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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님의 서재입니다.

백작가 서자는 발경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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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작품등록일 :
2022.07.13 20:58
최근연재일 :
2022.08.15 14:2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5,694
추천수 :
63
글자수 :
83,785

작성
22.08.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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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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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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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사냥(2)

DUMMY

떠나가는 리엘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보비가 고개를 털어냈다. 잠깐이었지만 리엘을 무섭다고 생각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더글라스는 평소처럼 굳은 표정으로 시종일관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굳게 다문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그만두지 않자 보비가 말려야 했다.


"저희가 이곳에서 모두 죽더라도 그건 더글라스님의 잘못이 절대 아니에요."


더글라스가 리엘에게 가진 죄책감을 모르는 보비 였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곧이어 용병들에게 리엘이 발각되자 보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당당히 마주하리라 마음먹었지만, 막상 리엘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세상이 비뚤게 어긋나는 기분이었다.

보비가 손톱을 깨물었다. 누군가 리엘을 회유하려 나서는 순간까지 불안증세는 더 심해졌다.


"비열한 놈들! 저놈들이 우릴 살려줄 리가 없어요! 가까이 다가가면 도련님을 해칠 게 분명해요. 지금이라도 어서 말려야 해요!"


자릴 박차고 일어나려는 보비를 더글라스가 억센 손길로 억눌렀다. 이미 리엘의 위치가 노출된 상황에서 보비가 나서는 건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길이었다. 비전투원인 보비와 부상자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제발 그가 오래 살아남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마른 용병이 소년의 앞에서 높게 검을 쳐들자 웅크려있던 보비가 작게 탄식했다.


"안ㄷ ···으읍!!"


더글라스가 참담한 심정으로 보비의 입을 막았지만 그 뒤로 이어진 리엘의 대응에 막아서던 더글라스도 발버둥치던 보비도 모두 거짓말처럼 멈췄다.


그야말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둘 다 얼어붙어 한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가끔 둘의 입에서 나오는 경탄이 섞인 묘한 한숨 소리만이 그들이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보비가 볼 때, 리엘의 움직임은 마치 날쌘 짐승을 보는 것 같았다. 하녀 일을 하면서 가끔 우리에 사육하는 늑대들에게 먹이를 준 적이 있다. 먹이를 먹는 늑대들은 온순했지만, 그들이 밖으로 사냥을 하러 나가면 여지없이 본모습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숲을 내달려 눈 깜짝할 새 도망가는 먹이의 급소를 물어버린다. 먹이는 잡아먹힐 걸 알면서도 반항하지 못했다.


전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보비지만 리엘의 움직임이 마치 먹잇감을 사냥하는 그 늑대를 보는 것만 같아 등골이 저릿했다. 단지 눈을 몇 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용병들이 모두 피투성이로 땅에 나뒹굴고 있었다.


반면에 더글라스가 보고 있는 것은 조금 달랐다. 보비가 단순히 전투에서 느껴지는 감각적인 형상을 본 거라면 더글라스는 적지 않은 전투경험을 바탕으로 세밀한 움직임을 보고 있었다.


검격이 빠르고 강렬하다.


아니 단순히 움직임만 빠른 게 아니라 변칙적인 상황에서의 대처능력도 엄청났다. 그것은 어떤 특수한 수련을 통해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오로지 즉흥적인 움직임이었을 뿐.


그렇다. 리엘은 단순히 사람을 죽일 최선의 수단을 생각해 즉흥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등가가 뻣뻣하게 굳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즉흥적? 말로는 쉽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상상 속에서나 이뤄지는 일이다. 현실은 생각처럼 달콤하지 않다. 언제나 많은 수를 염두에 두어도 최악의 수로 돌아오는 게 전투인데 즉흥적으로 전투를 하는 게 말이 되는가.


