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신백일홍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민창
작품등록일 :
2021.03.03 11:43
최근연재일 :
2021.04.21 08:0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504
추천수 :
22
글자수 :
111,895

작성
21.04.14 11:05
조회
41
추천
1
글자
12쪽

신백일홍전 17

DUMMY

소원이가 말을 끝내자, 공간이 시간에 삼켜지듯 주위가 고요해졌다. 바람도 멎어 파도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이건 발산이 아닌 수렴의 에너지. 소름이 끼칠 정도의 마이너스 에너지다.


그리고 이 에너지의 출처는,


"크아아아아악!!"


이무기가 괴성을 내질렀다. 그것과 동시에 미친 듯이 폭풍이 불어 닥쳤다. 거친 바람과 함께 순식간에 먹구름이 모이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내리쳤다. 바다는 미친 듯이 출렁거린다. 파도가 나를 집어삼킬 듯 들이쳐왔다.


"나는 용이다, 용이 될 존재다!"


이무기가 괴롭게 울부짖었다. 이무기가 흥분하면 할수록 바다가 날뛴다. 해일이 몰려오는 것처럼 파도가 높아졌다.


"아니, 너는 용이 아니야. 영원히."


내가 순혈의 반신이 아닌 것처럼. 하늘이 두 쪽 나도 그렇게 될 일은 없는 것처럼.


"이무기와 용은 아예 다른 종이야. 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니! 나는 용이 될 수 있다!!"


이무기는 막무가내로 우겼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없던 날개가 돋아나겠는가. 없던 수염이 자라나겠는가.


나는 납득이 가지 않아 이무기에게 물었다.


"그걸 실제로 봤어?"

"인간들이 그렇게 말했다!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했다고!!"


눈이 뒤집힌 이무기는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기가 찰 뿐이었다.


"이무기가 용이 되었다는 말은 사람들이 어린 용을 보고 착각한 거야."


어린 용은 날개도 작고 수염도 짧으니 충분히 사람들이 헷갈릴 수 있었다.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서 봤을 테니 더더욱.


아마 그렇게 오해를 한 일이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괴물도감에도 언급되어 있는 것이고.


이무가 용이 되는 모습을 직접 보지도 않고, 세간에 전해 내려오는 말만 믿고 용이 되려 했다는 말인가.


아니, 어쩌면 이무기도 느끼고 있었는지 모른다.


"너도 확신이 없었던 것 아니야? 그러니까 소원이한테 묻고 싶어 한 거잖아."


아마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네가 용이 될 자신이 있었다면, 소원이의 대답에 연연하지 않았겠지."

"닥쳐라!!"

"인간을 그렇게 얕보더니. 인간에게 제일 휘둘리는 건 너였네."

"으아아아아악!!"

"인간의 말을 듣고 용이 되려 하고, 인간에게 용이라 불리고 싶어 하고."

"그만!!"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번개가 내리쳤다. 바다가 들썩이며 폭우가 쏟아진다. 이무기의 분노가 하늘과 바다를 완전히 뒤덮었다.


"말도 안 되지. 너처럼 잔인한 괴물이 어떻게 성스러운 신수가 될 수 있겠어."


나는 괴롭게 포효하는 이무기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이무기는 더 이상 내 말에 대꾸할 이성도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완전히 폭주하게 된 이무기는 격렬한 기세로 날뛰었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바람이 날카롭게 살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몸을 돌려 소원이를 보호했다.


뒤이어 집채만 한 파도가 머리 위를 덮쳤다. 한순간에 물을 뒤집어쓰게 된 우리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파도는 규빈이가 쓰러진 곳까지 닿았다.


성난 바다가 곧 해안을 삼킬 것 같다. 이무기가 완전히 이성을 잃은 지금, 도망칠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나는 소원이에게 말했다.


"소원아, 뛸 수 있지?"

"응?"

"달릴 수 있냐고."

"응. 왜?"

"마을로 가, 당장!"


지금이라면 소원이는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남은 요력도 없는 나와 같이 여기에 있어봤자 더 위험해질 뿐이다. 그런데 소원이는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너는? 너는 어떻게 하려고?"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계획은 없다. 다만 소원이와 함께 달아날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여기 있을 거야."


여기에 규빈이와 이나린을 내버려 두고 갈 수는 없으니까.


"여기서 어쩌려고? 혼자 이무기랑 싸울 거야?"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소원이를 먼저 보내고, 규빈이와 이나린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전부다.


내가 대답을 못하자 소원이가 다그쳤다.


