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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신백일홍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민창
작품등록일 :
2021.03.03 11:43
최근연재일 :
2021.04.21 08:0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491
추천수 :
22
글자수 :
111,895

작성
21.03.08 20:26
조회
258
추천
2
글자
7쪽

프롤로그

DUMMY

바다에서 공포를 느끼는 것은, 적어도 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에게 바다는 어머니였다. 10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날도, 그리고 어머니를 바다에 보낸 날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내 어머니는 바다에 있다.


의사인 아버지는 일이 바빠서 나를 돌봐줄 여유가 많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머니가 그리웠다.


다행히 집 안에는 어머니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베란다에 가득한 화분에서 나는 어머니를 느꼈다. 어머니는 화초를 좋아하셨다.


아버지는 식물을 기르는 것에 흥미가 없는 편이라,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화초들이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때 나는 시들어가는 화초들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들은 나와 같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갖고있는 동지들이었으니까.


그러나 초등학교도 못 들어간 아이에게 식물 돌보기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화초 키우는 방법에 대해 아버지도, 선생님도 알려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학교를 다녀오면 방 안에 틀어박혀 식물백과나 도감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책에서 알려준 대로 화분들을 가꾸었다.


내가 화분을 돌보게 되자 축 처져있던 화초들이 다시 꼿꼿하게 일어섰다.


동지들을 구한 나는 약간의 뿌듯함과 함께 식물에 대한 애정, 그리고 호기심이 생겼다. 도감 속의 야생 식물들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마침 우리집은 강원도 고성으로, 집을 나서면 코앞에 산과 바다가 있었다.


나는 줄곧 마을 곳곳을 누비며 식물을 관찰하고 다녔다.


그렇게 온갖 나무와 꽃, 풀들과 함께 나의 시간이 흘렀다. 식물이 자라나듯 내 키도 자랐다.


이제 벌써 6학년이다.


“기석이 너는 참 대단해.”


학교에서 돌아오니, 집 안에서 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의 손님이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 이름을 편하게 부르는 것을 보니 아버지 친구가 방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다.


“아무리 애써봤자 혼혈이잖아.”


순간, 나는 문고리를 잡은 그대로 온몸이 굳었다.


“명호를 위해서도 빨리 포기하는 게 나아. 곧 중학생인데, 이제 곧 순혈 아이들과 격차가 벌어질 거야.”


내 이야기를 했다. 누구지. 목소리를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손님은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은 아버지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


인간이 아니라면, 옆집에 사는 규빈이 아버지? 길 건너에 사는 전교회장 형네 아버지? 하지만 누구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차라리 인간으로 살게 하는 편이 명호한테도...”


나는 문에서 손을 떼고, 내가 달릴 수 있는 최고의 빠르기로 집에서 달아났다. 마당을 나와 바람을 타고 밭둑을 달려가면, 내 발은 금세 바다에 닿는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뜀박질을 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혼혈이라는 말 때문이 아니라고, 그냥 숨이 찼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 단어는 매번 불편하고 괴롭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다에 오는 것뿐이다.


바다에는 어머니가 있으니까.


8월의 바다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름이라는 계절의 에너지는 바다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선명한 햇빛과 커다란 파도, 눈이 아플 정도로 새파란 하늘.


해안가를 따라 걸어가면 어머니가 좋아하는 풀꽃들, 아니, 이제는 나도 좋아하게 된 풀꽃들이 있다.


나는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핀 빨간 꽃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그마한 빨간 꽃이 예쁜 풀이다. 이 꽃은 해당화나 코스모스랑도 조금 닮았다. 나는 이름이 궁금해져 책가방에서 식물도감을 꺼냈다.


나는 도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꼼꼼히 살피며 닮은 꽃을 찾기 시작했다.


어제 태풍이 불어서인지 꽃이 많이 다쳐 있었다. 그래서 비슷한 것을 찾기가 더 어렵다.


“너 여기서 혼자 뭐 해?”


갑작스런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도감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땅바닥에 떨어진 책을 집으며 나를 부른 사람을 쳐다보았다.


언제 이렇게 가까이 왔는지, 인기척을 느끼지도 못했다.


"너, 하명호지?"


낯익은 여자애였다. 같은 반인 옥소원이다. 우리학교엔 학급이 하나뿐이라 마을에 사는 동갑내기들은 전부 같은 반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소원이와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다.


소원이는 대답도 못하고 눈만 꿈뻑거리는 나에게 다시 물었다.


"뭐 하고 있었어?"

“이거.”


당황한 나는 관찰하고 있던 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겨우였다.


그러나 제대로 된 문장도 만들지 못하는 나와 달리, 소원이는 정말이지 야무지게 말했다.


“그 풀꽃의 이름은 백일홍이야. 백일동안 꽃이 핀다고 해서 그렇게 불러."

“아하.”


넌 식물에 대해 잘 아는구나, 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내 입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에 소원이가 말했다.


“어제 바람이 세게 불어서 꽃들이 많이 다친 것 같아.”

“응...”

“빨리 다시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소원이의 말을 들은 나는 두 손을 백일홍을 향해 뻗었다.


내가 요술을 부리자 꽃들은 금방 생기를 차리고 아름다움을 뽐냈다.


사실 인간들 앞에서 절대로 써서는 안 된다고 배웠지만, 지금은 왠지 쓰고 싶었다. 아마 이렇게 하면,


“우와!!!”


소원이가 기뻐할 테니까.


소원이는 활짝 웃으며 생기를 되찾은 백일홍을 보았다.


“네가 한 거야? 어떻게 했어?”

“난 아무것도 안 했어.”

“그렇구나. 신기하다.”


내가 대충 얼버무리자 소원이는 그대로 믿는 눈치였다. 소원이는 나에게 물었다.


"여기에 자주 오니?"

"응."

"바다를 좋아해?"

"응."


소원이의 물음에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원이의 목소리가 크지 않아서, 내 한심한 목소리가 너무 작아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엔 같이 오자.”


이번엔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소원이를 보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이라 당황을 했기 때문이다. 소원이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다시 숙여버렸지만.


"네가 싫으면 어쩔 수...”

"아니!"

"고마워."


내가 급하게 소리치자, 소원이는 고맙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오히려 고마운 건 내 쪽인데. 아버지도, 규빈이도, 같이 바다에 가자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


소원이는 해안가에 무성하게 자라 있는 풀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내가 여기 있는 풀들 이름 다 알려줄게.”

“넌 어떻게 그걸 다 알아?”


그러자 소원이는 내 옆에 피어있는 백일홍을 보며 빙긋 웃었다.


그 웃는 얼굴이 너무 예뻐서,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을 때 소원이가 말했다.


“좋아하니까.”


소원이의 고운 목소리는, 바다의 파도소리와 어울려 내 귓속을 기분 좋게 간지럽혔다.


그날, 어머니가 나에게 돌아온 것이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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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신백일홍전 11 21.03.31 42 1 12쪽
11 신백일홍전 10 21.03.29 43 1 12쪽
10 신백일홍전 09 21.03.28 4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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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백일홍전 04 21.03.15 79 1 12쪽
4 신백일홍전 03 21.03.14 97 1 12쪽
3 신백일홍전 02 21.03.10 9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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