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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신백일홍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민창
작품등록일 :
2021.03.03 11:43
최근연재일 :
2021.04.21 08:05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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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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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글자수 :
111,895

작성
21.03.2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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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신백일홍전 07

DUMMY

어머니에 대한 나의 기억은 우리집 마당에서 시작한다. 햇살이 따뜻한 봄날, 어머니는 마당에서 나를 안고 있다.


마당을 천천히 산책하며 직접 키우신 화초들을 나에게 보여주고, 손에 쥐어준다.


어린 나는 어머니의 품에서 신나게 웃는다. 저곳에 있는 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이 평온하고 기쁘다.


그러다가 어머니는 아버지를 부른다.


"명호아빠? 벌써 왔어요?"


그러면 나는 어머니에게 소리친다.


'어머니, 저건 아버지가 아니라 괴물이에요!'


그러나 어머니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어린 나 또한 눈만 껌뻑일 뿐이다.


소리치는 내 음성은 소리가 되지 못하고 허공에 흩뿌려진다.


'어머니!! 문을 열어주면 안 돼요!!!!'


살아오는 동안 이 장면은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제발! 저건 아버지 흉내를 내는 흑호예요!!'


그리고 언제나 어머니는 내 외침과 상관없이 문을 열기 위해 걸어가고,


"!!"


문을 연 순간,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굳어버린다.


마당으로 두 눈이 횃불처럼 빛나는 검은 호랑이가 들어온다. 그리고 어머니는 어린 나를 꽉 끌어안고 뒷걸음질친다.


보통 괴물은 탁한 에너지를 꺼리므로 사람이 사는 마을로 내려오지 않지만 고성은 괴물이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에너지가 깨끗하다.


그리고 괴물들은 깨끗한 혼을 가진 인간을 찾아 먹는다.


흑호는 어머니의 혼이 깨끗하다는 것을 바로 알았다. 먹이를 찾은 맹수는 어머니와의 간격을 서서히 줄여갔다.


어머니도 흑호의 생각을 읽었던 것 같다. 갑자기 몸을 휙 돌려 집으로 뛰어간다.


온 힘을 다해 달린 어머니는 나를 안고 집 안에 들어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문을 닫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는다.


현관문 아래에 틈새가 있다. 어머니가 흑호에게 한쪽 발목을 물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를 꽉 악물뿐이다.


'살려달라고 외쳐요! 소리를 질러요! 어머니!!'


아무리 애원해도 어머니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비명은커녕 앓는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나를 천천히 현관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명호야 잠깐 여기서 놀고 있어. 알았지?"


언제나처럼 평온하고 다정하게. 미소를 띠고서.


곧이어 현관문이 닫히며 어머니는 사라진다. 어린 나는 혼자 현관에 앉아 어머니가 사라진 문을 멀뚱멀뚱 쳐다본다.


그것이 마지막이다.


그 이후로 나는 어머니를 본 적이 없다.


비명을 지르지 그랬어요 어머니. 살려달라고 소리를 치셨어야죠.


그러면 옆집이든 앞집이든 뒷집이든, 어디서 누가됐든 어머니를 구하러 왔을지도 모르는데.


제가 놀랄까봐 그러셨나요.


제가 겁을 먹을까봐 그러셨나요.


그때의 저는 너무 어려서, 어차피 기억도 못 할 텐데.


왜 혼자서 죽어가셨어요.


왜 저에게 웃으셨어요.


왜 제 기억에 이 날이, 이토록 아름답게 남아있게 하셨어요.


현관에 혼자 남은 어린 나는, 옆에 놓인 아무 신발을 집고 놀다가 하품을 몇 번 하고 잠이 든다.


뒤편의 유리창으로 금빛 햇살이 쏟아진다.


더없이 따스하고 조용하던, 언제나와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



잠에서 깬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날의 꿈을 수없이 꾸었지만 늘 이렇게 끝난다. 평화롭기 짝이 없이, 억울할 만큼 조용하게.


그러나 나에게 이것 이상의 악몽은 없다. 눈가에 가득한 눈물을 닦아냈다. 주위가 어둡다. 아직 밤중인 것 같다.


방문 밖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이무기를 저대로 놔둘 수는 없어. 수를 내야 돼.”


아버지는 거실에서 회의를 하는 것 같았다. 이무기가 다시 나타났으니 어떻게 대응할지 얘기하고 있는 걸 거다.


당장 잡으러 간다고 한다면 나도 따라갈 생각이었다. 마침 내일은 일요일이라 학교도 안 간다.


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방문을 조금 열었다. 곧 규빈이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이무기가 노리는 건 인간 여자아이야. 우리가 신경 쓸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다.


