며 창문 사이로 슬쩍 엿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조막만 한 영웅 심리를 채우려고 오크에게 도전하는 것은 그야말로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다를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절대 무리하지 않았다. 판금 갑옷으로 전신을 무장한 기사들도 그들의 몽둥이질 한 번에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데 톨킨처럼 흔하디흔한 브론즈급 용병이 그들에게 대적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런 쓸데없는 경험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엄청나게 도움이 되고 있었다. 실제로 본 오크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니 자신이 실력자라는 걸 정말로 믿는 녀석들이 생긴 것이다.


"오크가 이쪽 미간에 자잘자잘한 주름이 접히는건 알고있지? 그놈들이 전부 인상쓰고 귀청이 찢어질정도로 소리지르는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너무 놀라서 오줌을 지릴 정도였지."


"아우, 형씨 말을 참 생생하게 잘하는군.“


세상에, 내 말을 믿다니 실제로 몬스터를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내가 하는 말이 얼마나 허황한 이야기인지 알 수 있을 텐데. 결국, 그 말은 여기 모인 용병들이 전부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하다는 소리였다.

하긴 용병계를 몇 년이나 전전해 가면서 고작 달고 있는 게 브론즈라니 안 봐도 실력이 뻔할 수밖에 없었다. 목숨만 겨우겨우 부지하며 소일거리나 하며 돈을 벌었겠지. 애초에 실버급 이상의 실력자는 이런 수상한 일에 얽히지 않으려 한다. 보수가 많을수록 위험부담이 크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경험이 좀 있는 톨킨이 이런 수상한 의뢰를 받아들인 것도 이번을 마지막으로 이 업계에서 떠나 정착하려는 생각에서였다. 튼튼함만이 장점이던 그의 신체도 늙어서 이제는 검만 들고 서 있어도 숨이 벅찰 정도였으니 살고 싶다면 여기서 그만두는 게 맞았다. 소질 없는 몸으로 이쪽 일에 오래 머무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요?“


"어떻게 되긴 뭘, 내가 이 검으로 단번에 베어버렸지! 알고 보니까 오크 새끼도 별거 아니더라고!"


말하면서도 스스로가 웃겼다. 오크를 단번에 베어버려? 톨킨이 만약 그런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지금 이렇게 비를 맞으며 처량하게 다니고 있진 않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쯤 마력회로를 이식받고 골드급의 용병이 되어 양옆에 미녀를 끼고 금가루를 뿌리고 다녔겠지. 아니면 어디 시골 영주의 기사가 되어 영지를 하사받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입을 놀리는 톨킨의 영웅담은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야기 속 톨킨은 어느새 수많은 몬스터를 학살한 희대의 영웅이 되어있었다. 이쯤 되자 용병들도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했다. 톨킨이 말한 이야기 속 주인공과 그의 행색이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것이다.


"어이, 형씨 뭔가 이상한데? 아까는 몬스터 한 마리가 이 정도로 크다 하지 않았소! 근데 어떻게 당신이 눈을 찌를 수 있다는 말이오?"


"아니 그게···"


이상해진 분위기에 번뜩 정신을 차린 톨킨이 주변의 눈치를 살살 보기 시작했다.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앞쪽에서 거무스름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마음이 급하니 헛것이라도 보이는 걸까. 비비고 다시 봐도 역시나 움직이고 있다. 그것도 사람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잠깐, 앞에 누가 있는데? 우리보다 먼저 들어간 놈이 있었나?"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우리가 선발대인데. 그보다 말 돌리지 말고 제대로 설명하··· 아니, 뭐야, 정말이잖아! 설마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어떤 석궁이 불량이었지? 아무리 일회용 아티팩트라지만 불량품이 섞여 있다니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잖아!"


"뭐 어때. 살아있으면 다시 죽이면 그만이지. 그나저나 이거 저놈 잡으면 따로 보상금은 챙겨주는 거겠지?"


"아무렴. 돈 좀 있는 고용주 같던데 입만 잘 털면 지금 받은 거보다 2배는 더 받아낼 수 있을 거다. 하하, 이거 생각해보니 우리 운이 상당히 좋은 것 같은데."


다섯 명의 용병들이 낄낄대며 웃어 재꼈다. 나머지 후발대 용병들은 안전이 확보되면 들어온다고 했으니 잘만하면 다섯 명에서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덤으로 톨킨은 속으로 안도하고 있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생존자가 나타난 덕분에 창피를 당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당분간은 주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놈이 도망칠 수도 있으니까 살려준다 하고 일단 가까이 불러들이자. 알아서들 연기하라고."


빼빼 마른 사내가 작게 속삭인 뒤 당당한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스릉

검집에서 들린 날카로운 쇳소리가 빗소리에 먹혀들었다.

