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4. 마나가 흐르게된 은하
창조는 창조다.
그리고 베리슈는 뛰어난 발명가다.
카린과 베리슈. 두 사람의 합작으로 우리는 새로 만들었지만 너무나도 익숙하고 편안한 함선에 탑승할 수 있었으며
외부 마나가 생겨나는 덕분에 케트라시움 에너지를 보조수단으로 사용.
정말 빠른 속도로 우주를 항해할 수 있게 되었다.
“ 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우주에서 빨라져봤자 빠르다고 느끼지는 못하겠는걸? “
춘향이 먹던 사과를 절반 정도 남긴 채로 힘차게 던졌다.
그 절반의 사과는 빠른 속도로 날아가더니 그 속도 그대로 우주 저편을 넘어 사라져 버렸다.
뭐. 사실 어딘가로 흘러가다가 중력에 이끌려 빨려 들어가 없어지겠지.
춘향의 옆에 앉아있던 미야는 춘향과는 다르게 사과를 끝까지 다 먹고 남은 것만 우주로 던져버렸다.
아마 이 사과심도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 없어질 것이다.
“ 캬~ 마나가 있으니까 편하다! 그치그치? “
“ 그러게요. 사과를 절반만 드셔도 뭐라 할 사람도 없으니까요. “
식량이 부족할 땐 이런 짓을 했다간 3시간 정도 튀겨져 죽어버렸겠지만
지금은 외부 마나를 통한 창조로 음식을 많이 만들어둘 수 있기에 부릴 수 있는 사치인 것이다.
물론..
사치 부린다고 2시간 정도 튀겨져 죽을지도 모르는 행동이지만..
미야는 쓸데없이 사람을 죽이고 앨리스가 또 살리며 이중으로 마나를 소모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 지금 있었던 일은 못 본 체하기로 했다.
“ 메르티는 괜찮대?? 깨어났다고 들었는데! “
“ ..그걸 이제서야 관심을 주시나요. “
별로 귀찮은 일은 관여하기 싫어하는 건 누구나 똑같지만..
그래도 같은 함선에서 살면서 할 것도 없는데 너무 무관심한 것이 아닌가 싶다.
“ 오시리스 시계로 1달도 더 전에 일어나셨어요. “
“ 아? 그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
“ ...조타실로 안 내려오시니까요... “
아주 약간의 원망도 담아 말했지만
상대는 그런 원망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춘향이었다.
“ 마나 덕분에 키를 굳이 잡지 않아도 되잖아? “
“ 그래도 가끔은 건드려줘야 하잖아요. 경로에 부딪히는 게 있을지도 모르고... “
실제로 두 사람의 말대로 외부 마나가 우주에 퍼져있는 덕분에 함선은 케트라시움 에너지를 이용할 때보다 훨씬 효율 좋게 움직일 수 있었으며
지금은 근처에 행성도, 항성도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을 날아가는 터라 키를 잡고 있을 필요조차도 없었다.
“ 에이~ 그런 감시는 내가 계속하고 있는걸~? 여기서 더 잘 보이니깐! “
...아무리 봐도 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잘 보이는 자리이기도 하니까 뭐라 할 수는 없었달까.
항상 이렇게 빠져나갈 미세한 구멍만큼은 남겨놓는다.
“ 그보다 메르티는??? 아무리 우리 멋대로 행동한다고 해도 우리 모습을 보여주면 안 좋은 거 아냐? 기억 소거라도 시킬 건가?? “
“ 기.. 기억 소거요? “
“ 너는 무식하게 달리기만 해서 모르겠지만~
우리 같은 마나체는 머릿속에 마나를 집어넣어 중요한 정보를 빼낼 수도 있거든!
아~주 세밀한 조종을 해야 하지만 어쨌든 할 순 있으니까! “
인간의 세포 구조 하나하나까지 전부 상상해나가며 마나를 통해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치유하는 앨리스는 언제나 세밀하게 마나를 다루기에 그 정도 기억 소거쯤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머릿속에 마나를 집어넣어 기억을 빼돌리는 건 조금 꺼림칙한데...
“ ㅁ.. 뭐.. 그~런.. 방법도 있겠지만.. 아니에요. 메르티님은 지금 앨리스님의 방에서 창조를 배우며 생활하고 계셔요.
밖으로 나오는 건 못하도록 앨리스님께서 잘 막아주고 계시죠. “
“ 아하? “
하긴.
수많은 기억 중에서 오직 우리에 대한 기억만을 골라내는 것도 큰일이며 기억 속의 빈 공간에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으니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긴 하다.
춘향도 문득 아디나와 똑같은 새하얀 모습으로 갑판 위에 올라왔던 앨리스를 떠올렸다.
아마 신의 대리인이라는 이름으로 메르티를 계속 만났던 거겠지.
