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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신백일홍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민창
작품등록일 :
2021.03.03 11:43
최근연재일 :
2021.04.21 08:05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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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4
추천수 :
22
글자수 :
111,895

작성
21.04.19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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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신백일홍전 19

DUMMY

"나쁘지 않군."

    

이무기가 내 말에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는 작은 웃음마저 녹아 있었다.


이무기는 전에 없이 평온해 보였다. 죽음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담담한 태도가 나는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죽음을 앞둔 내가 고통스러워하지 않으니 아니꼬운가?"


이무기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건 아니야."


다만 죽음 앞에 초연한 것이 놀라운 것 뿐.


"내 삶은 끝없는 좌절의 반복이었지. 그것이 마지막을 앞두었으니, 그렇게 나쁜 기분은 아니야."

    

이무기의 삶. 그것은 용이 되기 위한 기약 없는 투쟁이었다.


한 발짝만 더 내딛으면 신수. 이것이 삼천 년간 이무기를 옭아매었던 것 같다. 유일한 삶의 목적은 용이 되는 것. 아마 다른 이무기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무기보다 훨씬 약하고 보잘것없는 괴물들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무엇인가가 되려고 애쓰지 않는다. 인어는 인어로서, 외눈박이는 외눈박이로서 살아간다. 오직 이무기만이 이무기로서 살아가려 하지 않는다.

    

차라리 신수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나았을 것이다. 신수를 제외한 괴물 중 최강의 존재로 당당하게 살아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문제는 이무기는 용과 너무나 닮았고, 용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세상을 떠돈다는 것이었다.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바로 코앞에 그 경지가 보이며, 자신보다 강한 괴물은 손에 꼽는다. 결국 이무기는 괴물도 아니고 신수도 아닌, 애매한 존재로서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히 신수라는 상위 그룹에 속하기를  원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하늘에 닿을 수 없었어. 삼천 년이 넘도록 기다렸는데."

    

닿을 수 없는 곳. 자신의 한계. 이무기는 이제 그것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


아마 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무기 스스로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확인받고 싶어 했다.


자신을 속이기 위해, 이 정도면 됐다고 합리화하기 위해. 인간들에게라도 용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내가 종종 학교에서 요술을 썼던 것처럼.


솔직히 나는 누군가가 봐 주기를 바랐다. 내가 사용하는 요술을 누군가가 알아채고, 나에게 대단하다는 말을 해주기를 기대했다.


결국 나도, 인간들에게 내가 특별한 존재처럼 보이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무기와 다름없이.

    

"이만하면 할 만큼 했어. 죽어도 여한이 없지."

    

이무기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눈을 감았다. 그대로 영원히 잠들어 버릴 것 같아서,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정말 죽어도 상관없어?"

    

내 말에 이무기가 천천히 눈을 떴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으로 잠시 나를 쳐다보고서 말했다.

    

“참으로 간절한 눈빛이군.”

    

이무기가 무엇이라 하든, 나는 이무기의 대답에만 관심이 있었다.


정말 죽어도 상관이 없는 걸까.


지금 모습 그대로 남느니, 차라리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나은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열등감을 지니고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편한가.

    

고작 18년 살아온 게 전부인 나는 답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삼천 년을 살아온 이무기는 답을 알 것이다.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이게 정말 이무기의 진심인가. 아니면 패배를 인정하기 싫어서 원하던 죽음인 척 연기하는 것인가.

    

"나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네 자신에게 묻는 것 같구나."

    

이무기는 또 대답을 피하며 딴소리를 했다. 나는 초조해졌다. 나에게는, 아니, 이무기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무기는 주작에게 맥을 추리지 못한 채 이미 전신에 불이 붙었다.


이제 곧 숨이 끊어질 텐데, 아직 나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지금 나는 이무기가 죽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린 반신이여, 너의 대답은 뭐지?"

"뭐?"

"이루지 못하느니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나?"

    

이무기는 도리어 나에게 질문을 해왔다.


하지만 나는 모른다.


나는 아직 뭔가를 이루려고 해본 적도 없고, 절망과 좌절을 경험한 적도 없다.


삼천 년의 투쟁을 겪어본 적이 없는 나는 저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다.

    

나는 이무기와 같은 치열함 없이 그냥 살아왔을 뿐이기 때문에.

    

나약한 혼혈 반신으로, 만년 2등으로.


"나는 답을 알지 못해."

"왜지?"

"너처럼 최선을 다 해서 살지 않았으니까."


나는 이무기에게 칭찬과 다름없는 말을 했다. 이무기도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나에게 되물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

"나는 순혈처럼 강해지려고 노력해 본 적도 없고, 1등을 해보려고 밤을 새 본 적도 없다고. 너처럼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았단 말이야."


한심하게도 나는 이무기에게 대답을 구걸하고 있었다.


