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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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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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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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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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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일보(一步)(3)

DUMMY

※※※



단 일격이었다.


백연은 쉬이 알 수 있었다. 지금 저 밑에서부터 거꾸로 올라오며 사방을 장악하는 마기(魔氣)의 파도.


암혼제의 손짓 한번으로 일어난 일일 것이다. 그 또한 암혼제가 무공을 펼치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본 적이 있었기에.


어설픈 강자가 정파 무림 전체를 상대로 혈겁을 일으킬 수는 없다. 신교대전은 그 명칭대로 대전(大戰)이었다. 가히 전 중원 무림을 한번 전쟁의 겁화속으로 몰아넣었던 신교, 그리고 그 교주.


그저 신교의 힘이 강대하다고 벌일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


신교의 힘은 강대했으나, 전성기의 천린은 강하다는 말조차 그를 다 담지 못하던 강자. 말 그대로 괴이(怪異)였다.


때문에 백연은 과거와 똑같이 마기로 잠식되기 시작한 주변의 풍경을 보며 단박에 알아차렸다.


지금 이 순간.


‘저건 전력이다.’


암혼제 천린이 일시적으로나마 전성기에 달하는 무위를 되찾았다는 사실을.


쿠구구구구구궁-


지반이 흔들린다. 발 아래의 땅을 따라 수십갈래의 금이 쩌억 새겨졌고, 흔적도 없이 지워져버린 혈귀궁의 윗부분 너머로, 기우뚱 무너지기 시작한 산맥이 엿보인다.


대지가 붕괴하고 갈라지기 시작한다. 본래부터 높은곳에 자리잡고 있던 혈귀궁이다. 절벽의 끝자락에 고고하게 그 자태를 드리우고 있던 거대한 혈귀궁이, 그 절벽 전체와 함께 조금씩 주저앉기 시작하고 있었다.


‘혈라무옥이 완전히 붕괴했나.’


혈귀궁 아래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어갔던 혈라무옥. 그 최하층에 있던 암혼제가 힘을 발산하기 시작했다면 그곳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혈라무옥이 붕괴함에 따라 이곳의 지대마저 흔들리며 무너져내린다. 지속적으로 진동하는 땅을 느끼며 백연이 입매를 비틀었다.


‘난장이군.’


그리고 그것을 알아차린 것은 결백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어찌 저런 힘을? 암혼제가 풀려났다 해도, 그는 전력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텐데요?]


당황한 음성. 가면 아래로 일렁이는 눈빛이 평소의 여유가 사라진 모습이다. 허나 백연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곁의 악예린을 슬쩍 내려다보며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을 뿐.


“괜찮습니까?”

“네. 덕분에요. 그런데 저건......”

“이이제이(以夷制夷)라도 써야할 상황이더군요. 내키지는 않았지만.”


악예린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방을 뒤덮는 마기에도 별로 개의치 않는 듯이.


“알겠어요. 그나저나 여기서 이상한걸 발견했어요.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선은......”


스릉.


백연이 검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소년의 온몸을 따라 시린 뇌기가 거칠게 흩날리며 옷자락을 펄럭이게 만들었다.


“이곳을 벗어나고 생각하지요.”


눈앞에 선 두명의 결백. 똑같은 행색을 한 두 분신이 백연을 동시에 바라본다. 일전의 당황을 천천히 누그러뜨리고 있는 모양새. 표정 없는 가면 아래로 남자의 고민이 엿보이는 듯 했다.


“머리가 복잡한가보군.”

[하하......그보다는 조금 짜증이 나는군요. 안그래도 피곤한데.]

“머리가 몸에서 떨어지면 그런 고민도 없어지겠지.”


툭 뱉은 백연이 걸음을 내딛으려는 그 순간이었다.


투둑, 투두둑.


[......자신감이 넘치는 건 좋습니다만, 이곳이 어디인지 벌써 잊어버린 모양이군요.]


