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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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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작품등록일 :
2023.07.10 21:13
최근연재일 :
2024.01.0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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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5,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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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3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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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53)

DUMMY

Episode 52 - 파괴자 5



서울의 어느 지하.

올로소가 옥좌에 앉은 채로 계수 공을 던지며 놀고 있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그는 곧 흥미가 떨어진 듯 생성해낸 구를 바닥에 던져 소멸시킨다.

"쳇, 재미가 없군."

올로소는 무릎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가락 검지를 원형으로 돌려 화면을 만들어낸다.


김포공항역 부근에 서있는 민호가 보였다.

올로소는 혀를 차며 한심한 듯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분명이 강남이라고 설명했던 것 같은데, 어째서 저곳에 가있는 건가."


무언가 잘못 인식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올로소는 턱을 검지로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는 옆으로 눈을 돌렸다.

"자네는 알고 있나?"


올로소가 흙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민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민호는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듯 희미한 초점을 보였다.

"아, 말을 못하는 게 당연한 건가? 그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선사했는데도 입 하나 뻥긋하지 않다니, 정말 대단하군."


민호의 입에서 약간의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그는 뜬 눈을 서서히 감았다.

'도와줘야 하는데, 알려줘야 하는데......'


눈이 완전히 감기고 시야가 암흑으로 뒤덮힌다.

'조심해요, 다들. 괴물이 가고있으니까.'

민호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올로소가 눈을 가늘게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흐음, 아쉽군. 벌써 눈을 감다니."

그는 오라의 화면 속에서 날뛰고 있는 도민호에게 시선을 맞췄다.


"이제부터 진짜 재미를 느낄 시간인데 말이지."

슈우우우우우우우웅.

"음?"

그의 눈앞으로 계수 결정들이 모여 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뭐냐, 이건."

뭉쳐진 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들리나, 차르카 올로소. ]

'......, 이건?'


제페토의 음성이 들리자 올로소가 허공에서 고개를 숙여 목례를 청했다.

"평안하셨습니까, 제페토님. 어찌하여 전언을 보내십니까?"

[ ...... ]


아무런 반응이 없자 올로소가 한번 더 묻는다.

"제페토님?"

[ 긴말 하지 않겠다, 차르카 올로소. 지금 당장 혼테일로 복귀해라. ]

황당한 전언에 올로소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복귀라니요? 무대의 시나리오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인데......"

[ 가주님의 명령이다. ]

'가주'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올로소가 몸을 움찔했다.


거역할 수 없다.

가주의 명령이라면.

'왕'을 제외한 이들 중에서는 단연코 최고의 권위력을 지닌 존재들.

제아무리 올로소라도 그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미심쩍은 듯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알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 지금 당장 복귀하여 나의 방으로 오거라. ]

제페토는 마지막 말을 전한 후 계수를 흩뿌려 소멸시켰다.


올로소가 기백을 내뿜었다.

"제대로 된 명작을 즐길 시간이었는데 방해를 받다니, 나도 참 체면이 말이 아니군."

그의 손가락 끝이 미세한 계수 결정으로 변질되어 공중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럼......"

하체에서 상체로 점점 희미해져가는 그의 육체가 바람에 흩날린다.

"잠시 다녀오겠네."

올로소가 곁눈질로 민호를 바라보다가 형체를 없앴다.


흙으로 뒤덮힌 지하 도시에는 도민호의 육체만이 남아있다.



두 번째 지구 - 아펠리온.

제페토가 링크를 시도한다.

푸른 결정이 화려하게 빛나는 은하수같은 물결.

그곳에 몸을 맡겨 자신의 계수 조각을 흩날려 보낸다.


차가운 감촉이 그의 몸을 휩쓸고 지나간다.

'언제나 이질적이야.'

길고 긴 통로를 지나 드디어 아펠리온에 도착했다.


어둡고 침침한 숲이 울창하게 뻗어있다.

그는 발걸음을 옮겨 능숙하게 길을 찾아 나섰다.

발에 밟히는 나뭇가지와 낙엽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주위의 생물을 끌어들인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큰 도로가 나타났다.

