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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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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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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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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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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회합

DUMMY

파스슷.


허공으로 흩날리는 것은 붉은 모랫바람과 불티였다.


단 일검(一劍).


희게 떨어진 벼락불이다. 여뢰의 잔향이 연이어 튀어오르며 허공을 저미고 있었다. 깔끔하게 반으로 베인 대전의 지붕 틈 사이로 돌조각이 하나 툭-떨어져 내린다.


새하얀 벼락의 일검이, 내성 대전을 반으로 쪼갰다.


문자 그대로의 검격. 백연의 앞에 자리잡은 모든것을 반으로 갈라내고도 여력을 허공에 새겼다. 그 앞에서 흐릿한 틈으로써 갈라지지 않은 것은 단 하나였다.


“후우.”


파츠츠츳-!


거칠게 일어나는 호신강기의 진기 파편이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흡사 붉은 모랫바람을 몸에 두른 것 마냥 보인다. 압도적인 호신강기의 힘. 일검을 받아내는 순간 수십번의 강기가 부서졌다 생성되기를 반복했다. 대막에 시도때도 없이 불어닥치는 모래폭풍이라도 된 듯이.


막대한 진기를 요할 갑주다.


나단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자였다.


치이이이이-


그의 육신 근맥 전체를 따라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거한의 근맥이 기관진식마냥 철컥철컥 돌아가며 천천히 거대한 머리를 일으킨다. 적발의 거한은 만면에 미소를 띄고 있었다.


“강렬하군. 네 이명에 한치의 부풀림도 없다.”


백연은 거한을 올려다보았다. 여뢰를 비스듬히 그어내린채로.


‘......막았어?’


그 또한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분광뇌풍검의 공능은 방어 불능의 검격. 닿은 모든것을 벤다는 단순하고 깔끔하며 효과적인 일격이다. 물론 나단이 그의 검격을 막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나, 피하는 식일줄 알았는데.


‘정면으로.’


간극의 틈새에서 호신강기를 숨쉬듯이 덧대었다.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자의 방어법이다. 육탄으로 일격을 받아내는데, 백연의 검은 호신강기가 종잇장이라도 되는 듯이 갈라버렸다.


허나 그 종이가 수백장이었다.


‘그걸로 부족했으면 더 쑤셔박았겠군.’


소년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의 검은 막힌 것이 아니라, 멈춘 것이었다. 추진 경파를 전부 소모해서.


“네 투기와 그 자신감의 발로를 인정하마.”

“허면 여기까지......?”

“하지만.”


씨익.


거한이 웃으며 쌍태도를 들어올렸다. 그 눈빛에서 호승심을 읽은 백연은 작게 욕설을 뱉었다. 제기랄. 귀찮게.


“아직 본왕이 내건 조건은 달성되지 않았다. 허니 이 싸움은.”


후욱.


대기가 뒤틀린다. 단숨에 도신을 따라 압축되는 진기의 파동이 찰나 시야마저 일그러뜨린다.


“앞으로 한참도 이어지겠다.”


쩌억.


소리가 사라졌다. 소리마저 집어삼키며 내달린 나단의 일격. 쌍태도중 한자루가 커다란 횡격을 그리며 짓쳐온다. 백연은 바닥을 박차며 몸을 뒤틀었다. 정면으로 받을 일격이 아니다. 찰나지간 바람이 소년의 몸을 휘감았고, 동시에 그의 몸이 꿈결처럼 떠올랐다. 횡격 도신 위로 정확히.


턱.


가죽신이 도면을 밟았다. 극히 찰나다. 한순간 소년의 발끝을 휘감은 호신기와 도신의 발경력이 크게 마찰. 희끗한 연기가 일어날 듯 일렁이는 순간, 도신을 지지대 삼은 백연이 그대로 허공에 눕듯이 회전하며 검을 휘둘렀고.


쩌저저저저저저정!


백광을 휘감은 검이 나단의 목덜미를 향해 떨어졌다. 삽시간에 부서지는 호신강기가 여러 장.