소년의 발치에 빗방울 같은 것이 떨어져 내렸다. 회색빛 돌바닥을 적시는 물줄기는 끈적한 붉은색이었다.


자색으로 물든 백연의 시선이 곧장 위를 향했다.


[제아무리 암혼제가 풀려났다고 해도 이곳은 혈귀궁의 한복판......충고 하나 하지요. 혈교주를 너무 얕보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적어도 피를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그는.]


한방울, 두방울씩 떨어지던 물줄기가 점차로 늘어난다. 암혼제의 기세에 한순간 사라졌다 여겼던 압박감이 점차 자욱해지며 온몸을 짓누른다. 피처럼 붉은. 아니, 정말로 피일 것이 분명한 빗줄기가 서서히 탁 트인 하늘을 가득 채우며 붉은 하늘을 만든다.


그 흐름은 이윽고 폭풍우처럼 거대한 흐름이 되어 사방을 매웠고.


쏴아아아아아아아-


귀가 먹먹해지는 빗소리와 함께 끝없는 혈우(血雨)가 세상을 뒤덮기 시작했다.


[작금의 마교주조차도 경시할 수 없는 괴물이니.]


혈공 권역.


천라방주가 말해주었던 혈교주의 권역이었다. 단박에 알 수 있는 붉은 하늘이 눈앞을 채웠다. 끈적하고 탁한 붉은 기운이 밤하늘을 덧칠하며 뻗어나간다. 어느 순간 이질적인 암적색으로 물든 창공에서 불길한 기운이 흘러내리며 온몸을 뒤덮었다.


그 광경 속에서 우뚝 선 결백이 가면을 매만진다. 백연을 응시하는 새하얀 가면 아래로 옅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삽시간에 평정을 되찾은 모습.


[묘수를 찾아내었다는 것은 인정하지요. 허나 혈교주가 이곳에 있는 한, 암혼제가 풀려났다 하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달라지는 것이 없다?”


백연이 고개를 갸웃 기울이자 결백이 답한다.


[혈교주를 상대하는 것만 아니면 당신들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까?]

“당연하지. 잡혀온 사람 한놈 구해가는 길에 네놈까지 잡아가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뭐......뭐라고요? 아하, 아하하핫! 그것 참 원대한 목표군요. 정녕 그리 생각......]


그렇게 결백이 가면의 입이 있어야 할 부근을 가리며 광소를 터트리던 그 순간.


쩌억.


백연이 걸음을 내딛었다. 동시에 시야가 일그러졌다. 한순간 소년의 신형이 있던 자리에서부터 열걸음 넘게 떨어진 결백의 코앞까지 시린 백광이 일었다. 한줄기 뇌광이 뒤늦게 스친다.


그와 동시였다.


서걱.


결백의 두 분신중 하나의 목에 길쭉한 선이 새겨졌다.


[......살문?]

“흐음, 분신이라. 베는 손맛이 없군요. 맛대가리가 없는게 어째 비구니가 약초랍시고 입에 쑤셔박던 풀쪼가리 느낌이랑 비슷합니다?”


참월대주였다. 별안간 결백의 두 분신체중 하나의 뒤에서 소리없이 현현한 그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짧은 검을 들고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뭐, 그래도 이정도는 쉽군요.”


쩌저저정!


그와 함께 혈우를 뚫고 직진한 벼락이 마지막 남은 분신체의 목에 틀어박혔고.


[커헉......]

“아직도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하나?”

[조, 금만, 그, 자리에서 기달......]


파악!


백연이 검을 쳐올렸다. 찰나지간 형태를 유지하던 분신체는 곧 바닥으로 풀썩 쓰러져 내렸다.


검을 거둔 백연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허공 사방을 채우며 내리기 시작한 핏물. 그 아래 널브러진 다섯 구의 창백한 시체가 눈에 들어온다. 직전까지 결백의 분신이 서 있던 자리였다. 각기 다른 모습을 한 사람들이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눈을 부릅뜨고 죽어 있었는데, 백연은 단박에 무슨 일인지 알아차렸다.


