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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who작가 님의 서재입니다.

히어로즈(Heroes)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일반소설

완결

라끌리에
작품등록일 :
2015.01.04 23:44
최근연재일 :
2015.01.27 20:07
연재수 :
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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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8,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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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2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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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10. 일탈-(2)

DUMMY

어둑어둑한 새벽이 찾아올 즈음에 약기운이 가셨다. 한순간 눈앞을 점멸시키는 황홀한 쾌감을 맛봤다가 바닥으로 내쳐 진 기분이었다. 입안의 달콤한 무언가가 쓰디쓰게 변질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내게 아쉬움을 생각할 여유는 티끌만큼도 없었다.

점차 온 몸이 덜덜 떨릴 만큼 끔찍한 자통(刺痛)이 일기 시작했다.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쿡쿡 찌르는 듯한 둔탁한 고통이었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남극인 양 얼어붙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에 이것의 원인을 잘 알지 못했다.


타박상에 대한 뒤탈이 아니었다. 그것은 갈망이었다. 내 눈길은 무의식중에 어느 샌가 또다시 마약을 찾고 있었다. 난 드디어 그 악순환의 일부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머리가 깨질 듯한 것을 넘어서서 사방으로 쥐어짜듯이 갈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분명 가만히 있다고 생각했는데 거울을 본 순간 사지에 발작이 일듯 경박스럽게 경련이 이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귀찮은 나머지 거울을 그만 깨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내 자신이 깨지는 것같이 고통스러웠다. 내 몸의 일부가 사라져버린 것만 같았다. 그 거울은 내게 있어서 오른쪽 손목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끔찍하고 처참해서 눈을 감아버렸다. 눈을 감자 내 자신은 기다렸다는 듯이 조각조각 분해되어 하늘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눈을 떴다. 무얼 하든, 별 소용이 없었다.


이 괴로운 순간을 잊어버릴 수만 있다면, 다시 한 번 그 현란한 쾌락을 누릴 수만 있다면, 그것들은 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고 진정제도 진통제도 술도 돌아가며 먹어봤다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내 몸이 절박하게 찾는 건 오로지 마약이었다. 나는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내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 두고두고 후회했다. 당최 감당하지도 못할 걸 왜 시작해서는.


아니다, 애초에 이런 걸 통솔력 없는 내게 쥐어준 사령관―그렇다, 영웅의 잘못이다―의 크나큰 잘못이지. 이건 내 책임이 아니야. 그러니 내 몸이 망가지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내 관할권이 아니다. 나는 어느새 앞뒤도 안 맞는 합리화를 하며 또 다른 실수를 들이키고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왜 나갔는지는 모른다만 그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놀라운 광경을 구경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에 내가 보아왔던 풍경은 온데간데없었다. 있기야 있었다만 그 아둑시니같은 새벽에 무엇이 그리 많이 돌아다니던지 나는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들은 시체였다. 바삐 바닥을 기고 걷고 무언가를 짊어진 시체들. 온 건물은 피라미드와 십자가가 박힌 공동묘지였다. 구름은 그것을 축복하는 핏빛이었다. 그들의 꿈들은 나비처럼 여러 빛깔로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손을 뻗었지만 그것은 잡히지 않았다.


내 앞으로 기나긴 무언가가 태연하게 질질 걸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은빛용이었다. 어찌나 길던지 내가 그를 피해 돌아가야 할 정도였다.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송곳니를 드러내며 입이 찢어지도록 웃었다. 송곳니는 사람 대여섯을 죽일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이게 커졌다. 주변의 허공에는 여러 도형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이던가. 나는 그 입체면의 부피와 무게중심을 계산하려다 그만두었다. 내 머리 위로 갑자기 그 날개달린 기나긴 용이 비상하여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헌데 잘 보니 그것은 별 독을 가지지 못한 하얀 구렁이에 불과했다. 시야를 가로막던 그가 없어지니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생물체들이 나를 감싸고돌았다.


