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신백일홍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민창
작품등록일 :
2021.03.03 11:43
최근연재일 :
2021.04.21 08:0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497
추천수 :
22
글자수 :
111,895

작성
21.04.07 12:25
조회
65
추천
1
글자
12쪽

신백일홍전 14

DUMMY

항구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장창은 창끝이 다 부서진 상태로 바닥에 꽂혀있고, 이나린은 그 옆에 쓰러져 있었다.


그 와중에 소원이는 바다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원이가 바다로 달려들 때마다 창 주위에 펼쳐진 방어막이 소원이를 튕겨냈다.


그러면 소원이는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다시 일어나서 돌진하는 것이었다. 몇 번을 튕겨서 쓰러졌는지 옷이 다 헤졌다.


“소원아!”


나는 달려가서 소원이를 붙잡고 눈을 확인했다.


그때처럼 검다.


혼자 바다로 걸어나갔던 그때처럼 흰자위가 없이 새카맣다. 최면에 걸린 것이다.


"규빈아! 소원이 좀 막아봐!"


내 말에 규빈이가 와서 소원이를 붙잡았고, 나는 이나린에게 달려갔다.


“이나린, 정신 차려!”


어깨를 흔들어 깨웠지만 이나린은 눈을 뜨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내가 쳐놓고 간 치유 결계 덕분에 상처는 없었다.


하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 각성을 시켜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까 한 번 각성시켜서 깨웠기 때문에 몸에 무리가 갔을 것이다.


정신력도 체력도 전부 소모되었다. 이제 억지로 몸을 움직이게 할 수는 없어 보인다. 나는 답답해서 소리쳤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바다에 잡혀 들어온 사람이 없다고 해서 무사한 줄 알았는데. 전투는 바닷속이 아니라 육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바다에 빠지고 난 뒤, 두 사람이 이무기를 상대했던 건 분명하다. 그 과정에서 이나린은 공격을 당했고, 소원이는 이무기에게 홀린 것이다.


둘 중에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나린이 정신을 잃으면서, 마지막으로 창에 방어막을 쳐 놓은 것 같다. 소원이가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저 창이 없었으면 소원이는 벌써 바다에 빠졌을 것이다. 지금도 소원이는 지치지도 않고 규빈이의 손을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그때 규빈이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명호야! 치유가 안 들어!”

“뭐??”

“치유술을 써도 최면이 안 풀린다고! 니가 와서 좀 해 봐!”

“치유가 안 통한다고...”


그렇다는 말은...


나는 등 뒤가 오싹해지며 소원이가 달려가려 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넘실대는 밤바다뿐이지만 저 안에 있다.


멀지 않은 곳에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무기가 최면을 계속하며 소원이를 부르고 있다. 기다리는 것이다. 소원이가 바다로 들어올 때까지.


예언술사의 창이, 힘을 다 하고 산산조각이 나면.


처녀를 붙잡고 있는 방어막이 사라진다는 것을 이무기는 알고 있다.


그때, 창이 부들거리며 떨리기 시작했다. 홀로 끝까지 버텨낸 무기가, 가문의 아이를 지켜줄 아군이 왔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요력에 한계가 온 창은 결국 산산조각이 나며 부서졌다. 몇 번이나 우리를 보호해 준 궁극의 무기는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이것은 우리들을 바다로부터, 아니, 이무기로부터 보호해주는 방어선이 없어져 버렸음을 뜻한다.


“바다를 조심해!”


나는 규빈이에게 소리쳤고, 그것과 거의 동시에, 이무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방어막이 사라진 것을 알아챈 것이다.


“빌어먹을!”


규빈이가 이무기를 보며 욕을 뱉었다. 욕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까스로 이무기의 눈을 피해 바다를 탈출했는데 여기에서 정면으로 맞부딪힐 일인가.


이나린은 의식이 없고, 규빈이는 부상이 큰 데다가 남은 요력은커녕 서있을 기운도 없다. 그나마 상황이 괜찮은 게 둘보다 약한 나라는 게 비극이다.


나는 달려가서 소원이를 붙잡고 규빈이에게 말했다.


"내가 소원이 잡고 있을 테니까 너는 이나린 데리고 가. 마을로 가서 사람들을 불러 와."

"뭐?"

“아마 어른들은 집에 없을 거야. 너를 찾으러 나갔거든. 어른들은 없어도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형들은 있을 테니까.”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나 혼자 가라고?!”


규빈이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나는 말귀를 못 알아 듣는 규빈이가 답답해서 언성을 높였다.


"안 그럼 어쩔 건데. 그 상태로 이무기랑 붙기라도 할 거야?"

"너도 같이 가!"

