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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신백일홍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민창
작품등록일 :
2021.03.03 11:43
최근연재일 :
2021.04.21 08:0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502
추천수 :
22
글자수 :
111,895

작성
21.04.12 10:05
조회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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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신백일홍전 16

DUMMY

물의 흐름을 바꾸는 장애물이 점차 가까이 느껴졌다. 나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목표물을 겨누기 위해 눈을 뜨자 이무기의 꼬리가 보였다. 단단하고 검은 피부는 마침 움직임이 없었다. 아마도 나의 위치를 찾고 있을 것이다.


이무기가 나를 발견하기 전에 끝내야 한다. 나는 검을 번쩍 들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내리꽂았다.


"이런!"


역시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칼날은 이무기의 피부를 찢어내지 못했다.


두꺼운 비늘에 검이 단단히 박혀버렸고, 이무기는 내가 꼬리 부근에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무기의 꼬리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나는 꼬리에 박힌 검을 힘껏 쥐고서 놓지 않았다. 롤러코스터와 다름없이 오르락내리락 펄럭이는 몸을 두 팔에 의존해 버텼다.


그리고 이것이 유효한 것 같았다. 이무기가 꼬리를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내가 찔러넣은 상처가 벌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힘을 주어 찔러넣었다. 검이 파고들수록 이무기는 거세게 저항했고, 그럴수록 칼날은 깊이 들어갔다.


몸부림칠수록 더 깊이, 들썩일수록 더 깊이.


나는 논물에 사는 찰거머리마냥 이무기의 꼬리에 달라붙어 있었다. 피를 보기 전까지 떨어질 생각이 없다는 것까지 거머리와 같았다.


이무기는 그런 내가 성가신지 짜증을 냈다.


"떨어져. 의미 없는 저항이다!"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두고 봐야 알지.


나는 이무기가 뭐라고 지껄이든 강철 같은 피부를 뚫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때,


꼬리에 꽂아 넣은 칼날에 붉은 피가 새어나왔다. 됐다! 내가 마음속으로 외치는 순간 이무기가 말했다.


"그깟 꼬리는 잘려나가 봤자다. 금세 다시 자라지."


그래, 이무기는 거의 신수에 버금가는 최상급 괴물이다. 자가치유 속도가 빠를 것이다. 하지만,


"이것까지 실패하면 나는 반신 그만둬야 돼."


공격술, 예언술, 모든 것이 형편없지만 유일하게 남들만큼 하는 치유술.


지금부터 이 치유술을 변형한 공격을 시전한다. 이무기 체내의 세포를 이루는 원자들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결합할 것이다.


원자 재배열 속도가 이무기의 자가치유 속도를 앞질러야 한다. 그래야만 이무기 체내의 조직 구조를 파괴할 수 있다.


나는 간신히 파고든 상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치유를 시작했다.


수천 번을 연습하고 실습한 치유술이다. 하지만 언제나 해왔던 것과 다른 배열을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가장 위험한 방식으로 분자들을 결합시켰다.


수소들끼리 묶고, 체외 탄소를 끌어당겨 혈액 속에 박아 넣는 식으로 말이다. 이무기의 자가치유 기전은 이 파괴적인 결합을 견뎌내지 못했다.


육신의 말미로부터 시작된 이상 현상을 이무기도 느낀 것 같았다. 이무기는 꼬리에 고통을 느끼는지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나의 치유술, 아니 역치유술은 이미 제대로 꽂혀들었다. 나는 이무기의 꼬리에서 검을 뽑아내어 높이 뛰어올랐다.


검을 뽑는 순간 피가 솟구쳤고, 체외 원소들과 결합한 혈액은 분자의 재결합을 가속시키는 촉매가 되었다. 흐르는 피를 타고 온갖 원소들이 이무기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크아아아아아악!!"


몸을 이루는 공식이 완전히 깨져버린 이무기는 고통스럽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비명에 나는 귀를 틀어막았다.


이무기의 몸이 꼬리에서부터 녹아내리는 것이 육안으로도 보였다. 말도 안 돼. 치유술이 이렇게나 위험한 요술이었나.


