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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신백일홍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민창
작품등록일 :
2021.03.03 11:43
최근연재일 :
2021.04.21 08:0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507
추천수 :
22
글자수 :
111,895

작성
21.04.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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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신백일홍전 15

DUMMY

소원이는 붉게 변한 눈으로 나를 공격했다. 다짜고짜 검으로 나를 찌르려고 달려들어 피해야 했다.


나는 당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소원이의 상태는 어떻게 봐도 하나의 답밖에 나오지 않았으니까.


"정신최면?!"


이건 말도 안 된다.


정신최면은 의식최면보다 한 단계 위의 요술로, 상대방의 행동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최면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괴물들은 사용하지 못하고, 몇몇 신수급 괴물들만 가능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무기는 신수가 아니다. 의식최면은 가능해도 정신최면을 쓸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이것은 도감의 내용과도 다르다. 분명히 괴물 도감에는 이무기가 정신최면을 사용한다는 말이 없었다.


"내가 말했잖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이무기는 여유로운 말투로 나를 비웃듯이 말했다.


소원이를 빤히 쳐다보던 것이 정신최면을 거는 과정이었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내버려 뒀다.


"이무기가, 이무기가 정신최면을 쓴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

"기이한 일이군. 수천 명의 반신과 인간을 이 방법으로 해결했는데."


이무기는 의외라는 투로 말했다.


"해결하다니?"

"나를 잡으러 온 자들을 최면으로 처리했단 말이야."


하지만 정말 나는 들은 적도 배운 적도 없다. 괴물 도감에도 이무기가 정신최면을 쓴다는 말은 없었다.


그러나 이무기는 인간과 반신을 정신최면으로 상대했다고 말했다.


"으아악!"


그때 소원이가 다시 나를 공격했다. 뻣뻣한 몸짓이지만 검을 들고 있으니 막을 수가 없었다. 나는 칼날을 가까스로 피하면서 넘어졌다.


나를 쓰러뜨린 소원이는 우두커니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두 팔로 검을 번쩍 들어올렸다.


"소원아, 안 돼! 이러지 마!"


내 말은 통하지 않았다. 소원이가 든 검은 가차 없이 내 정수리로 돌진했고, 나는 옆으로 몸을 굴려 그것을 피했다.


이렇게 방어만 하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미안!"


나는 어쩔 수 없이 발을 뻗어 소원이의 발목을 세게 찼다. 소원이가 쓰러졌고, 일단 공격은 멈추었다.


"너보다 약한 인간을 상대로 공격을 하다니. 네가 지키고 싶어 하던 사람이 아니었나?"


이무기가 나를 비웃으며 물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괴롭혀온 거냐! 그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이무기에게 소리쳤다.


그래, 생각해 보면 납득이 된다.


이무기는 비열한 괴물이다.


저 괴물은 맑은 영혼의 인간을 잡아먹기 위해 의식최면을 써서 손쉽게 바다로 끌어들인다. 소원이가 당했던 것처럼.


그리고 그것을 목격한 인간들은 어떻게든 이무기를 달래기 위해 제물을 바쳤다. 그 과정에서 하위계층의 처녀들이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이것을 정의로운 인간, 그리고 반신들이 보고만 있었을 리 없다.


백일홍 설화에서도 영웅이 처녀를 구하기 위해 나섰다. 규빈이도 소원이를 구하기 위해 달려나갔다.


아마 이무기들은 수 천 년 동안 셀 수도 없는 인간, 반신들과 싸웠을 것이다.


그 결과라면 이무기는 벌써 멸종이 되었어야 한다.


의식최면 정도만 쓸 수 있는 수준의 하등한 괴물이었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을 수가 없다.


가뜩이나 세상이 탁해져 생존한 괴물을 찾기 어려운 이 시대에.


그러나 이무기는 지금 바다 곳곳에서 발견이 되고, 괴물도감에도 멸종 가능성이 있다는 말은 없다.


"이무기를 붙잡기가 어려웠던 거야..."


잡고 싶으면 언제든 잡을 수 있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인간들 사이에서 설화로까지 구전이 되었던 것이고.


이무기를 상대로 이겼다는 것은, 후세에 널리 전승할 만한 대사건이었던 거다.


