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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님의 서재입니다.

백작가 서자는 발경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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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작품등록일 :
2022.07.13 20:58
최근연재일 :
2022.08.15 14:2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5,688
추천수 :
63
글자수 :
83,785

작성
22.08.01 20:00
조회
261
추천
4
글자
11쪽

습격(2)

DUMMY

잔느가 사색이 된 얼굴로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지만, 소년은 망설임 없이 장막을 헤치며 몸을 날렸다. 습격이 시작한 뒤부터 마차가 달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기에 마차에서 뛰어내린 소년은 낙법으로 땅을 짚고도 몇 번을 굴러야 했다.

입안에 진흙이 흘러들어왔는지 텁텁한 맛이 느껴진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뜬 리엘이 곧바로 자리에서 튕기듯이 옆으로 굴렀다.


퍼!퍽!


리엘이 있던 자리로 몇 개의 화살이 꽂혔다.

이번에도 역시 인간의 급소만을 노린 정확한 궤적이었다. 용병들이 보이는 지점은 협곡 입구 너머 약 500m 정도. 거리가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이렇게 정확한 솜씨로 화살을 날리는 걸까.

머릿속으로 떠오른 의문을 잠시 접어두며 몸을 굴러 화살을 피해낸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역으로 용병들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히는 리엘을 노리고 순식간에 모든 화살이 집중되었지만, 몸을 살짝 틀거나 손등으로 화살촉을 쳐내 모조리 피해낸다. 충분히 빠른 속도였지만 실상은 푹푹 빠지는 진흙탕으로 인해 제대로 속력을 못 내고 있었다. 여기서 더 다가가면 사정권에 들어온 화살의 일부는 피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하는 수없이 마차가 더 지나갈 시간만 버티자는 생각으로 속도를 줄이던 중 저 멀리서 엄청나게 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쿠우우우웅!!!


어마어마한 소음과 함께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지반에서 겨우 중심을 잡으며 다시 날아온 화살을 손으로 쳐냈다. 앞을 경계하며 소리의 진원지인 위를 흘낏 보다가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굳건하게 자연의 위대함을 과시하던 머둠 협곡의 양쪽 바위벽 윗부분이 쩌억 금이 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듯한 모습에 다급해진 리엘이 마차가 달리는 방향으로 뛰는 동시에 소리 질렀다.


"벤자민!! 당장 마차를 세워!"


그러나 가속이 붙기 시작한 마차의 속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나마 짐칸에 실린 사람 무게와 젖은 흙바닥 때문인지 사람이 달리는 속력보다 조금 빠른 수준이었으나 이대로 가다간 마차에서 살아남은 사람조차 모두 잘게 다져진 육포처럼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 게 분명했다.

용병들이 협곡 입구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던 것이다.

리엘은 무리하게 심장을 펌프질하며 몸을 미친 듯이 가속했다. 달리면서 끊임없이 '벤자민! 멈춰! 멈추라고!!'소리치지만, 비명과 빗소리 때문에 듣지 못하는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엄청난 속도로 겨우 마차를 따라잡은 소년이 짐칸의 턱에 손을 짚어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금이 가고 있던 협곡의 벽이 완전히 갈라져 그 잔해들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도련님! 앞쪽에서 무슨 소리가···"


잔느가 소년을 다급히 불렀지만 대답해줄 여유가 없었다. 중심이 무너져 몸을 구른 소년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짐칸의 나무 기둥을 잡고 순식간에 마차의 지붕에 오른 소년이 찢어진 천막 사이로 드러난 목재 뼈대를 밟아가며 굉장한 속도로 뛰어갔다. 마부석 가까이에 발을 디딜 때쯤 저 멀리서 한참을 앞서가던 다른 마차 위로 거대한 바위가 내려앉았다.


쿠구우웅웅! 콰아아아아앙!!!


땅이 갈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높은 파열음이 귀청을 때리며 후폭풍이 휘몰아친다. 앞서 달리던 마차를 산산조각낸 바위가 잘게 부서져 바람과 함께 리엘의 몸을 급습하기 시작했다. 리엘은 엄청난 풍압과 먼지에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겨우겨우 큰 돌덩이를 피해냈다. 그러나 작게 부서진 돌조각들이 그의 피부를 벌겋게 물들였다.