"그래서 실패한 채로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못한 일인지... 나는 답을 알 수가 없어."


내 고백을 들은 이무기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서 천천히 뱉은 말은, 내가 기대한 대답은 아니었다.


"나도 답을 모른다."


그리고서 이무기는 눈을 감으며 읊조렸다.


"다만 삶에 후회가 남지 않았을 뿐..."


후회가 남지 않은 인생.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모조리 쏟아 불사른 삶.


끝내 패배했다고 한들, 이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가.


그에 비해 나는 오늘만 해도 얼마나 후회를 했나. 몸을 더 단련시킬 걸, 요력을 더 연마할 걸, 혼혈이라고 포기하지 말 걸.


이무기는 이런 후회가 전혀 남지 않은 것이다.


나처럼 현실에 안주하며 살지 않았으니까.


삼천 년을 하루같이 용이 되기 위해 싸워왔으니까.


매일 매일을


용이 되기 위해.


어? 잠깐만.


그렇다면 이무기는

    

이무기는 아직.

    

"잠깐만요!"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내가 소리치자 어른들이 공격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갑자기 일어서는 바람에 치유를 멈춘 아버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 휩싸인 이무기를 응시하며 부채를 꺼냈다.

    

그리고 펼친 부채의 끝으로 이무기를 겨누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리 없는 아버지는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명호야, 지배를 하겠다고? 이무기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당황하며 나를 말렸다.

    

"우리 가문의 주작을 이어받아야지, 왜 신수도 아닌 이무기를 지배하려는 거니?“

“저한테 필요해서요.”

    

짧게 대답하고서 나는 요력을 부채에 모았다. 반대하는 아버지의 입장도 이해를 한다. 이무기 정도의 상급 괴물을 부리면서 신수도 지배하려 하면, 신수가 반신을 교만하게 여겨 지배를 거부한다고 들었다.


즉, 아버지의 주작을 내가 갖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무기를 지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원한다면 그렇게 하렴. 하지만 지금은 무리야!"


아버지가 몸을 일으키며 부채를 들고 있는 내 손목을 붙잡았다.


"탁월한 소환술사도 신수급 괴물을 지배하는 건 쉽지 않아. 어린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다."

"이무기는 신수가 아니잖아요."

"그래도 신수에 버금가는 최상급 괴물이야. 게다가 지금 너는 많이 다쳤고."


아버지는 어떻게든 나를 설득하려 했다. 나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순혈 반신인 아버지도 서른 살이 넘어서야 주작을 지배했다고 들었다.


그러니 아직 열여덟밖에 안 된 혼혈 반신인 내가, 부상당한 몸으로  지배 요술을 쓰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무기는 신수가 아니고, 육신이 거의 죽기 직전까지 내몰렸으니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봐야죠."


내가 강경하게 맞서자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내 손목을 놓았다.


그리고 지배를 위한 요력이 부채의 주위를 차츰 에워싸기 시작했을 때, 이무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지배하겠다는 건가?"

“응.”

"반신들은 신수만을 지배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 마음이야.”

    

내가 지배 요술을 시전하려 하자 어른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왜 가문의 신수를 놔두고 괴물 따위를 지배하느냐고 흉을 보는 것이겠지. 혼혈 반신이면 신수라도 갖고 다녀야지 저게 뭐 하는 짓이냐고 혀를 찰 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것은 내가 내린 결정이다. 지금으로서는 이것 이상의 좋은 수가 생각나지 않는다.


지배를 시작하자 내 생각대로 이무기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강력한 치유술 덕분에 꽤 많이 회복이 된 나를, 잿더미와 다름없는 상태의 이무기가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또 한편으로는, 이무기가 나의 지배를 거부하지 않고 순응하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나는 완전히 나에게 굴복한 이무기에게 명했다.

    

"지금 이 때부터, 내가 너의 주인이다."


그 순간, 내 몸이 빛으로 둘러싸이며 이무기의 표식이 각인처럼 나의 팔과 등에 새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으로 이무기는 더 이상 인간들에게 해를 끼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이무기는 나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한다.


지배가 끝나자마자 나는 곧장 이무기에게로 날아갔다. 당황을 감추지 못하는 어른들과 인어들 사이를 지나, 이무기와 마주한 나는 부채를 접어 넣고 두 손을 펼쳤다.


그리고 두 손을 이무기의 이마에 대었다.


그것과 동시에 분홍빛의 치유막이 이무기의 온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치유막은 피부와 근육, 혈관, 장기를 하나씩 치료하며 차근차근 나아갔다.


그러나 뻗어나가는 속도가 빠르지 못하다. 이무기의 몸집이 너무 크고, 상처는 너무 깊다.


내 몸 크기의 열 배는 족히 넘는 상대에게 치유술을 사용하는 건 처음이었다. 사실 내 능력으로 가능할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포기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 한 번 요력을 끌어올렸다.


