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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신백일홍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민창
작품등록일 :
2021.03.03 11:43
최근연재일 :
2021.04.21 08:0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505
추천수 :
22
글자수 :
111,895

작성
21.03.10 09:16
조회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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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신백일홍전 02

DUMMY

어머니 기일이라고 해서 분위기가 무겁거나 한 건 아니다.


조용히 바다를 보고, 애들이랑 몇 마디 떠들다가 다시 바다를 보고.


이렇게 일 년에 한 번씩 어머니를 추억한다.


바다에 오면 소원이가 제일 바쁘다.


소원이는 식물 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곤충에도 관심이 있어서, 바다 근처에만 오면 모래 속을 뒤지고 다니느라 여념이 없다.


언제나처럼 소원이는 해안가를 돌아다니고, 나와 규빈이는 나란히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잠자코 앉아있던 규빈이가 말했다.


"너 학교에서 요술 좀 쓰지 마."


왜 이 얘기 안 하나 했다. 아까 복도에서 요력을 썼을 때 규빈이 표정을 보고 한소리 듣겠구나 싶었다.


나는 잘못을 들킨 기분에 괜히 땅바닥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잠깐이었는데 뭘."

"뒤에서 애들이 뛰어오면 소원이가 알아서 피하겠지. 뭐 하러 니가 나서?"

"어차피 요술인 거 아무도 몰라. 사람들은 반신의 존재도 모르잖아."

"아니, 모두가 알고 있어. 천재라고 불릴 뿐이지."


그건 너한테나 해당되는 말이야, 하고 나는 말하려다 말았다.


규빈이의 말대로 사람들은 반신이라는 말을 쓰지 않지만, 천재라는 말은 자주 쓴다.


반신들은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지력과 신체능력을 가졌고, 때문에 천재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다.


규빈이도 그렇고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해당이 없는 얘기다. 나는 반신 치고는 아주 평범한 편이니까.


물론 학교 성적으로만 보면 나나 규빈이나 비슷하다.


고등학교 과정에서 인간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원이까지 셋이서 늘 전교 1,2,3등을 나눠서 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공부에 들이는 시간과, 소원이가 들이는 시간은 차이가 크겠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귀찮아져. 인간들은 그들과 다른 것을 경계해."


규빈이가 말했다. 하지만 어딜 봐도 튀는 것은 나보다는 규빈이 쪽인데.


"너도 조심하고 있는 거야?"

"당연하지. 나는 학교에서 절대 요력 안 써."


그래, 규빈이가 학교에서 요력을 쓰는 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학교에서 규빈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운동 잘하고 잘생기고, 머리도 좋은 천재라고 소문이 자자하다.


심지어 다른 학교 여자애들도 규빈이를 보러 학교에 온 적이 있다.


"요술만 안 쓰면 뭐해. 너 유명인이야. 다른 학교 애들도 너를 알던데."

"그거는... 그냥 내가 농구부라서 그런 거야."


규빈이는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그리고는 변명하듯 나에게 말했다.


"나는 눈에 안 띄려고 모의고사도 일부러 틀린다고."


나는 조금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모의고사를 일부러 틀려본 적은 없다.


수학이나 과학은 애들 장난이지만 역사 같은 암기과목은 종종 헷갈리곤 하니까. 언어도 아리송할 때가 있고 말이다.


그러나 규빈이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체 물었다.


"그럼 수능도 그럴 거야?"

"그것도 한두 개 틀려야지 뭐. 만점자는 기사에 나니까."


규빈이는 썩 내키지 않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내 등을 툭 치는 것이다.


"너도 그럴 거면서 뭘 물어."


나는 웃으며 대충 대꾸했다.


"하하, 그래야지."

"응.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성적 관리해야 되잖아."


여기서 성적 관리는 성적을 '낮게' 조정하는 일을 뜻한다.


인간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한 작업이지만,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성적 관리를 그만둬도 괜찮다고 들었다.


성인이 되면 사람들의 필드가 각기 분화되기 때문이다.


각자의 필드에서만 능력이 부각되는 거라서, 다른 필드 사람들은 신경도 안 쓴다고.


