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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님의 서재입니다.

백작가 서자는 발경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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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작품등록일 :
2022.07.13 20:58
최근연재일 :
2022.08.15 14:2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5,691
추천수 :
63
글자수 :
83,785

작성
22.07.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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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전조

DUMMY

해가 완전히 떨어졌다.

밤이 된 머둠 숲은 눈앞의 윤곽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확실히 이곳은 이상할 정도로 어둡다. 야영지 곳곳에서 삼삼오오로 모여있는 무리의 장작불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주변을 밝히고 있었지만, 그 빛은 그저 피곤함에 쪄 들어 하품만 쩍쩍 해대는 병사들의 얼굴만 겨우 비출 뿐 더는 뻗어가지 못했다. 마치 어둠이 불길을 삼키고 있는 것만 같았다.

턱.

리엘은 누워있는 상태로 겨우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봤다.

예상대로 그곳엔 물이 가득 찬 대야를 내려놓은 보비가 새로운 천에 물을 적시고 있었다.

소년의 이마에 올려두었던 젖은 천을 갈아준 보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몸도 약한 분이 왜 남의 일을 돕는다고 나선 거에요."


"···"


호숫가에서 있었던 일 뒤로 리엘은 요 며칠 동안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원인은 짐작이 갔다. 얼굴을 가린 거스라는 자가 쏘아낸 화살.

손으로 화살을 잡아채는 과정에서 내부로 침입한 '무언가'가 회복 중인 몸의 통제를 방해하고 있었다. 사실 무언가가 몸에 침입하기 전에 막을 수 있었지만 어떤 독성 물질이 들어와도 즉시 걸러서 배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사태를 이렇게까지 만들었다.

방심했다는 말이 옳았다.


"적어도 머둠 숲 안에서는 몸을 조심해주세요. 여긴··· 아시잖아요. 조금 꺼림칙한 곳이에요."


어째서 그렇냐고 묻자 어깨를 으쓱하며 '너무 어둡잖아요.'란다. 말장난인가 싶어 멀뚱히 보고 있자 보비가 아차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도련님은 기억을 못 하신다고 하셨죠. 사실··· 이곳은 대륙의 그 어떤 숲보다 유명한 곳이에요."


"···왜?"


"신화 속에 등장하는 웨어울프 종의 서식지거든요. 웨어울프는 야행성이라 빛을 아주 싫어한대요. 그래서 머둠 숲은 이렇게 유독 밤이 되면 굉장히 어두워진다고 들었어요."


보비는 조금 겁에 질린 얼굴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숲 너머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소년이 이세계에서 처음 마주쳤던 그 늑대 괴수를 이곳의 사람들은 웨어울프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신화 속에 등장한다고 하니 어쩐지 그들의 강인함이 납득이 갔다.


"은빛 털이 아름다운 늑대들이었지."


"꼭 눈앞에서 보신 것처럼 얘기하시네요. 맞아요. 세간에는 그렇게 알려져 있죠. 하지만 웨어울프를 실제로 만나본 사람은 아직 없어요. 그들은 인간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말이 이상하네. 목격한 사람이 없는데 존재한다는 건 어떻게 알아?"


보비는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머둠 숲을 무사히 지나가기 위해서는 '라곤'이라는 아티팩트를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라곤의 범위 안에 있지 않거나 맨몸으로 숲을 배회하면 그 누가 됐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리고 만다.

사람들은 그것이 웨어울프의 소행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전설이었기 때문이다.


"도련님의 예산도 절반 이상이 그 라곤이라는 걸 얻는데 들어간 걸로 알고 있어요. 그게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느긋하게 쉬고 있지 못했을 거예요."


"음, 조금 이해가 안 되는데. 애초에 그렇게 통행에 방해가 된다면 이미 누군가가 사람을 모아서 웨어울프들을 토벌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과거에는 그런 사람도 있었죠.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지만요. 전설은 괜히 전설이 아닙니다, 도련님."


