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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신백일홍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민창
작품등록일 :
2021.03.03 11:43
최근연재일 :
2021.04.21 08:0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508
추천수 :
22
글자수 :
111,895

작성
21.03.28 09:15
조회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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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신백일홍전 09

DUMMY

아니.


사실 규빈이는 나와 약속을 한 적이 없다.


학교에서 보자는 그 말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인사치레 같은 것이었다. 그냥 내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온 힘을 다해 회피하고 있었을 뿐이다.


규빈이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나는 벌떡 일어나 교실을 뛰쳐나갔다. 당장 규빈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 나는 복도를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헤치고 정신없이 내달렸다.


"명호야!"


그때, 달리던 발을 멈출 수밖에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뒤를 돌아보자 소원이가 달려왔다.


"어디를 그렇게 급하게 가?"


나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지..집에."

"수업도 안 듣고 집에 간다고?"


소원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 진실한 눈빛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 거짓 없는 눈을 상대로 내가 뱉어내는 거짓말이 끝도 없다.


"무슨 일 있어?"


소원이는 무척 놀란 것 같았다. 걱정스럽게 나에게 묻는다.


어제 소원이를 만났을 때, 규빈이가 바다에 갔다고 사실을 말했다면, 그랬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한밤중에 아버지가 규빈이를 찾았을 때, 그때라도 솔직히 털어놓았다면 오늘이 바뀌었을까.


"규빈이가 바다에 갔어."

"바다에? 왜?"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영웅의 존재를 전해야 할 순간이다. 소원이에게 네 영웅은 규빈이라는 진실을 알려주어야 할 때가 왔다.


기어이 인정해야 할 시간이 오고야 만 것이다.


옥소원의 영웅은 하명호가 아닌, 백규빈이라는 것을.


"이무기를 잡으러 갔어."

“이무기? 그게 뭐야?”

“저번에 바다에서 봤던 괴물 말이야.”

“아, 그 괴물이 이무기구나.”


소원이는 잠시 말이 없었다. 이 영리한 아이는 상황을 금방 받아들였다.


"혹시 규빈이... 어제 바다에 나간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소원이가 말했다.


"그래서 나를 찾아왔던 거야. 이제야 이해가 되네.”


소원이의 말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규빈이가 자기를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다는 말인가. 나는 소원이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내가 이무기한테 홀려서 바다에 나갔었잖아.”

“그걸... 알고 있었어?”


나는 깜짝 놀랐다. 소원이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무기의 최면에 걸렸었다는 것을.


“이무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거든. 그리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움직였어.”


이무기의 최면에 걸렸을 때 의식이 남아 있었다는 말인가. 단순히 몽유병이라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소원이는 자신이 바다에 나간 게 이무기 때문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럼 내 옷을 빌려간 이유는..."

"그래. 유인을 하려고 가져간 거야. 이무기는 너를 노리고 있으니까."

“말도 안 돼...”


내 말에 소원이는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는 내 두 팔을 붙잡으며 나무랐다.


“왜 사실대로 얘기를 안 했어.”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두 주먹을 그러쥐고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두려웠다. 규빈이가 잘못되었을까 봐. 나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게 될까봐.


오히려 소원이가 더 침착했다. 소원이는 내 잘못을 탓하는 것보다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규빈이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구나."

"응."

"지금 규빈이 찾으러 가는 거지?"


소원이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아니라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지금 소원이의 눈은 질문을 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사실을 확인하는 눈이다.


무엇보다, 더 이상 나는 소원이를 속일 수 없다.


"응. 맞아."


다만 소원이가 그 말만은 하지 않기를 바랄 뿐.


“나도 갈래.”


그 말만은 제발, 이라는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소원이는 우려하던 말을 뱉었다. 당연히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너는 가면 안 돼.”


내 말에 소원이는 눈썹을 찌푸렸다.


"왜?"


소원이의 물음에 나는 차라리 '넌 여자니까 위험해.' 같은 상투적인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것은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너희와 달라서?”


