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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신백일홍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민창
작품등록일 :
2021.03.03 11:43
최근연재일 :
2021.04.21 08:05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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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
추천수 :
22
글자수 :
111,895

작성
21.03.2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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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신백일홍전 06

DUMMY

이무기는 몸이 마르면 죽는다고 했다.


밤 열두시가 넘은 바닷가는 인적 없이 조용했다. 나는 고요한 밤바다를 마주하고 섰다.


바다는 나에게 세상 그 어느 장소보다 편안한 곳이었지만, 지금의 바다는 낯설고 두려웠다.


저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거대하고 난폭한 괴물. 그것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 두렵다.


이 깊고 깊은 바다가 있는 한 이무기의 몸은 마르지 않는다.


그리고 이무기는 아직 여기에 있다.


그것은 소원이에게 위협이 된다. 반신인 나와 규빈이는 몰라도 인간인 소원이는 이무기의 최면에 걸릴 수 있다.


게다가 소원이는 이미 한 번 최면에 걸렸었으니 이무기는 소원이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야압-!"


나는 양 손을 펼쳐 팔을 멀리 뻗었다. 그리고 주위의 탄소와 수소를 모아 손바닥 끝에 메테인을 만들었다.


손끝에서 곧 불꽃이 일었다.


밥그릇만 한 불길이 양 손에 피어났다.


까맣게 어두웠던 주위가 순식간에 환하게 빛났다. 하지만,


"이걸로는 택도 없어."


나는 불꽃을 다시 사그라뜨렸다. 이 정도 크기의 불꽃으로는 이무기를 상대 할 수 없다. 더 커다란, 더 강력한 불꽃이 필요하다.


주작의 불꽃처럼, 크고 거대한 불이.


아버지의 소환수인 주작을 내가 사용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아버지가 이무기를 잡아 주면 좀 좋아."


나는 한숨이 나왔다. 아버지가 주작을 불러내면 이무기를 해치울 수 있을 텐데. 어른들은 바다에 가지 말라는 말 뿐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내 나름대로 대비를 하는 수밖에.


물론 내가 이무기를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요력도 약하고 공격술은 특히 더 허접하니까.


그나마 남들만큼 하는 건 치유술인데 치유술은 이무기를 상대하는 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아버지 말로는 치유술사는 웬만한 공격술사보다 전투력이 높다는데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다.


"이야앗!"


그래서 이 늦은 밤중에 요술을 연습하러 온 것이다. 단독 훈련 같은 건 해본 적이 없는데 안 하던 짓을 하려니 어색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내가 어울리지도 않는 훈련을 하고 있는 건, 지독하게 이기적인 이유 때문이다.


소원이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는 힘. 나한테는 그것이 필요하니까.


바다에 나오기 전에 식물동아리 계획서를 찾느라 고생했다. 대충 구겨서 내팽개쳐 놓았던 것을 겨우 찾았다.


어쩌면 나는 그 종이를 그렇게 소홀히 하면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소원이가 나까짓 것에게 도움을 요청한,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일 수도 있는데.


다만 비어있는 부부장 칸에 내 이름을 적는 것은 아직 망설여졌다.


나는 소원이가 식물동아리의 부장이 되는 것이.


그 애의 세상이 확장되는 것이 싫다.


소원이가 나 말고 다른 애들을 신경쓰고 챙기고 위해주는 게 보기 싫은 거다.


동아리 부장이 되면 얼마나 많은 애들과 친해지겠는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원이가 원하는 것을 해주고 싶다는 마음도 공존한다. 모처럼 내 능력으로 가능한 부분이지 않나.


규빈이처럼 강하지 못한 내가 소원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동아리 계획서에 이름을 적어 넣지 못했다.


식물동아리 가입 말고 다른 방법으로 소원이를 위해 노력하기로 한 것이다.


"에잇! 이얍!"


한 마디로 나는 그냥 소원이한테 잘 보이고 싶은 거다. 내가 이 짓을 하고 있는 단 하나의 이유다.


나는 부채를 꺼내 검으로 변화시켰다. 불 요술도 중요하지만 이무기와 맞서려면 공격술도 연마를 해야 했으니.


고요한 바다를 상대로 공격 연습을 한다고 실력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을 것 같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뿐이었다.


"하압!"


바다 속으로 공격 에너지를 쏘아보내자 바닷물이 마구 소용돌이쳤다. 다행인 것은 물고기가 근처에 한 마리도 없다는 것이었다.