소년이 홀로 상념에 빠져있는 동안 보비는 다른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근처 모닥불과 멀지 않은 곳에 마른 짚을 모아 정성스레 깔고 있었다. 주변에 솜이불 하나가 널브러져 있는걸 보니 잘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주변의 병사들도 그녀처럼 자신의 자리에 무언가를 깔고 있었으니 특이한 광경은 아니었지만 다른 하녀들이 마차 건너편에서 하는 일을 유독 그녀만 이곳에서 하고 있으니 이상하다면 이상했다.


"여기서 잘 생각이야?"


"그,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럼 이 자린 누구 자린데?"


"당연히 도련님 자리죠. 바보처럼 뭘 그런 걸 물어봐요."


새침하게 쏘아붙인 보비가 나머지 마른 짚까지 전부 바닥에 깔아두자 푹신한 짚 침대가 완성되었다.


"그··· 혹시라도 도련님께서 계속 아프시면 저 때문이라고 탓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이상한 오해하지 마세요."


보비는 새침한 얼굴로 누워있는 소년에게 던지듯이 솜이불을 건네준 뒤, 총총 빠른 걸음으로 마차의 건너편 하녀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버렸다.

작게 '보비야, 네 이불 어디 갔니? 찾아도 보이질 않아.'라던지 '왜 마른 짚이 어제보다 줄어든 것 같지?', 같은 하녀들의 음성이 들려왔지만 이내 곧 잠잠해졌다. 그리고 수분 뒤 마차 꽁무니에 머리만 불쑥 내민 보비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잘 자요."


그녀는 리엘의 대답도 듣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보비는 그가 만났던 사람 중에서도 유독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소년과 있을 때의 싸늘한 표정을 보면 꼭 철천지원수를 대하는 것 같다가도 행동은 그와 정반대였다.

차갑게 식은 잔반을 먹으려 할 때 일부러 다시 데워서 건대기가 큼지막하게 들어있는 따뜻한 수프를 건네준다든지, 갑자기 입고 있는 천 옷을 달라길래 벗어주니 찢어진 부분을 바느질로 깔끔히 꿰매서 건네준다든지, 방금처럼 일부러 이부자리까지 준비해놓은 것을 보고 있자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미간을 찌푸린 소년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한올 한올 정말 정성스레 열을 맞춰 깔린 마른 짚을 쓰다듬곤 그 자리에 누웠다. '쉬익' 마른 짚들 사이로 공기가 새어나가는 소리가 작게 들릴 만큼 생각보다 굉장히 푹신하고 아늑했다. 땅밑에서 올라오는 한기도 어느 정도 막아주니 보비가 준 솜이불만 덮으면 따뜻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꾸만 눈이 감겨왔다. 몸의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 수면 욕구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었다. 눈꺼풀이 점점 내려오고 눈동자가 위로 솟아 흰자만 보이게 될 때 즈음 소년의 귀가 작게 움직였다.

아아, 마침내 기다리던 미끼가 움직였다.

닫히려던 눈꺼풀을 강제로 열고 느릿하게 몸을 일으킨 소년이 어딘가로 홀린 듯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


"···든"


어디선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

환청이라도 들리는 걸까 아니면 내가 드디어 미쳐가는 걸까.

조든은 이불처럼 덮고 있던 천을 머리끝까지 들어 올렸다. 양손으로 두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할 새까만 공간 속에 전에 봤던 장면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끊임없이 거품을 토해내고 있던 어린 소년. 숨을 겨우 토해내던 소년은 오래 지나지 않아 숨이 끊기고 말았다. 분명 그랬을 게 틀림없는데


"조든."


"헉!"


귓가에서 들리는 선명한 목소리에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릴 만큼 격렬하게 뛴다. 식은땀이 볼 가를 타고 흐르는 걸 느끼며 소리가 들린 쪽을 살피자 익숙한 인영 두 사람이 보였다.

그의 연인 앤야와 친형 더글라스였다.


"너··· 괜찮아? 밥은 먹고 있는 거지?"


"···응, 난 괜찮아. 더글라스 형."


조든은 비 오듯이 쏟아지는 땀을 닦아내며 대충 둘러댔다.

차마 그날, 죽어가는 도련님을 숲 깊은 곳에 버려두고 온 뒤부터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안색이 조든 못지않게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련님의 상태는 좀 어떠셔?"


