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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신백일홍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민창
작품등록일 :
2021.03.03 11:43
최근연재일 :
2021.04.21 08:0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509
추천수 :
22
글자수 :
111,895

작성
21.04.1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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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신백일홍전 18

DUMMY

현실감이 없었다.


주위의 풍경은 익숙한 항구였지만, 나는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몸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움직여 보려고 해도 팔, 다리, 어느 곳도 말을 듣지 않았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칠 대로 지친 머릿속은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달콤한 수면욕이 전신을 휩싸고 돈다. 눈꺼풀이 다시 감기는 것을 나는 애써 견뎠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머리를 굴려 보았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지만 어스름이 묻어 주위는 어둡지 않다. 나는 왜 이 새벽에 부두 한 가운데 뻗어 있는 걸까.


바다 냄새가 난다. 바다... 아, 이무기! 그래, 여기서 이무기와 싸웠다. 내가 이무기를 역치유술로 공격했고, 그 다음엔 소원이의 말이 이무기의 약점을 관통했고...


잠깐, 소원이는?


번쩍 정신이 든 나는 벌떡 일어나서 소원이를 불렀다.


"소원아!!"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소원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규빈이와 이나린은 있는데 소원이만 보이질 않는다. 두 사람 주위에 깨진 방어막의 흔적이 보였다. 방어막이 깨져 스스로 도망친 건가. 아니면,


좋지 않은 예감이 나의 시선을 바다로 움직였다. 바다는 고요했다. 이무기는 간데없이 잠잠하다. 바람 한 점 없다.


"설마..."


이무기가 소원이를 바다로 데려간 건가.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불길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닐 거야... 아니어야 해."


내가 정신을 잃기 전에 이무기는 분명히 살아있었다. 나는 소원이를 혼자 두고 기절을 해버린 것이다.


소원이 혼자 이무기를 어떻게 당해낸단 말인가.


게다가 이무기는 소원이에게 더 이상 볼일이 없었다. 뱀이라는 말을 들어버렸으니 살려둘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깨끗한 영혼을 가진 인간은 괴물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것을 뼈에 사무치게 겪었으면서도 나는...


“제발... 제발... 안 돼...”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바다로 뛰어갔다. 바다 괴물들에게 소원이를 봤는지 말을 걸어보려 했지만 의식을 전달할 요력이 남아있지 않다.


모든 힘을 소진한 몸뚱이는 어떤 에너지도 발산하지 못한다. 새벽의 바다는 소름이 끼칠 만큼 조용했다.


나는 대답 없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주저앉았다.


도대체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싸웠단 말인가.


이무기한테 패배하고, 소원이는 살리지 못했다.


나는 결국 모든 것에 실패했다.


"으아아아아악!!"


이럴 거면 처음부터 시작을 하지 말았어야지.


혼혈 주제에 뭘 해 보겠다고 고성에 들러붙어 있었어.


나 따위가 무슨 반신이라고. 그냥 평범한 인간으로 살았어야 했다.


소원이는 나를 믿었는데. 나밖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다고 찾아왔는데.


내가 끝까지 지켜줬어야 했는데.


나는 마음 편하게 잠이나 자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날처럼.


"명호야...?"


뒤에서 소원이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나는 심장이 멎을 뻔했다.


"명호야! 괜찮아?"


얼른 목소리가 들린 쪽을 보았다니 소원이가 테트라포드 무더기 사이에서 걸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눈물이 왈칵 솟았다. 허겁지겁 달려가 소원이를 꽉 끌어안았다.


"소원아! 살아있었구나!!"


소원이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울먹이며 말했다.


"내버려 두고 혼자만 도망쳐서 미안해."

"아니야, 아니야. 잘했어."

"네가 죽을까봐 너무 무서웠어..."

"그래, 잘했어. 잘했어."


나는 잘했다는 말만 몇 번이나 반복했다. 소원이가 정말 기가 막히게 잘 해냈다. 소원이가 나를 구하려 애쓰지 않은 게 이렇게나 기쁘다.


정말 다행하게도, 너무나 기쁘게도, 소원이는 어머니와 달랐다.


"정말 다행이야..."


나는 소원이를 안았던 팔을 풀고 소원이가 다치지 않았는지 살폈다. 내가 쳐 줬었던 치유결계는 사라져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바람칼이 방어막을 뚫고 들어오자 상처가 났을 것이고, 그래서 소원이는 몸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도망을 쳤을 것이다.


여기저기 긁힌 상처들이 많이 보이는데 요력이 다해 치유해 줄 수가 없다. 그래도 큰 출혈이나 위급한 부위는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테트라포드에 가까이 가면 절대 안 된다고 배웠는데 말이지...”