"소원이 혼자 놓고 어떻게 가! 이무기 때문에 최면도 안 풀린다고!"

"그냥 기절 시키면 돼!"


어, 이건. 생각해본 적 없는 방법이다. 나는 소원이에게 공격을 한다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


규빈이는 소원이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공격술을 시전했다. 만약 이게 성공하기만 한다면 소원이를 업고 뛸 수가 있다. 하지만,


“제발! 제발 좀!!”


규빈이가 몇 번을 공격해도 소원이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


"소용없는 짓이다."


이무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처녀의 의식은 나의 의식이니, 나를 쓰러뜨리지 않는 한 처녀는 쓰러지지 않아.”


이무기의 최면이 진행되고 있을 때는 이무기가 의식을 지배한 상태. 그래서 그 어떤 요력도 먹히지 않는 것이다. 치유술이든 공격술이든.


소원이를 여기에서 데려갈 방법은 없다. 나는 규빈이를 재촉했다.


"빨리 가서 사람들 불러와!"


규빈이는 나와 이무기를 번갈아보며 거친 욕을 몇 번 내뱉었다. 그리고는 부채를 꺼내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러자 나와 소원이 곁으로 방어막이 펼쳐졌다.


얘는 진짜 미친놈이다. 도대체 어디에 이런 요력이 남아있던 걸까.


이무기와 싸우느라 도력을 전부 짜낸 데다가 하루를 꼬박 굶었고 몸 속 장기는 만신창이인데. 남은 요력을 긁고 긁어서 방어막을 쳐낸 것이다. 규빈이는 이를 악물고서 말했다.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리고는 이나린에게로 달려갔다. 이무기가 서서히 가까워진다. 나는 규빈이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을 졸였다. 이무기가 해안에 다다르기 전에, 그 전에 이무기의 시야를 벗어나야 한다.


"명이 길구나."


뒤에서 들려온 이무기의 목소리에, 뒷목에 소름이 싸악 돋았다.


나에게 한 말인지, 규빈이에게 한 말인지, 아니면 우리 둘에게 한 말인지 모르겠다. 우리 둘 다 이무기에게 죽을 뻔했으니 말이다.


목소리는 더없이 평온하고 여유로웠다. 너희 같은 어린애는 다시 살아 돌아온다 한들 전혀 위협이 안 된다는 듯이. 한 번 더 없애버리면 그만이라는 듯이.


누구를 노리고 있는 건가. 나인가, 규빈이인가.


그때, 귓가에 예리한 폭풍이 스쳐지나갔다. 갑작스레 꽂힌 칼바람은 빛처럼 빨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바람칼이 스치고 간 방어막의 가장자리에 균열이 생겼다. 운이 좋았다. 공격이 약간 빗나간 덕분에 나도 소원이도 다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무기는 규빈이가 아닌 나를 노렸던 것 같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는데,


"규빈아!"


규빈이가 이나린 옆에 쓰러져 있었다. 공격은 빗나간 것이 아니었다. 이무기는 처음부터 규빈이를 노렸다.


나는 소원이 때문에 달려가지도 못하고 규빈이를 부르고만 있어야 했다. 이무기가 가까워지자 소원이의 힘은 더 세졌다. 이러다 나도 같이 바다로 빠져버릴 것 같았다.


“운이 좋은 아이네. 용케 살아 돌아왔어.”


이무기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대꾸할 정신도 없었다. 규빈이가 쓰러지면서 실낱같은 희망까지 사라져 버렸다.


이무기는 길다란 목을 늘어뜨려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무기가 가까이 오자 소원이는 몸부림을 멈추었고, 이무기는 목을 길게 뺀 채 소원이를 바라보았다.


"가까이 오지 마! 소원이는 안 돼!!"


나는 소원이의 앞을 막으며 검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이무기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비켜라.”

"절대 못 비켜."

“어리석구나. 나와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무기는 새카만 눈을 부라리며 나를 협박했다.  눈동자가 없는 칠흑 같은 눈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했다. 


이러다 정신까지 무너지게 될 것 같아 이무기의 눈을 피했다. 나는 이무기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검만 세게 그러쥐었다.


“처녀를 내놓는다면 목숨만은 살려 주지.”

“웃기지 마!!”


소리를 빽빽 지르며 저항하고 있지만, 이무기에게 있어 나는 바닥을 기어가는 개미 한마리만도 못한 존재일 것이다. 손가락 하나만 살짝 움직여도 숨을 끊어버릴 수 있는...


어, 그런데 왜.


왜 공격을 안 하지?


나는 이무기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무기는 나를 노려보며 가소롭다느니 주제를 모른다느니 위협하는 말을 계속 했다.


기이한 일이었다. 그냥 죽여버리면 그만 아닌가?