“분신체라더니, 사람을 이용하는거였나.”

“호오. 시체를 이런 식으로 써먹을 수도 있군요? 정교한 환영술식입니다. 만금장에 환술(幻術)에 능한 기인이 있다더니.”

“시체였다고요?”


악예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참월대주.


“죽은지 며칠은 된겁니다. 전신 혈맥을 보존한 다음 혈공 진기를 불어넣어 인형으로 삼았군요. 그로써 멀리 있는 술자 본인을 일시적으로 다른 자리에 구현......분신술식이라는 이름으로 펼친겁니다.”

“금술인 이유가 있었군.”


백연이 중얼거렸다. 악예린을 힐끗 돌아본 그가 덧붙였다.


“두번은 안쓸 기술입니다. 애초에 강자들을 상대할때는 낭비니까요.”

“......이걸로 그곳을 지키고 있었군요. 감시가 허술하다 했더니.”

“그곳이요?”


백연이 물었지만, 악예린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


한순간이었다. 기감 저편에 그야말로 파도같은 진기의 폭풍이 휘몰아치는 감각이 일었다. 압도적인 내공의 양. 저것을 풀어놓는 것 만으로도 평범한 이들은 곧장 죽음에 다다를 것만 같은 거대한 진기가, 한 사람의 형상을 취하고 시야 저편에서 몸을 일으킨다.


혈귀궁의 저편, 언뜻 보이는 높다란 건물의 위였다.


붕괴하는 파편들 사이 건물을 밟고 고고하게 서 있는 인영이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길쭉하게 흩날리는 것은 붉디 붉은 진기의 장막. 핏빛 장포를 드리운 길쭉한 인영이 천천히 손을 펼치는 순간-


출렁.


하늘이 흔들렸다. 붉은 피의 장막이 한차례 몸을 뒤틀듯 크게 움직이더니, 서서히 강하하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 전체가 땅을 향해 몸을 숙이며 내려오는 듯한 기괴한 풍경.


그러나 그것에 압도되는 것도 잠시였다.


별안간이었다.


콰르르르르르르릉!


하늘을 찢어내는 뇌성(雷聲)과 함께 한줄기 묵빛 선이 소년의 시야를 반으로 갈랐다. 지저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그것은 어둠을 그러모아 녹이고 녹여 한점 빛살조차 없이 뭉쳐낸 듯한 흑색의 뇌전.


한순간 거꾸로 솟아오른 흑뢰(黑雷)가 쏟아져 내리는 핏빛 하늘과 맞닿았고.


[------]


감각이 지워졌다.


극히 찰나였다. 반사적으로 진기를 둘러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았다면 귓속이 터져나갔을 일이었다. 무언가를 말하는 악예린의 입조차 그저 벙긋거리는 것으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직후.


첫 충돌의 여파가 일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휘몰아치는 바람이 귀청을 찢어냈다. 흑뢰와 핏빛 하늘이 충돌한 여파로 일어난 거대한 바람이 소년의 몸을 죽 밀어내었다. 그 순간부터였다. 사방을 따라 일제히 솟아오르는 흑뢰가 수십줄기였다. 하늘을 향해 거꾸로 솟아오르는 흑색 마기의 파도와 쏟아지는 핏물이 충돌한다.


암혼제와 혈교주의 격돌. 이 순간 모든 전장이 뒤집히고 무너진다.


쿠구구궁-


지반이 뒤틀리고 갈라지는 속도가 가속하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백연은 검을 비틀어 쥐었다.


“예린!”

“네!”

“단순히 도망치기는 어렵겠습니다. 우선은 여기서 좀 벗어나는게!”


절벽 근처다. 이대로 혈귀궁이 무너지면 어디로 휩쓸릴지 모른다. 이 자리를 벗어나 결백을 확보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저 격돌에서 벗어날 생각도 해야 한다.


그저 휘말리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힘의 격돌이다. 혈교주의 권역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평소처럼 전투하는 것도 어렵겠지.


