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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신백일홍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민창
작품등록일 :
2021.03.03 11:43
최근연재일 :
2021.04.21 08:0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500
추천수 :
22
글자수 :
111,895

작성
21.04.05 08:15
조회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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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신백일홍전 13

DUMMY

인어는 나를 그들의 영역으로 인도했다.


인어령. 말로만 듣던 인어의 영역이다. 바다 깊은 곳에, 반신들보다도 더 먼저 자리 잡아 국가 급의 사회조직을 건설한 괴물.


동해뿐만 아니라 지구의 바다에는 곳곳에 이러한 인어령이 있다. 그리고 모든 인어들은 서로 교류하며 살고 있다.


동해에 사는 인어와 지중해에 사는 인어가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인어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광케이블이나 위성통신을 사용하진 않지만, 인어들 간 네트워크나 사회 시스템은 인간들의 그것보다 몇 세기는 발전해 있다.


그렇게 조직화 되어있던 인어들의 사회를 침범한 것이 반신이다. 오래 전 반신이 지구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그때 반신들은 좁은 육지보다 드넓은 바다에 자리를 잡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반신이 오기 전부터 바다에 살고 있던 인어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고, 자연히 영역을 지키기 위한 전쟁으로 이어졌다.


오랜 전쟁 끝에 바다의 영역이 인어령과 반신령으로 나뉘었다. 그 후로도 크고 작은 전쟁이 반복되다 반신이 바다를 떠나 육지에 정착하면서 종전되었다.


그렇게 전쟁은 멈추었지만 지난날의 앙금은 남아있는 상태였다. 인어들은 반신을 보면 멀찍이 달아나고, 반신도 인어들에게 구태여 접근하지 않는다.


나도 어른들에게 인어령 쪽으로는 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예전처럼 치고 박고 싸우는 관계는 아니지만 썩 좋은 관계도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내가 인어령으로 들어가자 모든 인어들이 나를 경계하며 힐끔거렸다. 무섭긴 했지만 나를 안내하는 인어의 뒤통수만 쳐다보며 헤엄쳐 들어갔다.


시가지로 보이는 붐비는 곳을 지나, 점점 어둡고 물고기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인어령의 깊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 인어가 멈춘 곳은 외딴 동굴이었다.


"여기야."


인어가 동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안에 규빈이가 있는 건가.


인어를 따라 좁다란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흐릿하게나마 빛을 밝히던 부채의 빛도 사라졌다. 이제부터는 감각으로 인어를 따라가야 한다. 나는 물결의 움직임, 기포 소리에 집중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안으로 들어왔을까. 저편에 여린 불빛이 보였다. 야광충을 몇 마리 모아 등불을 만든 모양이다. 그리고 등불 옆에는,


"규빈아!"


규빈이가 정신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규빈이의 입과 코  주위를 주먹만 한 기포가 감싸고 있다. 얼른 다가가 상태를 살펴보니 숨을 들이마시지 못한다.


그럼에도 숨이 붙어있는 것은 기포 덕분인 듯했다. 인어가 공기 방울을 만들어 자가 호흡이 안 되는 규빈이에게 산소를 주입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인어가 기포 위에 손을 올리자, 공기 방울이 조금 커졌다. 산소를 한 번 더 집어넣은 모양이다. 그리고 인어는 나에게 물었다.


"어때, 치료할 수 있겠어?"

"해야지. 어떻게든."


나는 즉시 치료를 시작했다. 먼저 규빈이의 가슴께에 손을 올리고 손상된 조직을 파악했다. 피부 밑으로 느껴지는 분자들의 반응을 읽었다.


폐와 심장, 신장과 위장. 차례로 장기들의 상태를 살폈다. 전체적으로 기력이 없는 것 말고는 분자들의 움직임에 문제가 없어 보였다.


폐가 크게 손상되긴 했지만 다행히 괴사된 부위는 없는 것 같다.


"상태가 나쁘지 않아. 치료할 수 있겠어."


워낙 건강한 애라 회복을 금방 해낼 것이다. 인어가 호흡을 도와준 덕분이다. 나는 규빈이를 치유하면서 인어에게 물었다.


"네가 살려준 거야?"

"아니. 이 애가 살아남은 거야. 이무기한테 도망쳐서 이곳까지 왔더라고."


인어가 이야기해 준 내용은 이러했다.