하지만 이건 지력이나 신체능력에 대한 부분이지, 요력은 성인이 되어도 사용해선 안 된다.


"고등학교 졸업해도 요력을 쓸 수 없는 건 똑같은데 뭐."

"나는 정답을 모르는 척 안 해도 되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내가 투덜거리자 규빈이는 웃으며 말했다.


얘는 단지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게 답답한 모양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규빈이는 가진 능력을 숨기지 않고 드러낼 거다.


그때부터 나와 규빈이의 차이가 벌어지게 되리라.


나는 대충 의대에 들어가서 평범한 의사가 될 것이고, 규빈이는 글쎄, 노벨상 정도는 받지 않을까.


이렇게까지 뛰어난 친구를 곁에 두고 있으면 가끔 마음이 갑갑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규빈이가 이런 내 속을 알 리 없다.


"맞다. 너 어디 적었어? 희망대학."


규빈이가 물었다. 수능 얘기를 하다 보니 대학이 떠오른 모양이다.


"서울의대."

"하긴 너는 정해져 있으니까."


부러움이 묻은 말투에 나는 작게 조소를 뱉었다.


"나는 어쩌지. 미국을 갈까..."


규빈이는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미국을 갈지, 한국에 있을지, 혹은 또 다른 나라로 갈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그려보고 있다.


원한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능력과 환경. 끝없는 발산과 확장의 가능성.


태어날 때부터 미래가 정해진 나는 꿈도 꿔보지 못한 삶.


나는 괜히 규빈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불편해져 화제를 돌렸다.


"소원이는 어느 대학 가려나."

"쟤는 무조건 생명과학 한댔으니까, 점수에 맞춰서 서연고 중에 가겠지."

"소원이도 서울대 갔으면 좋겠다."

"네가 하향해서 가긴 싫고?"

"하향 못할 것도 없지. 난 의대만 가면 되니까."


진심이었다. 나는 가업만 이으면 되니 의사가 될 수 있으면 대학은 상관이 없다.


어차피 소원이도 서연고 셋중에 한 군데에 갈 거고, 셋 다 의대가 있으니 나는 어디라도 가면 된다.


하지만 규빈이는 내 말이 한심해 보였던 것 같다.


"옥소원이 그렇게 좋냐? 대학까지 따라가게?"

"좋아서 그러는 게 아니야."

"그럼 왜?"

"소원이가 나중에 엄청 고생을 한대. 나라도 옆에 있어줘야 된다고."


내 말에 규빈이가 물었다.


"누가 그래?"

"이나린한테 물어봤어."


이나린은 우리와 같은 반신으로 고성여고에 다니고 있다.


이나린은 우리 또래 반신들 중에 예언능력이 가장 뛰어나다. 그래서 종종 이나린에게 앞일을 물어보곤 했다.


당연히 공짜는 아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규빈이가 말했다.


"복채 엄청 줬겠네."

"응, 5만원."

"미친! 양아치네 진짜."


규빈이가 몸을 들썩이며 발끈했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근데 옥소원이 왜 고생을 해. 똑똑한 앤데."

"아주... 아주 형편없는 남자를 만난대."


사실 이나린은 개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약간 순화를 해서 말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도 규빈이는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와... 어떡하냐."

"그러니까. 내가 같은 대학에 가야 된다고."


같은 대학에 가면, 소원이를 지금처럼은 아니더라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면 소원이에게 접근하는 남자들도 확인할 수 있고, 소원이한테 남자친구가 생기면 괜찮은 사람인지 알아볼 수도 있고.


"옥소원이 형편없는 놈 만나기 전에 네가 먼저 사귀자고 해."


규빈이가 말했다. 그러나 나는 소원이와 잘 되는 걸 바란 적은 없다.


"난 인간은 안 사귈 거라고 했잖아."


나는 소원이를 좋아하고, 솔직히 사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소원이는 인간이고 나는 반신이다.


인간이 반신과 가까워져서 좋을 것이 없다.


반신들 중에는 인간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생각에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반신에게도,  인간에게도.


"그래. 네 맘이지 뭐."


규빈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규빈이는 반신과 반신 사이에서 태어난 순혈이기 때문에 모를 것이다.


반신과 혼인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했는지.


