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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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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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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경음성주(3)

DUMMY

어림이다.


안법 성취가 고강해진 만큼 글 읽는 속도도 빨라졌다. 책 한권을 펼치면 그것을 덮는데 반의 반각도 걸리지 않을 만큼. 진기를 끌어올리면 그것을 뇌리에 새기는 것도 순간이다. 내가기공을 익힌 이들은 이렇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재주들을 취하게 된다.


황실 문관들은 전부 내가기공의 고수라는 소리도 그래서 허언이 아니다.


그와 같은 이치였다. 살막주에게서 서찰을 받아든 백연이 눈 한번 깜빡일 새에 겉장과 안에 적혀있는 글을 전부 눈에 담아버린 것은.


그리고 내뱉는 말이다.


“무슨.”


끝자락에 적혀있는 글을 봐서인데, 다른것을 다 건너뛰고 곧장 눈에 들어온다.


백연은 눈매를 찡그리고는 다시 앞에서부터 서찰을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리 긴 내용은 아니었다.


[본문 도착 즉시 확인한 바, 현천의 소멸이 알려짐. 공동 장문인과 패흑련주, 그리고 무영방주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이 행방불명(行方不明).]


인삿말조차 없는 딱딱한 서찰의 내용. 거두절미하고 곧바로 시작부터 벽력탄 같은 소식이다. 백연은 미간을 좁혔으나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패흑련주까지 같이 사라졌다면 우선은 다행인 일일지도 모르고.


[소림의 무승들이 활동 개시. 아직 혈교주의 사망은 퍼지지 않았지만, 모종의 방법으로 사망을 확인한 듯 보임.]


[천살문은 지금부터 모산파의 조사에 착수. 쇄혼노군의 행방과 만귀 도홍에 대해서 무언가 알아내면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공동산의 건은 자세한 조사 이후 추가로 연락을 보내겠습니다. 그 외에 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요청 바람.]


[살막주랑 친하게 지내십시오. 월풍 보냄.]


이유를 알 수 없는 마지막 말과 함께, 서찰의 내용은 끝이났다. 하지만 백연의 시선은 곧장 그 아래로 떨어졌다.


마지막에 적혀있는 짤막한 추신 탓이었다.


[여담이지만, 당신의 이름이 다시 한번 강호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수라궁주와 부궁주의 목을 벤 사람으로써. 이제는 공공연히 강자로 불리더군요.]


[난세의 별중 하나가 된 기분이 어떠십니까?]


[백락섬요(白落閃燿).]


백연은 천천히 그것을 읽어내렸다.


본디 암화라는 별호가 적혀 있었어야 할 자리에 적힌 익숙하지 않은 네 글자.


“백락......”


희게 떨어지는 빛살.


무엇 때문에 붙은 별호인지 달리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강호 무림에 떠도는 수많은 이름들은 그리 지어진다. 순간의 인상과, 무인의 기질을 따라서. 그리고 때로는 그것을 지은 사람들의 염원마저 포함해서.


때때로 무인은 별호에 들어맞는 삶을 살아가기도 하는 바.


재미있는 일이다. 그렇게 붙은 이름에도 힘이 있다는 것은.


‘뇌광(雷光)이군.’


저들이 보는 나는 그러했나.


백연은 생각했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쓸데없이 거창하군요. 두글자로 줄여봄직한데.”

“별호? 새로운 별호군요. 백락섬요......”


곁에서 지켜보던 악예린도 머리를 슥 들이밀더니 혀로 굴리듯 그것을 읽어보곤 살풋 미소짓는다.


“좋은 이름이네요.”

“......”

“마음에 안 들어요?”

“별호에 호오가 어디있겠습니까. 뭐, 스스로의 별호를 짓는 사람도 있다지만.”


그리 인정받는 이는 얼마 없을 것이다. 백연은 서찰에 새겨진 이름을 슥 훑어보고는 그것을 접어들곤 살막주를 힐끗 보았다.


“답장은 어찌합니까?”

“제게 말하면 그대로 보내드립니다. 혹 내용이 알려지길 원치 않는다면 따로 공간을 내어드리지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백연이 말했다.


“이쪽은 아직 별일 없으며 경음성에 도착했고, 이후로 계속 움직여 혈귀들의 흔적을 찾으면 알리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이쪽에서 보낸 정보는 전부 하오문과 공유해달라는 말도. 천라방주 본인이 지금 곤륜산 옥수 인근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리하지요.”

“감사합니다.”


고개를 까딱 숙인 백연이 서찰을 휙 들어 털었다. 동시에 손끝에서 흰 불빛이 일더니, 이윽고 화악-하는 진기의 파동과 함께 서찰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에 살막주가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삼매진화? 당신 연배에? 심지어 색도 좀 다른 것이......”