그것은 아주, 아주 키가 작은 난쟁이들이었다. 난 그들 사이에선 거인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껍질 없는 달팽이들도 있었고 글자 없는 표지판도 있었고 걸어 다니는 독버섯들도 있었다. 독버섯은 저마다 도발적인 눈빛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들은 동충하초를 찾는 모양이었다. 표지판들은 갈림길에 서서 마카를 들고 저들끼리 무엇을 쓸지 삐꺽대며 토론 중이었다.

달팽이들은 원래 민달팽이가 아니었다. 그들은 엄연히 등껍질이 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소라게들이 그것을 탈취해갔다. 그들은 울부짖으며 해산물을 저주했다. 그리곤 난쟁이들과 독버섯들과 시위를 벌였다. 주동자들은 작살에 꽂혀서 죽어갔다. 사방에 초상집과 같은 울음이 울려 퍼졌다. 그 곡소리는 나중엔 점점 커졌지만 나는 그들을 전혀 비난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위해 무언갈 하지도 않았다.


나는 눈앞에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책을 잡아 폈다. 그것은 판도라의 상자였다. 세상을 움직이는 모든 원리 원칙이 마법이 되어 빠져나가고 인지(印紙)만이 덩그러니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할로겐족 원소와 미토콘드리아! 그것도 빠져나와 시야를 방해했다만 난 별 신경을 두지 않았다. 그것들의 분자식이 그리도 날 괴롭게 했다.


그렇게 계속 앞으로 걷다가 나는 어떤 물체를 밟았다. 파란색 줄무늬의 지렁이였다. 등을 굽히고 펴고 굽히고 펼 때마다 그것의 크기는 커지고 줄어들었다. 그것을 발로 짓이겨 누르자 내용물이 터지면서 악취들이 진동했다. 바닥에 붉은색이 진득하니 들러붙었다. 하지만 지렁이는 끝까지 죽지 않고 꿈틀댔다. 내 신발 밑창에 기를 쓰고 너덜너덜하게 달라붙었다.

왜 나를 눌러! 왜 나를 쥑여! 나는 계속 걸어야 했기 때문에 그를 살려줄 수가 없었다. 발을 내려찍어 복구된 그를 다시 터뜨렸다. 아! 너무 좋아!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스티로폼을 부수는 느낌이라 별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나는 대충 땅바닥에 신발을 문지르고는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세상이 이렇게나 아름다웠던가! 나는 이세계에 온 것만 같았다. 별자리는 저마다 하늘을 뛰어다니고 달은 열두 개였다. 길가에는 삽을 메고 군대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해골들이, 길바닥에는 나뒹굴어 녹아내리는 사람 형상의 무언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불편하게 누워 녹으면서 화폐를 구걸했다. 해골들은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 삽으로 보물 상자를 파내었다.

그러나 하늘에서 달려든 솔개가 그것을 날쌔게 채갔다. 해골들은 당연하다는 듯 계속 삽질을 했다. 조국의 발전을 위하여. 정의의 미래를 위하여. 그들의 괴로운 노랫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이것들은 실로 판타지였다. 나는 그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나는 차라리 저런 일을 하고 싶었다. 나는 지나가는 그들을 잡고 물어보았다. 이봐요, 당신은 대체 어디서 왔습니까?

하지만 그들의 언어 능력은 하나같이 형편없었다. 시간이 다됐다라고 무어라 길게 말꼬리를 늘이더니 시계가 울리는 순간 내 앞에서 한줌의 재가 되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남은 그림자들을 보았다. 빠르게 형상화되어 지나갔기에 나는 그것이 새까만 악마인줄만 알았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내 다리를 잡으며 비굴하게 매달렸다. 더러는 긴 장검으로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피를 보기 싫으면 순순히 공물을 헌납하는 게 좋을 게야! 그중 하나가 내 겉옷을 벗기고 와이셔츠 단추를 서너 개 풀어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 옷을 벗기며 저급하게 낄낄댔다. 내 몸의 일부가 또다시 뜯겨나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겁먹기는커녕 나를 갈취해가는 그들을 동정하려 애썼다.

