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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신백일홍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민창
작품등록일 :
2021.03.03 11:43
최근연재일 :
2021.04.21 08:05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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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
추천수 :
22
글자수 :
111,895

작성
21.03.24 09:39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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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신백일홍전 08

DUMMY

규빈이가 바다로 떠난 뒤, 나는 집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 규빈이 혼자 싸우게 놔둬도 되나.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집 앞을 서성였다. 바로 옆집이 규빈이네다. 몇 걸음만 더 걸으면 규빈이네 부모님이 계신다.


규빈이네 집 앞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발을 돌려 우리 집 문앞에 왔다가. 다시 규빈이네 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나는 이것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말해야 할까.


"명호야?"

"으아악!"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에 간이 떨어질 뻔했다.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뭘 그렇게 놀래."


소원이가 서있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서 말했다.


"아.. 소원이구나.”


바로 어젯밤에 이무기한테 홀려 바다에 끌려갔었으면서 벌써 이렇게 밖을 돌아다닌다. 나는 걱정이 되어 물었다.


“몸은 좀 괜찮아?”

"응, 아무렇지도 않아."

"그래도 조심해야지.”


소원이는 걱정하지 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다행히 혈색도 좋아 보이고 후유증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소원이네 집에서 우리집은 버스를 한 번 타야 되는 거리다. 그러니 여기까지 일부러 온 것 같은데. 무슨 일인 걸까.


“우리집엔 무슨 일이야?"

"아, 규빈이 때문에."


아악! 나를 보러 온 게 아니었다!! 잘못 짚어도 이런 식으로 잘못 짚다니!! 나는 쪽팔려서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아, 아하, 그렇구나."

"규빈이네 전화해 봤는데 집에 없대. 혹시 얘 어디 갔는지 알아?"


규빈이는 이무기를 잡으러 나갔으니 당연히 연락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소원이에게 할 수 있을 리 없다. 나는 규빈이한테 들었던 말이 생각나 대충 얼버무렸다.


"농구.. 농구 연습 하러간대."

"농구? 일요일인데?"

"응."

“그럼 학교에 있겠구나.”

“아마도 그렇겠지?”

"그렇구나... 하지만..."


소원이는 뭔가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근심어린 눈빛으로 생각에 잠겨 있던 소원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실은 아까 규빈이가 우리집에 찾아왔었어."

“규빈이가?”

"응, 갑자기 불러내더니 내 옷을 빌려달라는 거야."


소원이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내가 입고 있던 가디건을 빌려갔어.”


아마 규빈이가 소원이한테 옷을 빌린 것은, 이무기를 찾기 위한 방법일 것이다.


소원이의 흔적이 묻어있는 물건으로 유인을 하려는 것이다. 넓은 바다에서 이무기를 찾아내기 위해, 규빈이는 소원이의 소지품을 가져가려고 했던 거다.


“이상하지 않아? 농구 연습하러 가다가 갑자기 우리집에 와서 내 옷을 빌린다고?”


하지만 빌린다는 게 가디건이라니. 규빈이가 어지간히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다. 소원이 옷이 규빈이한테 맞을 리가 없지 않나. 누가 봐도 이상한 행동이다.


"게다가 우리 집은 학교랑 같은 방향도 아니잖아. 학교 가는 길에 들른 것도 아니라고."


소원이는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를 눈앞에 둔 것처럼, 소원이는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소원이는 그 문제를 풀 수 없다. 인간 세상의 일이 아니다.


"그냥 옷을 핑계로 네 얼굴 보러 간 건가 보지. 너무 신경 쓰지 마."


내가 겨우 머리를 굴려 만들어 낸 변명은 이 정도였다. 그러나 소원이는 여전히 미심쩍어하는 얼굴이다.


“걔가 나를? 왜?”


소원이의 단호한 태도에 나는 진땀이 났다. 그때 소원이가 물었다.


“명호 너는 규빈이가 농구 연습하러 간 거 어떻게 알아?”

“아, 아까 잠깐 봤거든. 그때 들었어.”

“그래? 몇 시에?”

“한... 30분 전에?”

“우리 집에는 1시간쯤 전에 왔었어. 그럼 학교 가는 길에 들린 게 아니네.”


규빈이는 소원이네 집에 가서 옷을 빌리고, 그 다음에 나를 만나러 온 것이다. 바다로 나갈 것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


나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들어낸 변명이 설득력을 가지게 됐다.