어젯밤 먼 바다가 소란스럽기에 이무기가 난리를 피우고 있겠거니 했단다. 아니면 반신들이 이무기를 잡으러 왔던지. 요즘 이무기 때문에 꽤나 귀찮았던 터라 잘 되었다는 생각 정도만 했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그렇게 요동치던 파도가 잦아들고, 바다가 잠잠해진 지 얼마나 지났을까. 거의 초주검이 된 반신이 인어령으로 헤엄쳐 왔다는 것이다.


"말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다쳐 있었어. 가까스로 숨만 붙어있는 상태였지."


그리고 규빈이는 곧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하지만 인어와 반신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인어들은 갑자기 떠내려 온 반신에 대해 반감을 가졌다고 한다. 심지어 몇몇 인어는 인어령 밖으로 쫓아내려 했다고.


하지만 내버려 두면 죽을 것이 분명하고, 아직 어린 반신이었기 때문에 내쫓는 건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여론이 많았다고 했다.


어쨌든 인어들에게도 골칫덩어리인 이무기와 싸우다가 이렇게 된 것이고, 아무리 반신이라고 한들 다 죽어가는 생명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규빈이를 보호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무기가 눈치 챌 수 없도록 깊은 동굴 속에 규빈이를 감추고, 여러 인어들이 오고가며 호흡을 도왔다고.


"바다 위로 보내주고 싶었지만, 허파가 다친 채 육지로 나가봤자 죽기밖에 더 하겠어?"


인어들은 규빈이를 진심으로 걱정한 것 같았다. 인어는 반신에게 썩 우호적이지 않지만, 반신이나 인간과 다름없는 사회적 지능을 가진 존재들이다.


이들은 약한 자들을 보호할 줄 알며 생명의 소중함 또한 알고 있다. 그래서 규빈이가 인어령으로 도망친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이상한 것이 있다. 나는 몇 번이나 바다 괴물들에게 규빈이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나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비롯한 모든 반신이 괴물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인어들은 한 번도 대답한 적이 없다.


"그럼 왜 여태까지 잠자코 있었던 거야? 반신들이 부르는 목소리 못 들었어?"

"들었지. 수백 번을 들었지. 얼마나 크게 불러대는지."

"왜 대답을 안 했어?"

"그 소리를 이무기도 들을 거란 생각은 못 해? 여기에 얘가 있는 걸 알면 놓친 먹이를 찾으러 올 텐데, 이무기를 상대하고 싶진 않다고."


인어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되도록이면 엮이고 싶지 않다는 태도였다.


'이무기를 상대하고 싶진 않다'고 담백하게 표현했지만, 결국 인어도 이무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폐 치료가 끝나면 너한테 치유결계를 쳐 줄게."


내 말에 인어는 피식 웃으며 손을 저었다.


"필요 없어. 쓸데없이 요력을 낭비하지 마."


인어는 점점 혈색을 되찾고 있는 규빈이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이 애가 정신을 차리면 죽을힘을 다 해 헤엄쳐 올라가. 그것만이 살 길이야."


이 말을 마지막으로 인어는 동굴을 빠져나갔다. 인어는 우리가 바다에서 이무기를 다시 마주치는 것을 걱정해 준 것이다.


사실 맞는 말이다. 큰 부상을 입은 규빈이는 겨우 숨만 붙어있는 상태고, 나도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서 탈진 직전이다. 이 상황에서 이무기와 싸웠다가는 정말 끝이다.


규빈이의 치료는 거의 마무리되었다. 더 이상 공기방울 없이도 자가 호흡이 가능하다. 스스로의 힘으로 숨을 쉬긴 하지만 아직 의식은 되찾지 못했다.


신경세포가 다시 제 역할을 하려면 조금 더 산소가 돌아야 할 것이다.  의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규빈이 몸 곳곳에 있는 상처들을 접합하고 있는데,


"으아악!"

"어우씨! 깜짝 놀랐네."


규빈이가 비명을 지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규빈이는 놀란 눈으로 두리번거리더니 나한테 말했다.


"여기가 어디냐?"

"인어령."

"니가 왜 여기 있냐?"

"너 찾으러 왔어."

"너 미쳤어?! 나를 왜 찾으러 와!"


규빈이는 화를 벌컥 냈다. 나는 그것을 들은 둥 마는 둥 무시하고 눈을 감고 드러누웠다. 저렇게 화를 내는 건 대충 구하러 와줘서 고맙다는 얘기다. 낯부끄럽게 고맙다고 말을 못해서 화를 내는 거다.