반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아무튼 걱정이네. 이나린 말이면 틀릴 리 없는데."


그러면서 규빈이는 고개를 돌려 소원이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나도 규빈이를 따라 소원이에게로 눈을 돌렸다.


어른이 되어 자신이 겪을 일을 까맣게 모르는 소원이는, 해안가에 서서 바다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여느 때처럼 바다를 보는 것인가 싶었지만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것을 규빈이도 알아챈 모양이다.


"쟤 왜 저래?"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우리는 몸을 일으켰다.


“소원아! 왜 그래?”


내가 목청 높여 소원이를 불렀지만 소원이는 우리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바다에 뭔가가 보이는 건가. 파도도 잔잔하고 겉으로 보기에 이상한 것은 없는데.


“바다 에너지를 봐야겠다.”


규빈이가 말했다. 바다 속 생물들의 정신에너지를 확인하자는 얘기다.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에너지를 느끼기 위해 정신 집중을 한 순간,


"아악!"


우리는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정말이지 난리도 아니었다.


온갖 마이너스 에너지가 머릿속을 찢는 느낌에 우리는 에너지 확인을 멈추어야 했다.


바닷속은 온갖 공포와 불안, 혼돈의 감정으로 가득했다.


“너 이런 거 본 적 있어?”


나는 얼이 빠진 채 규빈이에게 물었다. 규빈이는 나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바다의 에너지가 이렇게 난리가 난 것은 본 적이 없다.


“태풍 때보다 훨씬 심한데?”


규빈이가 당황하며 말했다.


일반적으로 바다 생물들이 가장 큰 동요를 보일 때는 태풍이 오기 전.


바람도 없는 고요한 바다지만, 휘몰아칠 거센 바람을 물고기들은 미리 예감한다.


그것으로 인해 공포와 불안이 모여 에너지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태풍이 실제로 불어 닥치면, 마이너스 에너지가 정점을 찍는다.


“게다가 지금 태풍이 올 리 없잖아. 3월이라고!”


지금 물고기들은 태풍이 바다를 관통해서 지나가고 있을 때보다 불안해하고 있다.


수면은 정말이지 고요한데.


지금 이 잔잔한 바다 밑에 태풍보다 강한, 혹은 두려운 무언가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뭐가 됐든 절대 안전해 보이지는 않는다. 나와 규빈이는 소원이가 있는 곳으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소원아! 바다에서 물러서!”


나는 뛰어가며 소리쳤지만 소원이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옥소원! 거기 있으면 안 돼!”


규빈이도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소원이는 바다에 뭐라도 있는 것처럼 시선을 떼지 않는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나와 규빈이는 사색이 되어 소원이한테 달려갔다.


우리는 축지까지 써서 소원이 앞에 도착했다.


“대답도 안 하고 뭐하는데!!”


규빈이가 소원이의 팔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그런데 소원이의 눈이,


“잠깐 규빈아. 이거 설마...”


흰자와 검은자의 구분도 없이, 새카만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최면?”


규빈이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최면이라니. 그래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던 거구나.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여기에 소원이에게 최면을 걸 만한 존재는 없다. 여기에 나와 규빈이 말고 반신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면 남은 곳은 하나.


“바다...”


나는 소원이가 눈을 떼지 못하는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엔,


"저게 뭐야? 용?!"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옆에서 규빈이가 소리쳤다.


집채만큼 거대하고 새카만 무언가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거리도 멀 뿐더러 주위에 구름이 가득해서 명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절대로 선박 같은 익숙한 형체는 아니었다.


그 거대한 것은 아주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소원아! 도망쳐야 돼!!"


하지만 소원이는 꿈쩍도 하지 않고 바다를, 아니, 그것을 응시했다.


그 새카만 암흑 같은 눈으로.


그리고 나는 말로만 도망쳐야 한다고 외칠 뿐,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저것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름은 몰라도 존재는 확실하게 안다.


왜냐하면 저들과 반신은 오랜 시간동안 공존해왔기 때문이다.


저들은 반신에게 적이기도 하지만 반신을 돕는 아군이기도 하다.


저들은 인간이 주인이 되어버린 이 세계에서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괴물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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