그 어떤 실력자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혼잡한 전투의 순간, 망설이지 않도록, 헷갈리지 않도록 몸 안에 버릇을 들여놓는 것이다. 같은 동작을 수천 번 수만 번 반복해 실전의 비슷한 상황에 그 자세를, 그 검격을 한 번이라도 쓸 수 있도록 무의식으로 새겨놓는다. 그게 일반적인데, 지금 보고 있는 장면은 대체 뭐란 말인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전투에 대한 개념마저 송두리째 지워지는 기분이었다.

만약 리엘이 아군이 아니라 적이었다면 어땠을까. 더글라스의 뇌리에서 최상의 상태로 무장한 자신과 맨몸의 리엘이 대치한다. 그리고 이어진 끔찍한 결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무기를 들고 있어도 유리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윽고 마지막 용병까지 처리하자 두 사람 모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보니 도련님은 무척··· 힘든 삶을 살아오신 거 같구나."


"그게 무슨 말이에요?"


더글라스가 숨을 몰아쉬며 서 있는 리엘을 가리켰다.


"저런 실력을 아무도 모르게 숨겨왔을 정도니 얼마나···"


위험한 일이 많았으면 그랬을까.

말하지 않아도 뜻은 통했다. 보비의 눈이 다시 젖어 들었다.

점점 멀어지는 리엘의 작은 등을 바라보며 희망을 생각하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


콰쾅

세상이 부서질 듯한 천둥소리가 끊임없이 고막을 두드렸다.


"아오, 시끄러워 죽겠네. 이놈의 천둥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요란을 떨어?!"


"킥킥, 구름이 발정이라도 났나 보죠."


"아 그런 거야? 그러면 말을 하지. 내가 손수 이렇게 박아줄 텐데 말이야."


거인 같은 아둠이 허공을 쥐고 허리를 흔들자 주변에 포진해있던 용병들이 껄껄 웃어재꼈다.


"아냐, 소리를 들어보니 딱 남자고만! 구름 저 새끼 내 생각엔 부인이 바람났네! 바람났어! 그니까 저리 날뛰지!"


거대한 아둠 옆에서 키 작은 용병 하나가 깝죽거리며 날뛴다. 슬쩍 코를 훌쩍이던 아둠이 그 커다란 손바닥으로 짝 소리 나게 등짝을 후려쳤다.


"하나만 해, 재미없으니까."


끄아악 비명 지르며 나뒹구는 키 작은 용병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다시 용병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피식 웃으며 콧구멍을 후벼 파던 아둠이 뒤쪽에서 잔뜩 굳은 얼굴로 단검을 손질하고 있는 카락톰을 보고 고개를 기웃거렸다.


"너는 뭔데 혼자 무게 잡고 있어. 지금 대장 티 내는 거야?"


서로 낄낄거리며 농담을 주고받는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유독 혼자만 심각하다. 평소라면 아둠과 같이 서로 의미 없는 농담이나 주고받으며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을 텐데 지금의 카락톰의 모습은 조금, 아니 아주 낯설었다.


"아둠. 선발대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거야?"


"선발대는 무슨, 지랄 아주 염병을 떠네! 아까부터 희한하네. 거참 우리 이제 큰돈 받고 떵떵거리며 살게 생겼는데 무슨 표정이 그래? 독을 한 사발로 처먹었나. 아님 설마 거스 그년 때문인 거야?"


"···"


거스에게는 습격이 시작하기 직전에 하쿤의 발을 잡아 놓고 있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사실상 그녀는 가장 큰 전력이었지만 하쿤도 그에 못지않게 큰 변수였기에 맡긴 일이었는데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는 건 그녀가 패배했거나 아니면 또 명령을 말 그대로 받아들여 하쿤을 끝내지 않고 시간만 벌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뭐가 됐든 그녀의 안위를 걱정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카락톰은 그녀와 모닥불에서 나눈 대화가 아직 신경 쓰이고 있었다.


"너도 참 별걱정을 다한다. 그 실력에 어디서 죽어버릴 년도 아닌데 뭘 그리 심각하게 굴어?"


