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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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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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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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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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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새풍(2)

DUMMY

침묵 속에서 달빛이 구붓하게 흘러내렸다.


검은 천으로 눈을 감은 화율의 얼굴 위로 이지러지는 빛이 흐릿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한치 변화가 없었다.


백연은 가만히 그녀를 응시했다.


머릿속이 복잡한 까닭이었다. 방금 들은 말이 그의 이해를 벗어나 있던 탓에.


‘의식.’


물론 백연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았다. 술식의 공양. 주술적인 범위까지 가면, 대가를 치르고 힘을 얻는 행위는 수없이 존재한다. 그것은 강호 무림에 무공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내려온 것들이었다.


옛 세상에 거닐던 영물들에게 먹이나 사람을 바쳐 수호를 부탁하는 일부터, 사람의 피를 매개로 무공을 다루는 혈교의 방식까지도. 전부 그러한 일의 일환이자 갈래였다.


술법무공도 그 범주에 포함되어 있다 봐야 옳다. 술법무공을 펼칠때 무인들이 사용하는 괴황지는 의식을 치뤄내기 위한 매개. 하령도 거대한 규모의 힘을 다룰때에는 무언가 매개를 사용하며, 더 나아가면 강호 무문의 강대한 문파들에 있는 법보가 그런 역할을 하기도 한다.


허나.


“전쟁 자체가 의식이란 말입니까? 그건 무슨......”


이건, 다르다.


“혈귀들의 술법을 보셨지 않습니까?”


화율이 말했으나 백연은 고개를 저었다.


“압니다. 사람들의 생기(生氣)는 술법의 매개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그리고 모산파가 지니고 있는 술법무공인 귀혼대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말이지요.”


귀혼대법을 모산이 가지고 있다는 말을 여러번 들었다. 모산이 구파와 함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낸 지금에는 더욱 확실할 일이다.


“하지만 그것과 전쟁이 의식이라는 말은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드넓은 강호 무림에 일어나는 싸움들을 어찌 의식의 형태에 맞추어 조정하며, 그 동시다발적으로 흘러내리는 피와 목숨들을 무슨 방도로 의식에 이용한단 말입니까?”


허나 화율의 표정에는 한치 흔들림이 없었다. 그저 담담히 말을 이어낼 뿐.


“그 방도까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허나 제가 이곳에서 알아낸 사실들은 그러합니다.”


검은 천으로 가려진 시선이 백연을 담는다.


“모산은 구파를 배신했으며, 만금장과 모산, 그리고 혈교는 이 땅에 천마를 재림시키고자 한다는 사실을.”

“......”


풀벌레 우는 소리가 귓가에 스며든다. 고요한 달밤 아래에서 백연은 천천히 악예린을 돌아보았다.


고즈넉한 밤이었다. 저편 어딘가에서 여전히 붕괴하고 있는 혈귀궁의 진동이 대지를 간간히 울려오는 것 이외에는.


허나 그 자리에서 화율이 입에 담은 말은 벽력탄과 진배없었다.


이 순간.


“......이제는 팔파로군요.”


강호 무림의 정세가 다시금 크게 출렁였다.


“팔파와 반쯤 붕괴한 개방. 그리고 오대세가와 새로이 일어선 무림맹......”


악예린이 중얼거리고, 백연이 입술을 베어물었다.


“혈교는 오늘 크게 세력을 잃었고, 만금장과 모산파는 건재합니다. 사도육진의 일각인 수라궁은 무너졌으니 이제 둘에 더해 남은 적대 세력은 신주흑림과 패흑련. 그리고.”


소년의 시선이 서편을 향한다.


“마교(魔敎).”


천살문은 미묘하게 이쪽으로 기운 중립, 하오문은 이미 정도 무림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한순간에 소년의 머릿속에서 중원 무림의 세력들이 펼쳐지고 이동한다.


단숨에 천하(天下)다.


어느 순간부터 소년의 입에 담기고 있는 것은 거대한 그림이었다. 그 스스로가 드넓은 중원을 화폭으로 삼는 화백(畫伯)이라도 된 듯이.


백연은 화율을 돌아보았다.


“그것이 전부입니까?”