바람이 휘몰아침과 동시에 땅이 조금씩 흔들렸다. 겨우 목제 기둥 한쪽 면에 발하나를 걸치고 서 있던 소년의 몸이 휘청인다. 신발 밑창에 붙은 진흙이 지지대에 미끄러져 소년의 몸이 중심을 잃고 말았다.


"도련님!!"


어느새 정신을 차린 보비가 찢어진 장막 사이로 떨어지는 리엘을 보며 울먹인다.

그녀의 안위를 확인하는 것과는 별개로 마차 옆면을 걷어찬 소년의 몸이 빙글 돌았다. 땅으로 꺼지던 머리가 다시 하늘로 솟았다. 앞으로 내달리는 마차는 어느새 소년을 지나치려 하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소년의 왼손이 마차 뒤꽁무니의 모서리를 움켜쥐는 데 성공한다.


"도련님! 도련님!!"


울먹이는 보비와 잔느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진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눈이 자꾸 감긴다. 겨우 안정시켰던 몸이 통제를 벗어나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심하게 흔들리는 몸의 반동을 이용해 겨우 나머지 오른손으로 나무 기둥을 붙잡은 리엘이 비쭉 튀어나온 목재를 받침 삼아 다시 마차 위로 등반하듯 올라섰다.

겨우 손바닥만 한 면적의 기둥들을 발판삼아 순식간에 마부석까지 뛰어간다. 그리고 드러난 풍경에 리엘의 얼굴이 구겨졌다.

마부석엔 벤자민의 시체가 가로로 널브러져 있었다.

정확히 벤자민의 후두부를 꿰뚫은 화살촉이 그의 오른쪽 눈알을 뚫고 나와 있었다. 방금까지 허허 웃고 있던 노인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눈도 감지 못한 채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급박한 상황이기에 명복을 빌어줄 여유도 없었다. 리엘은 죽은 벤자민이 끝까지 말아쥐고 있던 고삐를 잡아채 빼내려 했지만, 사후경직 때문인지 굳어있는 손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손과 연결된 고삐를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전속력으로 달리던 말들이 비명을 지른다. 소년의 억센 손길에 우드득 뼈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말의 고개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다. 히히힝 고통스럽게 비명 지르던 말들이 다급히 앞발을 놀려 멈추려 하지만 가속도가 붙은 마차는 쉽사리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질질 끌려간다.

말들의 발이 질질 끌려 미끄러지자 마차의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려 순식간에 옆으로 기울었다. 아차 하는 순간 마차가 옆으로 넘어갔다.


콰직!


히히힝 마차와 연결된 말들이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옆으로 넘어간 마차는 달리던 가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땅에 질질 끌리다 바위벽에 부딪혀 충돌했다. '아악!' 짐칸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작게 들림과 동시에 소년의 몸도 포탄처럼 튕겨 나갔다.


'큭!'


이를 악문 리엘이 몸을 굴려 추락의 충격을 최대한 줄여 보지만 오른쪽 날개뼈에서 심한 격통이 느껴졌다. 바닥이 진흙밭이 아니었다면 단순히 아픈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겨우 몸을 추스른 소년의 시선이 머리 위를 향한다. 거대한 바위가 순식간에 눈 앞에 떨어졌다.


쿠우우우웅!!


다시 한번 지반이 진동했다. 작은 폭풍우와 함께 수많은 돌조각이 규칙성 없이 휘몰아쳤지만, 소년은 불편한 몸으로 용케 낙석을 피해내고 있었다.

바위가 떨어진 장소는 마차가 부서진 장소에서 얼마 되지 않는 거리였다. 리엘이 마차를 세우지 않았다면 마차를 타고 있던 사람들은 틀림없이 모두 잘게 다져진 고깃덩이가 되었을 것이다.