“ 흐음... 계속 방구석에서 체스나 두고 있다~ 이거지..? 쩝.. “
“ 체스요? “
“ 있어~ 보드게임~ 뭐. 내가 아는 체스랑은 다른 느낌이지만. “
미야는 알 수 없는 게임 이름에 더 신경 쓰는 건 손해라고 생각했는지 뒤에 쌓아둔 사과 박스에서 사과를 꺼내 한입 베어 물었다.
...생각보다 좀 질리는데.
괜히 먹었나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한 입 먹은 순간 버리긴 아까우니 다 먹어야지.
“ 그보다 이제 제가 여기에 온 이유를 슬슬 말씀드려도 될까요? “
“ 에? 그런 게 있었어? 심심해서 온 게 아니야? “
“ 네. 그냥 말해도 상관없어서 같이 있었을 뿐인데요. “
여기 온 지 꽤 됐는데..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며 사과도 먹고 케이크도 먹고 베이컨도 먹고 생오렌지 주스도 한 잔씩 했는데..
심심해서 온 게 아니라 춘향을 볼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 살짝 충격적이었다.
이 녀석.
생각보다 쉬운 꼬맹이가 아니었달까.
평소 말버릇처럼 이해하라는 것을 진짜로 이해해버린 걸까??
“ 뭔데? “
“ 베리슈님께서 말씀하시길 완전히 마나가 우리 은하에 정착한 것이 아니래요.
하나의 거대한 파동이었던 만큼 그대로 지나가는 마나라네요.
물론 뒤덮고 지나가는 덕분에 마나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한정적이라는 거죠. “
“ 엑. “
갑자기 머리 아픈 이야기를 들이미는 바람에 춘향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 걱정 마세요. 낭비하지만 말라고 하셨지 사용하지 말라고 하진 않으셨어요. 지금도 보세요. 사과를 절반만 드셔도 뭐라 안 했잖아요? “
“ 그건 그냥 너라서 안 한 거 아니고? “
“ 그것도 그렇지만요. “
...장난치는 건가 싶기는 하다가도
조금 머뭇거리더니 춘향을 따라 절반만 먹고 사과를 우주로 버리는 미야의 모습을 보며 마나를 마음대로 사용하는 건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뭐.
춘향의 마나도 아니고 카린의 마나니까.
(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지만)
“ 여기서 놀고 있을 줄 알았다.. 어휴... “
뒤에서 들려오는 따끔한 아리나의 목소리에 춘향과 미야가 동시에 돌아보고
다시 앞을 바라본다.
“ 와서 앉아~ 같이 먹자! “
“ 또 절반만 먹고 버렸냐? “
“ 아니? 다 먹었지! “
“ 네. 절반만 드셨어요. “
배신자.
미야가 태연하게 진실을 말해버렸지만
아리나는 웬일로 스파크 대신 한숨이 먼저 나왔다.
...정말 마나를 막 써도 되나 본데?
“ 적어도 카린은 안 보이는 데서 그렇게 해. 창조주가 자기 음식이 멋대로 버려지는 걸 보면 마음 아프잖아. “
아리나는 자리에 앉는 대신 사과 하나를 집어 정성스럽게 닦고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충분한 외부 마나를 포함한 사과는 그 어느 때보다 싱싱했으며
과즙이 너무 많이 흘러 나중에 바닥을 닦아야겠다고 생각해야 할 수준이었다.
“ 카린이 고생 많았겠네.. 그래서. 키도 안 잡고 여기서 사과만 씹고 있는 수확은 있었겠지? “
한순간 그 신선한 사과는 전기로 구워버린 사과가 되고
그 사과를 한 입 더 베어 물자 단맛이 더욱 증폭되어버리는 바람에 아리나는 눈을 찌푸렸다.
“ 어.. 일단 저는 내려가 볼게요. 힘내세요 춘향님. “
“ 어엇.. 야! “
“ 야. 도망치지 마. 아. 미야 너는 가도 돼. 고생했어~ “
저 배신자는 언젠가 반드시 괴롭혀줘야겠다고 다짐한 춘향은 지금 당장 감전당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머리를 굴린다.
“ 성과라.. 성과.. 이 아무것도 없는 우주에서 성과를 억지로 내라고 한다면 난이도가 너무 올라가는 거 아냐? “
-파직..
“ 꽤 오래전에 같은 방향으로 가던 우주선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어! 관측된 건 저 거대한 푸른 마나뿐이야! 이만하면 됐지?! 내가 튀겨지기 전에 니 목을 베어버리고 싶지 않으니까 찌릿찌릿 쫌 그만! “
사실 춘향의 말대로 우주는 아무것도 없기에 특별한 것은 없다.
오히려 키를 잡고 일을 하는 시간이 더 반갑달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오랜만에 외부 마나를 맛봐서 그런지 마음껏 마나를 써가며 훈련할 수 있다는 점이 무료함을 달래주는 방법이었다.
“ 하아아아... “
평소와는 아주 미묘하게 다른 한숨과 함께 아리나가 춘향의 옆에 앉았다.
원래 한소리만 하고 떠나려다가 앉는 느낌이랄까?