“익힌 무공의 영향일겁니다.”

“더욱 흥미가 생기는군요. 사실 당신들의 목적에 대해서는 들은바가 없습니다. 궁금증이 돋는 것은 인간인지라 어쩔수가 없군요.”


대놓고 웃으며 그들에게 물어보는 살막주. 백연은 가벼이 고개를 끄덕였다.


월풍이 살막주와 친하게 지내라 했으면, 적어도 못믿을 사람은 아니라는 소리겠지. 천살문의 살수들은 이런 계산에서 있어서는 철저하다. 이자와 친분이 있으면 손해보단 이득이 된다는 소리다.


“혈교가 숨긴 물건을 하나 찾으러 왔습니다. 그리고 북방에서 사라진 누군가의 행방도.”

“호오. 귀한 재보겠군요?”

“욕심이 나십니까?”


백연이 물었다. 그에 살막주가 웃었다.


“뭐든간에 욕심은 당연히 나지요. 허나 살막은 당신들이 쫓는 물건을 강탈해야 할만큼 쪼들리는 집단은 아닙니다. 천여년 전에 서방의 한 위대한 왕이 썼다는 바위에 꽂힌 검이나 되면 모를까......”


백연은 어깨를 으쓱였다.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만, 애초에 저도 쓰려고 찾는 물건은 아닌지라.”


결국 혈교나 만금장에 들어가지 않게 하는게 우선이다. 적혈보의를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고자 함이었는데, 구태여 백연 자신이 소유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그것의 목적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살막주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여하간 이해했습니다. 당신들은 혈귀들의 뒤를 쫓고 있군요. 중원에서 혈교라 부르는 집단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예. 그 잔당이 북방을 누비고 있습니다.”

“저는 바깥을 돌다가 이곳에 다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혈귀가 대막을 지나쳤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살막주의 말에 백연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렇습니까?”

“예. 그리고 그렇다면 그들의 행방을 가장 잘 알 사람은 따로 있지요.”


살막주가 힐끗 위를 가리켰다. 지상의 성을 향한 손짓.


“이곳의 성주, 경음성주 본인.”

“......결국 성주를 만나야 하겠군요.”


백연이 말했고, 살막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가장 빠를겁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허나 동시에 마음에 드는 일은 아니었다. 경음성주는 분명 정보를 대가로 무언가를 요구할테니.


허나 일일이 혈귀의 흔적을 쫓는 것도 어려울 일이다. 대막은 발자국도 남지 않는 모래바다인 터인데. 이런 단서를 찾았다면 반드시 붙잡아야겠지.


“정보는 감사드리지요. 그럼......”


생각을 갈무리한 백연이 살막주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그때였다.


“아, 그리고 한가지 더 알려드리고 싶은 정보가 있습니다.”

“무슨......?”

“당신들이 마교라 부르는 서방의 신강에 자리잡은 무리.”


살막주가 태연히 내뱉는 명칭에 백연의 표정이 굳어들었다.


“그들의 손길이 이곳 북방에 미쳤습니다.”

“마교가, 북방에?”

“두 명. 무위를 정확하게 상정하기 어려운 마교의 강자 둘이 이곳에 발을 들였습니다. 이미 대막을 넘어선지는 꽤 되었다고 아는데, 지금쯤은 차가운 땅을 거닐고 있겠지요.”


그 말에 곧장 백연과 악예린의 표정이 바뀌었다.


서로를 힐끗 쳐다본 두 사람. 뇌리에 같은 생각이 스쳤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살막주가 상정하기 어려운 강자라 말할 괴물들이 둘.


“......아마 삼대 호법중 둘이 움직였군요.”


마교의 두 호법이, 지금 북방을 누비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목적으로.



※※※



해가 기운 시각이었다. 살막의 근거지를 빠져나온 그들은, 살막이 안내해준 객잔에 들어와 있었다.


“간만에 곡기를 먹었더니 좀 낫네요.”

“하하. 벽곡단만 먹고도 몇달은 버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버틸수야 있죠. 하지만 배고픔은 똑같은걸요.”


말하는 악예린의 어투에 백연이 픽 웃었다.


막 식사를 마친 참이었다. 복잡한 정보들이 머릿속에 들어왔는데, 미뤄두고 속을 채우니 좀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허나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 만은 없는 문제.


“마교가 왜 북방에 왔을까요?”


백연이 중얼거렸다.


가장 의문인 물음이었다. 분명 혈교와 모산파, 만금장의 일이 있다고는 하나 저들이 그것에 관해 안다는 말은 없었다. 적혈보의라는 보배를 찾으러 왔다기에도 이상하다. 애초에 숨겨져 있던 물건의 행방을 별안간 알아냈다는 말인데, 그건 일단 혈교의 물건이었다.