그저 넓게 뻗은 길에 화려한 불빛 가로등이 대거 배치되어 있는 도로였지만.

올로소는 더러워진 겉망토를 벗어 던지며 걸었다.


저 멀리서 거대한 성체의 형태가 보인다.

두 번째 지구 아펠리온에 존재하는 8대 귀족 가문 중 하나.

지안 가의 성역, 혼테일.


높고 뾰족한 세 갈래의 탑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으며 용의 문양이 그려진 원형의 장식이 치장되어있다.

"쳇, 이렇게 빨리 되돌아올 줄은 몰랐는데."


진절머리가 나는 듯 그는 혀를 세게 찼다.

그렇게 몇 분 후 거대한 대문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사의 문양과 함께 필기체로 '아펠리온을 위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아니, 거의 그려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경비병이 보인다.

전신 갑옷을 두르고 한 손에 창을 쥔 병사는 올로소를 목도한 후 곧바로 경례했다.

"올로소님, 오셨습니까?!"


깍듯한 인사에 올로소가 손을 들어 반응했다.

"어, 가주님의 호출 때문에 왔다. 문을 열어주게."

그의 말에 병사가 창 밑으로 대지를 친 후 열쇠를 대문의 자물쇠에 끼워넣었다.


철컥- 소리와 함께 거대한 대문이 열렸다.

완벽한 대칭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성체와 양옆으로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는 원형 분수,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꽃내음이 솔솔 풍기는 장소에 발을 들여 걷기 시작한다.


튤립, 코스모스, 장미가 하나의 공간에 적절하게 심어져 있다.

다색의 컬러가 눈호강을 하게 해주는 것 같다.

하지만 올로소에게 있어 이 정원은 그저 불쾌한 장소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입구부터 성체의 정문에 들어서기까지 모조리 가주의 눈높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꽃이건, 아름다움이건, 올로소는 그딴 사소한 것이 싫었다.


눈살 찌푸려지는 정원을 걸어 성체에 도착하자 신분을 인식하였는지 하얀색으로 치장된 정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레드카펫이 깔려 있는 복도가 반기며 주위의 벽체를 꾸며주는 금빛 장식과 예술작품들이 눈에 띄인다.


중앙 공간을 중심으로 좌우로 길게 뻗어있는 복도와 중세 시대의 고급 랜드마크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은색의 중앙 계단이 보였다.

올로소는 중앙 계단을 올라 제페토의 방문 앞에 섰다.


문을 두드렸다.

똑- 똑-.

"차르카 올로소입니다."

"들어와."


제페토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올로소가 굳게 닫힌 방문의 문고리를 돌려 안으로 들어섰다.

건장한 체격의 노인이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나 양 팔을 벌려 그를 맞이했다.


"오, 어서오게! 기다리고 있었어."

제페토가 악수를 신청하는 듯 손을 내밀었다.

올로소가 주름 잡힌 그의 손을 잡아 한 번 흔들었다.

"빠르게 왔습니다, 가주님의 호출이 있었다 들어서요."


제페토가 흐뭇하게 웃어보인다.

"그래, 이렇게 금방 와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뭐, 빠르면 빠를 수록 좋은 게 아닌가?"

무언가 위화감이 드는 웃음이다.


"헌데, 호출은 가주님이 하셨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제페토님의 방으로 찾아오라 하신 겁니까?"

본론으로 들어가겠다는 듯 제페토가 손가락 스냅 소리를 내었다.

"오, 좋은 질문일세. 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네."


제페토가 몸을 옆으로 빼자 올로소의 시야에 한 여성이 들어온다.

"음??!!"

회색빛의 하의와 함께 검고도 단조로운 상의.

그리고 거꾸로 매달린 십자가 귀고리가 보인다.


어두운 흑발의 머리카락을 지녔지만 홍안이 인상적인 매력적이고도 아름다운 여성.

올로소가 알아차린 듯 빠르게 머리를 바닥에 찍어 몸을 웅크렸다.

"차, 차르카 올로소가 지안 가의 가주님을 뵙습니다!!!"


등 뒤로 식은 땀이 흐른다.

