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올리고땅 님의 서재입니다.

백작가 서자는 발경고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올리고땅
작품등록일 :
2022.07.13 20:58
최근연재일 :
2022.08.15 14:2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5,690
추천수 :
63
글자수 :
83,785

작성
22.07.14 20:09
조회
577
추천
7
글자
10쪽

생존

DUMMY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남자는 단번에 이곳이 다른 세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호흡하면서 느껴지는 미세한 공기의 흐름부터 흙과 풀잎의 냄새까지 모든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가 이미 그 전과는 매우 달랐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정확히는 남자의 의식이 깃든 거울속 세계의 소년이 죽어가고 있었다. 외적인 상처는 거의 없었지만 피부에 발진이 올라오고 있었으며 입가로 끊임없이 새하얀 거품이 밀려 나오고 있었다. 호흡 역시 지금 당장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늘었다.


남자는 혼미해지는 정신을 억지로 각성시키며 자신의 몸 내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머릿속으로 누워있는 소년의 신체가 상세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피부조직부터 신경과 근육의 다발, 내부 장기를 감싼 뼈의 모양까지 전부.


가장 심각한 데미지를 입은 부위는 예상대로 몸의 독성을 해독하는 간이었다. 이미 80% 이상의 세포가 외부 독성으로 인해 괴사한 상태였으며 그것은 지금도 진행 중이었다. 남자는 급히 간으로 유입되는 독성의 진입로를 모조리 차단하고 피를 타고 돌고 있는 독을 한곳에 몰아넣기 시작했다.

그의 의도에 따라 소년의 왼쪽 새끼손가락이 검푸름 하게 변하기 시작하자 좀비처럼 눈만 뜬 채 가만히 누워있던 소년이 돌연 자신의 왼손을 입가로 가져갔다.


으득


날카로운 송곳니로 망설임 없이 자신의 새끼손가락 끝을 찢어버리자 피가 나와야 될 상처 부위에서 검은 액체가 사방으로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소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위 속에 잔류해있던 무언가도 억지로 토해내며 가까이 있는 나무에 기대앉았다. 다행히 안색은 빠르게 좋아지고 있었다.


겨우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자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지금 소년의 몸에서 사유하고 있는 존재는 방금 막 복수를 완성하고 거울을 통해 다른 세상을 보고 있던 남자였다. 그렇다면 본래 이 안에 있어야 할 소년의 의식은 어떻게 된 것일까? 내 몸과 뒤바뀐 것일까 아니면 이미 죽어버린 것일까.


남자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들을 억지로 의식의 밑바닥에 가라앉혔다. 어차피 지금 고민해봐야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것보다 소년이 왜 여기서 홀로 죽어가고 있던 건지가 궁금했다. 그가 기억하기로 소년은 항상 주변의 괄시를 받아오긴 했지만 이렇게 독살을 당해 숲에 버려져도 아무도 모를 정도로 하찮은 태생은 절대 아니었다.


남자는 먼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살폈다. 평상시 입던 고급스런 재질의 옷이 아닌 활동하기 편한 천 옷으로 엉덩이나 허벅지 안쪽 같이 쓸리기 쉬운 부위가 해져있는 걸로 보아 이미 입고 지낸 지는 오랜 시간이 지난 듯 보였다. 신발의 밑창도 지나치게 달아있는 거로 보아 어떤 이유에서인지 집을 떠나 아주 먼 곳까지 가는 도중이 아니었을까 생각됐다.


그렇게 한동안 주변의 흔적들을 살피다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의문스러운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이 약한 몸을 고쳐놓는 게 우선이었다. 몸을 헤집어놓던 독을 전부 배출하면서 상태가 많이 호전되긴 했지만 이미 내부의 장기들이 많이 망가진 상태였다.


손실된 세포를 재생시키려면 양질의 에너지, 즉 식량이 필요했다.


소년은 좀비처럼 숲을 배회하며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전부 입에 넣기 시작했다. 버섯, 풀, 벌레 가리지 않고 으적으적 씹다가 독이 들어있다 싶으면 다시 뱉어낸다. 간단한 일이었지만 모든 감각기관을 통제할 수 있는 남자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오로지 먹는 것에만 집중한 결과 갈비뼈가 앙상히 드러날 정도로 꺼져있던 소년의 배는 어느새 볼록 솟아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정글을 거침없이 나아가는 소년의 몸 주위로 아지랑이처럼 연기가 일렁였다. 몸 안에서 죽은 세포를 내보내고 건강한 세포를 재생시키는 과정을 쉴새 없이 반복하면서 체온이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해가 떨어지고 완전한 밤이 되어버린 숲은 빛이 한점 없어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발가락 사이로 스치는 풀과 축축한 이끼의 느낌, 몸을 스치는 나뭇잎과 가지가 아니라면 여기가 숲이라는 사실도 알 수 없을 만큼 온통 깜깜했다.


소년은 안구의 수정체를 조절해가며 동공을 최대치로 확장해 최소한의 시야를 확보했고 온몸의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던 소년이 돌연 움직임을 멈췄다. 어느 경계를 기준으로 갑자기 지형이 변한 것이다. 딛고 있는 땅 위로 느껴지는 풀의 촉감이 미세하게 눌려있었다. 몸을 숙여 만져보니 그 모양은 마치 저쪽 세계에서 언젠가 마주쳤던 대형 곰의 발자국과 유사했다.