허나 그와 동시였다.


후욱.


거대한 태도 한자루가 뒤늦게 따라붙었다. 쌍태도가 휘둘러지는 간격에 미묘한 차이가 일었다. 횡격 궤적을 그리던 거대한 칼이 삽시간에 치솟으며 백연의 코앞으로 진격. 찰나지간 눈매를 찌푸린 소년이 여휘를 회수하며 몸 앞에 가져다 대었다.


콰아아아앙!


뇌광을 휘감은 소년의 신형이 뒤로 포탄이 쏘아진 양 날아갔다. 단번에 대전의 반대편 끝자락에 있는 석좌에 처박히며 그 등받이를 박살내고 뒤로 구른다. 허나 나단 또한 한쪽 무릎이 꿇려지며 바닥에 처박혔다.


쩌저저적!


검격을 호신강기로 받아내려 든 여파로 그의 무릎 아래 대지가 쩌적 갈라지며 거미줄 같은 금을 만든다.


“크핫!”


나단이 광소를 터트렸다.


동시였다. 바닥에 한바퀴 크게 구른 백연이 대지를 박차는 순간, 그 신형이 백광으로 화했다. 마치 공간을 격하는 듯한 움직임. 어느 순간 하얀 잔상이 일렁였고, 그림처럼 다시 일어선 나단의 코앞에 백연이 진각을 내리찍으며 검을 휘둘렀다.


쩌저저저저저정!


허공에서 불티가 별빛마냥 튀어올랐다. 왠만한 장정 두엇이 모여 들어도 들기 힘들 쌍태도를 숫제 나뭇가지마냥 쥐고 휘두르는 나단. 그 주위로 맹렬한 도기가 휘몰아치며 폭풍같은 기파를 이룬다.


숫제 죽음의 권역이라도 된 듯한 광경인데, 그 안에 들어있는 소년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꽃잎처럼 나풀나풀 휘돌며 한손에 쥔 벼락을 쉴새없이 쏘아낸다. 파도 위에 조각배 한척으로 올라타 움직이는 듯한 위태한 광경.


허나 전투가 거듭될수록 천천히 물러서는 것은 나단의 발이었다.


쩌적. 쩌저적.


그의 발 아래 땅이 쩍쩍 갈라지며 미세한 금을 새긴다. 콧김을 내뿜는 나단의 머리에 굵은 힘줄이 툭 튀어나오고, 적발이 미친듯이 흩날리며 진기의 폭풍과 함께 뻗어나갔다.


이를 드러낸 그가 환희에 찬 표정으로 도신을 비틀어 쥐며 눈을 빛낸다.


“이거다! 더, 더 몰아쳐라!”


쿠구구구구궁-


도기 여파가 바닥을 스칠때마다 거대한 상흔이 땅을 갈라낸다. 점차로 대전의 기둥들이 흔들리며 먼지가 파스스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며 악예린은 생각했다.


다섯개의 성을 단신으로 무너뜨렸다는게 허언은 아니었다고.


허나.


‘백락, 이라고 했죠.’


강호 호사가들과 민초들. 그들의 눈과 입은 생각보다도 굉장히 정확하다. 이름에는 힘이 있다. 한 사람의 이름은 삶을 구가하는 이정표가 되기도 하는 바.


별호(別號)는 어떠한가.


그것은 무인이 살아온 길에 대한 표상임과 동시에,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과 염원이 깃드는 이름이다.


강호 무림에서 태어난 별호는 그의 검과 모습을 표현하는 어구이면서, 사람들이 바라는 것.


별안간 눈앞에 떨어진 흰 벼락이다. 지지 않는다. 실제로도 무패다. 강호 무림에 어느날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가 패배했다는 이야기는 들려온적이 없다. 그것은 곧 밤하늘의 별마냥 새로운 이정표이자 희망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에 깃들게 된다.


이런 난세에는 더욱이 그렇다.


