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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신백일홍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민창
작품등록일 :
2021.03.03 11:43
최근연재일 :
2021.04.21 08:0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501
추천수 :
22
글자수 :
111,895

작성
21.03.3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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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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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신백일홍전 11

DUMMY

"이무기다!"


이나린이 외쳤다. 그것과 동시에 나는 소원이에게 소리쳤다.


"도망쳐!"


진작에 말렸어야 했는데. 이 일에 소원이를 끌어들여서는 안 되었는데. 사실 소원이가 나를 끌어들인 것이지만 이제 와서 그건 상관없는 일이다.


이렇게 된 이상 소원이가 이무기를 불러낸 꼴이 되어버렸다. 이무기는 소원이를 노리고 나온 것이다.


"빨리 도망치라고!!"


나는 소원이의 팔을 붙잡고 육지 쪽으로 떠밀었다. 그러나 소원이는 물러서지 않고 버텼다.


"나도 여기 있을 거야."

"너 진짜 죽고 싶어?"


상황이 이렇게 되니 날카로운 말이 나갔다. 어쩔 수 없다.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내뱉고 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야. 진짜 죽을 수도 있어!"


내가 사납게 몰아붙이자 소원이는 주춤대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있어야 이무기가 나온다고!"


맑았던 하늘이 순식간에 짙은 구름으로 가득 찼다. 이무기가 불러낸 비구름이다.


저녁 무렵인데도 한밤중과 다름없이 어둡다. 장대비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란스럽구나."


먼 곳에서 이무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리치는 빗줄기 사이로 이무기가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이무기는 바다를 미끄러지듯 건너와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무기에게 소리쳤다.


"규빈이를 어떻게 했어?!"

"그게 누구지?"

"어제 너와 싸웠던 반신 말이야!"

"아하, 그 어린 반신."


이무기는 규빈이에 대해 아는 체를 하더니 이어서 말했다.


"아까도 반신들이 나에게 그 아이에 대해 물었다."


아, 이건 아마 어른들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어른들은 오늘 아침부터 해수욕장 쪽에서 규빈이를 찾고 있었다.


어른들은 이미 이무기를 만났던 것이다. 이무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나에게 물었다.


"너도 같은 게 궁금한 모양이군. 친한 친구라도 되나?"

"네가 알 거 없고! 규빈이는 지금 어디에 있지?"


나는 언성을 높이고 용감한 척하며 묻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불안해 죽을 지경이었다.


이무기의 대답을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듣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듣고 싶지 않은 대답을 듣게 될까봐.


제발 규빈이가 죽었다는 말만은 하지 않기를.


그런데, 이무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을 했다.


"나도 모른다."

"모른다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기가 차서 소리쳤다.


"네가 모른다니 말이 돼?"

"글쎄? 내가 모르는 편이 너에게도 좋을 텐데?"


그리고서 이무기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내가 그 애를 죽였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건 아니잖아?"


확실히 규빈이가 죽었다는 말보다는 나을 지 모르겠지만, 이무기의 말을 무조건 믿을 수는 없었다. 이무기는 나를 비웃듯이 내려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모른다고 말했을 때, 그 애 부모의 안도하는 얼굴이란. 내가 착한 일이라도 한 기분이었다고?"


이무기가 어른들에게도 규빈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면, 어른들은 지금...


"아마 시체라도 찾고 싶어서 온 바다를 뒤지고 있겠지."

"온 바다를...."

"그래. 지금쯤이면 동해를 벗어났겠네."


어른들이 동해를 벗어났다.


그 이야기는 즉, 반신들이 이곳에 없다는 뜻. 다시 말해,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


사실 나는 여기에 소원이와 이나린과 셋이서만 왔지만, 이무기를 마주치면 어른들이 알아채고 달려올 것이라 생각했었다.


규빈이가 이무기에게 당한 이상, 이제 어른들 모두 이무기를 잡으려 할 테니까.


하지만 내 예상이 빗나갔다.


어른들은 지금 고성에 없다.


검을 들고 있는 손에 조금씩 힘이 빠졌다. 어른들의 도움 없이 저 괴물을 어쩐다는 말인가.


"너와 이런 얘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다."


이무기는 나를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저 처녀에게 볼일이 있지."