흔적을 유심히 살피던 소년이 돌연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본다.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두 귀가 얇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가까워진 것일까. 분명 조심해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숲의 주민들에게 들킨 모양이었다. 소년의 주위로 사방을 포위해가는 어떤 무리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냄새는 짐승에 가까웠지만, 기척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은 인간과 유사했다.

이전에 거울로 보았던 괴물 중의 하나일까? 정체가 뭐가 됐든 소년을 그리 좋게 보고 있진 않은 모양이다. 저쪽 세계에서 이미 지독하게 느껴본 살기가 전신을 압박하고 있었다.


히죽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아냈다.

신체가 제멋대로 통제를 벗어나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혈액이 요동친다.

이전 세계에서 그를 위협할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었기에 이런 경험을 해봤을 리 만무했다. 나약한 소년의 몸이 되어 먹잇감으로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이 급박한 상황이


그는 진심으로 즐거웠다.


소년은 나무 밑동을 박차 본인의 키보다 배 이상 높게 뛰어올랐다. 불규칙적으로 피어난 나뭇가지를 잡고 반동을 이용해 더 높게 솟아오른다.

몇 번을 반복해서 순식간에 나무의 꼭대기에 올라선 소년이 자세를 낮추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주변을 지형을 훑었다. 예상대로 포위해오던 짐승들의 기척이 어수선해지는 게 느껴졌다.


아마 지금 그들은 눈앞에서 먹잇감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소년이 직접 내부 호르몬을 조작해 냄새를 지우고 대사를 거의 멈춰 심장 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소리뿐만 아니라 냄새와 열원까지 모조리 지워버렸기에 그들이 소년을 감지하고 찾을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그르르


위협이 섞인 짐승들의 하울링이 고요한 숲속에서 산발적으로 울려 퍼졌다.

마침내 그들 중 하나가 소년의 시야에도 들어왔다.

외형은 주둥이가 길고 턱이 굉장히 발달한 늑대과 동물과 유사했지만 놀랍게도 그것은 두 발로 직립 보행하고 있었다. 크기는 대략 저쪽 세계의 남자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정도였는데 몸을 구부정하게 숙이고 있어 실제로는 일반적인 성인 남자보다 몸집이 배 이상은 커 보였다.


소년은 지금의 약한 육체로 괴물들에게 덤비는 게 자살행위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저쪽 세계에서 이미 익숙한 일이었기에 아무렇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해가 떠오르는 시간에 가까워지자 괴수들은 슬슬 어디론가 떠나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떠나는 괴수를 지켜보다 소년은 마침내 나무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소년은 다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낮에 발견해둔 사람의 흔적을 쫓아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낯선 환경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어떤 두려움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


다그닥 다그닥

규칙적으로 리드미컬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좌우로 흔들리는 작은 세상에서 넋을 놓고 앉아있던 늙은 남자는 문득 자신이 쇠창살에 갇힌 채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움직이는 마차 안에는 늙은 기사 한 명이 구부정히 앉아 있었는데, 기사가 입고 있는 갑옷은 감히 기사라고 칭해도 될지 의문이 들 정도로 낡고 녹슬어 있었다. 회백색의 긴 머리를 산발로 풀어헤친 노기사의 눈은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노기사는 하루 전의 일을 회상하고 있었다.

그는 그린트 백작가의 명을 받아 백작가 자제의 호위 역으로 장거리 여행에 동행하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별다른 사고 없이 무난한 여정을 보내고 있었는데 야영지를 설치하고 있던 도중 호위 대상이 갑작스레 사라지고 말았다.

마을과 상당히 떨어진 외딴 숲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니 용의자는 가문의 식솔이나 병사들 중에 있을게 분명했지만 아무리 범인을 찾으려 해도 워낙 인원이 많고 저마다 알리바이가 있는지라 결국 범인을 특정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실종된 공자는 천한 피가 섞인 서자에 불과했기에 가문의 어르신들은 그가 죽든 말든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게 분명했지만, 호위대상을 지키지 못한 죄는 그가 모두 뒤집어쓸 게 분명했기에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암담했다.


버릇처럼 다시 한숨을 내쉬던 노인이 어느새 규칙적으로 들리던 말발굽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벌써 다음 야영지에 도착한 것일까? 노기사는 마차 측면에 가려진 커튼을 열었지만 여전히 보이는 것은 빽빽이 수 놓인 나무뿐이었다.


"왜 마차를 세운 것이냐?"


"아, 파비르님 그게··· 저 앞에서 누군가 길을 막고 있는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곧 쫓아낼 테니 안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백작가 서자는 발경고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를 중단합니다. 22.08.16 37 0 -
공지 연재주기입니다. 22.07.13 211 0 -
17 사냥(5) 22.08.15 143 3 10쪽
16 사냥(4) 22.08.12 170 3 11쪽
15 사냥(3) +1 22.08.11 169 1 9쪽
14 사냥(2) 22.08.09 183 2 10쪽
13 사냥(1) 22.08.08 189 1 13쪽
12 생존자들 22.08.02 263 3 11쪽
11 습격(2) 22.08.01 262 4 11쪽
10 습격(1) 22.07.29 314 3 11쪽
9 폭풍 전야 22.07.28 314 3 10쪽
8 전조 22.07.26 325 4 12쪽
7 그럴 리가 없어 22.07.25 358 4 12쪽
6 위기(2) 22.07.22 366 5 11쪽
5 위기(1) 22.07.21 396 5 10쪽
4 의문 22.07.18 436 5 10쪽
3 도련님이 돌아왔다. 22.07.15 484 5 11쪽
» 생존 22.07.14 578 7 10쪽
1 프롤로그 22.07.13 732 5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