비단 민초들에게만 그런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분광뇌풍검의 초식을 자유자재로 섞어내며 새로운 길을 다시금 뚫어내고 있는 백연을 보는 악예린마저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지지 않아.’


그 상대가 누구라고 하여도 백연은 방법을 찾으리라고.


쩌어어어어어어엉!


검이 일곱번 허공을 그어내는 순간, 연이어 터져나오는 음공 여파. 삽시간에 몸을 부풀리며 후욱 일어난 진기 파동이 도기의 연격을 끊어내고 피어오른다. 동시에 일보 전진.


“자유분방하군. 고루한 중원인의 검과 다르구나!”


백연은 답하지 않았다. 소년의 눈이 번뜩이며 회전했다. 자령안 기파가 거칠게 휘몰아치며 검로를 조정하고 구결을 다시 새겨나간다.


실시간으로 바뀐다. 칠성섬뢰의 검초에 선운비뢰의 광역 발경 묘리를 더한다. 허공에 일제히 일어난 수많은 타점에서 동시에 진기가 격발.


콰아아아앙!


검을 휘두르고 간격을 둔 뒤 이어서 터져나오는 일격이다. 흡사 칼질을 허공에 새겼다가 시간차를 두고 끌어내는 듯한 기예. 나단의 전신에 정확히 적중했지만, 훅 일어난 분진을 뚫고 거의 충격조차 받지 않은듯한 거한이 쌍태도를 휘두른다.


양방향 종격. 좌우에서 짓쳐오는 쌍태도가 거대한 벽처럼 백연의 전신을 압박해 들어온다.


피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막거나 흘리기 어려운 일격인 까닭에.


‘이곳은.’


다르군.


백연은 문득 생각했다.


강한 이들은 중원에도 있다. 허나 그들은 이런 식으로 싸우지 않는다. 그 스스로가 방금 전에 말했듯이, 왕의 죽음은 큰 손해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싸움이 시작되니 목숨따윈 내다 버린듯한 투기를 뿜어낸다.


지금 이 순간도.


시뻘건 진기를 흩날리며 모래 폭풍을 옷자락마냥 두르고 전진한다. 떨어지는 쌍태도로 눈앞에 있는 모든것에 부딪히는 무인.


‘이런 곳이다.’


소년은 생각했다.


다섯 왕의 회합에서 대전사끼리의 싸움도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북방에 이르렀으면 북방의 방식대로 적을 박살내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리고 백연은 웃었다.


‘익숙하군.’


찰나였다. 소년은 그대로 일보를 내딛었다. 후퇴보법이 아닌 전진 보법. 쌍태도의 궤적으로 그대로 몸을 밀어넣는다. 동시에 막대한 진기를 끌어올린다. 하단전에서 휘몰아치는 뇌광이 번뜩이며 상승. 곧장 소년의 옷자락 위로 넘실거리는 뇌광이 파도처럼 쏟아졌다.


한순간이었다. 붉은 모랫바람 사이로 푸른 별무리 같은 빛살이 화악-튀어나온 것은.


쩌저저저저저저저저정!


무지막지한 진기의 파편이 충돌하며 번갯불이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개새적인 발경력의 마찰. 푸른 호신강기의 방벽 위로 쌍태도가 내리꽂히며 비틀린다. 그 여파로 인해 바닥이 쿠궁-하며 내려앉았고.


파슷.


소년의 신형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도법과 호신강기가 충돌한 여파마저 자신의 발걸음에 덧댄 모습. 꿈결처럼 치솟아 허공에서 몸을 돌린다. 찰나지간 나단이 회전하며 백연이 있을 위치에 도를 휘둘렀으나, 소년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어느새 바닥에 내려앉은 백연. 한손에 검을 늘여쥔 채로 여상히 다른 손을 들고 나단을 흘깃 쳐다본다. 길다란 눈매가 휘어지며 웃음으로 화했다.


“이것이면 되겠습니까.”


사락.