"어떻게 할 거냐고!"


이런 거 물어보지 말고 제발 마을로 뛰어가 주면 좋겠는데.


"나도 몰라! 일단 너라도 빨리 가!"

"모른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한시가 급한데  나는 소원이와 말다툼을 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바람칼은 계속 우리를 공격했다.


내가 몸으로 방어해주고는 있지만 소원이의 몸도 군데군데 상처가 났다. 인간은 반신에 비해 자가치유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상처가 잘 아물지도 않는다.


하얀 뺨에도 바람이 긁혀 피가 흐른다. 그럼에도 소원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소원이에게 다시 소리쳤다.


"더 다치기 전에 집으로 가!"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절대 혼자서는 못 가!"

"너는 반신도 아니잖아! 왜 오지랖이냐고!"


나는 결국 날카로운 소리를 하고 말았다. 나는 피투성이가 된 소원이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이거 봐. 너는 이대로 얼마 못 버텨. 우리랑 다르단 말이야!"


소원이 손이 이렇게 되었는데 치료해 주지도 못하고, 바람칼을 막아 주지도 못하고. 나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이럴 거면 내가 인간과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정말 혼혈이라 이 모양인 건지.


무능하기 짝이 없는 내가 한심해 눈물이 났다.


그런데 그때,


내가 잡고 있는 소원이의 손에 분홍빛 결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소원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결계는 소원이의 상처를 하나씩 치유해 나갔다. 상처투성이였던 소원이의 손이 금세 깨끗해졌다.


치유 결계는 곧 소원이의 몸을 모두 감쌌고, 바람칼이 소원이를 스칠 때마다 즉시 치유가 되었다.


“됐다. 돌아왔다.”


손 안에 요력이 돌기 시작했다. 드디어 회복이 된 것이다. 나는 내 손이 이렇게까지 고마웠던 적이 없다.


쉴 새 없이 불어 닥치는 바람칼에 살갗이 찢겨나가고 있었지만 지금만큼은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머릿속엔 단 한 가지 생각뿐이다. 지금이 기회다.


철벽같던 이무기의 정신력에 균열을 만들었고, 나에게 요력이 돌아왔다. 이무기는 무지막지한 공격을 퍼붓고 있었지만 평정을 잃은 산발적인 공격은 조금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


나는 몸을 돌려 이무기를 향해 섰다.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실낱같은 희망을 포착한 이성은 온 몸에 아드레날린을 발산시켰다. 두 손에 요력이 빠른 속도로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됐다.


“소원아! 규빈이 있는 데로 가!”


나는 일단 소원이를 규빈이와 이나린 곁으로 보냈다. 그리고 부채를 꺼내 세 사람 주위에 방어막을 쳤다. 내 실력이 형편없긴 해도 산발적인 바람칼 정도는 막아낼 것이다.


방어막이 문제없이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나는 바로 도움닫기를 준비했다.


지금 이무기에게로 날아갈 것이다. 그리고 아까 했던 것처럼 역치유술을 쓰면 된다.


타겟은 상처가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저 왼쪽 눈.


나는 부채에 모든 요력을 집중시킨 뒤, 비바람을 뚫고 바다로 뛰어올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천근만근 무거웠던 몸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요력이 차고 넘치는 기분은 처음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사뿐하게 땅을 디디고, 이무기에게로 뛰어올랐다.


그렇게 모든 것이 마무리될 줄 알았다.


요력을 가득 모은 부채를 이무기의 왼쪽 눈에 꽂고, 역치유술을 갈겨버리면, 다 끝이 난다고.


그러나 내 두 발은 그대로 땅바닥에 붙어있었다.


갑자기 왜 이러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기 무섭게 눈앞이 하얘지며 온 몸에 힘이 빠졌다.


뭐지?


피를 많이 흘린 것도 아닌데,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왜?


아무리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다리가 후들거려 두 발로 서있는 것도 겨우였다.


그러다 갑자기 속이 답답해 기침을 했더니, 입에서 핏덩이가 튀어나왔다.


“피....”


장기에서 출혈이 일어나고 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아까 이무기와 싸우다가 장기에 타격을 입었나? 갑자기 머리가 아득해져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어? 손이,


손끝이 검게 변하고 있다.


이거 설마.


“요력 폭주...?”


빌어먹을!!


이 한심한 몸뚱이는 고작 이 정도로 폭주를 한단 말이냐!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던 두 다리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방어막 안의 소원이가 울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본다. 온전히 나만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눈동자. 내가 아닌 규빈이를 향했을 때 내가 그렇게나 부러워했던 눈빛이다.


