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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문명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일반소설

완결

FromZ
그림/삽화
포타리
작품등록일 :
2019.02.22 23:57
최근연재일 :
2019.04.24 00:05
연재수 :
58 회
조회수 :
38,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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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2
글자수 :
332,014

작성
19.03.10 00:00
조회
624
추천
42
글자
12쪽

2. 사악한 것을 상대하는 방법 (5)

DUMMY

***1***



대기 오염의 수치를 미루어볼 때 아마도 도시 외곽에 위치한 군사기지가 핵폭발의 중심지라고 추측된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탓인지 군사기지가 가까워질수록 창밖의 공기가 탁해 보인다.


나는 나를 포함해 5명이 탑승한 승합차의 중간 자리에 구형 로봇과 함께 앉아있다.


"슬슬 방독면을 쓸까요?"

"차 안에 있어도 불안하네요."


우리가 방독면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매번 밖에 나가는 탐색조와 우선순위를 결정해주는 안경 남자 덕분이다.


최근의 우선순위는 방독면, 제독기, 의약품, 위생용품이다.


그 외에 식료품이나 자잘한 도구들은 백화점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기에 순위가 떨어졌다. 그리고 우선순위와 별개로 무기나 탄약은 무조건 최우선으로 여기도록 말해두었다.


"곧 방공호입니다."


내 앞 좌석과 뒷좌석에는 총을 소지한 남자들이 있고 우리 차량의 앞쪽과 뒤쪽에 따라붙은 다른 차량에도 총을 소지한 남자들이 가득하다.


이래선 외부인의 눈에 우리가 그다지 친근하게 보이진 않을 것이다.


이런 시기에 총기를 소지한 남성의 집단은 확실히 '무력'을 떠올리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무력이 좋게 쓰일지 나쁘게 쓰일지, 우리를 접하지 않고서야 알 길이 없을 것이다.


방공호에 생존자 집단이 있다면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어떻게 비추어질까.

확실히 힘과 행동력은 있어 보여도 쉽사리 경계심을 풀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이미 늦었지만, 다음에 사람들을 만나러 갈 일이 생긴다면 적절하게 성비를 맞춰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는 길에 군용 차량이나 장갑차가 보였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새까맣게 타서 쓸 수 없는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저런 군용 차량에는 분명히 군사용품이 있을 것이다.

기억해둬야겠다.

지금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방공호와 군사기지에 도달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2***



방공호가 있다는 표지판이 길가에 박혀있다.


그런 안내를 따라 차량을 운전하니 예상대로 우리의 눈에 들어온 것은 폐허였다.


돔 형태의 1층 건물은 창문도 없이 아주 단단하게 설계되었다.


그래도 폐허처럼 보이는 이유는 건물의 입구와 그 주변 풍경이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들어갈 통로가 보이세요?"

"얼핏 봐서는 모르겠습니다. 저 추락한 헬기가 입구를 가리고 있어서···. 더 가까이 가볼까요?"

"네."


가까이 갔지만 도저히 들어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헬기가 조종석을 저 좁은 입구에 들이박는 형태로 추락했다.

날씬한 사람 한 명이라도 통과할 수 있기를 희망했지만 그건 불가능한 모양이다.


"건물 주위를 둥글게 돌아주세요. 다른 입구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다른 입구는 찾을 수 없었다. 처음에 발견한 그 좁은 통로가 유일한 길이었다.


"저 헬기를 치울 수밖에 없겠네요."

"저 헬기를 치울 정도의 여유는 없습니다. 바깥은 위험합니다."


대기의 탁한 빛깔만 보더라도 이곳이 얼마나 심각하게 오염됐는지는 불 보듯 뻔하다.


아무리 방독면을 쓰고 온몸을 가리고 있다지만, 그런 환경에 노출되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제독기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소모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가지 않아요. 이 녀석이 치우면 되니까요."


내 옆자리에는 상당히 쓸만한 구형 로봇이 있었다.

몸체의 정면이 개조되고 다양한 경험을 학습한 세상에 하나뿐인 로봇이다.


"그동안 저희는 차에 탑승한 채로 군사기지를 돌아봅시다."


구형 로봇에게 헬기를 치우게 하고 우리는 곧장 근처의 군사기지로 향한다.


군사기지의 정문에 도착하니 높고 튼튼한 벽이 군사기지의 모든 부지를 감싸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군사기지의 위쪽은 공허하게 뚫려있어서, 핵폭탄을 맞았을 내부의 모습은 처참함을 넘어서 황폐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거, 예상과는 다른 모습이지 않습니까?"


생각보다 군사기지의 상태가 괜찮았다.


물론 어떻게든 다시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멀쩡하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이곳의 풍경은 우리가 줄곧 보았던 도시의 풍경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활주로, 격납고, 보급창고, 관제탑.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시설이 깨끗하게 지워졌거나 뼈대만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시설들이 구조물의 형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리더···. 이곳은 이상합니다."