그런데 저 어둠 속에서 사냥개가와 호루라기가 사납게 짖어대자마자 그들은 날 넘어뜨리곤 저들끼리 뭉쳐 거뭇하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냥개는 어둠을 뚝뚝 흘리며 그림자를 삼켜나갔다. 고통스러운 절규가 골목길을 채웠다. 나도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곤 달려왔던 반대편으로 슬금슬금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무서워서가 아니다. 내 안의 공포였다.

거리가 밝아짐에 따라 길가엔 크기가 다양하고 색깔도 다양한 희한한 생물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나를 못 본 체하고 묵묵히 지나치는 듯 했지만 쟁반만한 눈으로 다각형의 머리로 나를 치어다보곤 했다. 그들은 내가 바구니에 담겨있는 줄 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들을 두려워했다. 내 눈 앞으로 윙윙대며 모여드는 작은 요정들과 원소들과 도형들도 두려워졌다. 내 발밑으로 복수하듯 모여드는 지렁이들마저도. 그것들은 내게 끝까지 기어올라서 소매로, 옷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또 거기서 흐물흐물한 쾌감을 느꼈다. 머리가 어지러워져서 도망치는 힘도 의지도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힘들어? 힘들어? 내가 도와줄까? 머릿속에서 여러 성조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목소리는 내 머리로부터 연기로 화해서 내 앞에 유형화되었다. 그는 내장과 골수가 튀어나온 끔찍한 악마였다. 그가 부리로 된 입을 움직여 내게 말한다. 대가가 있어야지. 네 몸을 줘.

내 영혼은요? 왜 몸을 가져가세요? 바보 같은 질문이야! 그런 건 아무 소용이 없거든. 그가 그리 말하며 셔츠의 풀어진 단추들을 목까지 꼼꼼하게 채워주었다. 네 영혼은 걸레조각이야 아무런 쓸모가 없어.

그래요, 유감이에요. 내 몸도 지금 그래요. 그가 뼈마디로 내 얼굴을 쓸었다. 아니야, 너의 몸은 가치가 있어. 하루 종일 고통도 느낄 수 있고 쾌락도 느낄 수 있잖아. 난 그래서 네 몸이 좋아.

그가 내 턱을 들어 올려 입에 미지의 액체를 털어 넣었다. 난 군말 없이 그걸 삼켰다. 그가 작게 웃으며 내 목을 주물렀다. 아가, 내가 황홀한 천국으로 보내줄게. 그 물결에 너를 맡겨.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내 몸을 구석구석 더듬어 심장을 빼내어갔다. 그리곤 하늘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는 목숨을 도둑맞은 셈이다. 몸 한 구석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나는 하늘을 보고 몸을 비틀며 경박스럽게 웃었다. 온몸이 근질거렸다. 내 옷 속엔 지렁이들이 아예 둥지를 틀고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인상을 팍 구기며 날개를 달고 모조리 날아가 버렸다. 줄어드는 쾌감은 서서히 고통의 서막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숙제를 하듯이 그 나비들을 잡으려 뛰었다. 그것은 도주이기도 했다.


무언가 기계적으로 도망치는 나를 잡아 세웠다. 그는 지팡이를 짚는 현자였다. 그는 날더러 자신이 마법사라고 했다. 그것이 대순가. 나는 그를 무시하고 어디로든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작자는 내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들어대더니 날 죽일 기세로 몰아붙였다.

정신 차려! 지금 무엇을 하는 게야! 나 같이 위대한 요술쟁이를 보고도 경배를 안 해? 너 정신머리가 대체 어딴 식으로 박혀있는 거야! 그리고 그는 마법 주문을 외우며 그 작대기로 나를 때렸다. 나는 악의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편안한 미소를 지어주려 노력했다.