"그래, 곧 돌아오겠지. 그보다 진지하게 묻는데 선발대는 왜 아직 안 온 거야?"


바위처럼 얼굴을 굳히는 카락톰의 재미없는 모습에 아둠이 얼굴을 흉하게 찡그렸다.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아니 그걸 몰라? 그놈들 분명 또 욕심나서 패물들이나 줍고 있겠지. 목숨이 아까우면 적당히 챙기고 기어들어 올 테니까 좀 얌전히 기다려 봐.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안달이야? 답지 않게."


"후, 미안하다. 뭔가 불길해서 그래. 그냥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것뿐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러니까 그게 뭔지를 말하라고! 소리치려고 후읍 숨을 들이키던 중에 앞에 있던 용병들이 소란스레 떠들자 아둠이 고개를 휙 돌렸다.


"조용히 안 해?! 또 무슨 소란이야!"


"어이···? 대장! 한 명이 그냥 오고 있는데? 근데 이상하네. 선발대 중에 저런 새끼가 있었나?"


어스름하게 내려앉은 풍경으로 굵은 빗방울이 투둑투둑 땅을 다지는 소리만 조용히 울렸지만 잘 들어보니 칠퍽칠퍽 발소리가 들린다. 아둠이 미간을 좁히며 눈을 게슴츠레 뜨자 그제야 조금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검을 길게 늘어뜨리고 한 발자국씩 느긋하게 걸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키 작은 용병 말대로 저런 녀석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왜소한 체격이다.

귓가로 작게 '서, 설마'하는 소리에 슬쩍 눈알을 돌리니 카락톰이 잔뜩 경직된 표정으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왜 혼자 돌아온 거야? 수상한 녀석이라도 발견했어?"


아둠에게 까불다 등짝을 얻어맞은 용병이 거침없이 나섰다. 작은 키로 불쑥 얼굴을 들이밀며 인사하려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뭔가 생소하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상대의 얼굴로 향한다.

아까 간 놈 중에 나처럼 작은 새끼가 있었나?


"적이야! 당장 그놈한테서 떨어져!!"


뒤편에서 들리는 다급한 외침에 저도 모르게 멍청히 돌아봤다. 카락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가를 크게 벌리고 있었다.

뭐라는 거야. 저 새끼는 선발대 쪽에서 왔다고. 그럼 그 녀석들이 그냥 보내줬다는 거야?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갑작스레 세상이 온통 새빨게진다.

그리고 반전되는 시야. 빙글빙글 세상이 미친듯이 회전하다 마침내 한쪽으로 고정된다.


푸슈우-


목이 없는 몸통에서 시뻘건 피가 용솟음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끊겼다.

데구르르.

몸통과 분리된 머리가 천천히 굴러 용병들의 발치에 닿았다.

머리가 있던 자리에서 분수처럼 뿜어나오는 피가 용병들의 얼굴에 사정없이 흩뿌려졌다. 녹슨 쇠냄새가 진동을 한다.

흐읍. 숨을 몰아쉬던 용병들이 부릅뜬 눈으로 잘린 머리를 멍청히 내려봤다. 울컥울컥

입가, 눈, 귀 구멍이란 구멍에서 진득한 피가 사정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 생생해 정말 잘린 것인지조차 의심이 든다.

마침내 툭 하고 머리 없는 몸통이 진흙더미로 쓰러지자 침묵이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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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습격(1) 22.07.29 314 3 11쪽
9 폭풍 전야 22.07.28 314 3 10쪽
8 전조 22.07.26 326 4 12쪽
7 그럴 리가 없어 22.07.25 358 4 12쪽
6 위기(2) 22.07.22 367 5 11쪽
5 위기(1) 22.07.21 396 5 10쪽
4 의문 22.07.18 436 5 10쪽
3 도련님이 돌아왔다. 22.07.15 484 5 11쪽
2 생존 22.07.14 578 7 10쪽
1 프롤로그 22.07.13 732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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