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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신백일홍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민창
작품등록일 :
2021.03.03 11:43
최근연재일 :
2021.04.21 08:05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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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8
추천수 :
22
글자수 :
111,895

작성
21.03.15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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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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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신백일홍전 04

DUMMY

어제 응급실에 들어갔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규빈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등교를 했다.


"괜찮아? 오늘은 집에서 쉬지 그랬어."

"아프지도 않은데 뭐."


규빈이는 별일 아니라는 투로 대답했다. 하지만 요력 폭주는 반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몇 안되는 증상들 중에 하나다.


그런 폭주가 대단치 않은 일이라니. 규빈이가 워낙 체력이 좋아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나랑 소원이가 걱정할까봐 일부러 괜찮은 척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마워. 네 덕분에 살았어."

"나 살자고 싸운 건데 뭐."


규빈이는 낯부끄러운 소리 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질색하는 표정에 나는 더 이상 말하는 것을 관두었다. 하지만,


"규빈아!"


소원이가 뛰어 들어왔다. 인사를 할 겨를도 없는지 후다닥 달려온 소원이는 규빈이 앞에서 거의 주저앉을 뻔했다.


책상을 붙들고 겨우 서서 한숨을 쉬며 안도하는데, 거기다 대고 규빈이는 너는 왜 오버를 하냐며 타박을 했다.


그래도 소원이는 그저 웃으면서 규빈이에게 몇 번이나 괜찮냐고 물었다.


"진짜 괜찮은 거지?"

"응, 괜찮으니까 학교 왔지."

"너무 다행이다."

"너야말로 괜찮냐? 바람에 다치지 않았어?"

"멀쩡해."


소원이는 교복 소매를 올려 깨끗한 팔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러자 규빈이는 피곤한 얼굴로 소원이에게 말했다.


"할 말 다 했으면 빨리 너네 반으로 가. 정신 사나워."

"내가 뭘 했다고 그래?"

"우리 반에 없어야 할 게 있는 게 정신 사나워."


규빈이가 평소처럼 소원이를 약올렸다. 그러자 소원이의 입가에 옅게 미소가 보였다. 규빈이를 걱정하느라 내내 심각하던 얼굴이 이제야 폈다.


소원이와 규빈이가 웃고, 평소 같았으면 나도 따라 웃었겠지만 오늘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소원이의 눈은 내내 규빈이에게로 향해 있었고, 규빈이는 건성으로 대꾸하긴 했지만 소원이를 안심시키려는 의도인 게 보였다.


지금 두 사람 사이에서 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되었다.


1교시를 알리는 종이 치자 소원이는 교실로 돌아갔다. 규빈이는 '아, 쟤 때문에 교과서도 못 가져왔네.'하고 투덜대면서 사물함으로 달려갔다.


후다닥 뛰어나가는 규빈이를 보며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생각을 했다.


'내가 규빈이었다면.'


순간 가슴이 두근하고 뛰었다.


'내가 공격술에 뛰어난, 순혈의 반신이었다면."


그랬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오늘 소원이가 나를 보러 달려와 주었을까.



***



규빈이와 나는 어릴 때부터 단짝이었다. 규빈이에게 가장 친한 친구는 나고,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는 규빈이다.


그렇기에 더 잘 알고 있다. 규빈이가 얼마나 뛰어난 반신인지, 또 얼마나 괜찮은 놈인지.


학교에서도 규빈이는 유명하다. 어디에 있어도 눈에 띌 만큼 잘생겼고, 180이 넘는 키에, 공부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평생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고백을 규빈이는 수시로 받는다. 그 때마다 규빈이는 거절하지만 고백은 사람을 바꾸어가며 끝없이 이어진다.


꽤 예쁜 반신 여자애가 고백을 했는데도 망설임 없이 차버리길래 나는 규빈이한테 물어봤던 적이 있다.


'너 좋아하는 사람 있어?'

'아니.'

'그럼 왜 고백 받는 족족 차는 거야?'

'귀찮잖아. 여친 사귀고 만나고 하는 거.'


나는 그때 나도 모르게 '와' 라고 말해버렸고, 조금 후회하고 있다. '나는 고백 한 번 못 받아봤는데 너는 연애가 귀찮아서 안 한다니 정말 대단하네.' 라는 의미가 그 짧은 탄성에 담겨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때 나는 규빈이가 대단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다고 부러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 왜, 갑자기 규빈이처럼 되고 싶었던 걸까.