"그만 해라. 그러다 네가 죽는다."

"너는 살아날 생각이나 해..."

"나는 이미 틀렸어."

"조용히 해..."


집중 안 되게 말 걸지 마. 나는 이를 악물었다. 순간이라도 흐름이 흐트러지면 다 무너질 것이다.


이미 육체는 한계에 다다랐다. 남아있는 모든 요력을 끌어 쓰느라 눈앞이 돌고, 뽑아낸 어마어마한 양의 요력을 견뎌내느라 근육이 찢어질 것 같다.


너무 고통스럽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출 생각은 없다.


"아아아아아악!!"


마지막으로 기합을 넣어 온 힘을 쥐어짰다.


그것과 함께 이무기의 전신이 분홍빛 섬광으로 덮였다.


눈부신 광채 속에서 애꾸가 되었던 이무기의 두 눈이 다시 빛을 되찾았다.


새까맣게 그을렸던 몸도 다시 예전의 강철 같은 비늘로 돌아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꼬리까지 뻗어나간 치유막은 이무기의 피부를 끝까지 복원했다.


"됐다..."


그렇게 모든 요력을 소진한 나는 그대로 바다에 빠져버렸다.


방금 전까지 죽자 사자 싸웠던 이무기를 온 힘을 다해 치료하고 뻗어버린 것이다.


이 얼마나 기가 찬 일인지.


그때, 이무기가 꼬리에 나를 얹어 바다 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나를 살리기 위해 나를 지배한 것인가?"


그래, 솔직히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지배하지 않고 치유했다간 다른 사람들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


“응. 아직 답을 못 들었으니까."


용이 되지 못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은지, 아니면 다른 결론이 날지. 나는 그 답을 들어야겠다.

    

"죽지 말고 더 살아 봐. 그러면 답을 알게 되겠지."

"글쎄. 이 정도면 충분히 산 것 같은데."

“지금까지는 이무기로 살아온 게 아니잖아.”

    

그래서 이무기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못한 것이다.

 

이 괴물은 삼천 년을 살았지만, 용의 가능체로서만 살아왔을 뿐 단 한 순간도 이무기로서 살았던 적이 없다.


바람과 비를 다루는 최상급 괴물로서, 신수에 버금가는 강력한 존재로서 살아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혹시 모르지. 이무기로서의 삶도 나쁘지 않을지도."


물론 나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왜 자기를 살렸느냐는 원망을 듣게 되겠지.


"너는 후회가 남지 않았다고 했지만..."


죽음에 여한이 없었던 이무기를 어찌 보면 내가 억지로 살려 놓은 꼴이 되었지만.


"그래도... 미련은 남지 않았어?"


내 질문에 이무기는 부정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나를 움직여 항구에 내려놓았다. 내가 땅에 서자 이무기가 말했다.


"그럼 대답을 준비해 보도록 하지, 주인이여."


이것을 마지막으로 이무기는 몸을 돌려 바다로 향했다. 인어들과 어른들은 그 모습을 당황스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이무기를 저렇게 살려보내도 되는 건가 하는 눈빛을 서로 교환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나에게 지배당한 이무기를 굳이 공격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이무기는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육지에서 멀어져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나는 졸음이 쏟아져 땅바닥 위에 드러누웠다. 정말이지 기나긴 하루였다.


바다 멀리서 이무기의 목소리가 옅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너의 대답도 기대하겠다."


글쎄. 내가 답을 찾으려면 얼마나 걸릴까.


이무기처럼 삼천 년은 살아봐야 알까.


아마 그만큼 까마득한 미래에나 알 수 있겠지.


하지만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답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은 일단 잠부터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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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신백일홍전 17 21.04.14 41 1 12쪽
17 신백일홍전 16 21.04.12 37 1 12쪽
16 신백일홍전 15 21.04.11 39 1 12쪽
15 신백일홍전 14 21.04.07 65 1 12쪽
14 신백일홍전 13 21.04.05 40 1 12쪽
13 신백일홍전 12 21.04.04 39 1 12쪽
12 신백일홍전 11 21.03.31 42 1 12쪽
11 신백일홍전 10 21.03.29 43 1 12쪽
10 신백일홍전 09 21.03.28 46 1 12쪽
9 신백일홍전 08 21.03.24 68 1 13쪽
8 신백일홍전 07 21.03.22 85 1 12쪽
7 신백일홍전 06 21.03.21 70 1 12쪽
6 신백일홍전 05 21.03.17 84 1 12쪽
5 신백일홍전 04 21.03.15 79 1 12쪽
4 신백일홍전 03 21.03.14 97 1 12쪽
3 신백일홍전 02 21.03.10 99 1 12쪽
2 신백일홍전 01 21.03.08 13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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