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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서재입니다.

악의 문명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일반소설

완결

FromZ
그림/삽화
포타리
작품등록일 :
2019.02.22 23:57
최근연재일 :
2019.04.24 00:05
연재수 :
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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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77
추천수 :
2,332
글자수 :
332,014

작성
19.03.01 00:00
조회
871
추천
47
글자
12쪽

1. 백화점 공략 (1)

DUMMY

***1***



이 소년은 아버지가 총포상을 운영하고 있어서 자신도 총기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주장했다.


"너 이만한 크기도 다룰 수 있어?"

"산탄총이야 쉽죠. 어디서 구했어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냥 계산대 밑에서 주웠어. 이 총알도 같이 구했는데 이거, 산탄 맞지?"

"맞아요. 한 번에 8발이 들어가는 민간용 산탄총인데 쏴본 경험이 있어요."

"그럼 이 총을 너에게 맡길게."

"왜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물건을 맡긴다는데 놀라지 않는 모양이다.


"이 총을 숨기고 있다가 위급한 상황일 때 사용해줘. ···저번처럼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누군가 희생당하는 건 싫어."


나는 로봇과 함께 승합차를 이용해 백화점에 도착했다. 걸어서는 40분 정도의 거리였고 차량으로 조심히 주행하면 15분이 걸린다.


로봇의 도움을 받아 작은 발전기를 연결하는 것은 간단했다. 축전지 옆에 발전기를 두고 케이블을 연결해서 발전기를 가동한다.


지금은 발전기 안에 연료가 들어있지만 나중을 대비해서 연료를 더 모을 필요가 있다. 자동차의 대부분이 전기로 움직이지만, 대형 차량이나 주유소나 그 외 기름으로 움직이는 차량을 찾아내 적당히 빼내면 될 것이다.


하지만 화석연료를 소모하는 것은 반드시 끝이 있기 마련이다. 일단 급한 불은 이걸로 끄고 연료가 부족해지기 전에 다른 발전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구형 발전기답게 작은 소음이 울린다. 발전기에서 만들어진 전력이 축전지로 흘러 들어가자 단말기에 불이 들어오면서 에너지의 잔량이 표시된다.


발전기와 축전지 사이의 효율이 좋은 것인지, 10분이 지나자 10%가 넘게 충전되었다. 이 정도라면 정문을 여닫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충전이 완료되었습니다."


배터리 때문에 불안했던 로봇도 충전이 다 되었으니 가보자.


'정문 차단 제어'라는 차단기를 조작하자 튼튼한 철문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로봇과 함께 정문으로 뛰어간다.


조명이 켜지지 않은 실내는 매우 어두웠다.

손전등을 켜서 점점 깊은 실내로 걸어 들어간다.


상품을 훑어보니 약간 어지럽혀지긴 했지만 큰 피해는 없는 듯하다. 적당히 청소하면 사람이 지낼만한 깨끗한 장소다.


"이 역한 냄새는···."

"오류. 시신이 식별됨. 오류. 시신이 식별됨. 오류. 시신이 식별됨."

"알았으니까 그만 말해. 너무 어두운데 빛을 넓게 펼쳐줄 수 있어?"

"알겠습니다."


로봇이 조명을 크게 넓히자 어느새 익숙해진, 끔찍하고 안타까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은 걸까. 아침에 백화점에 들른 사람들은 전부 죽은 것일까. 무엇 때문에 죽은 것일까.


그것이 앞으로 백화점에서 살아갈 사람들에게 위협이 된다면 무서워도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열이나 방사능으로 죽은 것 같지는 않아···."


나는 시체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상처나 출혈도 없이 창백하고 깨끗해. 썩은 냄새가 나는데 구더기나 파리도 없어."


그동안 구더기나 파리가 유입될 수 없는 환경이었다. 혹은 구더기나 파리가 붙을 수 없는 시체다.


"이곳의 공기는 어때?"

"대기 오염도 측정, 매우 양호. 오류."

"그건 분명 방사능, 유해 물질, 미세먼지, 오존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거지?"

"맞습니다."

"병원균은 탐지할 수 없어?"

"본 개체는 불가능합니다."

"다른 개체는?"

"오류. 대학병원에서 시험 운용 중인 간호사 로봇이라면 가능."


나중에 그 로봇도 찾으러 가야겠다.

근처를 더 돌아다녀 보니 이곳의 모든 시체는 같은 원인으로 죽은 게 분명하다.


"이곳의 공기가 어떤 상태야? 말할 수 있는 건 다 말해봐."

