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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트 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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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작품등록일 :
2023.07.10 21:13
최근연재일 :
2024.01.07 21:21
연재수 :
1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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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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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글자수 :
955,407

작성
23.08.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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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레퀴엠(38)

DUMMY

Episode 37 - 신뢰자



"백마전대가 전멸했다."

하나의 말에 대원들 전원이 벙찐 채로 정적을 지키고 있다.

그러다가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배, 백마전대가 전멸했다고?"

"농담인가?"

"어떻게?"

"침략자들의 짓인가?"

대원들의 잡담이 거세졌다.


'백마전대라고? 그곳도 우리와 같은 부류의 전대인가?'

정혁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동요에 반응하지 못했다.

떠들썩한 소음을 줄이기 위해 조하나가 기백을 내뿜었다.


퍼져나가는 검은 빛의 기운이 백조전대 전체를 휘감았다.

"모두, 정숙해라."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분위기를 압도한다.

순간 대원들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로 입을 다물었다.


하나는 자연의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그곳에서 다음 말을 뱉었다.

"전멸의 자세한 사안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상부에서는 백마전대의 전대장이 벌인 일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더군.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는 대원들 한 명 한 명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자, 그럼 내가 여러분에게 묻겠다. 지금 우리의 주적은 누구인가?"

그녀의 물음에 대원들이 동시에 답한다.


""침략자들입니다!!!""

수백에 달하는 대원들의 목소리가 고막이 찢어질 듯 울린다.

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정답이다. 우리의 주적은 침략자들이지. 약탈, 파괴, 파멸. 방금 본 지휘부대장이 말한 것들은 그들이 몰고 오는 재앙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동료이자 가족과도 같은 전대 하나가 그 재앙에 무너졌지."


조하나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아마 분노 게이지가 차올랐기 때문일까.

"우리도 전멸한 백마전대의 길을 걸을 수는 없지 않은가?"

""예, 그렇습니다!!!""


대원들의 우렁찬 목소리에 만족했는지 하나는 한 쪽 입꼬리를 올렸다.

"현 시간부로, 모든 대원들은 전투복을 착용한 채로 모든 생활을 다한다. 훈련이나 실전에 투입될 때는 물론이고, 식사를 할 때에도, 잠을 잘 때에도 마찬가지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하나는 팔짱을 끼며 여기까지- 라고 말했다.

"이제부터 각자 생활관으로 흩어져서 휴식을 취한다. 단, 전투복을 풀어헤치고 있는 대원이 보인다면 그 즉시 처벌할 것이다. 해산!"


대원들이 뿔뿔이 흩어진다.

대지에 군화 소리가 귀를 스친다.

정혁은 많은 인파들 사이에서 윤 설의 어깨를 툭툭쳤다.

"이제 그만 들어갈까요?"

"그래."


생활관으로 들어선 후 윤 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 지휘부대장님이 말씀하신 거 말이야......"

"네."

"엄청 심각한 일이 벌어진거겠지?"


정혁은 살기를 내뿜던 조하나의 모습을 되짚어본다.

이때까지 보여주었던 선한 인상이 아닌 분노와 결의에 가득찬 얼굴이었다.

"그, 렇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부대장님이 저런 반응을 보이신거겠죠."


윤 설이 이마에 손을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렇지."

그녀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으며 옆으로 몸을 누웠다.

잠깐의 정적이 생활관을 덮쳤다.


정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

정혁은 조하나가 말했던 말을 되뇌어본다.

'백마전대라면 같은 전대니까 우리와 비슷한 규모일테고, 그런 수십, 수백이 모여있는 집단이 하루 아침에 전멸했다는 것은 기존의 범주를 벗어나는 강한 자가 나타났다는 뜻이겠지.'


제아무리 일반 지휘대원들의 비율이 훨씬 많다고 해도 지휘관 이상 급의 간부들도 여럿 있기 마련이다.

'근데, 아무리 강한 적이 등장했다고 해도 전대의 모든 인원들을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다고?'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상상의 범주를 뛰어넘는 자가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이거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닌데?'