그러나 사내의 허리춤에서 나온 검은 녹이 슬어있는 낡은 검이었다. 겁을 주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자신들은 다섯 명이고 상대는 한 명이다. 게다가 뒤로 스무 명이 넘은 용병들이 버티고 있었으니 무서울 게 없었다.


"거기 너! 얌전히 투항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어차피 우리가 관심 있는 건 마차 안에 든 재물이니까 너도 우릴 도와주면 약간의 사례를 하지. 어때?"


용병의 말에 흥미가 느낀 걸까. 생존자는 천천히 마른 용병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살가죽이 뼈에 들러붙어 볼이 움푹 꺼진 사내의 눈에 기이한 열기가 맴돈다. 아마도 여기 모여 있던 용병들은 모두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가까이 오는 순간 죽인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가장 뒤에서 지켜보는 톨킨의 얼굴빛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아까부터 싸한 느낌이 심장 부근을 간지럽혔다. 식은땀이 두 손을 축축하게 적셨으며 근육들이 필요 이상으로 경직되고 있었다.

그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의 본능이 당장 여기서 도망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설마 누군가 매복해 있는 것일까? 하지만 길게 늘어선 협곡으로 숨을 공간 따윈 없었다. 있다고 한다면 조금 떨어진 바위벽에 붙어 있는 마차의 잔해뿐이었는데 그마저 크지 않아 숨어 있어 봤자 세 명이 한계였다.

어떤 무기도 갖고 있지 않은 맨몸의 사람 하나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이렇게 불안할까. 어쩌면 생존자가 너무 인간답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걸어오는 자세에서 위축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무기로 무장한 사람 여럿이 둘러싸고 있어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지만, 톨킨은 본능이 시키는 행동을 처음으로 무시했다. 여기서 물러나면 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조금만 참자. 이번 일만 끝나면 어딘가에 정착하는 거다. 더 이상 목숨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될 거다. 자신에게 세뇌를 걸었다.


생존자가 마른 용병의 바로 지척까지 다가왔다. 거무스름한 그림자가 가까워질수록 용병들의 미소가 한층 더 진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른 용병이 기습적으로 튀어나가 들고 있던 녹슨 검을 들어 올렸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톨킨은 용병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애송이치곤 제법 빠른 기습이었다. 미리 공격할 걸 알고 있지 않았으면 놓쳤을 정도로.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상식적으로 상대가 무기를 들고 기습해오면 뒷걸음질을 쳐야 정상이다.

그러나 상대의 무게중심은 오히려 앞으로 쏠렸다. 생존자의 몸이 철퍽 진흙을 박차고 앞으로 나갔다.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놓칠 정도로 빠른 속도에 무기를 든 용병이 속으로 당황한다.


'이게 아닌데···?'


마른 사내는 생존자가 뒤로 도망칠 것을 예상했다. 자연스럽게 더 넓은 범위를 베기 위해 검이 더 높게 들리고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있었다. 그러니 생존자가 오히려 앞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타이밍이 완전히 어긋나버렸다. 다급히 올린 무기를 내려치기도 전에 생존자의 몸이 이미 지척까지 다가와있었다.

생존자가 머리로 거세게 들이받았다.


우득!


코뼈가 아작나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마른 용병이 비명을 지르며 검을 놓쳤다.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는 몸으로 어떻게든 다음 공격을 피하려 하지만 상대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용병이 놓친 검의 손잡이를 공중에서 낚아채 사선으로 올려쳤다.


퍽!


"컥! 커르르륵···"


상대가 들고 있는 녹슨 검이 마른 용병의 갈비뼈 아래를 깊숙이 꽂힌다. 몸통의 반 이상이 움푹 파여 폐를 찢어버리자 용병은 피 가래를 끓으며 눈이 돌아갔다.


털썩


몸이 완전히 바닥으로 패대기쳐질 때까지 그야말로 한 호흡도 걸리지 않았다.


번쩍


천둥이 치려는지 세상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생존자의 얼굴.

다시 세상이 빛나는 순간, 어느새 그는 앞을 보고 있었다.

그들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애초에 그들이 노리고 있던 귀족 도련님이었다. 그러나 뭔가 달랐다. 악귀처럼 일그러진 두 눈과 마주치는 순간 톨킨의 거시기가 쪼그라들었다. 마치 번개에 직접 직격당한 것처럼 심장 부근부터 항문까지 모든 장기가 찌르르 울리는 기분이었다. 헛구역질이 났다.


'도망쳐야···'


톨킨이 발을 옮기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른 용병이 쓰러지자마자 톨킨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이 제각기 무기를 꺼내 들고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번쩍 세상이 잠깐 환해지고 소년은 이미 그 자리에 없다.