“그 아이는 명호랑 규빈이 친구야. 너도 알잖아. 소원이라고.”

“어쨌든 인간이잖아. 우리 일도 아닌데 괜한 짓 하지 말자.”

“왜 우리 일이 아니야? 우리 애들 친구 일인데.”


아버지와 규빈이 어머니는 생각이 달랐다.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자 아버지는 규빈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승언이 너도 그렇게 생각해? 이무기 저대로 둘 거야?”

“그래야지. 신수도 아닌 걸 잡아서 뭐하게. 급이 낮아서 소환수로도 못 쓰는 걸.”

“그게 할 소리야? 규빈이도 이무기한테 당할 뻔했잖아. 오늘은 우리 명호도 위험했어.”

“아니지. 명호는 바다에 나갔기 때문에 당한거야.”

“지금 우리 명호 탓이라는 거야?”

“명호에게도 책임이 있지. 우리가 분명히 주의를 줬었잖아. 바다에 가지 말라고.”

“백승언!”

“기석아. 명호 자잖아.”


언성을 높였던 아버지가 목소리를 낮췄다.


“명호는 소원이가 걱정돼서 바다에 갔던 거야.”

“그것부터가 잘못 됐어. 명호가 바다에서 뭘 할 수 있는데? 가뜩이나 약한 혼혈 아이가.”


‘아무리 애써봤자 혼혈이잖아.’


순간, 오래 전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쳤다.


'이제 곧 순혈 아이들과 격차가 벌어질 거야.'


다시 한 번 목소리가 울렸다. 그날의 기억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우리 명호가 순하긴 해도 약하지 않아.”


아버지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심장이 뜀박질을 해댄다.


“그래도 우리 규빈이나 옆마을 나린이에 비해서 명호는...”

“혼혈이 순혈보다 약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 실제로 명호가 그 둘보다 치유술이 뛰어난 것으로 아는데?”

“치유술을 제외한 모든 것에서 뒤쳐지지.”

“게다가 치유술사는 웬만한 공격술사보다 공격력이 강해. 너도 알잖아.”

“그건 너처럼 충분히 강한 치유술사일 경우의 얘기야. 혼혈인 명호는 아니라고.”


나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방문을 닫았다. 문밖에서 점점 언성이 높아지는 것이 들렸다.


나는 침대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숨이 차다. 이럴 때 바다로 뛰어가면 금방 괜찮아졌는데. 지금은 바다로 갈 수가 없다.


언제나 어머니처럼 나를 감싸주던 바다는, 이무기의 영역이 되었다.


바다가 두렵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달아날 곳이 없다.



***



“이무기 잡으러 안 간대.”


규빈이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 아버지와 규빈이 부모님이 이야기하는 걸 들어서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규빈이네 부모님은 반대, 아버지만 찬성이었으니. 다수결로도 아버지가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어제 부모님들이 하는 얘기를 듣다 잠이 들어버려서, 병문안을 온 규빈이에게 결론을 전해들은 것이다.


아프지도 않은데 자꾸 찾아오겠다고 해서 어이가 없었는데, 이 얘기를 해주려고 온 모양이다.


이무기를 잡으러 가지 않는다면 소원이가 걱정이었다.


“소원이가 걱정이네.”


소원이 부모님은 의사인 우리 아버지에게 소원이의 몽유병 진찰을 부탁했다. 그러나 이미 내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이것이 건강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소원이의 부모님에게 말한 것은 ‘아이가 절대 바다에 나가지 못하게 하세요.’ 라고 경고를 한 것이 전부다.


“옥소원은 걱정 안 해도 돼. 아버지가 걔네 집 주위에 결계를 쳐 놓았다고 했어."

“결계는 깨지기도 하잖아.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그렇다고 이무기를 상대하다간 정체를 들킬 수도 있어. 어쩔 수 없지.”


규빈이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썩 내키는 표정은 아니었다.


물론 규빈이의 말이 맞긴 하다. 반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마을 어른들은 눈에 띄는 일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닷속에서 싸우면 인간들이 어떻게 알아. 밤에 가면 되잖아. 한밤중에 바다 밑을 누가 보겠냐고.”


사람들이 잠든 시간에, 해변도 아닌 바닷속이라면 들킬 위험은 없다. 전투가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이 마을에 반신이 몇 명인데. 힘을 모은다면 이무기 한 마리 상대하는 것은 일도 아닐 텐데.


실제로 어제 바닷가에 훈련을 하러 갔을 때,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었고 말이다.


“어젯밤에 바다 가봤더니 사람 한 명도 없더만!!”