쏴아아

끊임없이 내리는 빗줄기가 리엘의 살갗에 닿자마자 연기가 되어 아지랑이처럼 사라진다. 달아오른 소년의 몸이 순식간에 식었다. 쿵, 하고 땅이 다시금 진동한다. 눈앞으로 거대한 바위가 시야를 가렸지만 분명 저 멀리 어딘가에서 낙석이 다시 떨어진 모양이었다.


지겹게 쏟아지던 화살비도 이젠 찾아볼 수 없다. 겨우 숨을 돌린 리엘이 옆으로 쓰러진 마차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엔 화살에 천막을 찢어지고 낙석에 목재 뼈대마저 모두 부서져 버린, 더 이상 마차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목재 덩어리가 있었다.

주변으로 수많은 하녀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 마차가 쓰러지면서 모두 리엘처럼 튕겨 나간 모양이었다.


"으으···"


작게 신음소리가 들렸다. 자리를 옮기던 리엘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눈이 조금 크게 떠졌다. 진흙으로 얼룩진 그것은 분명 기억 속에 있는 하녀였다. 소년에게 독살의 진범으로 의심받았던 하녀, 앤야. 고개를 조아리며 잘못을 빌던 그녀는 목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인 채 고통스럽게 울부짖고 있었다.

리엘을 보며 애원하듯 신음하지만, 그가 지금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걸음을 옮긴다. 피와 진흙을 뒤집어쓰고 즉사한 하녀들의 시체가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몇 분 전만 해도 담소를 나누며 하하호호 웃고 있던 그녀들의 얼굴이 더없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채 눈도 감지 못했다.

유리알처럼 투명한 눈동자로 하녀들의 텅 빈 눈동자 하나하나와 마주 보던 소년이 머릿속으로 기억을 되새긴다.

팔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있는 조금 통통한 하녀는 보리나. 허기질 때 푸근한 미소를 띠며 몰래 간식을 챙겨주곤 했었다. 목구멍에 화살이 박혀 있는 하녀는 주리안이다. 리엘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마다 몰래 알려주며 도와준 사람이었다. 그밖에 줄린, 비투나...하나하나 이름을 되새길 때마다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그리고 마침내 홀로 멀리 떨어져 있는 무엇을 본 순간 소년의 눈동자가 더없이 커졌다.

타오를 듯한 빨간 머리에 주근깨 가득한 얼굴. 요 며칠 자신과 제일 가까이 있던 그녀, 잔느가 그곳에 있었다. 항상 깨끗이 정돈되어있던 옷이 피와 진흙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귀염성 있는 얼굴도 흙먼지로 뒤덮여 누군지 조차 알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복부에 박혀 있는 쇳조각.


운이 안 좋았다. 마차가 쓰러지며 부서진 바퀴 축의 쇳조각이 하필이면 그녀의 몸을 관통해버린 것이다.

가늘게 흘러나오는 미약한 숨소리가 아직 그녀가 살아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지만 이미 그녀의 하녀 복을 흠뻑 적신 혈액의 양으로 볼 때 회생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매만진다. 누가 온걸 알았을까 감겨있던 잔느의 눈이 반쯤 떠진다.


"···누구? 미안해, 나, 눈이, 잘 안 보여."


겨우 더듬더듬 내뱉는 잔느의 숨이 리엘의 얼굴에 닿았다.


"저에요, 잔느."


"아하하, 도련님. 다행, 이다. 무사··· 하셨네요···"


쿨럭


마른기침과 함께 그녀의 입가가 피로 물들었다.


"도, 련님, 은, 괜찮으신, 거죠?"


"예, 저는 멀쩡해요."


피로 젖은 얼굴이 힘겹게 웃는 표정을 만들려 하지만 힘에 부치는지 다시 그만둔다.


"보비, 를, 부탁할게, 요"


가늘게 이어지던 호흡이 조금씩 가빠진다.

이내 슬픈 얼굴로 '미안해요' 속삭이며 숨이 멎었다.

볼을 매만지던 소년의 손이 잠깐 굳었다. 반쯤 열려있는 그녀의 눈을 감겨주었다.

죽기 직전 그녀는 왜 '마안해'라고 말했을까.

꽉 쥔 주먹,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러 땅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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