이제보니 조하나의 반응이 이해가 되었다.


"정혁아."

윤 설이 누워있는 채로 말했다.

"네?"

"넌 안 무서워?"

그녀가 벌떡 일어나며 정혁을 노려본다.


"무섭냐니, 뭐가요?"

윤 설이 그걸 몰라서 물어보냐는 표정을 지었다.

"뭐라니, 전대 하나가 전멸했다는 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한 녀석이 나타났다는 거잖아. 넌 그게 무섭지 않냐고."


정혁은 윤 설을 훑어본다.

'떨고 있다.'

발현자가 되어 신체의 미세한 떨림같은 것들을 더 확실하게 관찰할 수 있어서 그럴까.

그녀의 어깨가 떨리는 것이 정혁의 눈에 정확하게 보였다.


그는 고개를 약간 옆으로 돌렸다.

"무서워요, 어떻게 안 무섭겠어요.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일들에 이제는 다른 전대까지 전멸되는 상황인데."

"그런데 꽤나 무덤덤하네."

윤 설이 팔짱을 끼며 다리를 꼬왔다.


"무덤덤하게 보였나요? 그냥 그런 척을 했을 뿐인데."

사실이다.

게이트 사건이 벌어진 이후 정혁은 단 하루도 제대로 수면에 든 적이 없었다.


악몽을 꾸기도 하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잠에서 깬 적도 많았다.

"나도 그래."

"네?"


"나도 그런다고. 괜찮은 척 하고 있지만 안그래. 생각해보니까 괜찮으면 안되는 거잖아. 어느 순간 갑자기, 응? 지구가 멸망한다! 펑! 이러면 누가 단번에 납득이 가겠냐고."


정혁이 맞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잘때가 제일 무서워, 끔찍한 악몽을 계속 꾸게 되거든. 엄마의 기억도 생생하고. 자주 놀러가던 놀이터나 집 앞 산책길도 생각이 나. 그런 것들 자주 생각하다보면 가끔 눈물날 것 같기도 한데 꾹 참고 버티고 있어."


아련한 윤 설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정혁도 알고 있다.

얼마나 힘들까.

과거를 제쳐두고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SF나 판타지 영화에서나 보던 기이한 일들이 자신들의 눈앞에 들이닥쳤는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만약 아무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닌 기계에 가까운 존재일 것이다.


"근데, 과거는 과거고. 우리한테 남은 건 현재와 미래잖아, 안 그래?"

윤 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혁은 순간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라 두 눈을 크게 떴다.


[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현재와 미래에 최선을 다해. ]

갑자기 그 말이 왜 생각나는 것일까.

꽤나 어렸을 때 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섯, 일곱?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전일 수도 있다.


"야, 최정혁. 듣고 있어?"

윤 설이 말하자 정혁은 그녀에게 시선을 옮기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 네. 듣고 있어요."

윤 설은 못미덥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지만 이내 손을 펼쳐 내밀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열정 가득한 그녀의 두 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한가득 담은 트럭처럼.

이제 그녀의 눈에는 불안과 과거의 고통이라는 감정이 전혀 없는 듯 보인다.


정혁은 씨익 웃어보이며 윤 설의 손을 잡았다.

"당연하죠!"

"씩씩해서 보기 좋네, 그래야 내 동생이지."


동생.

그 두 글자가 정혁의 마음 속에 깊게 꽂혔다.

정혁은 이제 믿고 의지할 사람을 찾아야만 했었다.

비록 진짜 혈육이 아니더라도.

같이 십여 년 이상을 살았던 이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기둥'을 원했다.

잠시만이라도 편하게 기대어 쉴 수 있는 그런 기둥.

가족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답답함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다른 신뢰자를.


몇 년, 몇십 년이 걸리더라도 찾을 수만 있으면 그걸로 된다는 마음가짐 하나로 지금까지 버텨왔다.

그런데 나타났다.

윤 설.

그녀였다.


물론, 이성적인 감정이 든 것은 아니지만.