소원이가 다시 물었다. 반신과 달리 인간은 이무기에게 맞설 수 없다. 그 강철 같은 비늘에 스치기라도 하면 살점이 우수수 떨어져나갈 것이다.


인간은 괴물에게 이길 수 없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오직 반신만이 괴물에 대적할 영웅이 될 수 있다.


소원이는 처녀. 규빈이는 영웅.


"그래, 너와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다르니까."


나는 어떻게든 영웅을 살려내야 한다.


영웅이 이무기와 싸우러 간 것을 알게 된 처녀가


자결하지 못하게 하려면.


“규빈이는 내가 구해올게.”



***



아버지와 함께 이무기가 출몰했던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학교에서 나오자마자 아버지 병원으로 달려가 모든 것을 털어놓았고, 내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가장 먼저 규빈이네 부모님께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비상연락망을 통해 마을의 반신 어른들을 모두 이곳으로 소집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규빈이 어머니가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규빈이가, 규빈이가 이무기를 잡으러 갔다는 게 정말이니?"

"네."

“왜! 왜 사실대로 얘기를 안 했어!! 왜!!”


규빈이 어머니가 내 어깨를 붙들고 소리쳤다. 나는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몇 번이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아이고 규빈아... 규빈아. 어떻게 하니.”


나에게 소리를 치던 규빈이 어머니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규빈이 아버지는 규빈이 어머니를 부축하며 다른 어른들에게 빨리 바다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 사이에 죄인처럼 서있는 나에게 아버지가 말했다.


"학교로 돌아가거라."

"저도 같이 갈래요!"

“이건 어른들이 해결해야 되는 일이야.”

“하지만 저 때문에 규빈이가!”


아버지는 내 말을 끊고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학교에 가서 아이들한테 말을 전해라. 바다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그때, 벌써 바다 앞으로 나가 있는 규빈이 아버지가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가 달려가 선봉을 맡는다. 아버지는 치유술사인데도 후방이 아니라 공격술사들과 대등한 앞자리에 섰다.


치유술사는 웬만한 공격술사보다 공격력이 강하다는 말. 그게 정말 사실인 걸까.


아버지가 늘 하는 말이지만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치유술을 쓰는 반신이 어떻게 공격력이 강할 수 있는가. 나와 달리 순혈인 아버지에게만 해당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호기롭게 규빈이를 구해 오겠다고 선언해 놓고서, 나는 한심하게 학교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



하교하고 집에 왔을 때 아버지는 없었다. 어른들은 아직도 바다에서 규빈이를 찾고 있다.


학교로 돌아온 나는 방송실로 달려가 교내 방송을 요청했다. 바다에 큰 사고가 났으니 바다 근처로 가지 말라는 방송이 전교에 퍼졌다.


사정을 알 리 없는 애들은 바다에서 살인사건이 났네, 식인상어가 출몰했네 하면서 히히덕거렸다. 그 사이에서 나는 초조하게 규빈이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빌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한참이 지난 아직까지 연락이 없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꺼진 듯이 조용한 전화기만 쳐다보고 있었다.


'삐리리-!'


드디어 울린 벨소리에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서둘러 전화를 받았더니 아버지가 아닌 소원이다.


나는 맥이 탁 풀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소원이가 지금 우리집 앞에 있다며 잠깐 보자고 한다. 아마 규빈이 때문에 온 것이리라.


규빈이를 찾았는지를 물을 텐데.


그렇다면 나는 붉게 물든 깃발 정도 되려나.


처녀에게 영웅의 생사를 알리는 역할 말이다.


그러나 아직 소원이에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도 규빈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규빈이를 구해오겠다고 해놓고 이렇게 집에 처박혀있는 꼴이 형편없지만, 쪽팔려도 소원이를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이야?"


용건을 묻긴 했지만 답을 알고 있었다. 규빈이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올 것이고,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규빈이 찾으러 갈 거야."


소원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이 건에 대해서는 내가 분명히 거절을 했었고 그것에 대한 내 입장은 변함이 없다.