"그러면 어째서 정신최면에 대한 내용이 도감에 없는 거지?"


왜 과거의 반신은 이무기의 정신최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걸까. 어째서 이 중요한 사안을 후대에 남기지 않았단 말인가. 그 덕분에 후손 하나가 죽을 위험에 처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보지. 신수도 아닌 괴물이 가진 힘을."


분에 찬 이무기의 음성이 귓가를 울리는 것과 동시에, 도감의 내용이 떠올랐다.


[일부 개체가 용이 되어 승천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성체가 되기 전의 용을 이무기로 착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너희가 틀렸어!"


이무기의 목소리와 함께 쓰러져 있던 소원이가 벌떡 일어났다. 번쩍이는 칼날이 커다란 호를 그리며 나를 공격한다. 이무기는 계속 떠들어댔다.


"나는 용이 될 몸이다! 나를 신수로 모셔라!'

"웃기지 마! 네가 무슨 용이야!"


나는 이무기에게 큰소리를 치고 있었지만 사실상 독 안에 든 쥐와 다름 없었다. 이대로 있다간 나는 소원이에게 죽든지 이무기에게 죽든지 할 것이다.


차라리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랬다간 소원이가 이무기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소원아, 정신 차려!"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한 지금, 나는 소원이의 공격을 피하는 게 고작이었다.


검술을 모르는 소원이는 투박하게 검을 움직일 뿐이었지만 무기도 없고 소원이를 공격할 수도 없는 내 입장에서는 위협이 되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싸우다가 내가 소원이와 간격이 벌어지면, 그때는 바로 이무기에게 끝장날 것이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검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무기가 사납게 소리쳤다.


저 괴물을 제압하려면 어느 정도의 요력이 필요할까.


정신최면을 풀려면 내가 이무기보다 더 강한 요력으로 최면을 무효화 하는 수밖에 없다. 그건 당연히 어림없는 일.


아니면 이무기를 설득하거나, 이무기를 죽이거나.


아 젠장, 둘 다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어찌됐든 내가 상대해야 하는 건 소원이가 아닌 이무기고 그러려면 어쩔 수 없이,


"아윽!"


소원이를 진정시켜야 했다. 나는 일부러 다리를 내밀어 소원이가 휘두른 검을 허벅지에 꽂았다.


다행히 소원이가 급소를 잘 피해 찔렀다. 내가 잘 찔렸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어쨌든 이것으로 검은 되찾았다.


검이 단단히 박히자 소원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리고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소원이 눈에 눈물이 맺힌 것을.


"소원아?"


고였던 눈물이 흘렀다. 새빨간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이무기가 눈물을 흘릴 리 없으니 이건 소원이가 우는 것인데.


정신최면에 걸렸지만 소원이의 자아가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이무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야 했지만 주도권을 완전히 내어주지 않았다.


소원이는 계속해서 이무기와 싸우고 있었다.


이무기가 바다로 끌어들이려 하는 것에 저항하여 계속 뒷걸음질쳤고, 나에게 칼을 겨눌 때 그 뻣뻣하던 움직임도 검술을 못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소원이는 이무기에게 순응하지 않으려 온 힘을 다 해  버텼던 거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런데 나란 새끼는 뭘 했는가. 소원이를 방패로 숨었다. 소원이 옆에 있으면 이무기가 공격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소원이를 이용했다.


소원이가 이무기와 처절하게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하명호 한심한 새끼... 너는 죽어야 돼 진짜."


나는 허벅지를 관통한 검을 주저 없이 빼냈다. 아픔이고 자시고 고통을 느끼는 것도 부끄럽다.


즉시 검을 밧줄로 변화시켜 소원이의 팔과 다리를 묶었다. 소원이를 제압한 뒤 짧게나마 허벅지 상처 치유를 시작했다.


나는 대충 지혈을 하면서 다음 일을 생각했다. 이무기를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뭔가. 지금 나에게 남은 요력은 얼마나 되나.


이런 생각을 하며 치유를 하자니 요력이 잘 먹히질 않았다. 숨 쉬는 것처럼 익숙하던 분자 결합 화학식조차 기억이 버겁다.


이러다 원자를 잘못 배열하기라도 하면


그러면,


잠깐만. 그렇게 되면...