그토록 저 눈으로 나를 봐주기를 바랐는데. 지금 나는 저 눈빛을 바라보고 있을 힘도 남아있지 않다.


“명호야! 명호야!!”


소원이가 계속 나를 부르는데 자꾸만 눈이 감긴다.


한 방이면 끝나는데. 딱 한 방이면.


나는 이를 악물고 부채를 창으로 바꾸어 그것을 짚고 일어섰다.


왼쪽 눈, 저 눈까지만 접근하면 된다. 정신 차려, 어쩌면 이무기를 없앨 마지막 기회야.


소원이가 직접 만들어 준 천재일우의 기회란 말이다.


이무기가 저대로 날뛰게 놔뒀다가는 모두가 위험하다. 방어막이 바람칼에 얼마나 버틸지 모른다.


게다가 바닷물이 범람해 해일이 밀어닥치면 마을 전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빌어먹을. 몸을 제대로 단련시켜 놓을 걸. 혼혈이 노력해봤자 소용없다고 포기하지 말 걸. 혼혈이든 순혈이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건 내 안의 문제다.


나는 내가 이뤄낼 수 있는 최고점에 도달하려고 해본 적이 없다.


노력했다면 지금보다 더 강해졌을 수도 있는데.


이게 내 한계가 아니었을 수도 있는데.


그랬다면 여기서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건 가능성일 뿐이지만.


내가 나의 한계를 이미 알고 있었다면 이딴 구질구질한 생각도 들지 않았겠지.


후회가 남은 시점에서 나는 완전하게 패배한 것이다.


이무기는 후회를 하고 있진 않을 테니까.


저 괴물은 신수가 아니지만 신수가 되기 위해 삼천 년을 노력했다.


나는 순혈이 될 수 없음을 알고 포기했지만,


이무기는 신수가 될 수 있으리라 믿고 끊임없이 단련했다.


그렇기 때문에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리라.


저것은 셀 수 없는 시간과 노력을 바친 자만이 느끼는 좌절.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에게는 좌절을 할 권리조차 없다.


“하지만 이 싸움에서 질 수는 없어.”


나는 이무기에게 패배한 것이 맞다. 하지만 지금 이 싸움은 나와 소원이, 규빈이, 이나린이 함께 한 전투다. 절대로 이무기에게 승리를 넘길 수는 없다.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 주먹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노려본다고 없던 힘이 생길 리 없다. 부들거리던 손은 결국 창을 놓쳐버렸다.


기댈 곳을 잃은 몸은 힘을 잃고 쓰러져 축 늘어졌다. 흐린 시야로 손바닥까지 까맣게 변한 손이 보였다.


나는 동강난 석상처럼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 손과 발을 원망할 뿐이었다.


아, 제발 말 좀 들어라.


딱 한 번만 더  움직여.


진짜 다 잡았는데.


눈앞이 흐려진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마냥 장대비가 쏟아진다. 바람이 날카롭게 피부를 스친다. 빗소리와 바람소리가 웅웅대며 귀를 때린다. 머리가 아프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신백일홍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신백일홍전 20 (완결) 21.04.21 56 1 8쪽
20 신백일홍전 19 21.04.19 38 1 14쪽
19 신백일홍전 18 21.04.18 38 1 13쪽
» 신백일홍전 17 21.04.14 42 1 12쪽
17 신백일홍전 16 21.04.12 38 1 12쪽
16 신백일홍전 15 21.04.11 39 1 12쪽
15 신백일홍전 14 21.04.07 66 1 12쪽
14 신백일홍전 13 21.04.05 41 1 12쪽
13 신백일홍전 12 21.04.04 40 1 12쪽
12 신백일홍전 11 21.03.31 43 1 12쪽
11 신백일홍전 10 21.03.29 43 1 12쪽
10 신백일홍전 09 21.03.28 46 1 12쪽
9 신백일홍전 08 21.03.24 68 1 13쪽
8 신백일홍전 07 21.03.22 85 1 12쪽
7 신백일홍전 06 21.03.21 71 1 12쪽
6 신백일홍전 05 21.03.17 84 1 12쪽
5 신백일홍전 04 21.03.15 80 1 12쪽
4 신백일홍전 03 21.03.14 97 1 12쪽
3 신백일홍전 02 21.03.10 99 1 12쪽
2 신백일홍전 01 21.03.08 131 1 12쪽
1 프롤로그 +1 21.03.08 260 2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