혹시 내가 서툴게 요술을 쓰다가 물고기들이 다칠까봐 걱정을 했는데, 신기하게도 바다가 텅 비어 있었다.


“무슨 일 있었나?”


나는 바다를 향해 중얼거렸다. 그러나 물고기가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 리 없고, 이유야 어쨌든 잘 된 일이었다.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작은 지진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물고기들을 신경 쓰지 않고 연습에 집중했다.


새하얀 빛이 내 손끝에서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빛은 바다 속으로 낙하했다가, 수면 위를 뛰어다니기도 하며 춤추었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피로를 느꼈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익숙하게 공격을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이 비밀 훈련은 계속되어야 했다.


"후우..."


단시간에 이렇게 많은 요력을 써본 것은 처음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려 잠깐 바닥에 꿇어앉았다.


빛의 향연이 중단된 바다는 다시 조용해졌다. 여전히 물고기들의 에너지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침묵만이 남은 물이다.


바람도 한 점 불지 않고, 하늘의 별빛만이 움직임 없는 바다를 감시하듯 성실히 빛났다.


그런데 그때,


"뭐지?"


등 뒤에서 사람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곳은 해수욕장과도 거리가 있고, 배를 띄우는 곳도 아니라서 9시만 지나도 인적이 끊긴다.


그래서 당연히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반신의 기운은 아니니 분명히 인간이다. 하지만 한밤중에 이 외진 곳에 누가 온다는 말인가.


술 취한 아저씨? 불면증에 걸린 수험생? 나는 천천히 일어서며 고개를 돌려보았다.


"여자..?"


멀리서 걸어오는 실루엣은 여자가 틀림없었다.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지도 않고, 산책을 나온 사람치고는 시선이 일정하다. 무슨 용건이 있는 사람처럼 곧장 바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점점 나와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하지만 주위가 어두워 얼굴을 확인할 수 없으니 긴장이 되었다.


나도 일단은 반신이니 인간을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어찌되었든 제정신인 사람일 리가 없지 않은가. 괜히 엮였다가 귀찮아질 수 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어둠 속에서 얼굴이 조금씩 드러났다.


드디어 눈코입의 윤곽이 나타난 순간,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소원이다.



***



소원이가 왜 여기에 나와있는 거지? 나는 당황하는 것도 잠시, 당장 소원이에게 달려갔다.


“소원아! 여기서 뭐 해?!”


내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는데도 소원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를 봤을 텐데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 아까와 다를 바 없는 보폭으로 바다를 향해 걷고 있다.


"소원아!"


내 뜀박질은 곧 거리를 좁혀 나는 소원이의 앞에 섰다. 내가 앞을 가로막자 소원이가 멈추었다. 그러나 시선은 여전히 바다를 향하고 있다.


바다만 쳐다보며 멍한 표정으로 서있는 소원이에게 나는 다시 말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신발은 어쩌고 맨발로 나왔어?”


소원이는 자다가 나왔는지 파자마를 입고,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그러나 소원이는 대꾸도 않고 바다를 쳐다보기만 하더니 내 어깨를 밀쳤다.


그리고는 다시 바다로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소원이의 손목을 붙잡았다.


“어디를 가려고 그래! 빨리 집에 가자!”


내가 손을 붙잡자 움직이지 못하게 된 소원이는 내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여전히 아무 말도 없고 내 눈을 마주치려 하지도 않는다.


"설마... 최면?"


최면에 걸린 것이라면 납득이 간다. 소원이한테 없던 몽유병이 갑자기 생길 리는 없지 않은가.


"소원아 잠깐, 얼굴 좀 보자."


나는 손가락 끝에 작게 불을 켜서 주위를 밝혔다. 그리고 소원이의 눈을 확인했다.


눈에 흰자위가 없이 검다. 이무기를 봤던 그 날처럼.


이건 이무기의 최면일지도 모른다.


나는 소원이의 손목을 꽉 붙잡은 채 바다를 노려보았다. 소원이를 여기까지 불러낸 것이 정말 그 이무기라면, 해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이다.


모든 감각을 바다에 집중했지만 기운을 죽이고 있는 건지 에너지가 감지되지 않았다. 근처에 인어나 다른 괴물들이 있으면 물어볼 수 있을 텐데.


하필 이럴 때 한 마리도 안 보이...