그의 물음에 화율은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한가지 더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혈교의 무인들이 지금 새외를 나돌고 있습니다. 무력대의 대부분이 혈교 본단에서 떠나있는 형국인데, 대업에 필요한 재보(財寶) 세가지를 찾는 중인 까닭입니다.”


백연이 미간을 좁혔다. 혈교 무력대들이 본단에 없는 이유가 그것이었나. 주기적인 사냥이라고 들었건만. 진짜 목적은 이쪽이었던 모양.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예. 하나는 혈교의 적혈보의(赤血寶衣)라는 옷이고, 하나는 자선비환(紫璿臂環)이라는 팔찌.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신예검(晨霓劍)이라는 검입니다.”

“......세가지라.”


목록을 새긴 백연이 되물었다.


“위치는 전부 특정되어 있는 겁니까?”

“아닐 겁니다. 제가 이곳에서 알아낸 바로는 혈교가 지금 알아낸 것은 적혈보의가 있는 장소 하나. 그것도 명확하지 않아 오랜 기간 조사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자선비환은 만금장에서 처리를 하는 모양이고, 가장 묘연한건 검의 행방이라 하더군요.”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예검.


“새벽 무지개라......”


본래 흔히 검에 붙는 이름은 아니었다. 무슨 의미였을까.


그때였다. 화율이 나직히 말을 덧붙였고.


“듣기로는, 천마 본인이 사용했던 검이라 했습니다.”

“......네?”

“순백의 검신이, 빛을 받으면 아롱지는 무지개처럼 빛난다고. 그 행색이 아름다워 찾고 있는이가 보면 모를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이것의 행방은 아예 감도 못 잡고 있는 모양이더군요.”


그 말에 악예린이 백연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잠깐만, 백연......”


그때였다.


“호오. 그거 재밌는 이야기군요.”


사박.


어느 순간 어둠을 찢으며 훅 나타난 인영. 옅은 피 냄새와 함께 기척없이 솟아오르듯 나타난 살문의 두 살수였다. 성공적으로 전장에서 도주하는 것에 성공한 모양.


“천마 재림을 위해 필요한 재보 세가지라......흥미롭습니다.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은데.”


부문주 월풍이 백연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이것, 당신 물건 아닙니까? 창 가져다 주는 길에 잠시 주워뒀는데.”


그리 말하며 검 한자루를 여상히 건넨다. 그것을 받아든 백연.


곧장 말없이 검집에서 검을 뽑아내는 순간이었다. 달빛 아래 흐리게 빛을 발하는 순백의 검신이, 다채로운 빛깔로 흔들리며 춤추는 듯한 그림자를 엮어내었다. 칠색으로 흩어지는 빛은 아름답다 외에 쉬이 표현할 말이 없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방금 검을 건네준 월풍조차 멍하니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백연이 머리를 긁적였다.


“......하나는 찾은 것 같군요.”


천마의 검을 받아든 백연이 어색하게 웃었다.



※※※



“그래서 앞으로 두가지군요.”


둘러앉은 사람들. 조금 다친 월풍과 참월대주는 화율의 자연스러운 손놀림 아래 치료를 받고 있었다. 쌉싸름한 약향이 밤공기를 타고 퍼져나갔다.


“적혈보의와 자선비환.”


화율의 말에서 나온 결론은 간단했다.


우선 검은 그들에게 있다. 행방이 묘연하다 알려져 있던 이유는 아마 천하 무당에서 오랜기간 보관하고 있었던 까닭인 모양이었다.


이 검을 그에게 건넨 선극조차도 삼봉 진인의 기록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으니까.


그렇다면 검의 보관자는 아마 장삼봉 본인.


무연이 버린 검을, 삼봉이 무당산에 가지고 들어간 이후 세상에 나온 적이 없었던 것이다. 백연이 받기 전까지는.


그렇다면 남은 것은 두가지.


“하지만 그것을 모아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화율이 알아낸 정보를 정리하면 만금장과 모산파, 혈교는 천마의 재림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로써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는 불명. 하지만 그들이 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전 무림에 혈겁을 일으켜 의식을 준비하고, 세가지 보배를 모아 천마 본인을 재림시키려 한다. 그 과정에서 사도 육진을 동원해 정도 무림에 공세를 가한다.......정도 이지요.”

“육신을 구하는 과정도 있습니다.”

“예. 그것까지 의식에 포함해야죠.”


