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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트 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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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작품등록일 :
2023.07.10 21:13
최근연재일 :
2024.01.07 21:21
연재수 :
1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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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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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글자수 :
955,407

작성
23.08.19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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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41)

DUMMY

Episode 40 - 괴물 1



서울 외곽 - 영웅 추모관.

하나는 보라의 영정사진 앞에서 무너졌다.

"어떻게!!!!!"

두 개의 검은 줄이 대각선으로 뻗어져있는 사진의 가운데로 연보라의 미소 짓는 얼굴이 보였다.


7년 전과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눈웃음이었다.

하나는 그녀의 사진을 부여잡으며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세상 그 누구보다 크게 울부짖는다.

명단의 이름만으로 접했을 때는 분노에 그쳤지만 이렇게 보라의 마지막 사진을 마주하니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연락해주겠다며!!! 매일 전화걸어 준다고 했잖아!!! 그런데 이게 뭐야아아아아!!!!!!!"

이렇게 목놓아 외친다고 죽은 이가 다시 살아돌아 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이렇게라도 슬픔을 표출하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없었다.

하나의 옆에 바른 자세로 선 진명은 그녀의 흐느낌을 그대로 바라보기만 했다.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남의 슬픔에 왈가왈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저 눈을 감고 묵념했다.


하나는 영정사진 속 보라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이렇게 예쁜데......, 이렇게 젊고 착한 아이인데.....!"

눈가가 붉어진 것은 이미 오래였다.


사진을 쓰다듬는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비록 오랜 기간동안 얼굴조차 아니, 목소리조차 듣지 못했던 인연이었지만.

그래도 보라는 가장 소중했던 친구였다.

어쩌면 거의 가족이었다고 볼 수 있다.


"왜 이렇게 빨리 데려가신 거에요, 대체 왜!!!"

하나는 추모관 천장을 바라보며 외쳤다.

아마 그녀는 하늘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검은 하늘.

"대체 이 아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몸이 떨리고 내지른 목소리가 쉬어버린 듯 삑사리가 난다.


천상호가 뒤늦게 추모관으로 들어온다.

검은 정장 차림의 말끔한 복장.

그는 수백의 영정사진 앞에서 기도를 청했다.


기도를 마친 상호는 영정사진 속 얼굴들을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안타까운 눈빛으로 짧게나마 죽은 이들의 얼굴을 익히는 듯 보였다.


"광활한 대지 속 그대들의 생명이 다시 돋아나 크나큰 초원을 이루리다, 만물은 빛이 나고 하늘의 별들은 그대들을 비출 지어니, 이윽고 아름다움이라 칭해지는 명화가 세상을 뒤덮을 것이다."


상호는 말을 끝마치고는 절을 했다.

한 번.

두 번.

마지막 반절까지.


그는 무릎을 꿇은 채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조하나에게 시선을 옮긴다.

"오늘만큼은 슬퍼해도 좋다."

상호의 말에도 하나는 아무런 미동이 없다.


"너의 한 줄기 눈물이 저 아이들을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상호는 조심히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섰다.

진명이 그의 뒤를 따라 나선다.


그는 하나의 어깨를 잡아 나지막하게 말했다.

"무너지지 마라, 조하나. 네가 이 전대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 생각해라."

하나는 진명의 말을 의식했는지 고개를 점점 아래로 떨어트렸다.


진명이 추모관의 밖으로 나가자 상호가 담배를 입에 문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담배 한 개비를 진명에게 건넸다.

"피우겠는가?"

"아니요, 생각 없습니다."


단호한 진명의 말에 상호가 피식 웃으며 담배를 집어넣었다.

"괜찮겠습니까?"

진명이 묻는다.

상호는 눈을 옆으로 흘기며 의미를 물었다.


"무슨 의미지?"

"정신이 꽤나 무너졌을 겁니다, 과연 며칠동안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혼란이 찾아오겠지요. 조하나 부대장이 이대로 괜찮을 것인가에 대한 의미입니다."