어쨌든 규빈이가 정신을 차렸으니 이제 됐다. 이제 긴장을 풀고 좀 쉴 수가 있겠다. 둥둥 떠서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규빈이가 배를 움켜쥐며 말했다.


"아 배고파. 빨리 올라가자. 밥 먹게."

"야, 나 너무 힘들어. 좀만 쉬자."

"올라가서 쉬어. 여긴 먹을 게 없단 말이야."

"아 대충 플랑크톤 같은 거 먹고 있어~"


그러나 규빈이는 내 말은 들은 체 만 체 하고 내 멱살을 붙잡고 헤엄치기 시작했다. 이놈은 내가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알지도 못하고 막무가내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인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닌데.


"너 좀 더 회복을 해야 돼. 갑자기 움직이면 안 된다고."

"회복 하다가 굶어 죽게 생겼어."


하기야 배가 고프긴 할 것이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기절해 있었으니. 나는 규빈이에게 이끌려 인어령 시가지로 향했다. 그리고 규빈이에게 말했다.


"아직 이무기가 바다에 있어."

"알아. 내가 못 없앴어."


규빈이는 분한 표정이었다. 이무기와 싸우다가 도망친 기억이 남아있는 것 같다. 규빈이로서는 자존심도 상하고 분한 일일 테니 굳이 상기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이 부분은 서로 정확하게 맞춰야 했다.


"인어령을 나가자마자 전속력으로 헤엄쳐 올라가야 돼. 이무기가 우리를 발견하면 끝장이야."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규빈이는 입을 몇 번 삐죽거렸지만 잠자코 있었다. 이무기 몰래 도망치는 것은 싫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무기와 붙어봐야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규빈이가 순순히 말을 들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인어령 입구를 향해 움직였다.


우리가 헤엄쳐 나가는 것을 보며 몇몇 인어들은 손을 흔들기도 하고, '정신을 차렸네', '다행이다' 하며 말하는 소리도 들렸다. 물론 우리를 마뜩찮게 쳐다보는 인어도 많이 있었지만 말이다.


이제 인어령 입구에 다다랐다. 거대한 산호들이 경계를 표시하는 울타리처럼 군데군데 자라고 있다. 산호를 지나기 전에, 나는 뒤를 돌아 두 팔을 넓게 벌렸다.


"뭐 해?"

"치유결계를 쳐주기로 약속했거든."


규빈이의 물음에 대답하고서 나는 인어령 안으로 결계를 발산했다. 연분홍색 불빛이 물속으로 흘러들어가 인어령을 물들였다. 이 결계가 인어들의 몸에 닿으면 치유의 역할을 할 것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결계를 만들어 인어들에게 보낸 뒤 규빈이에게 말했다.


"이제 돌아가자."


이제 집으로 간다. 모든 것이 성공적이었다. 나와 소원이, 이나린 셋 다 무사하고, 규빈이도 살아있었다.


이 얼마나 훌륭한 결말인가. 아직 이무기가 바다에 있긴 하지만 어른들이 나섰으니 없애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나는 모국에의 착륙을 앞둔 여행자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헤엄쳐 올라갔다. 이제 이 고단한 여정도 끝이다. 상대도 안 되는 거대한 괴물과의 싸움이 이 바다만 빠져나가면 종료된다.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내어 전속력으로 몸을 움직였다. 바다의 차가운 온도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몸은 한계에 다다랐다. 육지로 올라가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바로 잠을 청할 것이다.


심해의 인어령에서부터 육지까지의 거리는 상당하지만, 부지런히 헤엄친 덕에 규빈이와 나는 이무기와 마주치는 일 없이 뭍으로 올라왔다.


"푸하!"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어 공기를 들이마셨다. 시원한 밤바람이 콧속으로 들이닥치니 상쾌했다. 물속에서 호흡이 어려운 건 아니지만 물 밖만큼 시원스럽지는 못하다.


나는 심호흡을 반복하며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과 집에 도착한 행복을 몇 번이고 누렸다.


바닷속에 있는 동안 시간이 꽤 지났는지 벌써 한밤중이다. 깜깜한 주위를 둘러보며 나와 규빈이는 육지로 뛰어 올라갔다. 땅을 밟자마자 집으로 달리려고 한 나는, 몇 걸음도 떼지 못하고 멈추어야 했다.


"너희가 왜 여기 있어!!"


항구에 소원이와 이나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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