“거 봐. 네 얼굴 보러 일부러 간 게 맞네. 너 어젯밤에 바다에 혼자 나갔었잖아. 걱정이 됐나보지.”


있지도 않은 사실을 꾸며서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규빈이 얘는 왜 그렇게 대놓고 이상한 행동을 해서 소원이가 의심을 하게 만드는지.


나는 소원이의 눈치를 보며 또 거짓말을 해야 되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때 소원이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물었다.


"명호 너 뭔가 알고 있지?"

"어? 나? 내가? 뭘 알아?"

"계속 말도 안 되는 추측을 하잖아. 뭔가 숨기고 있는 거 아니야?"

“내가... 내가 뭘 숨긴다고 그래.”

“규빈이는 내가 걱정이 되어서 직접 보러 올 애가 아니야. 만났을 때도 전혀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고.”


소원이의 의심이 나에게로 옮겨왔다. 소원이는 나를 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설마 나한테 거짓말 하고 있는 거야?”

“그런 거 아니야... 그... 실은... 규빈이가... 그 감기 기운이 있대. 그래서 옷을 빌린 거 같아. 그, 어깨에 여자 가디건을 걸치고 있더라고.”


아, 나는 또 거짓말을 하고야 말았다.


“그럼 그걸 왜 일부러 우리집까지 와서 빌리냐고. 말이 안 되잖아.”


다시 원점이다. 소원이처럼 영리한 애가 이런 걸 그냥 넘어갈 리 없다. 나는 여기에 대한 변명을 생각하기 위해 두뇌를 풀가동시켜야 했다.


“어... 학교 가는 길에 농구공을 사러 시내에 갔었대. 그때 너희 집에 들렸었나 봐. 그런데 뭘 놓고 와서 다시 집에 온 거야. 그때 날 만난 거고.”


소원이네 집은 시내에 있다. 운동용품 가게는 시내에 나가야 있으니 이건 그럴듯한 사유가 된다.


가까스로 만들어 낸 거짓말에 손이 땀으로 완전히 젖었다. 이번엔 그럴듯했는지 소원이는 내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다행이다. 이제 됐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색이었어?"


소원이가 날카롭게 물었다.


"어?"

"여자 가디건을 봤다며. 무슨 색이었냐고."


아, 망했다.


가디건은 못 봤다. 아마 규빈이가 들고있던 그 종이 쇼핑백 안에 들어있었을 텐데.


소원이는 내 말을 믿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추궁을 하는 것이고.


이렇게 된 이상 생각을 해 내야 했다. 소원이는 주로 검정색이나 하얀색 가디건을 입는다. 분홍색도 본 것 같긴 한데 주로 입는 건 검정이나 흰색이다.


그러니 확률로 본다면 검정이나 흰색일 가능성이 높다. 5:5의 확률.


아니, 빈도수를 고려한다면 7:3 정도다. 분명히 둘 중에 더 많이 입는 것은 검정색.


"검..."


그때 소원이 머리에 흰색 머리띠가 눈에 들어왔다.


흰색 머리띠가 있다.


그렇다면 규빈이는,


"흰색."


내 대답에 소원이는 입을 다물었다.


맞췄다! 나는 속을 쾌재를 불렀다.


공격술사인 규빈이에게 길한 빛깔은 하얀색이다. 중요한 전투에 가져가려고 생각했다면, 틀림없이 길한 물건을 빌렸을 것이다.


하지만 하얀 머리띠가 소원이 머리에 그대로 있으니, 가디건이 하얀 색이었던 게 분명하다.


내가 찍기에 성공한 결과 소원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지만, 척 봐도 아주 못마땅하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서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며 소원이가 원망스레 말했다.


"너희는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긴 해?"


너희, 라고 한다면 나와 규빈이를 지칭하는 것이리라. 나는 이 질문의 의미를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나와 규빈이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소원이는 나와 규빈이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체를 캐묻지 않았다. 때문에 나와 규빈이도 구태여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정체를 어떻게든 숨겨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반신이라는 것을 먼저 털어놓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소원이는 그것이 서운했던 모양이다.


비록 진실을 이야기해 줄 수는 없어도, 나는 당연히 소원이를 친구라고, 정말 좋은 친구라고 생각한다.