"방사능 수치 191, 유해 물질 수치 23, 미세먼지 수치 4, 오존 수치 15."

"그런 상수는 들어도 몰라. 숫자를 빼고 어떤 상태인지를 말해줘."

"······방사능 수치가 조금 높으나 인체에 유해하지 않습니다. 유해 물질은 도심부의 평균과 비슷한 농도이며 미세먼지는 매우 적고 오존 수치도 매우 양호합니다."

"그리고 다른 특징은 없어? 측정된 자료와 관련 없는 것도 말해줘."

"내부의 공기가 움직이지 않음. 순환되지 않는 것으로 보임. 순환되지 않은 공기는 질병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오류. ······입니다."


이제 알겠다. 이 백화점은 그 일이 일어난 직후 바깥의 환경과 완전히 격리되었다.

그 덕분에 폭발의 여파와 외부의 해로운 것들로부터 사람들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공기가 순환되지 않는 환경에서 어떠한 질병이 발생했고 그것으로 사람이 죽었다. 몇 명이 더 감염되고 몇 사람이 더 죽어서 밀폐된 실내에 시체가 쌓였다.


시체가 쌓여도 이곳의 공기는 파리조차 드나들 수 없을 정도로 순환되지 않았다.


어둡게 침체된 이곳에서 사람들은 천천히 병들어 죽어갔다는 것이다. 잔혹한 이야기다.


내부에서 백화점의 문을 열거나 환기구를 조작할 수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 원인으로 유력한 것이 전력의 차단이다. 도시의 전기가 꺼지고 축전지도 방전된 마당에 백화점의 통제실에서 무엇을 움직일 수 있을까. 이곳에 있던 사람들은 전기가 없어진 탓에 완전히 갇혀버린 것이다.


나는 통제실을 찾아 백화점을 배회한다.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들은 꽤나 상태가 좋은 데다가 상당히 풍족했다.


이곳의 환경을 유해하지 않게 만들고 대피소의 사람들을 이곳으로 데려오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식료품 코너를 지나치는데 누군가 식품을 집어먹은 흔적이 있다. 그리고 유독 이 근처에만 시체가 없는 것 같다. 마치 누군가 일부로 시체를 치운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문득 화장실이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의 근처에도 시체는 없었다. 저곳에서 물은 당연히 안 나올 것이다. 변기도 세면대도 이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왠지 직감적으로 확인하고 싶어졌다. 나는 유의미한 무언가를 발견하길 내심 바라면서 화장실에 들어선다.


"아···?"

"어···?"

"안녕하세요···?"


생존자가 있다! 나는 얼떨결에 인사하면서···. 하나, 둘, 셋, 넷···. 젊은 남녀로 구성된 여덟 명이다. 노인이나 아이들은 질병에 버티지 못해서 이렇게 구성된 것일까.


"음···. 일단 저는 바깥에서 왔습니다···. 혹시 백화점에 계속 갇혀 계셨던 분들인가요?"

"살, 살려주세요···! 제발 저희를 구해주세요···!"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서 백화점이 폐쇄되서! 갇혔어요···! 전기도 끊겨서 나갈 수가 없어요···."

"휴대폰도 다 망가져서···!"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어디로 들어오셨어요? 이제 나갈 수 있는 건가요?"

"잠깐만···. 저 사람···. 구조대가 아닌 것 같아···. 이상한 차림에 저 방독면이···."

"도와주세요···."


한 여자가 내 바지를 붙잡고 울면서 애원하고 있다. 그녀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으로서 이들을 거절할 수 없고 거절할 이유도 없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이제 괜찮아요. 더는 갇혀있지 않아도 돼요."

"아아···! 감사합니다···!"

"일단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거겠죠? 우선 구조대에게···"

"어서 나갑시다!"

"잠시만요! 다들 진정해주세요."


최소한의 설명은 해줘야겠다.


"어디서부터 설명드려야할지···. 우선은 핵폭발이 있었습니다···."


반응을 보고 말을 이어나가려 했는데 아무도 반응이 없다. 다들 내가 이 말을 꺼내기 직전까지의 자세를 유지한 채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마네킹이 된 것 같다.


"그래서···. 아무튼, 저는 그 속에서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대피소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대피소에 여러 문제가 있어서 새롭게 살아갈 곳을 찾던 와중에 이 백화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곳을 사람이 살 수 있는 장소로 만들기 위해 찾아온 겁니다."