백연은 잠시 미간을 좁혔다.


그의 육신은 이런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탄생한 모양이었다. 허나 아직도 왜 그가 이 몸에 깃들었고, 천마를 불러오는 것에 실패한 실패작인 그의 몸이 왜 그곳에 풀려나 있었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이것도 만금장.’


그것도 혈선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만 알고 있을 정보였다. 결백을 반드시 잡아왔어야 했다는 아쉬움만 짙어질 따름이었다.


한편 아직 눈앞의 사람들도 그의 진실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혈교에서 많은 것을 알아냈을 화율을 제외하면 악예린이 무언가를 조금 눈치챈 듯 했지만, 그녀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는 눈을 데구르르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고마운 사람이었다.


허나 당장 중요한 것은 그의 과거보다 눈앞의 상황.


“마교는 아예 관련이 없는겁니까?”

“적어도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마교는 완전히 독단적인 세력입니다. 이런 내용을 알지 못할듯 보이고, 알아도 동조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화율의 말. 뒤이어 월풍이 덧붙였다.


“당대 마교주는 멋대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명을 내리거나 할 수 있는 인물은 없겠지요. 정사마를 통틀어 천하제일이라고까지 불리는 위인이니.”


그 말을 들으며 백연은 생각했다.


암혼제 천린과의 이야기. 마교주는 천마를 동경하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적어도 당대 마교주는 이렇게 무연을 불러내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천마 본인과 그의 합일.


그 자신이 새로운 존재가 되고자 함이다. 이런 식은 아니겠지.


“좋습니다. 우선 마교는 배제하죠.”


백연이 말했다.


마교의 준동까지 계산에 넣으면 일이 너무 복잡해진다. 마교가 움직이는 순간이 오면 그때 대비하는 것이 옳았다. 애시당초 그러한 억제력을 위해 무림맹이 탄생한 것이니까.


그렇다고 하면 당장 중요한 것은.


“공동파를 공격하는 패흑련의 움직임, 그리고 새외 북방을 누비며 적혈보의를 찾는 혈귀들과 중원 무림을 유린하는 만금장과 신주흑림......정도인가요.”

“더해 북방 오랑캐들이 장성을 넘은건 변수입니다. 지금 북경의 상황이 어떨지 모르겠군요.”


월풍이 말했다.


“살문도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만, 근 며칠간 상황이 급박하게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허나 뒤의 두가지는 저희가 개입하기 어려운 문제지요.”


지금 이 거대한 전쟁이 의식의 일환이라 해도 당장 백연이 개입해 모든 싸움을 끝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미 싸움은 시작되었고, 그 판 위에서 함께 놀아나며 방도를 찾아야 한다.


“공동산에 지원을 가는 것도 방법입니다만, 이미 그곳은 움직인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무영방주 본인.”


백연이 답했고, 월풍의 눈이 커졌다.


“그가 움직였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만, 진짜였군요.”


백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하오문주 또한 이러한 내용을 이미 알고 있던 것인가. 절묘한 시점에 무영방주를 움직였다.


의문스러운 인물이긴 했지만, 항시 개입 시점이 적절하다. 하오문의 걸음에 그의 의지가 깃들지 않을리가 없으니까.


만금장이 어디까지 내다보고 움직이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하오문주도 마찬가지다. 백연은 어렴풋이 느꼈다.


중원을 판으로 삼아 물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대국이 있다고.


‘수싸움이군.’


해서 남은것은 하나다.


“......적혈보의.”


백연이 중얼거렸고,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북방 새외라 했습니까.”

“예. 혈귀들이 얻은 정보는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정해야겠군요.”


중얼거린 백연은 잠시 눈을 감으며 숨을 들이쉬었다.


미지의 땅이다. 오랑캐들이 횡행하고, 더 가면 빙궁을 비롯한 온갖 강자들이 도사리는 땅.


그 강대한 군문조차 온전히 지배는 커녕 수시로 패퇴해 물러날 수 밖에 없는 얼어붙고 황량한 대지.


그리고 검왕의 마지막 행방이 전해져 온 장소기도 한 곳.


이제는.


“가야겠습니다.”


백연이 말했다. 어느새 눈을 뜬 그의 시선이 맑은 자색으로 빛을 내었다.


“북방으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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