암혼제 천린은 혈교주를 상대할만큼 강대한 힘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혈교주 본인도 만만치 않았다. 백연은 결백의 말이 사실임을 인지했다. 이곳은 혈귀궁의 한복판.


혈교주의 힘이 극도로 강하게 발현되는 장소다. 끝없는 피를 손에 쥐고 있을텐데, 이만한 권역을 사방에 뿌려놓는 것이 그러하다. 지금 혈교주는 천린을 상대하는 것에 전력을 쏟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 권역은 닿는 모든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애초에 원래 범위는 산맥 전체라고 했어.’


지금 이 정도면 극도로 축소된 범위일 터.


게다가 천라방주가 일러주었던 것과도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약해져 있다. 백연 자신에게 권역을 집중적으로 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겠지. 그럼에도 온몸을 짓눌러오는 혈공 진기가 압도적이다.


백연이 시선을 돌렸다. 말소리조차 먹먹하게 묻히는 광풍 속에서 소년이 진지하게 표정이 바뀐 참월대주와, 악예린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이 자리는 벗어난다.


그렇게 생각을 일치시킨 세 사람이 동시에 경공 진기를 그러모으는 순간.


촤르르르르르륵-!


문득 귓가에 틀어박히는 쇠사슬 소리. 동시에 막대한 진기 파동이 그들의 머리 위에 곧장 현현했다. 동시에 즉각 반응한 백연이 몸을 비틀며 위를 향해 벼락을 날렸고.


쩌저저저저정!


귀청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기괴한 귀곡성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음울한 기운의 경파 조각들이 유리처럼 핏물 사이로 반짝이다 이내 허공으로 녹아내린다.


“호오. 노부의 일격을 그대로 박살내다니. 귀호섭백(鬼號攝魄)의 진기는 단순한 칼질로 부술 수가 없는 것이건만.”


동시에 백연의 귓가에는 늙수레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어느새 시야 저편에 서서 회백색 수염을 쓸어내리는 노인. 절그럭거리는 사슬 소리가 전장의 소음을 뚫고 귀에 틀어박힌다. 중얼거리고 있음에도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귀에 틀어박히는 노인의 음성.


“가끔 강호 무림에서 들려오는 소문은 들었건만. 직접 보니 참으로 선재(仙才)로다.”


끌끌 혀를 찬 쇄혼노군이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이번 싸움에는 그리 끼고 싶지 않네만......”

[그 무슨 소리입니까 노군? 당신이 찾던 암화가 저기 있는데.]


뒤이어 어디선가 돌아오는 결백의 음성. 그에 쇄혼노군이 고개를 젓는다.


“찾으라 해서 찾은것 아니겠나. 그것도 아이 본인을 죽이라는 말은 아니었네만.”

[죽일 생각은 저도 없습니다. 잡아야지요.]

“헛허......”


노인이 난처한 듯 웃음을 흘린다. 어느새 그의 곁에 그림자처럼 나타난 흑의의 사내를 돌아보며 묻는 모습.


“귀월. 어찌 생각하나?”

“......잡아가는게 좋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품에서 무언가를 잠시 들어올린다. 쏟아지는 혈우 사이에서도 은은하게 비치는 옥색 빛이 백연의 눈을 스쳤다. 그에 고개를 절래절래 저은 쇄혼노군이 백연을 돌아보았다.


“어쩔 수 없군. 안타깝게 되었네.”

“안타깝다......?”

“그래도 한때 구파의 장문인이었던 몸으로써 후학에게 이리 대하고 싶지는 않네만, 선택지가 없으니.”


쯧-하고 혀를 찬 노인. 백연은 찰나 생각했다.


‘쇄혼노군은 말이 통한다더니.’


운결의 이야기가 틀리지는 않은 모양. 하지만 지금은 그런것이 의미가 없었다. 삽시간에 대기가 무거워진다. 쭉 뻗어낸 노인의 주름진 손끝에서 진기가 뻗어나온다. 한순간 백연의 시야가 여름날 아지랑이마냥 크게 일그러지고-


화아아아아악!