진명이 상호를 노려보자 상호가 입꼬리를 올린다.

"자네는 자신의 부하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 같군."

"신뢰 말씀입니까?"

상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신뢰."

그는 손에 든 담배를 바닥에 투하하며 불을 껐다.

"이번 사건은 아마 조하나 지휘부대장에게 새로운 각성제가 될걸세."


상호의 눈빛이 붉게 빛나고 오라가 주변으로 발산된다.

'도저히, 이 양반의 생각은 알 수가 없군.'

진명은 미간을 찌푸리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


하나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몇 년, 몇 월, 몇 일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편린일 뿐이다.


파지직-- 파지직---!

유리창에 금이 가는 듯 기억의 파편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진다.


20대 후반의 조하나와 연보라가 나란히 걷고 있다.

차가운 서울 공기가 영하의 온도를 더 낮추는 듯하다.

보라는 하얀색 롱패딩으로 몸을 꽁꽁 싸매며 입김을 뱉어냈다.


"하아, 하아! 으......, 진짜 너무 추워! 아무리 겨울이라지만 너무한 거 아니야?"

하나가 보라에게 핫팩을 두 개 건넨다.

"으이구, 엄살은. 자, 이걸로 손이라도 녹여."


보라가 곧장 받아들며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따뜻한 기운이 손을 넘어 팔 전체에 퍼지는 느낌이 든다.

"와아, 이제 좀 살 것 같다."


보라가 질끈 감은 두 눈을 뜨며 하나를 바라본다.

"너는 괜찮아? 이제 핫팩 더 없는 거 아니야?"

"나는 너처럼 추위에 굴복하는 약골이 아니라서 괜찮은데."


하나가 놀리는 말투로 말하자 보라는 두 볼애 바람을 넣으며 그녀의 팔을 쳤다.

툭!

"야, 내가 뭐 어때서!"


"너는 너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조하나가 혀를 낼름거린다.

"너, 세상에서 제일 약골이야."

하나가 도망친다.


"뭐, 너 죽을래?!"

보라가 주먹을 든 채로 그녀를 추격한다.


두 번째 기억.


하나가 보라에게 깃털 모양의 은장식을 건넨다.

"자, 이거 받아."

보라는 깃털장식을 받아든 채로 그녀를 마주본다.


하나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쑥쓰러워한다.

"이번에 휴가 나갔다가 사온 거야, 무늬가 예뻐보여서 큰 돈 주고 사왔지. 너 깃털펜 같은 거 좋아하잖아."


"오, 내 취향을 그렇게 잘 알다니 영광이라고 말해줘야 하나?"

보라는 깃털장식을 멍하니 응시한다.

화려한 은색 빛이 눈을 부시게하며 동시에 장인이 공을 들인 것 같은 무늬가 눈에 띄인다.


"와, 진짜 예쁘다."

초롱초롱한 눈을 뽐내며 보라가 깃털장식을 꼭 쥔다.

하나는 뿌듯한 듯 콧대를 높였다.

"거봐, 내가 말했지? 장식가게 구경을 하다가 이게 딱 눈에 들어오는데 네가 좋아할 것 같길래 바로 샀지."


하나가 고개를 돌리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가격은 만만치 않았지만.'

"하나야!"

보라가 생긋 웃어보이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그녀가 손을 펼치자 하나의 두 눈이 희둥그레졌다.

토끼 무늬가 선명하게 박혀 있는 은장식.

화려하게 빛나는 은빛에 송송 박혀있는 유리 조각이 인상적이다.


"나도 샀는데, 근데 너는 토끼를 좋아하니까 토끼장식으로 샀어. 아마 우리, 같은 가게에서 산 게 아닐까?"

천진난만하게 활짝 웃고 있는 보라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떨리는 눈매에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토끼장식을 집어든다.

확실히 예쁘다.

아니, 아름답다고 보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


'정말, 나랑 같은 곳에서 산걸까?'

