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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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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작품등록일 :
2023.07.10 21:13
최근연재일 :
2024.01.0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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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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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40)

DUMMY

Episode 39 - 연보라


"으으으......!"

보라는 명상 자세를 취한 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목줄기를 타고 내려간다.


그녀의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보랏빛 계수가 증폭된다.

곧이어 육체에서 하얀 빛의 계수가 나타나 공중에 맴도는 보랏빛의 계수와 융합된다.

합쳐진 두 기운이 엄청난 화력을 뿜어낸다.


"어어, 이제 됐어! 그만!"

하나가 거칠게 손뼉을 치자 보라는 자세를 흐트러뜨리며 앞으로 엎어졌다.

"푸하! 하아, 하아, 하아!"


10분이 넘는 시간동안 정자세를 유지하며 융합술을 펼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와, 진짜 힘들어!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할 정도로."

보라는 엎어진 채로 하나를 올려다본다.


"아직 적응이 안돼서 그래. 처음 발현자가 되고 계수를 다듬는 과정이 힘든 것처럼, 융합술도 똑같을 수 밖에 없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자!"


쓰러져 있는 보라의 앞에 생수병이 놓여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생수병의 물을 벌컥 들이킨다.

식도를 타고 흘러 내려가는 시원함이 온 몸을 청량하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푸하, 이제 살 것 같아."

보라는 이마의 땀을 손으로 닦아내며 하나의 옷소매에 갖다댄다.

"으아, 더럽게 뭐하는 짓이야?!"


당황한 하나가 몸을 뒤로 빼자 보라는 킥킥- 웃음을 터트렸다.

"재밌잖아, 안그래도 삭막한 세상인데 이런 걸로 웃기라도 해야지."

"난 하나도 재미없어."


"아무렴, 그러시겠지."

보라가 훈련장 바닥에 대 자로 누워 휴식을 만끽한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미처 소멸하지 못한 보라색 계수의 흔적이 남아있다.


"조하나."

"응, 왜?"

"나, 나중에는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간대."


보라의 말에 흠칫 놀라며 하나는 상체를 숙였다.

"뭐? 그거 누구한테 들은 말이야?"

당황해하는 하나에게 보라가 웃으며 말했다.


"지휘대장님한테 들었어, 새로 개설되는 전대가 여럿 생겨날 것 같아서 인원을 착출해 보내시겠다고 하셨는데, 그 명단에 내가 뽑힌 것 같아."

하나가 좌절하며 고개를 떨군다.

"아, 그런 게 어딨어. 네가 가버리면 나는 누구랑 어울리라고. 그리고 넌 아직 발현자가 된지 2년 밖에 안됐잖아. 그런데 왜 다른 베테랑들이 아닌 너를 뽑으신거야?"


보라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겠어, 듣기에는 랜덤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허, 말이 되냐? 새로 개설되는 전대에 인원을 보충시키는 건데 랜덤 착출이라고? 대체 위에서는 무슨 생각인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진짜 웃기지? 그런데 걱정마, 아직 신 전대가 개설되기에는 초기 단계라 앞으로 몇 년은 더 걸릴 수 있대."

하나가 바닥에 착석하며 몸을 웅크렸다.

"아무리 그래도......"


하나의 서운한 표정을 보더니 보라는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괜찮아,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는걸? 그리고, 혹시 알아? 전대가 건설되고나면 착출 인원이 바뀌게 될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는 보라의 말에 하나가 한숨을 쉬었다.


"후, 너는 너무 긍정적인 게 문제야."

"그래야 세상 살기 편하다고 들었는데."

하나가 폭소했다.

"푸하하, 뭐래? 그렇게 살다가는 사기 당한다 너?"


"나는 똑 부러져서 사기같은 거 안 당하는 사람이야."

보라의 뾰로통한 얼굴이 보이자 하나는 그녀의 이마를 콕 집었다.

"네, 네! 어련하시겠어요."


그때는 대수롭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 전대의 개설이야 어차피 먼 옛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이후로 6년이 더 지난 어느 날.


2027년 서울 시내.

하나와 보라는 공원 벤치에 앉은 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더운 여름이라 빼곡한 나뭇가지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자리를 잡았다.