바람 사이로 백연의 손아귀에 쥐어진 붉은 머리칼이 흩날렸다. 나단은 한움큼 잘려나간 자신의 길다란 장발을 보며 이를 드러내었다.


“푸흐......본왕의 머리를 취했구나. 중원인.”

“......”

“본왕이 내건 조건을 달성했으니, 증명은 아쉽게도 여기서 끝났다.”


쿠웅.


나단의 쌍태도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도의 끝부분이 바닥을 쑥 파고들며 틀어박히는 모습. 거대한 바윗덩이를 떨군 것 같은 소음이 둔중하게 울린다. 그 사이에 선 거한이 백연을 보며 말했다.


“너는 왕의 격에 다다른 전사임을 인정한다.”

“시험의 통과입니까?”

“스스로 왕을 칭하고 본왕에게 도전해도 이상하지 않은 무위다. 네가 대전사임을 부정할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외려 본왕이 네게 물어야겠군. 대가는 혈귀들의 행방으로 충분한가?”


백연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코끝을 살짝 찡그린 그가 답했다.


“그럼......”

“무엇이든 요구하라. 본왕은 너를 왕의 격으로써 대접하겠다.”

“배가 고파서 그런데, 식사 좀.”


쿨럭. 분진 사이에서 기침을 뱉어낸 백연이 배를 문질렀다. 흐린 미소와 함께였다.


“가능하겠습니까?”



※※※



연회였다.


화려한 불빛이 대막의 어둠을 수놓았다. 경음성의 정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호수. 그 위로 불빛이 춤추며 휘돈다. 거대한 바위에 걸터앉은 나단의 앞에는 커다란 경기장이 펼쳐져 있었다.


그 위에서 벌어지는 것은 전사들의 싸움.


본디 대전사에 도전할 이들의 싸움이었다. 이제는 아니었다. 나단은 곧장 신성한 대전사의 의식을 사흘간의 축제로 바꿔버렸고, 백연은 그 가운데 나단의 옆에 걸터앉아 찻잔을 홀짝이고 있었다.


“화끈해서 좋군요.”

“......”


악예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기품있는 몸짓으로 무언가를 먹고 있었던 까닭이다. 백연은 그녀를 흘깃 보곤 웃었다.


“원래 그리 잘드십니까.”

“......냠. 그렇죠. 먹을 수 있을때 먹는게 습관인걸요.”


물을 마신 악예린이 어깨를 으쓱였다.


“무엇보다 여인의 몸은 일정한 태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서요.”

“근맥의 형성이 어렵다고는 들었습니다.”

“사실이에요. 같은 힘을 내려면 배로 먹고, 배로 움직여야 하죠.”


그녀의 말을 증명하듯 악예린은 엄청냔 양의 식사를 섭취하고 있었다. 백연도 크게 다를바는 없었다.


무림인은 내공 때문에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말. 절반만 사실이다. 무림인은 많이 먹어야 그만큼 강해진다. 외공은 무조건 음식을 먹어야 성장하기 마련. 그런 의미에서 소림의 절밥은 기가 막히게 맛있다고 한다. 거기에 역근세수경을 더해 천하 소림의 외공이 완성된다.


금강불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것은 아니니.


무림인들도 먹을 수 있을때 많이 먹는건 중요하다. 백연이 곤륜산에 처음 도착하자마자 사형들에게 먹을것부터 챙겨준 이유였다. 몸이 무너지면 모든 무공이 무너지기 마련이니까.


“해서 이제 어떡할 생각이에요?”


입가를 천으로 닦아낸 악예린이 물었다.


“혈귀들은 지금도 이동하고 있을터인데.”

“시간이 넉넉하진 않지만, 회합까진 참여해야겠죠.”

“대전사들의 싸움......”

“혈귀들의 행방을 얻는 조건이었으니까요. 물론 여기서 왕의 자리에 도전해 꺾어버려 얻어내는 수도 있겠지만.”