소원이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조금 놀란 것 같아 보이긴 하지만 의식도 멀쩡한 상태다. 나는 겨우 안심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무기는 어떻게 된 걸까. 내가 정신을 잃기 전까지 난리를 피우며 폭주하던 괴물은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아, 소원이가 봤을지도 모른다.


"혹시 이무기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

"내가 테트라포드 안에 숨고 나서 조금 있다가 잠잠해졌어. 그래서 나는 네가 잘못된 줄 알고..."


소원이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내가 이무기에게 당한 줄 알았을 테니 테트라포드 밖으로 나가 볼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어쨌든 이무기는 내가 의식이 없을 때 폭풍우를 멈추고 사라졌다.


제 풀에 지쳐 바다로 돌아간 것인지, 갑자기 우리를 살려주기로 마음을 바꿔먹은 건지, 화병으로 혼절이라도 한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설마 규빈이가?"


규빈이나 이나린이 정신을 차려서 이무기를 공격했을 수도 있다. 나는 규빈이와 이나린의 상태를 살폈다. 하지만 아까와 그대로 쓰러져 있을 뿐이다.


저 둘도 빨리 치료를 해야 되는데. 두 사람을 집으로 데려 가려면 사람을 불러오는 것이 먼저였다. 나는 소원이에게 말했다.


"일단 빨리 마을로..."


그 때였다. 고요했던 바다에 거대한 파도가 일더니, 갑자기 거대한 검은 물체가 요란하게 솟아오르는 게 아닌가.


"으아아아아!"


갑자기 나타난 이무기에 깜짝 놀란 소원이는 소리를 질렀고, 나는 얼른 소원이의 앞을 막아섰다.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는데!


그런데 이무기의 움직임이 조금 이상했다. 수면 위로 올랐다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하며 부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자세히 보니 이무기는 자력으로 뛰어오른 것이 아니라, 다른 힘에 의해 끌려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무기를 물밖으로 끌어올린 것은,


“그러게 치유 결계는 필요 없다고 했잖아.”

    

낯익은 목소리.

    

“쓸 데 없는 데 힘을 쓰니까 기절을 하지.”

    

바닷속에서 만났던 푸른 눈의 인어다.


그리고 뒤이어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어마어마한 인어 군단이었다.


인어들이, 수백 명의 무장한 인어들이 이무기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무기를 단단한 줄로 묶어 바다 위로 끌고 올라온 것이었다.


인어들은 이무기를 삼지창으로 찌르고, 물살로 후드려패고, 마비 거품으로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완전무장하고 달려드는 인어 군단을 한쪽 눈을 잃은 이무기가 상대할 수 있을 리 없다. 푸른 눈의 인어가 나에게 다시 말했다.


"너는 할 만큼 했으니 잠이나 자."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사실 무엇을 할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고 말이다.


"인어..."


소원이가 넋이 나간 채로 중얼거렸다. 나한테도 놀랄 만한 광경인데 소원이한테는 오죽하겠는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인어들이 우리를 구했다. 폭주하는 이무기를 바다 밑으로 끌고 들어가, 초주검으로 만들어서 물밖으로 꺼내 올린 것이다.


무장한 인어들이 이무기에게 밀릴 일은 없어 보였지만, 마지막 한 방이 문제일 것 같았다.


이무기는 몸이 말라야 죽으니까 말이다. 인어들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이무기를 뭍으로 빼내려 하고 있는 것이고.


그러나 인어는 불을 사용할 수 없으니 이무기를 소멸시키지 못한다. 요술로 불 피우는 건 일도 아닌데 지금 내 상태로는 불가능하다.


혹시 근처에 버려진 라이터라도 있으면...


"명호야!"

"아버지?!"

    

불 피울만한 걸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들려온 쪽은 바다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전투중인 인어들 뒤로, 아버지를 비롯한 반신 어른들이 모두 수면 위를 날아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항구로 날아온 아버지는 내 몸 상태를 살피고 치유할 준비를 시작했다.


"규빈아!!"

"나린아?!"


규빈이 부모님이 규빈이를 발견하고 눈물을 쏟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나린의 부모님은 딸의 상태를 보고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다른 어른들은 부채 끝을 불로 휘감고 이무기에게로 향했다. 아버지도 가문의 신수인 주작을 소환했다. 주작이 환한 빛을 내뿜으며 이무기에게 날아갔다.


아니 이러다 인간들 눈에 띄면 어쩌려고.


인간들에게 들킬까봐 바다를 돌아다니는 이무기도 모른 척 하라고 했던 어른들이 아닌가. 항상 인간들에게 정체를 들키는 걸 겁내하던 어른들이 이러는 게 놀랍기만 했다.

    

나는 내 가슴에 손을 올리고 치유를 시작하려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소원이 먼저요."