나는 내가 하고서도 믿기지 않는 광경을 바라보며 부두에 착지했다.


밧줄에 묶인 소원이는 미약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움직인 탓에 체력이 옛적에 바닥났을 것이다.


이제 그만 이 저주에서 소원이를 구해야 한다. 나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이무기에게 소리쳤다.


"살고 싶으면 소원이에게 건 최면을 풀어!"


이무기는 나에게 대답을 할 정신도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상태로 놔두면 앞으로 1분 안에 몸이 산산조각 날 것이다.


흔적도 없이 해체되어 바다에 흩어진다. 이미 역치유는 이무기의 눈까지 진행되었다. 나는 다시 이무기에게  외쳤다.


"풀어! 최면을 풀라고!"


그 순간, 소원이가 고개를 크게 들썩이더니 축 늘어졌다. 나는 소원이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얼마 후 눈을 뜬 소원이는 예전과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서 소원이의 몸을 묶고 있던 밧줄을 다시 부채로 바꾸어 손에 쥐었다.


이제 됐다는 생각에 힘이 쭉 빠졌다. 그리고 나의 집중력이 흐트러짐과 함께 이무기의 몸에서 진행되던 분자 재배열도 멈추었다.


그러면 이무기가 자가치유를 시작할 것임을 알고 있지만, 나도 한계에 다다라서 더는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대로 땅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명호야, 괜찮아?"


소원이 목소리가 들렸다. 소원이는 내 옆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일어날 기운이 없어 누운 채로 대답했다.


"난 아무렇지도 않아. 소원이 너야말로 괜찮아?"

"미안해 명호야. 내가 너를 칼로 찔렀어. 내 몸이 멋대로 움직여서... 정말 미안해."


역시 그때, 소원이의 의식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소원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나에게 사과를 했다. 나는 얼른 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뭐가 미안해. 이무기 때문인데."


이무기의 최면 때문에 그랬던 거라고, 이제 최면이 풀렸으니 괜찮다고 나는 소원이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이무기를 가리켰다.


"저것 봐. 내가 한 방 먹였어."


실제로 이무기는 내 공격에 무너졌고, 아직까지도 부서진 몸이 회복이 안 되어 공격불능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이무기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아직 저 괴물은 살아있다. 새카만 두 눈도 형체를 알 수 없이 뭉개어졌지만 나를 노려보는 느낌마저 들었다.


육체는 산산조각 났을지언정 의식은 멀쩡하다. 곧 자가치유가 끝나면 다시 나를 공격할 텐데. 어떻게든 그 전까지 요력을 회복해야 한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요력이 손에 맴돌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삼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변한 것이 없다."


그때 이무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각난 몸을 치유하느라 바쁠 텐데 무슨 정신으로 시비를 거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이무기와 대화를 하는 데 정신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아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무기는 혼자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인간을 홀려 바다로 데려올 때마다, 남은 인간들은 나를 죽이겠다며 바다로 나왔지. 죽은 인간이 자기 새끼도 아닌데 제 일처럼 나섰단 말이야."


이무기의 목소리는 흔들리고 있었다. 저쪽도 절대 맘 편히 수다를 떨고 있을 상태는 아니라는 거다.


"그렇게 복수를 위해 나를 잡으러 온 인간들은, 모두 죽었다."


본인도 힘든 상황에서 왜 이런 말을 나에게 굳이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인간들은 영리해. 물고기나 새들에 비하면 더없이 탁월하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장 어리석은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뜻 모를 소리에 나는 되물었다. 다 죽어가면서 이런 말을 하는 이유도 모르겠고, 하는 말의 의미도 해석이 안 된다. 내가 반응을 하자 이무기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감정 때문에 생존 본능을 거스르고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는 말이다. 증오와 원한 같은 고등한 감정이, 살려면 도망쳐야 한다는 온몸의 외침을 집어삼키는 거지. 물고기나 새들은 그러지 않거든."

"웃기지 마. 인간은 죽음을 예상하지 못해서 그러는 게 아니야. 알면서도 감수하는 거라고."

"그래서 어리석다는 거야! 죽을 거란 걸 빤히 알면서 생판 남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게!! 자연계에서 오직 인간만이 본능을 거스르지!!  섭리에 순응할 줄을 모르는 자들이야!!"