그의 말을 들었는지 나단이 고개를 돌린다. 그를 보며 씩 웃는 경음성주의 눈빛에 백연이 헛웃음을 지었다.


“내키지는 않는군요. 이길 수 있다손 쳐도 어렵습니다.”

“본왕과 끝까지 하고 싶다면 환영이다. 그 짜릿함이 아직도 손끝에서 떠나지 않는군. 실로 얼마만의 즐거움이었는지 모르겠구나.”

“......죽어야 끝나는 싸움을 굳이.”


백연의 답에 나단이 너털웃음을 짓고는 그대로 경기장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를 슬쩍 응시하곤 백연이 덧붙였다.


“그리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 얻는 것이 훨씬 많으니까요.”

“동의해요. 사흘간 이곳에 있다가, 나흘째의 회합에 참여하는거죠?”


백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악예린이 볼을 톡톡 두들겼다.


“시간이 남네요. 매일 축제만 보고 있을게 아니라면 역시 무언가를 좀 해야겠어요.”

“예. 저도 좀 시간이 필요했는데, 마침 사흘이 생겼으니 폐관에 들어가볼 예정입니다.”

“......폐관을요?”

“예.”

“무엇을 위한......아.”


중얼거리던 악예린이 백연을 응시했다.


아까 전.


나단과의 마지막 한번의 교전. 나단은 분명 백연이 보법을 밟아냈을 위치를 정확히 경계했지만, 그는 이미 그 자리를 스쳐 지나갔다. 허공을 밟을 수 있는 까닭에.


싸움의 양상이 아예 달라진다.


그가 내딛은 첫 발걸음 하나로도 그렇다. 무수한 변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일보.


그리고 그것을 둘, 셋으로 이어낼 수 있다면.


“그 걸음을요?”

“예. 여기서 다듬고 갈 생각입니다.”


악예린이 감탄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리 옆에 기대어놓은 창을 매만졌다.


“그렇다면 저도 열심히 수련에 들어가야겠네요. 북방 무림에서 백연의 발목을 잡지 않으려면 말이에요.”


후후-웃는 악예린. 뒤이어 나단의 불꽃같은 음성이 뒤따랐다.


“수련 장소가 필요한가. 내주도록 하겠다.”


호의의 연속이다. 백연은 어깨를 으쓱이곤 찻잔을 들어 홀짝였다.


그리 밤이 화려한 불꽃 속에서 깊어졌다.


이튿날 아침부터였다.


축제가 계속되는 가운데, 백연과 악예린은 홀로 고요한 장소에 와 있었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사암(砂巖)으로 뒤덮인 수련장. 천장은 없었다.


“그럼 사흘 뒤에 봐요?”


가볍게 뱉고 사라진다. 그녀가 움직인 뒤로 거대한 문이 쿠구궁-소리를 내며 닫혔다. 차가운 돌바닥에 홀로 선 백연은 이윽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눈을 감았고.


솨아아아아-


바람이 소년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희뿌연 안개같은 운무와 함께였다.


그리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별을 하늘로 삼은 모래 위의 연무장이다. 해가 뜨고 진다는 감각조차 흐릿하게 이지러진다.


그 사이에서 소년은 나아갔다. 한 걸음씩.


그렇게 사흘의 시간이 흘렀고.


쿠구구궁-


다시 수련장의 문이 열렸을 때. 소년은 시선을 들어 악예린의 눈을 마주했다. 며칠 사이에 기도가 훨씬 날카로워진 악가의 창사가 백연을 보고 미소지었다.


“성취가 있었나요?”

“예.”

“얼마나......”

“하루에 한 걸음.”


소년이 답했고, 악예린의 눈이 커졌다. 백연은 담담히 발끝으로 땅을 툭 쳐보았다.


화아아아악!


그 가벼운 움직임만으로도 귓가에 화악 일어난 바람결 속에서 백연이 조용히 말했다.


“네번째 걸음까지 닿았습니다.”


작가의말

300화까지 따라와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끝까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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