왜 규빈이가 가진 것들이 부러워졌을까.


"야, 집에 안 가냐?"


규빈이의 목소리에 생각이 끊어졌다. 어느새 담임은 종례를 끝내고 나가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응, 가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나왔다. 규빈이는 하품을 몇 번이나 하면서 약간 피곤해 보였다.


어제 그렇게 크게 다쳤었는데 완벽하게 회복이 되었을 리 없다. 하루 종일 수업을 들었으니 몸이 지쳤을 것이다.


"어디 아픈 데 없어? 무리한 거 아니야?"

"너까지 왜 이래. 괜찮다니까."


그리고서 규빈이는 앞을 보더니 질색을 하며 말했다.


"또, 또! 쟤 또 뛰어온다."


규빈이는 이쪽으로 달려오는 소원이를 보고 있었다. 소원이는 종례가 끝나자마자 우리 반으로 내달렸던 모양이다.


아마 규빈이가 걱정이 되어서 보러오는 것일 텐데, 나는 소원이의 속도 모르고 불평을 하는 규빈이에게 핀잔을 주었다.


"왜 그래. 너 걱정해 주는 건데."

"너무 요란떨잖아."

"귀찮냐?"


내 말에 규빈이는 잠시 대답을 망설이다가 작게 말했다.


"아니."


그 말에 나는 심장이 철렁했다.


"어... 그래."


나는 규빈이의 말에 대충 대꾸를 하고 멍하니 서있었다.


갑자기 심장이 뛴다.


만약 규빈이가 응, 귀찮아. 라고 말했다면 나는 안심했을까.


규빈이가 여자애들의 고백과 연애를 귀찮아했던 듯이, 소원이도 귀찮다고 말하기를 바랐던 걸까.


헐레벌떡 뛰어와 우리 앞에 멈춘 소원이는 규빈이가 아프지 않은지 확인하고, 빨리 쉬어야 한다며 집에 가자고 재촉했다.


그러자 규빈이가 소원이한테 말했다.


"나 오늘 체육관 청소야. 너네 둘이 가."

"청소? 오늘만 다른 애한테 바꿔달라고 하면 안 돼?"

"그런 양아치짓을 할 거 같냐 내가?"

"바꾸는 게 무슨 양아치야."


소원이가 중얼거리는 말에 규빈이는 대답도 안 하고 체육관으로 뛰어 내려갔다.


"아, 명호야."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소원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규빈이가 없어지고 나서야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식물동아리 생각 해봤어?"


식물동아리. 맞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다.


"미안, 겨를이 없었어."

"하긴. 그랬겠구나."


소원이는 멋쩍게 웃고서 말했다.


"오늘 생물 선생님한테 허락 받았어. 담당 해주신대. 이제 부원만 모으면 승인을 받을 수 있어."

"네가 하자고 하면 다들 할 거야."

"글쎄. 생각보다 식물에 관심있는 애들이 없어."


아무래도 그럴 것이다. 화초를 키우고 식물을 구경하는 게 그리 신나는 작업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애들한테 식물동아리는 거의 독서부 수준의 따분한 활동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대부분 이미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으니 모집이 더 어려울 것이다.


"이번 주 안으로 부원 모집을 시작해야 될 텐데 걱정이야."


승인을 받지 못한 동아리는 부원 모집 홍보를 할 수가 없다. 부원 한 명을 모아 빨리 승인을 받지 않으면, 1학년 부원이 한 명도 없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소원이는 내가 하루라도 빨리 동아리에 들어와 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소원이가 식물동아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식물동아리의 부장이 되는 것이 싫다.


"그러게. 동아리 가입은 3월 안에 거의 다 할 테니까."


끝내 나는 대답을 피했다.


이대로 내가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소원이는 나에게 실망할까.


하지만 뭐, 상관없다. 소원이는 인간이다. 어차피 나는 소원이와 맺어질 수 없다.



***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전에 없이 무거운 피로감이 있었다.


이무기가 나타났고, 소원이와 규빈이가 서로 좋아하는 것 같다. 식물 동아리는 또 어떻게 하면 좋지.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하나씩 정리를 해보자면,


먼저 이무기.


어른들은 이무기를 가만히 내버려 두라는 입장이었다. 일단 상황을 지켜본 뒤 다시 출현한다면 그때 대응을 하자는 것이다.


"차라리 용이었으면 잡았으려나."