잘못된 방식으로 분자를 결합하면 육체의 메커니즘이 완전히 깨져버린다. 치유를 하다가 오히려 몸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잘못된 원자 배열은 신체가 지닌 능력으로, 즉 자연 치유로 다시 돌이킬 수도 없다. 다시 치유술을 사용해서 고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혹시,


그것은 이무기의 육체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지 않을까.


아무리 강력하고 포악한 괴물이라도 결국 이 세상의 물질이니.


'치유술은 웬만한 공격술보다 훨씬 파괴적이니까.'


설마 이게 그 뜻이었나.


아니 이런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 진작에 말해 줬어야죠, 아버지!!


하지만 이무기의 몸을 이루는 원자들의 재배열을 위해서는 일단 피부든 어디든 결함을 만들어야 한다. 일단 흐트러뜨려야 섞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내가 상처를 낼 수 있을까.


내 힘으로 저 무쇠 같은 피부를 뚫을 수 있을까.


"정신차려 미친놈아!!"


여기서 겁내면 진짜 찌질한 새끼인 거다. 진짜 답없는 놈이지.


규빈이는 죽을 각오를 하고 싸웠는데, 심지어 인간인 소원이도 이무기에게 맞섰는데. 소원이 등 뒤에 숨어서 살아볼 궁리만 하고서 여기서 도망치면 그게 사람이냐.


그래. 죽여야 되는 것도 아니잖아.


상처 하나만 내면 된다.


피 한 방울만 뽑아내면 된다.


일단 그러려면 무기. 무기가 필요했다. 내 부채는 밧줄로 바꾸어 소원이를 묶어두는 데 써버렸으니 말이다.


쓸 만한 것이 없나 좌우로 눈을 움직여보니 규빈이의 부채가 보였다.


저것으로 단숨에 찔러야 한다. 일말의 망설임, 찰나의 빈틈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머릿속에 동선을 그렸다. 규빈이의 부채를 집어서 검으로 바꾼 뒤, 이무기에게 뛰어오를 것이다.


계획한 모든 것이 한 번에 이루어져야 한다.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한 뒤, 축지로 달려가 땅에 박혀 있는 규빈이의 부채를 뽑았다.


검으로 형태를 바꾸자 눈부시게 빛나는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태평양 최강의 공격술사 가문의 무기다.


나같이 허접한 놈이 들고 다닐 만한 물건이 아니지만 지금은 뭐든 필요하다.


나는 검을 들고 바다로 달렸다. 땅을 세게 밟아 높이 뛰었다.


목표는 단 하나.


내가 검을 들고 달려들자 이무기는 바람을 일으켜 나를 튕겨냈다.


바닷속으로 처박으려는 심산이겠지만 나는 재빨리 추락하는 방향을 바꾸어 육지로 떨어졌고, 다시 땅을 디뎌 뛰어올랐다.


이것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그러나 지치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이 맑았다. 내 온몸의 감각과 에너지는 단 하나만을 원하고 있다.


상처 하나.


또 다시 바람칼에 밀려 나가떨어지면서도 나는 오직 한 가지만 생각했다.


피 한 방울.


이무기에게 접근해라. 검으로 상처를 내야 한다. 상처의 크기는 상관없다. 부위도 상관없다.


부위?


아, 그렇다면 차라리.


나는 추락하는 방향을 틀지 않고 그대로 바닷속으로 떨어졌다. 이제 디딜 곳이 없어 위로 뛰어오를 수는 없다. 하지만,


바다 밑에도 이무기의 몸이 있다. 이 괴물은 날지 못하니까.


나는 시야를 포기하고 물결에 집중했다. 어차피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시각으로는 찾지 못한다. 바닷물의 흐름에 저항이 느껴지는 곳에 이무기의 다리든 꼬리든 있을 것이다.


물결의 방향이 바뀌는 쪽을 향해 헤엄쳤다. 이무기가 눈치 채지 못하게 몸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최소한의 손짓발짓만으로 이무기에게 접근했다.


오직 촉감으로 시야를 그렸다. 눈을 감으니 낯익은 느낌이 내 온 몸을 감쌌다. 바다는 나에게 더없이 익숙한 곳이다.


바다는 이무기의 영역이기 이전에


나와 어머니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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