저 처녀라는 것은, 고등학생을 부르는 말로는 썩 어울리지 않지만 어쨌든, 소원이를 뜻하는 것이리라.


지금 어른들이 없다고 움츠러들 때가 아니다. 나는 소원이의 앞을 막아섰다. 원하는 대로 하게 가만히 내버려 둘 줄 알고!


"내버려 두지 않으면 네가 어쩔 것이냐!"


이무기가 움직이자 하늘은 더 난리가 났다. 쉬지 않고 내리꽂히는 장대비에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람칼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황급히 방어막을 펼쳐 바람을 막았다. 그리고 바로 치유결계를 만들었다.


나의 손끝에서부터 연분홍빛의 얇은 막이 나타나 우리 셋을 감쌌다. 치유결계가 있으면 상처가 나더라도 자동으로 치유가 된다.


"싸울 수 있겠어?"


나는 이나린에게 물었다. 바닷물을 밀어내느라 요력을 한계까지 소모했음에도 이나린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당연하지."

"조심해."

"너나 걱정해."


이나린이 부채를 검으로 바꾸며 말했다. 나도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언제나 낙제를 면하는 게 다행인 수준인 공격술이지만, 지금 믿을 건 이것 하나뿐이다.


나와 이나린은 소원이를 보호하며 이무기와 맞섰다. 우리는 칼날을 날리고, 불꽃을 터뜨리고, 검기를 쏘아 보냈다.


그 짧은 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공격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재롱 잔치는 이제 끝났나?"


여유롭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연 이무기는, 거대한 폭풍을 우리가 서있는 방파제에 내리꽂았다.


땅이 천둥처럼 진동하여 온몸을 흔들었다. 나는 겨우 버텼지만 이나린은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이나린!"


이무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람칼을 쏘았다. 송곳 같은 바람이 이나린의 몸을 관통했다.  이나린은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방금 공격에 내가 만든 방어막도 뚫렸다. 약한 요력으로 만든 허술한 방어막은 별다른 활약도 없이 으스러졌다.


나는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로 이무기와 마주했다.


"반신들이 네 친구의 시체를 찾아오면, 다음엔 너의 시체를 찾으러 나가야겠군."


이무기가 비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벌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암흑과 같은 이무기의 눈은 나의 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렸다. 이 거대함과 강함 앞에서 그 무엇이 유효할 것인가.


나는 이무기와 마주하고 있는 눈을 차라리 감아버리고 싶었다. 이대로 저 새카만 눈을 보고 있으면 그 어둠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끈적끈적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늪에.


힘의 차이가 극명한 건 알고 있다.


내가 이기기 어렵다는 사실도.


그럼에도 고개를 떨구지 못하는 이유는, 질 것이 뻔한데도 도망치지 못하는 이유는.


"명호야!!"


내가 여기서 무너지면 이 애를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소원이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과 함께 나는 다시 한 번 방어막을 펼쳤다.


"이런 약해빠진 요력으로 나를 막으려고?"


이무기는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방어막이 또 한 번 부서졌다. 그리고 다시 방어막을 생성할 틈도 없이, 이무기가 나에게 돌진해왔다.


"으아아아악!!!!"


나를 집어삼키려는 이무기의 입이 내 시야를 덮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검을 치켜들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검기를 쥐어짜는 것뿐이었다. 겨우 뽑아낸 보잘것 없는 에너지가 공기 중에 반짝였다.


고작 이 정도 힘으로 이무기를 막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을 때.


"으아아아!!"

'지-잉!'


소원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무겁고 둔탁한 금속이 마찰하는 소리가 났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것에 놀란 나는 눈을 번쩍 떴고, 눈앞에는 소원이의 뒷모습이 있었다.


긴 생머리가 보이고, 그리고 번쩍이는 은빛의 장창이 있다.


"사...살았다."


소원이가 넋을 놓은 채로 중얼거렸다.


창은 눈부신 섬광을 수십 갈래로 발산하며 이무기를 공격했다. 그리고 우리 주변으로 강력한 방어막을 펼쳤다.


이것이 무기가 가진 에너지인가. 나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다.


서태평양 최강의 예언술사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온 영험한 무기. 무기가 가문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요력을 발동한 것이다.