"그럼, 친구지."


솔직히 말하면 친구와는 다른 감정으로 좋아하고 있지만. 이 고백은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대답에 소원이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너희도 사정이 있겠지."


소원이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는 멀리 바다를 향해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규빈이가 사고나 안 쳤으면 좋겠네."


뭔가를 직감한 걸까. 바다를 향해 있는 소원이의 얼굴에 걱정이 비쳤다.


설화의 한 장면처럼.


처녀는 이무기를 잡으러 간 영웅을 기다린다.



***



결국 규빈이 부모님에게 말하지 못했다. 규빈이가 이무기를 잡으러 간 것은 나 말고 아무도 모른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쉬이 눈이 감기지 않았다.


일기예보에도 없던 천둥번개가 멈추지 않는다. 오싹하리만큼 서늘하게 비가 내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이불 속에서 내내 손톱을 뜯었다.


이무기는 비바람을 일으킨다고 했다.


이 갑작스런 비는 이무기의 짓이 아닐까. 규빈이는 지금쯤 바다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걱정할 것 없어. 규빈이는 괜찮아.”


규빈이는 영웅이다. 설화에서처럼 당당하게 살아서 귀환할 것이다. 용이 되지도 못한 한심한 뱀을 상대로 이기지 못할 리 없다.


규빈이는 나와 다르다. 이불 속에 숨어 내일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나와는 급이 다른 반신이다.


같은 나이, 같은 곳에서 자란, 쌍둥이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도 다르다는 말인가.


어째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규빈이는 전부 가졌을까. 어째서 나는 규빈이가 가진 것을 하나도 갖지 못했을까.


규빈이의 존재는 나를 한없이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만약 규빈이가 없었다면, 그랬다면 나는 꽤나 나에 대해 긍정적이었을지도 모른다.


혼혈이긴 해도 반신인 나는 전교 1등이 어렵지 않고, 신체적인 능력도 인간들보다 월등하며, 인간이 할 수 없는 요술들을 사용한다.


아마 반신으로 태어난 나 자신에게 꽤 만족했을 것이다.


규빈이만 없었다면.


내 앞을 가로막고선 완벽한 반신이 없었다면.


"명호야."


순간 심장이 덜컹했다. 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거실의 불빛이 내 방으로 쏟아들어왔지만 내가 있는 침대까지는 밝히지 못했다.


빛을 등지고 선 아버지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규빈이 못 봤니? 아직 집에 안 왔다네."


놀란 가슴이 멈추지 않고 쿵쾅거린다. 규빈이가 바다에 나간 것을 말해야 할까. 이렇게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바다에 규빈이 혼자 있어도 될까.


그러나 망설임도 잠시, 내 입에서 곧 대답이 튀어나왔다.


"몰라요."


내 대답에 아버지는 방문을 닫고 나갔다. 규빈이네 집에 전화를 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다시 어두워진 방 안에서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덮었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다. 분명히 규빈이가 비밀로 해 달라고 했다.


나는 그대로 말을 따랐을 뿐이다.


번개의 섬광과 천둥소리는 그 후로도 한참 동안 나를 괴롭혔다.



***



오늘 아침을 먹을 때, 아버지는 규빈이 아버지와 심각하게 통화를 했다. 아버지는 내내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굳이 묻지 않아도 통화 내용을 알 것 같았다.


끝내 규빈이는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지난 밤 바다에서 규빈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규빈이가 아직 바다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어떤 기대를 하고 있었다.


'내일 학교에서 보자!'


규빈이가 했던 이 말은 나에게 있어 굳건한 신탁과도 같았다. 그 말을 할 때의 규빈이  밝은 표정이 기억에 선명했다. 망설임 없이 확신에 찬 목소리 또한 생생했다.


그토록 자신있게 뱉은 말을 규빈이가 어길 리가 없다. 학교에서 보자는, 그 약속을 나는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비록 아침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학교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도 아침밥은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씹어도 씹어도 밥알이 거칠었다. 대충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로 가야 규빈이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아침조회가 끝나고 1교시가 시작되려는 지금, 내 옆자리는 비어있다.


뒤통수가 싸늘해졌다.


규빈이가 했던 약속은 깨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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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백일홍전 04 21.03.15 79 1 12쪽
4 신백일홍전 03 21.03.14 9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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