나무에 붙어있는 매미들이 시끄럽게 구애중이며 살랑거리는 바람이 머리를 흩날려준다.

"오랜만이네, 너랑 둘이서 같이 시내 외출 나온건."

하나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입에 한가득 물며 말했다.


"응."

보라가 짧게 답했다.

하나는 뭔가 이상한 듯 한 쪽 눈을 치켜뜨며 보라를 노려보았다.

"야, 연보라."


하지만 아무런 대꾸가 없다.

그저 멍하니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먹지도 않고 응시하기만 했다.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금방 녹기 시작했다.


하나는 답답한 듯 소리쳤다.

"야, 연보라!"

그녀의 샤우팅에 놀랐는지 보라는 흠칫하며 하나를 바라본다.


"어, 어? 하나야, 왜?"

하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보라가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가리켰다.

"아까부터 뭘 멍하니 보고 있어, 그러다가 아이스크림 다 녹는다고."


"아, 맞다. 그렇지 참."

보라는 그제서야 윗부분을 먹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을 타고 흐르는 아이스크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너, 무슨 일 있지?"

하나가 단호하게 말하자 보라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뭐?"

하나는 도돌임표같이 말을 반복했다.


"묻잖아, 무슨 일 있냐고?"

보라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돌리며 부정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난 아무 일 없어!"


애써 밝은 척 웃고 있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하는 건가?'

보라의 어색한 웃음과 입꼬리.


8년 넘게 알아온 친구의 패턴을 못 알아챌 리가 없었다.

"거짓말."

하나가 아이스크림을 크게 베어물며 말했다.


"안하기로 했잖아, 우리."

무섭게 노려보는 눈빛에 보라가 땀을 삐질 흘린다.

"와, 진짜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너는 못 속이겠다, 조하나."


"아니, 그냥 네가 거짓말을 너무 못하는 거야."

보라는 나지막하게 그정도인가- 라고 말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은 말이야......, 발령났어."


조심스러운 보라의 말투에 하나가 불안감에 휩싸인다.

"뭐, 뭐가 발령났다는 거야?"

그 때 문득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제는 잊혀졌던, 너무 오래된 기억이.

- 나, 다른 전대로 전출갈 거 같아.


보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나의 손에 들려 있던 아이스크림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와그작- 소리를 내며 손잡이과자 부분이 깨져버렸다.

하나가 두 눈을 크게 뜬 채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라고?"

하나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 하나야?"

보라는 당황한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하나를 응시했다.


"언제 가는데......? 확정난 거야? 그래서, 가는 부대는 어디인지 정해진 게 있어?"

질문공세가 시작되자 보라는 두 손을 앞으로 뻗으며 저었다.

"저, 저기 잠깐만! 너무 한꺼번에 많이 물어보는 거 아니야?"


곤란해하는 보라의 표정을 보자 하나는 고개를 떨궜다.

"그럼, 이제 못보는 거야?"

굉장히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누가 본다면 하늘이 무너지는 광경을 본 듯한 표정이라 말할 것이다.


"아, 아니! 아니야! 평생 못보는 건 아니지! 그래봤자 대한민국에 있는 전대로 가는걸? 일단 확정은 났는데 어느 곳으로 발령날지는 미지수이고 날짜는......"

보라가 망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다음주 목요일이야."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하는 하나의 표정이 드러난다.

일그러지는 이목구비.

하지만 그럼에도 눈앞의 보라에게 들키지 않을 만큼의 평정심은 유지하고 있다.

그래야 할 것이, 지금 누구보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은 자신이 아닌 연보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추측일 뿐이었지만 알 수 있다.

"갑자기 이렇게 가버리면 어떡해."

그렇게 몇 초 간 침묵이 흘렀다.


분노일까.

슬픔일까.

아련함일까.

지금 하나의 가슴 속에서는 한 가지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한 가지가 아닐 지도 모른다.


한참 후에 하나가 입을 열었다.

"안가면 안돼?"

간결한 질문이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무엇일지는 알 수 있었다.


"......, 미안해. 하나야."

조하나도 알고 있다.

이런 말 한마디로 보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정확하게 말하면 지휘대장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라도 부정하고 싶었다.

눈앞의 현실을 거짓된 허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그저 단순한 말 한마디밖에 할 수가 없다.