창의 에너지는 이나린을 중심으로 넓게 퍼져 이무기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었고, 이무기는 창을 부수기 위해 공격을 퍼부었다.


"이나린, 정신 차려!"


나는 이나린을 흔들어 깨웠다. 창의 요력이 우리를 보호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 물건에 깃든 힘이다.


그러니 창의 에너지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언제가지고 우리를 지켜줄 수는 없을 것이다. 빨리 이나린을 깨워야 한다.


나는 이나린에게 치유술을 걸었다. 요력의 과다 사용으로 인한 기력 소모가 원인일 거다. 기력을 불어넣어 일어나게 하면 좋겠지만 그럴 여유는 없다.


당장 필요한 건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도망은 칠 수 있다. 회복은 나중에 하더라도 일단 눈을 뜨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이나린의 몸에 산소를 한가득 불어넣었다. 그리고 의식에 강한 충격을 가했다. 그리고 크게 소리쳐 이나린을 깨웠다.


"일어나!"


이나린이 번쩍 눈을 떴다. 깨어나긴 했지만 이건 육체의 힘이 아닌 정신의 힘으로 각성한 것. 아마 나중에 몇 십 배로 고통이 쏟아질 것이다.


하지만 일단 살아남는 게 먼저다. 이나린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설명할 시간 없어. 내가 이무기의 주의를 끌 동안 소원이랑 도망쳐."

"너는?"

"여기서 버텨 봐야지."

"언제까지 버티려고? 어른들도 없는데!"

"그렇다고 마을에 반신이 없는 건 아니잖아."


어른들은 모두 규빈이를 찾으러 나갔지만, 우리 같은 학생들은 고성에 있다.


이나린이 그들을 불러 준다면, 아직 미숙한 실력이라 해도 다 같이 힘을 모으면 이무기에게 위협이 될 것이다.


이나린은 내 얼굴과, 소원이가 들고 있는 창, 그리고 이무기를 차례로 보고 나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소원이에게서 창을 받아들었다.


소원이가 두 손으로 겨우 들고 있던 창을 이나린은 한 손으로 거뜬히 들었다. 이나린은 한 손으로 창을 잡고, 다른 손으로 소원이의 손을 잡으며 나에게 말했다.


"빨리 돌아올게."


그 한 마디 말이, 나는 그 어떤 칭찬보다 기분이 좋았다. 지금으로서 유일한 생존 방법은 그것이라는 것을 이나린이 인정한 것이다.


처음으로 이 애가 내 말에 토를 달지 않았을 뿐더러 내 말을 그대로 따랐다.


나는 묘한 성취감과, 이제 됐다는 안도감,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직 끝나지는 않았다는 불안감이 동시에 들었다.


"명호만 두고 간다고?"


소원이가 말했지만 이나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원이를 붙잡고 달렸다.


반신의 힘을 뿌리치지 못하는 소원이는 그대로 끌려갔고, 명호야, 명호야, 하는 목소리만 뒤에서 들려왔다. 


두 사람이 멀어질수록 나를 이무기로부터 지켜주던 창의 방어막이 옅어져갔다.


이무기가 소원이를 쫓아가려고 몸을 길게 뻗었다. 나는 재빨리 발을 디뎌 이무기를 향해 날아올랐다.


"어딜 따라가려고!"


나는 몸에 펼쳤던 치유결계도 해제하고 내게 남은 모든 기운을 검에 모았다. 내가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모아 이무기의 몸통에 꽂아 넣었다. 


내 모든 것을 건 혼신의 일격이었다.


하지만 검은 단단한 쇠비늘을 관통하지 못했다. 나는 이무기의 피부에 상처 하나 내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나는 검을 들고 이번에는 이무기의 눈을 향해 뛰어올랐다. 단단하지 않은 눈, 그 미끌미끌한 각막이라면 검이 꽂힐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눈을 향해 날았지만, 이무기의 몸이 크게 요동치며 나를 내리쳤다. 그대로 나는 바다로 추락하고 말았다.


힘이 빠져 축 늘어진 내 몸은 바다 밑으로 맥없이 가라앉았다.


점점 시야가 흐려진다.


내가 할 일은 깃발.

영웅의 생사를 처녀에게 알려주는 역할 정도?


웃기지 마라.

나는 깃발조차 되지 못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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