막대한 진기가 현현. 찰나지간 의식이 기울어진다. 일전에 이미 겪어보았던 감각이 곧장 백연의 몸을 잡아당겼다.


[아------------!]


동시에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비명들이 허공을 따라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희끗한 형체들이 별안간 허공을 채우며 핏물 사이로 미친듯이 유영하기 시작했다.


허공을 따라 메아리치는 귀곡성이 진기의 파문을 그리며 뻗어나간다.


‘귀곡성을 이용한 음공......!’


머리가 먹먹하게 무거워지는 듯한 감각. 저 소리 하나하나가 음공을 펼친것 마냥 작용해 전신을 짓누르고 사방을 잠식한다. 귀곡성으로써 거대한 진을 펼치기라도 하듯이.


그리고 동시였다.


“백연.”


그의 어깨를 지그시 짚는 악예린의 음성. 낮게 깔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무감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극도로 집중하는 듯한 모습이었데, 그녀의 시야는 이미 쇄혼노군이 아닌 다른곳을 향해 있었다.


“......적이 조금 많네요.”


그들의 사방.


무너져 내린 혈귀궁의 폐허 곳곳에서 그림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십이 넘는 인영들이 제각각 진기를 끌어올리며 사방을 둘러싸는 모습. 그 속에서 백연은 혈귀들의 피 냄새를 먼저 읽었고, 뒤이어 흑포 사이로 팔랑이는 괴황지(槐黃紙)의 형태를 인지했다.


“모산파의 무인들이군요.”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악예린. 평소보다 조금 높게 긴장된 음성이었으나 그렇게까지 놀란 듯 하지는 않았다. 정도 무림에 오래 몸담아온 여인이다. 충격이 컸을법도 했을텐데 빠르게 받아들인다. 이미 처음 쇄혼노군을 본 순간부터 각오하고 있었던 것일까.


“음? 허어......”


뒤이어 쇄혼노군의 이유를 알 수 없는 탄식이 귓가에 들려왔다. 백연은 귀곡성을 부리는 노인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모산의 노선배께 묻고 싶습니다.”

“노부는 자네의 선배라 불릴만한 자격은 없네만.”

“모산파는 구파를 배신하고 혈귀들의 편에 붙은 것입니까? 저들과 함께 중원을 도모해보려?”


백연은 쇄혼노군을 응시했다. 그에 늙은 무인의 입이 천천히 열리려던 그 순간.


[아니, 아니. 애초에 질문이 틀렸습니다.]


화악!


소년의 눈앞에 한 인영이 떨어져 내렸다. 새하얀 옷자락이 핏물의 빗줄기 사이에서도 한점 흐림 없이 새하얗게 흩날렸다. 얼굴에 딱 붙은 백색 가면의 눈매가 길쭉하게 휘어졌다.


[배신이라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모산은 정도 무림의 일원이었던 적이 없으니까요.]

“처음부터......?”

[하핫, 제 말이 궁금하십니까? 그렇다면.]


키이이잉-!


백연의 코앞에서 손을 내뻗은 결백의 고개가 기울어진다. 찰나지간 소년의 눈을 타고 자령안 진기가 휘몰아쳤다.


[호언장담 한대로, 저를 잡아 직접 알아보면 되겠군요.]

“그렇잖아도 그러려 했는데, 친절하게 눈앞까지 찾아와줬군.”

[그렇다면 어디 한번 볼까요. 만들어진 괴물의 실력을!]


찰나가 수천으로 쪼개졌다. 인지하기도 전에 간극에 접어든 두 무인의 진기가 폭발적으로 흘러나오며 허공에서 충돌했다. 뒤편으로 늘어진 소년의 검은 피풍의와, 결백의 백색 옷자락이 길쭉한 흑백의 형상을 이루었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두 무인의 일격이 얽혀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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