이 사람들은 화장실의 수도관을 통해 올라오는 아주 작은 공기의 흐름과 젊고 건강한 신체 덕분에 살아남은 것 같다. 바깥의 사정을 전부 설명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2***



바깥으로 나가서 가족을 찾겠다는 사람이 세 명, 바깥이 무서워서 이곳에 있겠다는 사람이 두 명, 대피소로 가고 싶다는 사람이 세 명이다.


나는 환풍기를 가동하고 대피소의 사람들을 데려올 것이니 그중에 가족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일단 여덟 명 전원이 섣불리 나가지 않고 이곳에 남게 되었다.


나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통제실을 찾아냈다. 방송실과 전력 제어실도 함께 있어서 백화점을 관리하는데 유용할 것이다.


축전지는 77%까지 충전되어서 정문 말고도 다른 것들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환풍기를 작동시키고 정문 조작을 수동으로 전환한다.


앞으로 사람이 정문을 통과할 때는 누군가가 내부에서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로 조명이 필요한 곳, 승강기, 냉장시설, 온도 관리 등의 잡다한 기능은 사람들과 의논한 뒤에 결정해야겠다.


대피소는 비좁고 어둡다.

전력도 끊기기 직전이고 환기도 제대로 안 된다. 그에 반해 백화점은 일부 조명도 있고 전력도 있으며 넓은 공간에 물건과 먹을 것도 많다. 근처의 대기도 대피소보다 백화점 쪽이 훨씬 양호하다.


다음날, 대피소의 사람들을 설득해 모두 백화점으로 데려왔다.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그저 바라만 보던 그들에게는 내 제안이 유일한 정답으로 보였을 것이다.


가족이나 지인과 재회한 사람도 있었고 그러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가족을 찾은 사람들은 걱정의 대부분이 사라진 기분이겠지만, 가족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마음고생이 심할 것이다.


그리고 '죽은' 가족을 찾아낸 사람도 한 명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조바심이 생겼다.


나도 가족과 재회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이 작은 도시에 사람들이 모여있을 장소는 다른 곳에 있는 대피소나 방공호 말고 더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장소가 떠오름에도 솔직히 죽었을 것 같다고 몇 번이고 생각했다.


그런 최악의 상황을 몇 번이고 상상했다. 그래도 아직 그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이상,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몇 명은 도시에 남아있는 사람을 수색하고 구조하기로 했다.

이러한 결정에는 소중한 사람을 찾아낼지도 모른다는 저마다의 사심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런 속마음을 겉으로 발설하진 않는다.


좋은 명목의 활동을 공동으로 추진하는데 굳이 누군가의 사심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을 말해버리면 왠지 더는 당당해지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가족을 찾지 못한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진짜 목적을 저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다. 우리는 입을 모아 말한다. 아직 살아남은 사람이 곳곳에 흩어져있을 것이니 우리가 그들을 구해야 한다고.


그리고 나는 이제라도 이런 흐름이 되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내가 이런 상황을 조성해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3***



백화점의 방송실과 통제실을 활용하여 건물 전체에 방송을 해보았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생존자를 위한 방송이었다.


그러나 처음 화장실에서 만난 여덟 명이 이 건물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사람들이었다.


이제는 이 건물에 갇혀서 안타깝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사체를 정리할 차례다.

그러나 그 일은 생각보다 순조롭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환경이나 상황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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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 사악한 것을 상대하는 방법 (2) +2 19.03.07 658 35 15쪽
12 2. 사악한 것을 상대하는 방법 (1) +2 19.03.06 679 35 15쪽
11 1. 백화점 공략 (5) +1 19.03.05 696 38 14쪽
10 1. 백화점 공략 (4) +2 19.03.04 730 43 14쪽
9 1. 백화점 공략 (3) 19.03.03 774 38 13쪽
8 1. 백화점 공략 (2) +1 19.03.02 832 42 15쪽
» 1. 백화점 공략 (1) +1 19.03.01 872 47 12쪽
6 Prolog. 살아남은 선조들 (6) +3 19.02.28 944 50 13쪽
5 Prolog. 살아남은 선조들 (5) +2 19.02.26 959 49 15쪽
4 Prolog. 살아남은 선조들 (4) 19.02.26 1,086 51 13쪽
3 Prolog. 살아남은 선조들 (3) +1 19.02.25 1,317 64 14쪽
2 Prolog. 살아남은 선조들 (2) +3 19.02.23 1,606 66 13쪽
1 Prolog. 살아남은 선조들 (1) +5 19.02.23 3,002 7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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