나는 지칠 대로 지쳤고 규빈이가 쳐 준 방어막도 귀퉁이가 깨졌다. 바람칼 한 번이면 끝낼 수 있을 텐데.


어째서 나를 공격하지 않고 불만스럽게 주절거리고만 있는 건가. 방금 전 규빈이를 공격할 때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으면서.


‘처녀에게는 볼일이 있지.’


순간 이무기가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소원이. 이무기는 소원이에게 뭔가 용건이 있는 것이다.


나를 공격하면 소원이가 다칠 수 있기 때문에 건드리지 못한 거다. 규빈이가 소원이 곁을 떠나자마자 바람칼을 맞은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소원이를 먹으려는 게 아닌 거야...”


이무기가 자꾸 소원이를 바다로 불러내는 이유는 먹이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괴물은 맑은 영혼을 가진 인간을 좋아하니까.


어차피 먹을 것이라면 죽든 살든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무기는 소원이에게 뭔가 다른 것을 바라고 있다.


그래서 이무기는 소원이가 다치거나 죽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원이가 이무기의 약점인 것 같다. 이무기는 소원이를 공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소원이 곁에 붙어 있으면 안전하다는 뜻이다.


이렇게 동이 틀 때까지 버틴다면 희망은 있다. 아침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항구로 나올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규빈이와 이나린의 상태가 걱정이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군.”


이무기가 말했다. 나는 지지 않고 받아쳤다.


"쓸데없는 생각이라니. 맞잖아? 너는 날 공격하지 못해. 내가 소원이와 같이 있는 한.”

“틀린 말은 아니지.”


예상외로 이무기는 그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지금 네 행동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이무기의 말투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내가 약점을 간파해냈는데도, 조금도 당황하거나 흥분한 느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그런 이무기의 태도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니. 이무기는 내가 나중에 후회할 것임을 확신하듯 묻고 있었다.


"후회는 무슨! 곧 해가 뜨면 너도 어쩌지 못할걸?"


이무기는 대답 없이 나를 응시했다. 아니, 소원이를 응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일 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몇 시쯤 되었을까. 손목시계는 물에 빠졌을 때 망가진 지 오래다. 밤하늘에 구름이 가득해 달의 그림자도 보이질 않는다. 이 막막한 어둠이 언제쯤 가실까.


그리도 쉽게 오던 아침이 오늘은 왜 이렇게 더딘지 모르겠다. 이무기의 최면에 걸려 검게 변한 소원이의 눈은 멍하니 이무기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바닷속으로 뛰어들려 하지는 않는다. 소원이의 발은 바다를 향해 걷다가, 도로 뒷걸음질친다. 이것이 몇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나는 소원이가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손목을 꽉 잡고, 다른 손으로는 검으로 이무기를 겨누었다.


팽팽한 대치 상태라고 생각했다. 이무기도 나를 어쩌지 못하고, 나도 이무기를 어쩌지 못하는.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알았다.


소원이의 눈빛이 새빨갛게 변했다. 피처럼 붉은 안광을 보며 내가 비명조차 못 지르고 있을 때, 소원이는 날렵하게 움직여 내가 들고 있던 검을 빼앗았다.


소원이가 나에게 칼날을 겨누었다.


나는 이무기가 쳐 놓은 덫에 완전히 걸려버린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신백일홍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신백일홍전 20 (완결) 21.04.21 55 1 8쪽
20 신백일홍전 19 21.04.19 38 1 14쪽
19 신백일홍전 18 21.04.18 38 1 13쪽
18 신백일홍전 17 21.04.14 41 1 12쪽
17 신백일홍전 16 21.04.12 37 1 12쪽
16 신백일홍전 15 21.04.11 39 1 12쪽
» 신백일홍전 14 21.04.07 66 1 12쪽
14 신백일홍전 13 21.04.05 40 1 12쪽
13 신백일홍전 12 21.04.04 40 1 12쪽
12 신백일홍전 11 21.03.31 42 1 12쪽
11 신백일홍전 10 21.03.29 43 1 12쪽
10 신백일홍전 09 21.03.28 46 1 12쪽
9 신백일홍전 08 21.03.24 68 1 13쪽
8 신백일홍전 07 21.03.22 85 1 12쪽
7 신백일홍전 06 21.03.21 70 1 12쪽
6 신백일홍전 05 21.03.17 84 1 12쪽
5 신백일홍전 04 21.03.15 79 1 12쪽
4 신백일홍전 03 21.03.14 97 1 12쪽
3 신백일홍전 02 21.03.10 99 1 12쪽
2 신백일홍전 01 21.03.08 131 1 12쪽
1 프롤로그 +1 21.03.08 260 2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