주목받고 싶지 않았다만 거리의 그 괴생물체들은 하나같이 멈춰 서서는 내게 멸시의 눈길을 던졌다. 어머, 불쌍해라. 저기 저 소름끼치는 웃음소리 좀 봐. 악당들이다! 저 푸른 머리가 마왕인가 봐! 마법사가 마왕과 계약을 하구 있다! 그 마법사는 그 말에 발끈했는지 그들에게 도리어 소리쳤다.

니들이 무얼 알아! 니들도 이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썩 꺼져버려라! 그리곤 그는 내 팔을 잡아끌곤 내 집으로 향했다. 나는 끌려가는 줄도 모른 채 고개를 숙여 내 몸을 바라보았다. 그래, 어느 틈에 나는 흉측한 악당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풀려가는 눈을 몇 번 느리게 깜박거렸다.

내 눈앞의 도형들과 요정들은 전개도로 해체되어 저주받을 글자를 새겼다. 백 오십 칠호. 백 오십 칠호.


*


102호는 그 약쟁이를 집안으로 밀어 넣고 현관문을 세게 닫았다. 그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더라니 이 악당이 기어이 사고를 친 것이다. 그의 집에 찾아가던 중,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은 저마다 마약 범죄자가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고 웅성대며 난리를 쳐댔던 것이다. 102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무섭게 그를 쏘아보았다.


“너 미쳤어? 어디 대낮부터 약을 하고 돌아다녀!”


157호는 알 수 없는 헛소리를 지껄이며 허공만 올려다볼 뿐이었다. 잘 들어보면 그건 원소 주기율표를 두서없이 나열하는 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102호는 팔짱을 끼곤 짜증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너 뭐 먹었어. 어떤 약이야.”

“저것 봐! 사막지대다! 흐흐흐!”


157호가 현관문을 가리켰다.


“미치고 팔짝 뛰겠네. 그래, 아주 자알 하셨어. 기립 박수라도 쳐주고 싶을 따름이야! 이제 행복해? 세상과 단절되니 기뻐? 교수는 세상도 그렇고 자기 자신에게 완전히 패배한 거야! 알기나 해!”


102호는 언성을 높여가며 마약에 녹아있는 그와 대화라는 걸 시도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실은 그것은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었으니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는 이제 혜안이고 뭐고 다 버리고 절망적인 눈빛으로 눈앞의 미쳐버린 망상광을 바라보았다.

157호는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언가 투명한 용기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곤 102호가 말릴 새도 없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그걸 단박에 들이켰다. 102호는 경악하며 반나마 남아버린 그것을 빼앗아들었다. 그것은 가루약이 침전된 액상 마약이었다. 102호는 그를 보며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너……. 대체 왜 그러냐.”

“그것 봐! 그건 마법의 용액이라구……”

“기계공학과 교수가 대체 왜 이러냐고! 삼류 소설가야? 공상가야? 아님 주정뱅이야! 이건 모르핀이라고, 이 멍청아!”

“그건 산(散)이지! 혹은 산(酸)!”

“넌 정말……”


하지만, 오만상을 짓던 102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시야에서 그의 대화상대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157호가 몇 번 헛구역질을 하더니 엎드려서 바닥에 피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102호의 얼굴이 새파랗게 굳어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157호는 숨이 끊어져라 내쉬며 계속 각혈을 하고 있었다. 102호는 차마 그의 등을 두드려주지 못하고 그 자리에 붙박인 듯 서 있었다.