정녕 같은 곳에서 산 게 아니라도, 혹은 맞다고 해도 그런 건 이제 중요하지 않다.

하나가 보라의 두 손을 꽉 잡았다.

"고마워! 평생 간직할게."


그 어느 때보다 활짝 웃는 미소를 지었다.


다시 현실.


하나의 힘없는 손에 토끼장식이 놓여져 있다.

이제 몇 년이 지나 은빛이 덜해진 낡은 장식.

여기저기 기스도 나있고, 흉도 졌다.


하나는 보라가 선물한 토끼장식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똑똑-.


추모실의 문을 두드리며 190센치미터의 키를 가진 남자가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하나는 다가오는 남자에게 시선조차 돌리지 않는다.


남자는 손에 들고 있는 보따리를 풀어제친다.

"저는 이 추모실의 관리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폐허가 된 전대를 조사해봤는데 이런 물건들이 나와서요. 혹시 이중에서 지인의 물품이 있으신가요?"


하나가 남자의 손 쪽으로 눈을 돌린다.

여러 가지 물품이 보인다.

반 쯤 타버린 손수건, 금색 오르골, 화려한 장식의 귀걸이, 스펠링이 그려져 있는 은반지, 그리고.


하나는 마지막 물품을 보고는 눈이 커졌다.

눈물이 흘렀다.

3분의 1쯤이 절단되어버린 은깃털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떨리는 손으로 장식을 잡았다.

손끝에 촉감이 느껴지자 입술을 꽉 깨물었다.

두 손으로 잡은 장식을 가슴팍 부분에 대어 흐느꼈다.


"이, 이거. 제 친구 물건이에요. 흑, 흐흑."

남자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뒤를 돌아 걸음을 옮겼다.

"실례 많았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추모실의 문을 열고 고개를 돌렸다.

"소중하게 간직하세요, 친구 분 일은 정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문을 살포시 닫았다.


하나는 추모실 바닥에 머리를 대었다.

최소 1년 동안 흘릴 눈물은 다 흘리는 것 같다.

마음 속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조그마한 것이라도.

실낱같이 작은 장식품 하나라도.

연보라의 흔적을 가지고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


하나의 손톱이 살점을 파고들었다.

너무 꽉 쥐었기 때문일까.

약간의 피가 흘렀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흐르는 피와 고통을 무시한 채 더욱 세게 쥐었다.

보고싶다.

단지 얼굴만이라도.

대화하지 못해도 좋으니까 생기 가득한 얼굴이라도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없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나고.

하나는 문득 한 가지의 생각이 들었다.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비틀거리는 두 다리를 이끌고 추모실을 나섰다.

아까 사망자들의 물품을 보여주었던 남성이 흡연장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저, 저기요!"


하나가 다가가자 남자는 힐끗 쳐다본다.

"네,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남자에게 하나가 물었다.

"혹시, 입관은 언제인가요?"


남자는 당황한 듯 입을 약간 벌리다가 이내 크흠- 하며 헛기침을 했다.

"입관은 따로 예정에 있지 않습니다, 저희 측에서 따로 진행하도록 명령 받았습니다."

하나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뭐라고요? 왜죠?! 마지막 죽은 사람의 얼굴마저도 못보게 하는 장레식장이 대체 어디있......!"

"어차피 보셔도 소용이 없으니 말씀드리는 겁니다."

남성이 하나의 말을 끊었다.


이해하지 못한 하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분노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소용이 없을 거라니? 그게 관리자라는 직책을 가지신 분이 뱉을 수 있는 말입니ㄲ......"

하나가 말을 멈춰 생각에 잠겼다.


곧이어 충격을 받은 듯 전신을 떨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올려 남성을 마주했다.

"서, 설마......"


남자가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린다.

"네, 맞습니다. 이번에 사망한 인원 모두......."

하나가 긴장한다.

제발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보지만.


- 목 윗부분이 모두 잘려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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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레퀴엠(52) 23.08.30 41 1 12쪽
51 레퀴엠(51) 23.08.29 4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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