"네. 저도 느끼고 있어요."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생각보다 구조물이 잘 버티고 있어서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이상한 점은 이 근처와 시야가 닿는 가장 먼 곳까지 연달아 남아있는 흔적이다.


"이건 마치···"

"핵이 아니라 폭격이 떨어진 것 같네요."


활주로를 따라서, 벽을 따라서 군사기지를 돌아다녀도 핵폭발의 흔적은 찾아낼 수 없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연속적으로 광범위하게 펼쳐진 작은 폭발의 흔적뿐이다.


이 부지 전체에는 연달아 작게 폭발이 일어났었다.


누가 봐도 크고 거대한 하나의 폭발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쏟아지는 폭격이다.

그래서 이상하다.



혹시 핵폭발은 없었던 것인가?



아니다. 나는 분명히 하나의 섬광을 목격했다.


폭격의 흔적이 없음에도 도시는 폭발반경에 들어온 것처럼 폐허가 되었다.


전자장비의 대부분이 고장 나고 에너지가 방전되었다.


길에 있는 차량은 까맣게 그을렸고 바깥에서 오래 활동하면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난다.


기억을 더 되살려보자.

이 의심을 부정하고 확신할 수 있는 그런 기억이 필요하다.


생각났다.


로봇들은 대기의 오염도를 아주 많이 언급했다. 신형 로봇들이 도시 중심부에서 오염된 대기를 정화하고 밀어낸다. 그 덕분에 우리는 바깥에 나서도 무리하지 않는다면 쉽사리 코피를 흘리지 않는다.


그렇다.


로봇들도 분명 방사성 낙진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우리를 위협하는 환경에는 분명히 방사능이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핵무기가 사용되었다는 증거다.


이제 감이 잡힌다. 상황이 그려진다.


핵무기가 군사기지가 있는 방향에 떨어진 것은 맞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 외곽으로 향할수록 대기가 심하게 오염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곳의 반대 방향인 서쪽으로 향할수록 대기는 상대적으로 깨끗해진다.


더 나아가서 서쪽의 완전한 외곽으로 향해도 역시 대기는 상대적으로 깨끗하다. 서쪽은 이곳과는 다르게 도시의 영역이기에 탐색조가 몇 차례 활동했던 구역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곳의 공기가 괜찮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이쪽이 심하게 오염된 이 방향에서 이쪽에서 핵무기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핵무기는 군사기지에 떨어지지 않았다.


근처의 바다에 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에 남은 폭격의 흔적도 설명이 된다.


우리를 적대한 국가가 이 도시국가의 군대를 완전히 궤멸시키지 못 했다고 판단하여 폭격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나는 이 추측을 입 밖으로 꺼내려다가 차량이 멈추는 바람에 도로 집어 삼켜버린다. 왜 차를 세웠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조종석의 사람이 나를 돌아보았다.


"리더. 저 수송기 안에 좋은 것이 있습니다."


격납고에서 살짝 튀어나온 수송기는 머리 부분이 폭격에 맞았는지 무너졌다.


그 무너진 틈새와 찌그러진 장갑 사이사이로 햇빛이 스며들어서 수송기 내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저 안에 군인들이 벨트에 고정된 채로 죽어있습니다."


그게 왜? 아무것도 못 하고 죽은 건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아, 그렇구나.


"자동소총이 있겠네요."

"그밖에 다른 군사용품도 그대로 있을 겁니다."


그래도 바깥에 나가는 것은 위험하다.


잠깐이라면 모르겠지만 저 높은 수송기까지 올라가서 부서진 틈새로 들어가야 한다.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이 작업을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수송선을 한 사람씩 오르내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오염도가 측정이 불가능한 수준의 대기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 그때 나타나는 복통이나 코피와 같은 이상증세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바깥에 나설 때는 항상 오염도에 신경 쓰는 편이다. 나도 싫지만, 이 사람들에게도 외부에서의 작업을 시키고 싶지 않다.


자동화기는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물건이 아니다.

아직은 거주지에 남아있는 일회용 제독기가 더 가치 있다.


"방공호에서 방호복을 구하면 다시 오도록 하죠."

"하지만 리더, 바로 앞에 있습니다. 달려나가서 집어오면 금방입니다."

"방호복을 구해서 와도 늦지 않아요. 이 근방의 방사능에 노출되면 반드시 제독기를 사용하게 될 겁니다. 우리 수중에 있는 제독기는 모두 소모품이고요."

"···."

"서두르는 마음은 이해해요. 그래도 지금은 그렇게 급할 필요가 없어요. 저 물건들도 오늘이나 내일이면 가져갈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그는 수긍하지 못 하는 눈치다.


나는 무엇이 그를 저렇게 만들었는지 짐작한다.


그래도 제독기를 소모하면서까지 당장 저 물건들을 가져올 필요는 없다.