되돌아오지 않는 현실이니까 되도록 연극으로라도 바꾸어버리고 싶은 것이라고나 할까.


"내가 전화 자주 할게, 밤에는 전화도 해서 그 날엔 뭘했는지 다 말해줄게.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랑 새로 사귄 친구들도......."

"너."

심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나는 곁눈질로 보라를 바라본다.

"낯 엄청 심하게 가려서 누가 말 안걸어주면 친해지지도 못하잖아."

보라가 뜨끔했는지 몸이 움찔거린다.


정곡을 찔린 듯 아무 말이 없다.

"가기 싫지?"

하나가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던지자 보라는 말없이 고개만을 끄덕거린다.


"나......., 가기 싫어, 하나야!"

두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말한다.

감정이 폭발할 듯 목소리의 울림이 전달된다.


하나가 벤치에서 일어난다.

"내가 지휘대장님에게 말해볼게."

"아니야, 그러지마!"

보라가 하나의 옷깃을 꽉 잡았다.


"잘못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네가 더 난처한 상황이 될거야."

"그럼 어떡하라고, 가기도 싫은 전출 억지로 착출되서 가게 된건데! 너야말로 난처한 상황인 거 아니야?!"

하나의 분노가 폭발한 듯 보인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두 눈이 부릅 뜨여진다.

"내가 변할게."

"뭐?!"

보라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들고 덤덤하게 말한다.


"내가, 변해볼게! 새로운 전대로 가서는 모르는 사람한테도 말 걸어보고! 좋은 친구도 엄청 많이 사귀어올게."

보라는 말을 끝마치고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하나는 그녀의 손을 바라보다가 마지못해 손가락을 걸었다.


"하, 나 참. 알았어. 꼭 연락하기다?"

"응!"

보라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두려울 것이다.


몇 년을 함께했던 친구가 사라진 공간이.

모르는 이들과 다시 한 번 어울려야 하는 현실이.

하지만 그것 또한 연보라, 그녀가 뚫고 나아가야 할 상황이다.


그리고 하나는 그녀를 믿는다.

"연락 하루라도 안하기만 해봐, 곧바로 찾아간다?"

"키키킥, 어디인 줄 알고 찾아온다는 거야?"


하나가 보라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얼굴을 들이민다.

"전국구를 다 돌아다니면 찾을 수 있겠지."

소름끼치는 얼굴이 눈앞에 위치하자 보라는 놀라서 뒤로 자빠진다.


"으, 으아아아아아!"

"푸, 푸하핫!!! 너 뭐해? 크크크!"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흩날리는 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일주일 후.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1분이 1초처럼.


보라는 두돈반 차량 앞에서 자신이 챙긴 짐을 체크했다.

"이것도 있고, 저것도 챙겼고......"

하나가 보라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정신머리는 잘 챙겼고?!"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와 얼굴에 보라가 볼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너, 가는 날까지 이러기야?"


"그러니까 더더욱 장난을 칠 수 밖에 없지."

보라는 한 쪽 입꼬리를 올린 채 짐을 옮겼다.

"그래, 그게 제일 너답긴 하다."


백조전대의 인원들이 두돈반 차량에 모두 탑승을 완료했다.

마지막으로 보라가 차에 올라탄다.

"자, 이제 출발한다."


운전자가 차량의 문을 쾅쾅 두드리며 신호를 알렸다.

하나는 보라의 얼굴을 응시했다.

언제나 그렇듯 근심 걱정 가득하다.


하지만 별 일 없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봤자 전대를 옮기는 것 뿐이었으니까.

"야, 연보라!"


하나의 부름에 보라가 고개를 돌린다.

한 손에 든 스마트폰을 검지로 가리키며 활짝 웃어보이는 하나.

"꼭 연락해!"


보라의 얼굴이 밝아진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눈웃음을 지었다.

"응!!"


배기음 소리가 들리며 두돈반 차량이 흔들린다.

이윽고 바퀴가 굴러가며 멀어진다.

하나는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몇 초 지나지도 않았는데 차량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렇게 보라와 작별했다.

어차피 괜찮았다.

하루만 기다리면 다시 연락이 올 테니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풀어줄 테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 그 뒤로 보라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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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레퀴엠(52) 23.08.30 4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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