머리 버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손이 떨리기 시작하며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뭐, 뭐냐?! 도대체 어째서 가주님이 이곳에 계신거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직접적인 호출도 이해가 되지 않은 마당에 몸소 제페토의 방으로 행차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왔는가?"


아름다운 목소리가 방 내부를 가득 채웠다.

그녀는 여린 손으로 원형 테이블 위에 올려진 찻잔에 손을 댔다.

찰랑거리는 브라운 빛깔의 액체를 목으로 넘긴다.


시간의 움직임이 멈춘 듯 올로소와 제페토의 육체가 정지되었다.

물론 그럴 수 밖에 없다.

지금 자신들의 눈앞에 존재하는 이는 아펠리온에서 가장 강력하고도 고귀한 존재라고도 일컬어지는 귀족 가문의 여제이니까.


올로소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냈다.

"소, 소인! 가주님의 명을 받들어 최대한 빠르게 성체로 복귀하였습니다!!"

등 뿐만 아니라 몸 전체에 위치한 땀샘이 폭발한다.


"흐음."

가주는 평화로운 듯 다리를 꼬며 올로소를 내려다보았다.

느껴진다.

거대한 공포를 지닌 악마의 힘이.


이때까지 살아 생전 이 이상의 공포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묻는다면.

단연컨데 없다,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세계 8대 귀족 가문.

지안 가의 가주, 레블 지안.

살아있는 최종병기라고도 불리우는 초월적인 존재이며, 단신으로 세계를 멸망케 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불리운다.


"올로소."

"예, 옙!!! 가주님!! 소인, 차르카 올로소가 가주님의 부름에 답합니다!!"

뇌의 활동이 정지된다.

말이 단조로워진다.

이것이 공포라는 감정.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초월'이 올로소의 목숨을 조이고 있다.

"내가 말했던 건은 어떻게 되었지?"

'말했던 건이라고?'

사고회로가 정지되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하나의 답을 발견해냈다.

"루, 루난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올로소의 말이 끝나자마자 동시에 중력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으, 으윽!!!"

올로소에게만 발현된 레블 지안의 계수 압박.

엄청난 중압감이 몰려왔다.

내장과 근육이 파괴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커, 커허어어어억!!!"

입에서 혈흔이 흐른다.

바닥으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붉은 핏자국과 함께 두 눈에 충혈이 일어났다.


'몸 하나 꼼짝할 수 없다, 이 무슨??!!'

강하다는 것을 소문으로만 들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체감을 느낄 수는 없었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하지만 이제는 느낄 수 있다.

이 여자는.


'나를 1초만에 죽일 수 있는 사람이다.'

"차르카 올로소."

레블 지안의 홍안이 흑빛으로 변화된다.

- 내가 너에게 질문을 해도 된다고 허락한 적이 있나?


"커, 커헉! 죄, 죄송! 죄송합니다!"

입을 떼어 말하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지, 지금 에너지의 근원은 찾아내었습니다! 수도 서울에 위치한 강남의 지하 부근이었으니 저의 꼭두각시가 루난을......!"


"잠깐."

지안의 간결한 말과 함께 중압감이 사라졌다.

올로소는 가쁜 숨을 몰아내쉬며 혈흔을 토해냈다.

"커허어어어억!! 하아, 하아, 하아!"


"꼭두각시라고? 너는 아직도 그 무대라는 비효율적 놀잇감에 미쳐있는 것이냐?"

온 몸의 털이 곤두섰다.

이대로는 안된다.

이대로 간다면.


제거 당한다.

올로소가 머리를 높게 들어 바닥으로 쳐박았다.

쾅--!!!!

"이틀!!"


올로소가 외쳤다.

"48시간 안에 루난을 반드시!! 가주님의 앞으로 대령하겠습니다."

그의 의지에 반응하기라도 하듯 지안이 몸을 일으켰다.

구두 소리가 내부를 울림과 동시에 그녀가 올로소의 머리맡에 섰다.


콰직--!!

"끄, 끄으으윽!!"

홍안이 빛난다.

지안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확히 48시간이다, 올로소. 그 시간안에 루난을 내 앞으로 가져오지 못한다면....."


그녀의 마지막 말이 선고처럼 올로소의 귀에 꽂혔다.

- 넌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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