만약 용이었으면 벌써 달려가서 붙잡았을 것이다. 신수는 잡아서 소환수로 부리니까. 하지만 이무기는 격이 떨어지는 괴물이라 소환수로 만들 생각도 하지 않는다.


쓸 데도 없는 괴물을 괜히 잡으러 나갔다가 사람들 눈에 띄기라도 하면 곤란해질 테니, 불필요한 행동은 하지 말자는 얘기다.


다만 바다 근처에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셨다.


그 다음, 소원이와 규빈이.


사실 두 사람이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반신들은 인간과 결혼하는 일이 거의 없다.


우리 아버지가 조금 특수한 케이스다. 그래서 내가 혼혈이라고 불리는 것이고. 혼혈 반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반신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그러니 순혈 반신인 규빈이가, 굳이 인간인 소원이와 만나려고 할 리 없다.


게다가 애초에 규빈이는 연애에 관심이 없다. 반신 여자애들도 차버리는데 인간인 소원이와 사귀겠는가.


몇 번을 생각해도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는데도, 나는 끊임없이 생각을 거듭하고 있었다.


소원이랑 규빈이가 사귀지 않을 이유를 백 가지쯤 생각해 내야 만족할 것처럼.


"소원이는 나랑 더 먼저 친해졌는데."


사실 소원이는 규빈이보다 나랑 먼저 어울렸다.


매일 같이 바다에 가서 식물을 관찰하고, 소원이가 우리 집에 놀러와서 화초를 구경하기도 했다.


우리는 둘 다 내성적이고 관심사도 같아서 금방 친구가 되었다.


소원이가 규빈이랑 친해진 건 나 때문이다. 내가 규빈이랑 친해서 셋이 어울리게 된 건데.


소원이는 나랑 더 친했단 말이야.


“아악 진짜!”


나는 괴성을 지르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왜 이런 찌질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중학교 때부터 셋이 함께 지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인데.


어제 이무기를 막은 게 나였다면.


소원이를 구해주고 멋진 모습을 보여준 것이 규빈이가 아닌 나였다면.


그랬으면 뭔가 바뀌었을까.


나는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그렇게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그런 것은 규빈이 같은 애나 가능한 것이다. 순혈 반신으로서 능력, 멘탈, 육체, 그 모든 것이 월등한 존재니까.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규빈이가 부러웠던 적 없다. 그냥 규빈이는 나와 다른 운명을 타고난 놈이라고 생각했다. 태어날 때부터 리더이며, 천재인. 나 같은 놈과는 다른 세상 사람이라고.


열등감이나 부러움도 비슷한 수준의 상대한테나 느끼는 감정이다. 연필 한 자루 갖는 게 소원인 어린아이가 필기구 공장을 가진 사업가를 부러워하겠는가.


그런데 왜 나는 지금 규빈이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걸까.


어째서. 이제 와서.


'삐리리-!'

"아 깜짝이야!"


전화가 왔다. 규빈이다. 나는 잠깐 놀란 숨을 내쉬고 전화를 받았다.


“왜?”

'옥소원하고 같이 집에 갔냐?'

“응.”

'잘됐네. 근데 너 왜 식물동아리는 가입을 안 하는 거야?'

“아... 생각 좀 해보려고.”

'네가 밍기적대니까 옥소원이 나한테 너 설득해달라고 부탁하잖아. 귀찮으니까 그냥 가입해 줘라.'


소원이가 규빈이한테 이야기를 했나 보다.


"소원이한테 전화왔었어?"

'어, 방금.'

"그렇구나."

'야! 가입...'


나는 규빈이가 말하는 것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가슴이 답답해져 더 이상 규빈이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나보다 훨씬 잘난 걸 알면서도 지금까지 한 번도 질투한 적 없는데.


지금은 대하는 것이 너무 괴롭다.


달라진 것은 하나.


소원이였다.


규빈이가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그 상대가 소원이가 아니라서 괜찮았던 거다.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나는 언제나 규빈이가 부러웠다. 하지만 끊임없이 아니라고 나를 설득했던 거다.


어차피 나에겐 필요 없어, 나랑은 다른 세상 사람이야, 타고나길 다르게 태어났어.


온갖 이유를 들며 규빈이를 신경 안 쓰는 척 나를 속였다.


규빈이가 가진 건 나에게 필요 없다고, 나는 규빈이처럼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나를 설득할 수 없다.


나 자신에게, 난 소원이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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