"너는 가면 안 된다고 했잖아.”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내가 가겠다는데!!"


소원이가 소리를 빽 질렀다.


"이렇게 손 놓고 가만히 있으라고? 나 때문에 규빈이가 위험해진 거잖아!"


언성을 높이는 소원이의 표정은 사납기까지 했다. 소원이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당황하고 있는데, 소원이는 분한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사실 아까 해수욕장에 갔었는데 어른들한테 쫓겨났어. 항구 쪽 바다로 가야 될 것 같아."


혼자 바다에 갔었다니. 게다가 이 분해하는 표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눈앞에 있는 소원이가 낯설었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소원이는 조금 더 부드럽고, 조용했다.


물론 지금의 소원이가 거칠고 시끄럽다는 건 아니지만, 뭔가 내가 알던 것과는 조금 다른...


"하지만 나는 초능력도 없고 이무기랑 싸울 수도 없어."


본 적 없던 소원이의 모습에 낯설어하는 나와 달리, 소원이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며 흔들림 없이 말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무기와 대적할 수 있는 건 명호 너뿐이야."


정말이지 냉철한 자기객관화. 그리고 재빠르게 최선책을 찾아내는 예리한 이성.


"나하고 같이 규빈이 찾으러 가자."


아, 백일홍 설화는 조선시대 이야기일 뿐인가.


죽어서 백일홍이 된 처녀는 이제 여기 없다.



***



일단 나는 소원이를 따라 나서기로 했다. 소원이의 태도가 워낙 강경한 것도 이유였지만, 나 역시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있는 것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어른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기다리기에는 내 책임이 컸다. 내가 했던 몇 번의 선택 중에는, 분명히 규빈이의 실종을 막을 수 있는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


책임을 막론하고라도 규빈이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다. 내가 규빈이에게 열등감을 가졌든 어찌되었든. 나는 집에 있을 때보다 규빈이를 찾으러 뛰어가고 있는 지금 더 마음이 고요했다. 대적해야할 상대가 이무기임에도 불구하고.


"소원아 이무기는 황소개구리 같은 게 아니야. 거의 용이라구 용."


나는 소원이에게 말했지만 사실 이 말은 나 자신에게 하는 경고였다. 친구를 구하겠다는 우정이니 용기니 이런 것으로 비빌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했다.


“만만하게 봐서는 절대 안 돼.”


지금 우리는 불구덩이로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죽는다.


"나도 알아. 그래서 너를 부른 거잖아."


소원이는 놀라우리만큼 차분했다. 불구덩이로 달려드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단단한 눈빛이었다.


"네 친구도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했고."


소원이가 말을 덧붙였다. 조력자가 내 '친구'는 아니지만 나는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뜀박질을 할 때마다 스치는 바람에 바다 냄새가 섞여들기 시작했다. 정박되어있는 어선들 뒤로 바다가 보인다. 우리는 항구에 도착했다.


속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깊고 짙은 바다. 불길할 정도의 침묵이다.


“바다가 정말 조용하네.”


내 말에 소원이가 대꾸했다.


“응. 학교랑 마을에 바다로 나가지 말라는 안내가 방송됐잖아. 그래서 사람이 없지.”

“아... 그런 뜻이 아니야.”


바다에 아무런 생명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무기가 나타난 뒤부터 이렇다. 바다 전체가 죽어있는 것처럼 고요하다.


바다 괴물들에게 말을 걸어봐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내 말을 일부러 씹고 있거나, 이 주위에 아예 없는 것이거나. 어쨌든 규빈이의 위치를 물어볼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규빈이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 넓은 바다를 다 뒤져서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쨌든 우리는 테트라포드 무더기 앞에 멈추었다. 여기에서 조력자를 만나기로 했다. 소원이가 물었다.


"그 친구도 너랑 같은 초능력자야?"


그때,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어둠 속에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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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신백일홍전 16 21.04.12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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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신백일홍전 13 21.04.05 4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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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신백일홍전 11 21.03.31 43 1 12쪽
11 신백일홍전 10 21.03.29 4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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