용병들이 당황하며 눈을 깜박이는 사이 이미 한 명의 배때기에 칼을 쑤셔 박은 뒤였다. 커억 피를 토한 용병이 자리에 주저앉으며 소년을 붙들려 하지만 소년은 망설임 없이 무기를 버리고 가까이서 날라오는 검격을 여유럽게 피해냈다.

소년의 날쌘 움직임에 '어어' 당황하던 용병들이 흐트러진 중심을 다시 바로잡으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배를 관통당한 용병이 피를 토하며 경련하던 중 들고 있던 검을 놓치자, 사내가 떨어지는 검을 다시 그림처럼 낚아채 휘두른다.


파삭!


한 손으로 휘두른 검격에 뒤에서 급습하려는 용병의 팔이 단숨에 잘린다. 그리고 다시 빙글 돌아 중심을 잡으려는 사내의 목을 비스듬이 내려쳤다.


퍽!


소리와 함께 사내의 목이 반 이상 절단돼 즉사한다. 팔이 잘린 사내가 오열을 하며 땅을 나뒹굴었다. '아악, 시발 내 팔! 내 팔! 끄아악!' 비명소리가 톨킨의 귓가를 사정없이 휘몰아쳤다.


바로 그때 마치 짠 것처럼 세상이 다시 환해졌다.


피를 온통 뒤집어 쓴 소년은 세상이 깜박깜박하는 단 몇 초 사이에 이미 세 명의 목숨을 빼앗고 한 명을 팔을 잘라버렸다. 소년이 보여주는 검술은 어딘가 어설펐지만, 위력적이었고 검격이 제멋대로일지라도 그 움직임만은 한치의 쓸데없는 동작이 없었다. 소년의 얼굴에 낙서하듯 튄 피가 다시 빗물에 씻겨 내려간다.

악마 같은 얼굴을 한 소년의 시선이 이번엔 꼼짝없이 굳어있던 톨킨을 향했다. 계속 톨킨을 지켜보며 울컥울컥 피를 쏟아내고 있는 용병 시체로 다가간 소년이 목에 반쯤 박힌 검을 잡아 단숨에 뽑아냈다.


푸슈우-


피가 분수처럼 흩뿌려지며 녹슨 쇠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소년은 잘린 팔을 붙들고 진흙에 뒤엉켜 애벌레처럼 기어가고 있는 용병에게 다가갔다. 겁에 질린 용병이 풀썩 주저앉아 비명을 지르지만, 소년의 행동엔 망설임이 없었다.


푹.


자신의 심장에 박힌 검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보던 용병의 눈알이 천천히 뒤집혔다. '그르르륵'입가로 핏물이 잔뜩 튀어나온다.

콰콰쾅! 뒤늦게 천둥 치는 소리가 사방에 메아리치자 그제야 마법이라도 풀린 양 톨킨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잔뜩 굳어 뻣뻣한 다리를 부여잡고 슬금슬금 뒷걸음치지만 사내가 다가오는 속도가 더 빠르다. 톨킨이 끊임없이 입을 놀렸다.


"누, 누가 시켰는지 알고 있습니다! 배후를 말할게요! 목숨만은. 제,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철퍽 진흙더미 위로 모난 돌에 걸려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목젖을 쥐어짜 다급히 외치치만, 천둥소리에 먹혀 웅얼거리는 소리로 들릴 뿐이다.


다시 세상이 어두워지자 소년의 얼굴이 검게 덧칠된다.


그러나 톨킨의 머릿속으로 잔상처럼 소년의 모습이 남아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마치 관찰하듯 지켜보는 소년의 시선에 온몸의 모든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원, 원하는 게 뭡니까, 돈도, 돈도 있어요. 정보도 알고 있습, 있습니다. 제발, 죽이, 죽이지만 마, 말아주세요."


입가가 덜덜 떨려 딱딱 이빨 부딪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겨우 의미를 전달했지만, 소년은 들어올린 검을 회수할 생각이 없었다.


퍽!


수박이 깨지는 것처럼 머리통이 산산이 조각났다. 뇌수가 흘러나와 리엘의 볼 가를 적셨다.

표정 없이 볼에 묻은 하얀 덩어리를 닦아낸 소년이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사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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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생존자들 22.08.02 263 3 11쪽
11 습격(2) 22.08.01 261 4 11쪽
10 습격(1) 22.07.29 313 3 11쪽
9 폭풍 전야 22.07.28 314 3 10쪽
8 전조 22.07.26 325 4 12쪽
7 그럴 리가 없어 22.07.25 357 4 12쪽
6 위기(2) 22.07.22 366 5 11쪽
5 위기(1) 22.07.21 396 5 10쪽
4 의문 22.07.18 436 5 10쪽
3 도련님이 돌아왔다. 22.07.15 483 5 11쪽
2 생존 22.07.14 577 7 10쪽
1 프롤로그 22.07.13 731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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