어딘가 조금은 고민거리가 있는 듯하다.
이런 작은 차이는 춘향이 놓칠 리가 없었다.
“ 우리 길드장님이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실까~? “
“ 너는 계속 회의를 안 나와서 모르겠지만.. 메르티를 어디에 내려줘야 하는지 몰라서 며칠을 꼬박 회의했단 말이지..? 그런데도 답이 안 나와서 답답해 죽겠어.. “
허허.
그 썩어가는 땅에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게끔 건져왔더니
이제는 어디에 놔야 할지 몰라서 고민이라는 건가.
그런데 그 답은 간단하지 않아?
“ 어디긴! 우주의 공방에 냅두면 되지! 쓸데없는 고민은 오히려 은하를 어지럽히기만 한다구~ 설마. 우리가 처음으로 우주에 나갔던 그 공방을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
“ 그래.. 뭐 그 정도는 알고 있지... 다만 그 우주의 공방이 안 보이니까 문제야... “
처음으로 외계에 나가서 마주했었던 그 공방.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다만 그때도 우리는 페인레리트의 우주선에서 게이트를 통해 공방으로 갔었던 것인 만큼 정확한 좌표를 모른다.
좌표를 몰라도 마나를 쏴 대략적인 우주 지도를 그려 찾아내려고 했으나...
그마저도 공방이라고 부를만한 곳은 없었다는 것이 문제다.
“ 베리슈가 알고 있는 은하계 좌표랑 카린이 지내던 헤브나 행성의 좌표를 토대로 대략적인 위치를 잡았거든.
그래서 그 근처의 행성에 메르티를 맡길까 싶은데... “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이고는 있지만..
그게 도저히 맞는 선택인지 모르겠다.
“ 뭐. 가만히 있어도 답은 안 나오잖아? 마침 우주의 중심부로 향하는 길이랑 같으면 상관없지 뭐! “
이럴 땐 참 속 편한 춘향이 너무나도 부럽다.
춘향이 머리 아픈 문제는 대충 넘겨버리자며 누워버리자 새까만 우주가 눈에 들어왔다.
웬일로 아리나도 따라 눕는 바람에 조금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 음? “
“ 응? 왜? “
갑자기 아리나가 우주를 바라보더니 눈을 깜빡인다.
“ 저 별이.. 원래 있었나? “
“ ..킥..! 왜. 너도 이제 별자리가 심상치 않은 거야? “
“ 아니아니..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있었나 싶어서.. “
별이야 뭐 언제든 어디에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아리나는 그 별 하나가 너무나도 수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이제 막 누운 몸을 다시 일으키고 팔찌를 작동한다.
“ 윌. 베리슈한테 받은 은하 지도 있지? 그거 좀 보호막에 띄워줄래? “
잠깐 기다리고 있자 함선을 둘러싸고 있는 보호막 전체에 베리슈가 그려놓은 지도들이 위치에 맞게 겹쳐진다.
까만 우주에 새하얗게 빛나던 별 위에
베리슈가 그려 넣은 파란 별이 덧씌워지자
그 외의 별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 어? 뭐야. 진짜 있네? “
“ 거봐 내가 이상하댔잖아. 증말.. “
딱 하나의 별이라면 크게 신경 쓸 거 없겠지만...
...
생각보다 많은 별이 지도와 달라졌는데..?
“ 베리슈. 들을 수 있어? “
“ 네. 무슨 일이세요? “
“ 지도 최신화.. 언제 한 거야? 갑자기 못 보던 별이 많은데? “
“ 네? 어... 잠시만요... “
뭐.. 당장 위험하지는 않으니까 상관은 없는데.
혹시 모르지 않는가.
“ 오시리스 시계로 3일 전이요. 여기서도 관측하고 있는데.. “
“ ...있는데? “
“ 저거.. 별이 아니라 우주선이네요. “
뭐. 그럴 수 있지.
아무리 과거의 은하라고 하더라도 세계의 문명 시작점은 각자 다르듯 우주를 여행하던 문명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기에 우주선이 돌아다니는 것은 당연했으며
그들이 마나라는 힘을 만나 더더욱 빠르게 진화했다.
그렇게 막 마나라는 힘을 받아들인 우리 은하는 넘치는 힘을 주체할 수 없어 세상을 정복하는 시대가 열려버렸다.
어쩌겠는가.
힘이 없는 인간이 힘을 가지면 욕심이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을.
그저 이쪽으로 오지만은 않았으면 좋을 따름이다.
아. 물론 그들과 싸우는 게 무섭다기보다 그들을 학살해버릴까 봐 무서운 것이다.
“ ...저 별들이랑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
아리나는 하늘에 떠 있던 별. 우주선에서 눈을 떼고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의 우주를 보았다.
눈에 보이는 것만 14개의 우주선.
저들과 마주치지 않고 안전하게 메르티를 운반하며 은하의 중심부로 갈 수 있을까?
- 작가의말
야 플래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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