다른 이유라 상정하는게 옳았다. 그렇다고 하면 역시 남는것은.


“......마교의 무언가를 찾으러 온걸까요?”

“막연하긴 합니다만, 그럴 가능성도 있지요.”

“아니면 북방 무리에 숨어들어 장성을 넘는다거나.”

“그 생각도 해봤습니다만, 그럴거면 다 왔을겁니다. 겨우 호법 둘이 걸음하지는 않았겠죠.”


호법정도 되는 강자 둘이 북방을 넘어 중원에 쳐들어오면 단기적인 피해는 크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정파의 이득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강자라고 해도 구파와 오대세가의 힘을 두 사람으로 받아낼 수는 없다.


그것이 마교주 본인정도 되는 수준이 아니라면 그렇겠지.


“두 사람에 마교주가 있을 가능성은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주는 본단을 거의 비우지 않을테고, 무엇보다 암천제가 서쪽으로 향할 의향으로 보였습니다.”


천린은 마교주를 죽이러 가는 것이다.


그의 발걸음이 별안간 북방을 향하지 않는 이상 마교주가 여기에 있을 가능성은 낮았다. 게다가.


“더해 교주가 왔다면 혼자 오거나, 교의 일원들이 전부 왔겠지요. 굳이 둘일 이유는 없습니다. 역시 좌우호법을 내보냈다고 보는게 타당한데......”


그렇다고 하면.


‘만나자마자 죽지는 않을 것 같은데.’


검성은 우호법을 상대로 충분히 오랜 시간을 끌었다. 승리도 도모해볼 수 있을 격차일텐데, 그 정도라면 이제 백연도 버틸 자신이 있었다.


“무엇이건 저희에게 좋은 소식은 아니군요.”

“마주치지 않는게 최선일 것 같긴 하네요.”

“그게 어려울 것 같아서 문제입니다.”


백연이 쓰게 웃었다.


이건 직감이었다. 그들의 두가지 목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떻게든 마교의 두 무인과 행로가 엮일 것 같다는 직감.


“여튼 지금 머리 부서져라 고민해도 답은 안나오겠군요. 당장의 일에 집중하는게 낫겠습니다.”

“동감이에요. 그래서 우선은 경음성주인가요?”

“그래야겠죠.”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우선 목표는 경음성주를 만나 혈귀들의 동태를 파악. 그들을 계속해서 추적하는 겁니다.”


그렇게 적혈보의를 찾아내는 것이 첫번째 과제. 두번째로 검왕의 행방을 파악하는 것이 다음 과제다.


“최대한 단시일 내에 빠르게.”


백연이 덧붙였다.


작금의 중원 무림을 오래 비우고 싶지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항시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래도 소림이 일어났다는 소식은 달갑네요. 숭산에 있는 소림의 전력은 저도 한번도 본적이 없는데.”

“세상을 돌아다니는 무승들이 전부가 아니겠지요.”

“그분들은 공덕을 쌓으려 나오는 수행의 과정이고, 진짜 힘은 숭산에 틀어박힌지 수십년은 되었다고 알아요.”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되고 강대한 문파지요.”


정파제일문이다. 신교전쟁때 소림의 전력은 백연도 똑똑히 기억한다. 신교의 무인들을 날파리 잡듯 찢어버리는 무승들은 지옥불 속에서 춤출 삼두육비의 괴물 같았으니까.


“그럼 우리는 우선 경음성주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게......좋겠는데.”


백연이 말끝을 늘였다. 객잔 안에 앉아있던 두 사람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바깥에서 느껴지는 기척 때문이었다.


“음.”


백연과 악예린이 눈길을 교환했다.


“아무래도 저희가 가기 전에 저쪽에서 손님을 맞으러 온 모양입니다.”

“저희 손님씩이나 되는건가요?”

“우선은 그리 상정하는게 좋겠죠. 죄수 취급은 예린도 혈귀궁에서 이미 받아 봤으니.”


픽 웃는 악예린. 동시에 문이 열리며 모랫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곧장 객잔의 안으로 들어선 것은 온몸을 천으로 칭칭 두르고 눈만 내어놓은 호리호리한 무인이었다. 검을 비스듬히 찬 그가 객잔을 스윽 둘러보더니, 이윽고 백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포권을 취했다.


“엥?”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백연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상대방이 입을 열었다.


“경음성에 들어온 중원인들. 예로 모시라 명 받았습니다.”

“진짜 손님이네요?”

“초청입니다. 지금 가시겠습니까?”

“명이라면, 경음성주입니까?”


그 말에 고개를 깊이 숙이는 무인.


“예. 성주, 위대한 나단께서 당신들을 부르셨습니다.”


경음성주가, 먼저 그들을 부른 것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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