“아, 물고기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해안 근처에 생물 반응이 전혀 없었다.


지진일 거라고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물고기들은 위협적인 뭔가를 피하기 위해 먼 바다로 이동한 거다.


이무기가 아무리 기운을 죽여도 물고기들까지 속일 수는 없을 테니까.


등 뒤로 소름이 쫙 돋았다. 이무기가 가까이에 있다.


“소원아! 빨리 도망쳐야 돼!”


어디로 도망을 치든, 일단 이 해안에서 멀어져야 한다. 나는 일단 최면을 풀기 위해 치유술을 사용했다.


의식최면 정도는 풀기 어렵지 않다. 저번에도 금방 풀었었고 말이다.


그런데,


"어? 왜 안 풀리지?"


소원이의 새카만 눈은 그대로였다. 나는 다시 치유술을 썼지만 역시 소용없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나의 요력이 듣지 않는다. 소원이는 계속 바다로 들어가려 한다. 치유술이 안 통하는 이유가 뭐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돼?


어쩔 수 없다. 힘으로 하는 수밖에. 나는 소원이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소원이는 나에게 질질 끌려가면서 바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무기가 부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소원이와 힘겨루기를 하며 바다에서 멀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버티는 힘이 얼마나 센지, 온 힘을 다 해야 겨우 한 발짝을 옮길 수 있었다.


"제발 가자, 제발 좀. 응?"


나는 애원하듯 소리쳤지만 소원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막무가내로 나를 뿌리치려고 하는 소원이를 억지로 끌고서 모래밭을 걸었다. 가뜩이나 힘든데 발까지 푹푹 빠진다.


최면이 풀리지 않는 이유가 뭘까.


내 능력이 모자라서 풀리지 않았거나


아니면,


이무기가 계속해서 최면을 거는 중이거나.


지금 이무기가 소원이에게 최면술을 쓰고 있다면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소용이 없다. 나의 요력이 이무기의 요력을 밀어낼 수 없을 테니.


생각해보니 뭐가 됐든 결론은 내가 능력이 없어서다.


"조금만, 조금만 더!"


무능력한 나는 가진 힘이라도 다 써야 했다. 죽을 동 살 동 소원이를 데리고 바닷가를 벗어났다.


드디어 마을 앞 간이 슈퍼가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인적이 있는 곳에 다다르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소원아, 정신 좀 차려봐."


나는 다시 소원이에게 최면을 없애는 치유술을 썼다. 그러자 이번에는 요력이 통했다.


소원이의 눈빛이 다시 예전처럼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이무기와 멀어져서 최면이 풀린 것이다.


소원이는 곧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오랜 시간 최면에 걸려 있어서 탈진을 한 것 같았다.


"다행이다."


이대로 조금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나는 슈퍼 옆에 앉아 소원이를 안고 숨을 돌렸다.


그러나 안심을 하는 것도 잠시, 등뒤로 소름끼치는 기운이 밀려왔다.


분노와 원망이 서린, 끔찍할 만큼 매서운 마이너스 에너지.


온 몸의 털이 쭈뼛하고 섰다.


정확히 목 뒤에 꽂힌 이무기의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낸 나는,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호흡마저 가빠졌다.


그 공포스런 에너지는 몇 분이나 더 나를 짓눌렀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맞설 생각은커녕 뒤를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쥐 죽은 듯 있는 것이 최선이었다.


나는 앞만 보고 우두커니 앉은 채, 소원이의 손목만 움켜쥐고 있었다.


억겁처럼 느껴진 수 분이 흐르고, 이무기의 에너지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는 그물에서 풀려난 짐승처럼 안도하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바다에서 있었던 일을 최대한 자세히 아버지에게 말했다.


소원이가 이무기의 최면에 걸린 것, 그래서 마구잡이로 바다에 들어가려 했던 것, 가까스로 이무기에게서 구해온 것까지.


아버지는 심각한 얼굴로 내 이야기를 듣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의논할 것이 있다고 하는 걸 보면 규빈이네 부모님과 통화하는 것 같았다.


이무기가 다시 나타난 이상 어른들이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아까는 정말 큰일 날 뻔했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 되었다.


마음이 놓이고 몸은 피로하여 눈이 감겼다. 마지막까지 전신을 압박했던 이무기의 에너지 때문인지 힘이 쭉 빠져있었다.


나는 금세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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