이무기는 비웃는 투로 한껏 신이 나서 떠들었다. 나는 더는 대꾸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처음부터 말을 섞는 게 아니었는데.


"지금 네 꼴을 봐라."


이무기가 말했다.


"반신이라 다를 줄 알았더니. 인간과 다름없구나."


이 말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그러쥐었다.


"아니면 혹시."


이무기의 목소리는 이제 흔들림 없이 여유로워 보였다. 그러나 내 심장은 빠르게 두근거렸다. 두 손은 바르르 떨린다. 이무기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뇌가 미리 감지하여 온 몸이 반응하는 것 같다.


"사실은 반신이 아니라 인간인 건가?"

"닥쳐!!"


내가 벌떡 일어서자 이무기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나를 응시하였다. 어느새 녹아내렸던 몸의 대부분이 다시 형체를 찾았다.


완전히 멀어버렸던 두 눈 중에 한 쪽이 다시 새카만 늪과 같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헛소리인 줄 알았던 말들은 전부 나를 자극하기 위한 함정이었다. 나를 분노하게 해서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려는, 감정의 동요로 인해 무의미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려는.


그리고 그 전략은 먹혔다.


나는 평정심을 지키지 못하고 이무기에게 완전히 농락당했다.


일그러진 표정과 불규칙하고 거칠어진 호흡. 열등감과 자기비하가 뒤섞여 엉망진창이 된 머릿속. 형편없는 꼬락서니.


반면에 이무기는 완전하게 회복했다.


나는 도무지 요력을 끌어내지 못하는 한심한 손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 누구도 나를 방해하지 못한다. 나는 최강의 신수인 용이 될 몸이다."


완전한 패배.


다 이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끝이 난다.


무엇이 저 괴물을 저토록 강인하게 만드는가.


신수도 아닌데.


아, 신수가 아니기 때문일까.


용이 되기까지 한 발짝.


한 발짝을 남기고 사라질 수 없다는 강렬한 의지. 용이 되지 못한 채로 존재할 수 없다는 악다구니.


이무기로 남아있고 싶지 않다는 정말이지 단순한 욕구.


삼천 년의 시간을 단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며 기다려온 자에게, 고작 육체가 조각나는 고통이 대수겠는가.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애써봤자 혼혈이잖아.'


무엇이 그 강렬한 욕망을 무너뜨리는지.


'그래도 명호보다는 규빈이가 한 수 위잖아.'


무엇이 성장에 대한 욕구를 파멸시키는지.


'이러니까 혼혈 소리를 듣지.'


무엇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지.


'가뜩이나 약한 혼혈 아이가.'


나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 그리고 소원이에게 소리쳤다.


“소원아!! 그때 기억 나?!"


이무기가 소원이를 없애지 못한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이무기에게 소원이는 먹이가 아니었다.


소원이는 이무기가 바다 위로 올라와 가장 처음으로 만난 인간.


나와 규빈이는 반신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이무기에게 필요한 건 괴물과 신수에 대한 분별이 없으며, 이무기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이무기와 어떤 대화도 불가능한 사람.


즉, 순수하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정체성을 결정지어줄 존재.


내가 부르자 소원이가 나를 쳐다봤고, 나는 소원이에게 외쳤다.


"너 저 이무기 처음 보고 했던 말 기억해?”

“뭐?”

“네가 이무기 보고 그랬잖아!”


기억해 내야 한다. 내가 직접 말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내 말을 듣고 그대로 따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소원이가 소원이의 의지로 말해야 한다.


소원이는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 지나가듯 말한 거라 소원이가 기억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이제서야 도감 내용의 의미를 안 것이 원통할 뿐이었다. 그렇게 가볍게 넘길 부분이 아니었는데!


깨달음이 너무 늦었던 걸까. 하고 생각했을 때,


드디어 소원이의 입에서 단어 하나가 떨어졌다.


“뱀..."


그 순간, 이무기의 움직임이 갑자기 정지한 듯 멈추었다. 소원이는 다시 한 번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씩 발음했다.


“뱀이라고 했었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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