그러자 아버지는 소원이를 보더니, 손가락을 한 번 까딱 움직여서 치유를 끝냈다. 찢어졌던 상처는 다시 봉합되어 깨끗한 살갗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버지가 손가락을 다시 한 번 튕기자, 소원이는 그대로 누워서 잠이 들었다.


"소원이는 재우도록 하자. 인간 아이가 이 난리를 다 봤으니 얼마나 피곤하겠니."


그리고서 아버지는 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상처가 아물고 기력이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 정도 컨디션의 안정을 찾은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어떻게 알고 오신 거예요?”

“인어가 우리를 부르러 왔었어. 아이들이 이무기와 싸우고 있다고.”

“인어가...”

“그래. 그 즉시 규빈이를 찾던 걸 멈추고 돌아왔지.”


그러고 보니 내가 인어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어른들이 모두 먼 바다에 나가 있다는 사실을.


그것을 알고 있던 인어가 어른들을 부르러 갔던 것이다. 위험에 처한 나와 규빈이를 구하기 위해서. 정말 고마운 일이다.


다행이긴 하지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상황이었다. 수백 명의 인어가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냈고, 반신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불을 사용하고, 주작까지 나타났다.


이 광경을 인간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뉴스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게다가 지금은 어두운 한밤중도 아니다. 누구나 바다로 나올 수가 있는 시간이다.

    

"아버지, 인간들이 여기로 나올 수도 있어요. 그러면 우리 정체를 다 들킨다구요."

"지금 그게 문제야? 네가 큰일 날 뻔했는데."

"네? 문제가 아니라뇨! 어른들이 항상 걱정하는 거잖아요!"

    

그러자 아버지는 말없이 엄지손가락으로 뒤편을 가리켰다. 그곳을 보니 대여섯 명의 반신들이 항구에 접근하는 인간을 죄다 기절시키고 있었다.


벌써 정신을 잃고 쓰러진 마을 사람들이 수십 명은 된다.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저건 너무 폭력배 같은데요."

"그런 면이 없지않아 있지. 하지만 일단 넌 회복에 집중해라."


꼼꼼하게 나를 치유하던 아버지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장기가 많이 상했구나. 이무기와 몸싸움을 했었니?"


몸싸움을 하긴 했지만 몸속의 장기가 다친 직접적인 이유는 아마도,


"제 요력이 폭주했던 것 같아요."

"폭주를 했었다고?"

"네, 손끝이 까맣게 변했었어요."

"그게 정말이야?!"


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얼른 내 손끝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괜찮네. 폭주가 도중에 멈춘 모양이야."

"폭주가 멈추기도 해요?"

"응. 몸에 더 이상 남아있는 요력이 없으면 말이지."


아하, 내 몸에 더 이상 긁어낼 요력이 없어서 멈추었구나. 태울 연료가 없어 기관차가 서버린 것과 같은 이치다.


소원이 몸에 치유 결계를 얇게나마 쳐주고, 허접한 방어막을 하나 만들고 나니 끌어다 쓸 요력이 동났던 거다. 나는 순혈 애들처럼 요력이 차고 넘치지도 않으니까.


만약 폭주가 계속 되었으면 나는 벌써 죽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혼혈이라서 목숨을 구한 셈이다. 세상 일은 참 알 수가 없다.


"정말 애썼구나. 친구들을 지키느라 고생했다."


아버지의 말에 나는 뿌듯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투정을 부리고 싶어졌다.


"역치유술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것만 미리 알았어도 훨씬 나았을 거예요."


치유술이 공격술보다 강력한 이유. 아버지가 그것만 미리 알려줬으면 고생을 훨씬 덜 했을 텐데.


"그걸 알아냈니?"

    

아버지가 빙긋 웃었다.

    

"어쨌든 그건 편법이니까. 아들에게 대놓고 알려주고 싶진 않았다."

    

이 정도로 원칙주의자인 아버지지만, 나를 위험에 처하게 한 괴물을 향해서는 인간의 시선이고 뭐고 주작을 소환한 것이다.


주작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으로 이무기를 쉴 새 없이 공격하고 있었다. 여기에 반신들이 쏘아보내는 화염까지 더해져 이무기의 도주로는 완벽히 차단됐다.

    

바다에 불이 가득하다. 이무기가 살아날 구멍은 아무 데도 없다.

    

"이제 끝났어."

    

나는 이무기를 보며 중얼거렸다.


“나쁘지 않군.”

    

이무기가 내 말에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는 작은 웃음마저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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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신백일홍전 16 21.04.12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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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신백일홍전 11 21.03.31 4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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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백일홍전 04 21.03.15 80 1 12쪽
4 신백일홍전 03 21.03.14 98 1 12쪽
3 신백일홍전 02 21.03.10 10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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