"그때 우리에게 권총보다 더 좋은 무기가 있었더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날의 하루 전에 더 좋은 무기를 구했다면, 제 친구들도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방공호에 들린 후에 저 물건들을 입수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은 압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하지만 불안합니다. 우리는 방공호 안에 어떤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오늘이라도 저 무기가 필요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너무 두렵습니다. 방사능으로 몸이 망가지고 귀중한 제독기가 소모되는 것보다 그것이 더 신경 쓰입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전장에 나섰다. 그리고 그가 전장에서 얻은 용기는 친구들의 죽음과 후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아직 그날의 충격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손에, 그와 함께할 사람들의 손에 더 강한 무기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그렇게 해준다면 그의 불안한 마음이 당분간 진정되고 우리의 전력도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저 혼자서 하겠습니다. 그러면 제독기도 하나만 쓰면 됩니다. 제독기 하나를 쓰고 지금 당장 대부분의 위협을 배제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괜찮지 않습니까?"

"리더. 무슨 일이 생기면 그가 책임질 겁니다."

"그런가요···."


"여기에 차를 세우고 잠시만 저를 지켜보고 있으면 한 분대의 화력이 곧장 우리 손에 들어옵니다. 부탁입니다."


내가 여기서 그의 간절한 요청을 거부하고 방공호로 향한다면 어떻게 될까.


예정대로 방공호에서 생존자들과 접촉하고 방호복을 잔뜩 구해서 좋은 무기를 손에 넣는다고 가정하자. 내 계획대로 일이 제대로 진행되었으니 지금 내 결정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그를 제외하면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방호복을 구하지 못하거나 다른 집단과의 접촉으로 어떤 일이 발생한다면 이 순간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작게 후회할 수도, 아주 크게 후회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그의 요청을 거부하더라도 그가 완강히 밀어붙이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가 내 말을 무시하고 멋대로 바깥으로 뛰쳐나간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힘없는 리더로 보이지 않기 위해 잘못된 선택을 하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 그를 내버려 둔다면, 그를 막지 못 한 나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나의 약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역시 후회할 가능성이 가장 적은 쪽으로 가자.



나는 수긍했고 그는 발사되듯이 재빠르게 바깥으로 나갔다.


그는 높은 수송기를 금방 기어 올라갈 정도로 운동신경이 발군이었다.


이후 우리는 자동소총 10정, 지정사수소총 2정, 수류탄 24개, 연막탄 12개, 총검 12자루, 군용 방탄모 12개, 군용 방탄복 12벌, 여분의 탄약과 탄창을 손에 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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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5. 그래도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 (2) +1 19.03.22 545 37 12쪽
27 5. 그래도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 (1) 19.03.21 552 42 11쪽
26 4. 군중 속에서 울지 마 (5) +2 19.03.19 555 36 13쪽
25 4. 군중 속에서 울지 마 (4) +2 19.03.19 560 42 14쪽
24 4. 군중 속에서 울지 마 (3) +1 19.03.18 574 39 14쪽
23 4. 군중 속에서 울지 마 (2) +1 19.03.17 566 39 13쪽
22 4. 군중 속에서 울지 마 (1) +2 19.03.16 598 40 14쪽
21 3. 올바른 길 (5) +1 19.03.14 589 39 18쪽
20 3. 올바른 길 (4) +1 19.03.14 599 38 16쪽
19 3. 올바른 길 (3) +1 19.03.12 615 45 15쪽
18 3. 올바른 길 (2) +1 19.03.12 608 46 14쪽
17 3. 올바른 길 (1) +1 19.03.11 627 43 13쪽
» 2. 사악한 것을 상대하는 방법 (5) +1 19.03.10 625 42 12쪽
15 2. 사악한 것을 상대하는 방법 (4) +1 19.03.09 632 39 13쪽
14 2. 사악한 것을 상대하는 방법 (3) +1 19.03.08 633 38 13쪽
13 2. 사악한 것을 상대하는 방법 (2) +2 19.03.07 658 35 15쪽
12 2. 사악한 것을 상대하는 방법 (1) +2 19.03.06 679 35 15쪽
11 1. 백화점 공략 (5) +1 19.03.05 696 38 14쪽
10 1. 백화점 공략 (4) +2 19.03.04 730 43 14쪽
9 1. 백화점 공략 (3) 19.03.03 775 38 13쪽
8 1. 백화점 공략 (2) +1 19.03.02 832 42 15쪽
7 1. 백화점 공략 (1) +1 19.03.01 872 47 12쪽
6 Prolog. 살아남은 선조들 (6) +3 19.02.28 944 50 13쪽
5 Prolog. 살아남은 선조들 (5) +2 19.02.26 959 49 15쪽
4 Prolog. 살아남은 선조들 (4) 19.02.26 1,086 51 13쪽
3 Prolog. 살아남은 선조들 (3) +1 19.02.25 1,318 64 14쪽
2 Prolog. 살아남은 선조들 (2) +3 19.02.23 1,606 66 13쪽
1 Prolog. 살아남은 선조들 (1) +5 19.02.23 3,002 7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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