정혁에게 있어서 지금 가장 믿을 수 있고 기대어 쉴 수 있는 사람이 그녀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뇌리에 박혔다.


정혁은 확신이 들었다.

이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확신.

그는 윤 설과 마주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리고 해야할 것을 알아냈다.


'이 사람만큼은......, 내가 지ㅋ.....'


퍽--!!

윤 설의 가녀린 주먹이 정혁의 머리에 꽂혔다.

갑작스러운 가격에 정신을 못 차린듯 그는 뒷걸음질치며 비틀거렸다.


"아, 쓰으읍!! 왜 또 때리고 그래요?!"

윤 설은 손을 털며 한 쪽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너야말로 뭐해, 왜 이렇게 쌔게 잡아! 아오, 아파죽겠네!"


"아,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윤 설이 정혁을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녀는 소름돋는 미소를 보이며 정혁에게 이상한 말투로 말한다.


"너, 혹시........?"

정혁이 당황해하며 얼굴을 붉힌다.

"그,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그래, 아니시겠지."

윤 설이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비꼬자 정혁이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 아니라니까요!!!"

윤 설은 정혁의 외침에 귀를 막았다.

"어우, 뭐야 왜이래?! 귀청 떨어지겠다!"


"아, 아무튼 아니에요."

정혁이 생활관 밖으로 나간다.

쾅- 닫히는 문 뒤로 윤 설이 미소를 짓고 있다.

"헤에, 최정혁......"


정혁은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거닐며 계단을 내려갔다.

'아, 괜히 딴 생각하다가 약점 하나 잡히게 생겼네. 골치아픈데.'

군화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운다.

움찔.


정혁이 멈춰섰다.

'인기척이다.'

누군가가 뒤에서 정혁을 보고 있었다.

"이야, 여기 있으시네. 어디 가세요?"


그는 몸을 돌려서 위를 올려다 보았다.

3층 윗계단에서 재승이 정혁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산책이라도 하러 가시나요?"

오싹해진다.


평소 같았으면 그저 웃음기 많은 송재승의 밝은 미소라고 생각이 될텐데 태훈의 말을 듣고 나니 어딘가 모르게 꺼림칙해 보인다.

정혁은 포커 페이스를 유지한 채로 웃으며 말했다.

"아, 재승씨였군요. 안에 있기 너무 답답해서 잠시 바람 좀 쐬려고요."


재승의 눈가 쪽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정혁에게 말했다.


- 누구 마음대로요?


"......, 네?"

정혁의 등 뒤에 소름이 돋았다.


------


두 번째 지구 - 아펠리온

제페토의 방.


"재미는 좀 봤나?"

제페토가 차를 들이키며 백상아리에게 말했다.

"이제 시작입니다."

"흠."


그는 다리를 꼬고 거만하게 앉아있는 백발의 사내를 훑었다.

"음?"

왼팔 쪽의 제복이 찢어져 있으며 살점에는 찰과상의 흔적이 보였다.


"이거 참 희한한 일이군, 자네가 상처를 입다니. 몇백 년을 살면서 그런 몰골은 처음 보는데."

백상아리가 자신의 팔에 난 상처를 들여다본다.

"아, 별 것 아닙니다. 며칠 전에 재미를 좀 봤던 상대가 꽤나 실력자여서 말이죠."


제페토가 흥미로운 눈으로 흐뭇하게 웃어보인다.

"호오, 자네가 실력자라 칭할 정도면 나조차도 궁금해지는군."

"당신에게는 그저 한낱 미물에 불과할 실력일 겁니다."

제페토는 백상아리의 말에 크게 웃어 보인다.


"푸, 푸하하하하하하! 재밌군, 재밌어!"

그렇게 몇 초 간 폭소하더니 이내 상체를 앞으로 뺀다.

"그래서, '그 건'은 어떻게 되었지?"

"루난 말씀입니까?"


제페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주님께서 서두르시길 원하네."

백상아리는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기백을 뿜어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 곧 시작할 겁니다. 하지만 먼저......"


백상아리의 눈에서 다색의 기가 발산된다.


- 재미를 볼 곳이 하나 더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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