"돌아오신 날은 괜찮으셨는데 다음날부터 며칠 동안 열병을 앓고 계세요."


"앤야 씨, 혹시 그날 뭐 기억나거나 하시는 건··· 없으시답니까?"


더글라스 형의 말에 앤야는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음영 진 얼굴 속에 깊이 배어있는 죄책감이 보았지만 조든은 차마 연인을 위로할 수 없었다. 조든의 마음도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든은 입술을 잘게 깨물고 있는 형과 시무룩한 연인을 바라보다 마침내 결심을 굳힌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도련님께 말씀드리···?!"


"왜? 뭐, 뭔데?"


말을 하고 있던 조든이 갑자기 경악한 얼굴로 몸을 곧추세우자 두 사람도 덩달아 놀라 그가 보고 있는 뒤를 돌아보았다.

세 사람은 모두 귀신이라도 본 얼굴로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들이 말하고 있던 도련님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


리엘은 자신의 앞에 엎드려 빌고 있는 세 사람을 유심히 관찰했다.

금발의 하녀 앤야

이곳에 도착한 첫날 마차 안에서 소년이 직접 독살을 언급했을 때 유일하게 놀라지 않았던 하녀였다.

그 뒤로 리엘은 그녀의 기척에 주의를 기울였다.

앤야는 이튿날 밤 그녀의 연인인 시종 조든과 접촉했고 사흗날 정오에 조든의 친형이자 가문의 병사인 더글라스와 접촉했다. 독살을 시도한 범인을 정확히 특정하기 위해 한동안 그들의 주위를 맴돌았으나 그들은 그들 외에는 사적인 만남을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오늘 밤 소년은 그들이 전부 모이는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눈물과 콧물로 범벅된 얼굴로 머리를 찧어가며 사죄하는 그들의 모습에선 전혀 악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도련님··· 흐흑, 저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평소처럼 음식을 전달했을 뿐인데··· 그런데 도련님이 그걸 먹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갑자기 발작하셨어요. 사람을 부르려 했지만···"


"제가! 제가 앤야를 말렸습니다, 도련님. 도련님이 이미 가망이 없는 줄 알고 제가 형에게 부탁해 도련님을 숲에 유기했습니다. 그러니 모든 죄는 전부 저에게 있습니다."


조든이 울고 있는 앤야의 몸을 감싸며 그녀를 변호했다. 슬픔으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에도 죄책감이 남아있었다.

리엘은 한동안 그들을 관찰했다.

죄악감으로 일그러진 얼굴

흔들리는 시선

풀잎을 거세게 움켜쥐고 있는 손가락

불규칙한 심장 소리

모든 비언어적인 수단이 그들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걸 가리키고 있었다. 소년은 마침내 작게 한숨 쉬었다.


"그러니까 즉 당신들도 진범을 모른다는 말이군요. 조금 실망스럽네요. 혹시 그날 수상한 사람을 봤다거나 어떤 특이사항은 없었습니까?"


"···그게 사실."


앤야가 물기에 젖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날 도련님의 식사를 준비하다 잠깐 자리를 비운 적이 있어요. 음식에 독이 들어갔다면 그때일 게 분명한데··· 지금 생각해보면 독을 몰래 넣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 거 같아요. 주변이 모두 확 트인 공간이었고 용병들도 잔뜩 있었거든요. 몰래 무언가를 넣을 수 있는 상황은 절대 아니었는데···"


"···일단 알겠습니다. 더 생각나는 게 있으면 저한테 말해주시고 인제 그만 쉬세요."


잠시 고민하던 리엘이 망설임 없이 바로 몸을 돌리자 당황한 조든이 소년의 옷자락을 잡았다.


"도, 도련님! 저···"


"뭐죠?"


"그냥 이렇게 가시는 겁니까? 그럼 저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그냥 평소처럼 지내시면 됩니다. 진범이 아니라면 굳이 죄를 따질 생각은 없어요."


"그런··· 그럴수가.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도련님."


조든을 필두로 더글라스와 앤야도 머리를 조아리며 연신 감사 인사를 반복했다.

소년을 그들의 인사를 지켜보다 말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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