각혈이 끝나고 그는 눈을 위로 뜨고 발작을 일으키듯이 쓰러졌다. 102호가 앞으로 고꾸라지던 그를 한 손으로 황급히 받쳐주었다. 102호는 그의 기절한 모습을 보았다. 너덜너덜한 차림새에 표정은 볼품없었다. 심지어 옷매무새도 단추가 몇 개 풀렸고 옷자락이 찢기고 형편없었다. 그러나 그는 잠을 잘 때만은 얌전한 천사였다. 차라리, 처음부터 이렇게 천사 같은 모습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기나긴 잠을 자면 아무도 괴롭게 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102호는 곧 자신의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잔인하긴,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야! 그는 자신을 힐난하며 잠든 이를 들어올렸다. 그는 축 늘어졌지만 새털처럼 가벼웠다. 이것은 그의 세상으로부터의 미련의 무게를 의미했다. 그는 157호를 침상에 눕히곤 자신은 의자를 끌어다 옆에서 지키고 앉았다. 자신 또한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157호가 몸을 뒤척이자 의자에서 졸고 있던 102호도 자동적으로 깨어났다. 이젠 괜찮은 것처럼 보였다. 102호는 그에게 상체를 가까이 했다.


“정신이 들어? 괜찮아?”


102호가 그의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이내 불에라도 덴 듯 화들짝 손을 떼어내었다. 157호가 넋이 나간 채로 중얼거렸다.


“아파…….”

“너 때문에 내가 못 산다. 약 한번만 더 하면 가만두지 않겠어.”

“아파!”


그리고 157호는 아이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며 흐느꼈다. 그의 몸은 고통과 체력 방진으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리곤 진이 다 빠질 때까지 그는 흐느끼며 울었다. 울음이 차츰 줄어들었을 때쯤, 102호의 표정은 그보다도 일그러져 있었다.


“제발 이러지 마라……. 나도 진짜 괴로워 죽겠다.”

“살려주세요. 너무 아파!”

“내가 교수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나도 좀 살려주라…….”

“한번만, 딱 한번만 할게요. 응?”


157호는 고통스럽게 울면서 그의 팔을 흔들며 마약을 보챘다. 102호는 안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선뜻 그렇게 내뱉기엔, 자신이 그것 대신 그에게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잠시 그를 그때처럼 모른 척 해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무엇보다도 잔인하고 이기적인 행위였다.


문득 세간에 이름을 날리던 이 천재 교수가 이렇게까지 기피 대상이 된 것의 원인이 미치도록 궁금해졌다. 매듭은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다른 못 배워먹은 악당들보다 세속적으로 더 유리한 위치에 있었을 텐데도.


“무엇부터 잘못된 걸까.”


결국 아무런 답을 찾아내지 못한 102호가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은 그를 안아주는 것뿐이었다. 신기하게도 그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해했다. 아직도 몸은 간헐적으로 떨렸지만 157호는 눈물을 흘리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반면에 102호는 씁쓸한 고통의 미소를 지었다.


“난 잘 모르겠다……”

“아저씨.”

“응? 왜?”

“아저씬 나를 버리지 않으실 거죠.”

“…….”

“날 혼자 두지 마세요. 난 살고 싶어요…….”


또다시 바깥은 태양은 가고 어둑히 달이 뜨고 있었다. 야속하게도 보름달은 구름 한 점 없이 밝았다. 102호는 창밖을 바라보며 오늘도 우리는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안도를 가지고 살아야 될까. 102호는 넋을 놓곤 그의 뒷머리를 쓸어내렸다. 157호는 좋다고 그에게 더 안겼다.


“나는 잘 모르겠다…….”


작가의말

※마약 과다 복용은 몸에 매우 해롭습니다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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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4. 위대한 군주는-(1) 15.01.18 414 2 16쪽
29 3. 교수라는 직책-(2) +2 15.01.17 724 3 31쪽
28 3. 교수라는 직책-(1) 15.01.17 465 3 20쪽
27 2. 도둑과 양아버지-(4) 15.01.16 427 3 14쪽
26 2. 도둑과 양아버지-(3) 15.01.16 380 3 15쪽
25 2. 도둑과 양아버지-(2) 15.01.16 365 3 21쪽
24 2. 도둑과 양아버지-(1) 15.01.16 587 3 14쪽
23 1. 귀공자 15.01.15 453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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