내가 답답함에 언성을 높이자, 규빈이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바다는 왜 간 거냐?”

“뭐?”

“어른들이 위험하다고 말했는데. 왜 바다에 갔었냐고.”


소원이를 위해 뭐라도 해보려고. 나도 너처럼 이무기를 상대로 싸우고 싶어서. 뭐라도 할 수 있게 단련을 하려고.


라고는 죽어도 말할 수 없었던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렸다. 그런 나를 말없이 쳐다보던 규빈이는 툭 말을 뱉었다.


“나 이무기 잡으러 갈 거야.”

“뭐? 니가?”

“응.”


규빈이는 덤덤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내용인가. 나는 기가 찼다.


“안 돼. 너무 위험해.”

“저번에 싸워봐서 알아. 못 이길 상대는 아니었어.”


규빈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이야? 너 혼자 이무기를 상대할 수 있다고?"

"응. 무기만 제대로 챙겨가면 돼."


규빈이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마 무기라는 건 규빈이네 집안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강력한 공격 무기일 것이다.


규빈이네 집안은 워낙 공격술로 유명해서 다른 나라의 반신들도 알고 있을 정도다. 아마 규빈이를 공격술로 당해낼 반신은 몇 없을 것이다.


물론 실력으로 보자면 어른들이 규빈이보다 강하겠지만, 규빈이한테 부족한 것은 테크닉이지 타고난 요력은 어른들을 압도한다.


실제로 저번에 이무기를 맞닥뜨렸을 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규빈이는 우리를 지켜냈고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혼자서 이무기를 상대하러 가는 것은 무모해 보였다.


“그럼 나도 같이 가.”

“아니. 네가 가면 싸우기 힘들어져.”


싸우기 힘들어진다니.


내가 방해가 된다는 건가.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애초에 나도 내가 싸움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고 꺼낸 말은 아니다. 같이 가면 그래도 상처 치료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니 규빈이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쓸모없는 짐짝 취급에 나도 모르게 불편한 티를 내버린 모양이다. 규빈이는 당황하며 말을 수습하려 애썼다.


“아, 너랑 같이 가면 당연히 싸우기 편하지. 다치는 거 걱정 안 하고 싸워도 되니까. 그냥 나는 그...”


규빈이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래, 솔직히 방해 돼."


이 단호한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웠다. 규빈이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를 신경 쓰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같이 가자고 말할 수도 없다. 신경 쓰지 않기로 맹세를 하고 가더라도, 규빈이는 내가 죽든 말든 내버려둘 애가 아니라는 걸 아니까.


나는 더는 같이 가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응, 알았어. 조심히 갔다 와.”

“응, 미안.”


규빈이는 나에게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미안해 할 것도 없는데.


“내가 꼭 쓰러뜨리고 올게.”


저 확신,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 저런 의지는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육체의 강함에서 오는 걸까, 마음의 강함에서 우러나오는 걸까. 아니면 둘 다인가.


둘 중에 어느 것도 갖고 있지 않은 나는 바닷가를 얼쩡이며 연습이나 해보는 것이 겨우였는데, 규빈이는 실전을 위해 깊은 바다로 달려나간다.


이제서야 규빈이가 부채를 가지고 온 것이 눈에 보였다. 구겨진 종이 쇼핑백 안에 하얀 부채가 들어있다.


그것 말고도 집에서 챙겨온 무기가 들어있을 것이다. 정말 마음을 먹고 온 거다. 병문안을 핑계로 나한테 이 얘기를 하러 온 거였다.


부모님한테는 말씀을 드리고 온 걸까. 그러자 규빈이는 내가 부모님 이야기를 꺼내려는 것을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우리 어머니 아버지한테는 비밀로 해 줘. 괜히 걱정하실 거야.”

“응.”

“오늘 농구 연습 하느라 늦는다고 말씀드렸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규빈이는 씨익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내일 학교에서 보자!"


그렇게 바다로 뛰어가는 규빈이의 뒷모습에, 백일홍 설화가 떠올랐다.


처녀를 살리기 위해, 영웅이 바다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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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신백일홍전 13 21.04.05 4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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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신백일홍전 11 21.03.31 4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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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백일홍전 07 21.03.22 85 1 12쪽
7 신백일홍전 06 21.03.21 70 1 12쪽
6 신백일홍전 05 21.03.17 84 1 12쪽
5 신백일홍전 04 21.03.15 79 1 12쪽
4 신백일홍전 03 21.03.14 96 1 12쪽
3 신백일홍전 02 21.03.10 99 1 12쪽
2 신백일홍전 01 21.03.08 13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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