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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크래커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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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크래커
작품등록일 :
2020.10.08 14:11
최근연재일 :
2020.10.23 18:10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449
추천수 :
24
글자수 :
61,640

작성
20.10.20 18:10
조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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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그녀의 회상

DUMMY

어렸을 때의 나는, 제법 똑똑했다던 모양이었다.


이해도 빠르고, 말도 잘하고. 여러대회에 나가 상을 차지했고, 초등학교 시험에서는 늘 100점에 1등이였다.


선생님들의 예쁨을 받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부모님은 우등생인 딸을 자랑스러워 하셨고 귀여운 내 여동생 세린이는 멋진 언니인 나를 무척 잘 따랐다.


주변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던 나이였다. 그렇기에, 그 당시 내가 받았던 사랑과 관심은 차고 넘쳤었다.


때문에 나는 조금 우쭐해했던 모양이다.


세상 모든일이 내 뜻대로 되어갔고, 세상 모두가 나를 사랑하는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치기어린 생각이었지 싶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갔다. 우리 중학교는 이 학군에서 제법 명문으로 소문이 나있는 곳으로, 그만큼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많이 지원하는 곳이었다.


때문에 중학교에 들어 처음 본 시험에서 나는 좋지 않은 성적을 받았다. 아니, '성적'이라기보다 '등수'로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실제로, 최상위권 애와 나의 점수는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그저 핑계일 뿐이었다. 세상이 보는 것은 결국 등수였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다지 나쁜 등수는 아니었다. 어찌됐든 나는 상위권에 속하는 축이였으니까.


다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언제나 1등만 하던 나였다.


누구보다 빛나던 그 자리에서 추락한 나는 스스로가 정말로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 후 나는 더욱 더 공부에 전념했다. 수업시간에는 집중, 떠들석한 쉬는시간에도 책을 폈으며 하교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헤어지고 학교 근처 시립도서관으로 향했다.


안그래도 무뚝뚝한 성격탓에 친구가 적었던 나였지만, 이렇게하니 그 적던 친구들 마저도 떨어져나가고 말았다. 조금 슬펐지만 곧 괜찮아졌다. 혼자인건 익숙하기도 했고, 또 공부에 집중하기에도 좋았다. 누가 뭐라해도 학생의 본분은 공부니 말이다.


다만 이렇게 생각한건 나뿐만이 아니였던듯 했다.


학교가 끝나고 청소년 열람실로 가면, 늘 한쪽 구석에 남자애가 한명 앉아있었다.


나는 그 애를 알고 있었다. 모를리가 없었다. 내가 오르고 싶은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 우리 중학교 1학년 전교1등. 김현우.


현우도 학교가 끝나면 여기서 공부를 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내가 오기 전부터 여기서 공부를 했었던 듯 했다. 녀석입장에서는 아마도 내가 침입자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청소년 열람실에는 사람들이 거의 오지않았다. 시험기간에야 꽉꽉 차지만 그런날이 아니면 청소년 열람실엔 우리 둘뿐이었다. 긴 테이블의 오른쪽 끝과 왼쪽 끝. 의자로 치면 8개 만큼의 거리. 그렇게 그 거리를 사이에 두고, 우리둘은 조용한 열람실에서 말없이 공부를 했다.


서로에게 말을 거는 경우도 없었다. 나야 현우를 알지만 애초에 면식이 없다보니 친분이 있을리도 없었다. 서로 상대방이 없는듯. 그렇게 사각거리는 펜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공간에서 우리는 각자의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기묘했던 침묵이 깨진건 서서히 기말고사가 다가올 즈음이였다.


언제나처럼 둘뿐인 열람실에서, 나는 어려운 수학문제 하나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분명 관통하는 공식이 있을텐데,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답지를 보기에는 왠지 분하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엔 찜찜했다. 자고로 나는 예전부터 막히는 문제가 있으면 하루종일 붙들어서라도 풀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렇게 홀로 끙끙대고 있을때, 갑자기 등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려줄까?"


소스라치게 놀라 뒤를 돌아보니 현우가 컵을 든채로 등뒤에 서있었다. 물을 뜨러 갔다온 모양이었다. 나갔는지도 못알아차렸다.


현우가 내게 말을 건건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목소리가 굵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아....어, 괜찮아. 내가 풀어보고 싶거든."


내 말에 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자리로 걸어갔다. '아...' 현우의 등이 멀어져갔다. 현우가 말을 건것은 결코 흔한 경우가 아니였다. 어쩌면 이후로는 현우와 대화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나도모르게 입을 열고 있었다.


"저기..."


현우가 멈춰섰다. 돌아선 눈동자엔 의아함이 가득했다. 왠지 낯부끄러워져 고개를 숙이며, 나는 머뭇머뭇 말을 이었다.


"그....힌트라도....조금 줄래....?"


대답없는 열람실은 쥐죽은듯이 고요했다. 그 고요를 참지 못한 내가 고개를 들자 거기엔 입을 막은채 키득키득 웃고있는 현우의 모습이 보였다.


웃을 땐 저런 표정이구나. 싶었다가도 그 대상이 나란것에 괜히 머리에 열이 올라왔다.


"왜 웃는거야"


샐쭉하게 째려봐주자 현우가 미안한듯 손사래를 치며 다가왔다. 여전히 입가엔 웃음이 남아있었다.


"미안, 좀 웃겨서."


"뭐가 웃긴데?"


"어디보자... 아, 이 문제 어렵지. 힌트를 주자면..."


은근 능청맞은 구석도 있는 모양이었다.



계기가 어떻게 됬든. 그날 이후로, 우리는 조금씩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먼저 와 있다 상대가 오면 가볍게 인사를 나누기고 하고, 문제를 풀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물어보기도 하고(대부분 내가 물어보는 쪽이였다).


서로 공부상황에 대해서 물어보거나, 잘하는 과목의 팁같은걸 공유하기도 하고.


공부하다 조는 모습을 보면 헛기침으로 깨워주거나, 피곤했던 학교행사가 있던 날이면 한바탕 불평을 늘어놓기도 하고.


학교에서 있었던 재밌는 이야기를 꺼내 같이 숨죽여 키득거리거나, 시덥잖은 장난에 상대를 죽도록 째려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학년이 되었을 무렵엔, 어느새 현우와 나 사이의 거리는 자리하나 만큼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어느 날은 창고 청소 때문에 도서관에 늦게 간 적이 있었다.


원해서 한 청소는 아니었다. 전날 밤을 새서 한 숙제를 깜빡하고 안가져가 벌로 받은 청소였다. 이 소식을 듣고 현우가 쌤통이라는듯 웃은건 덤이였지.


지금 가면 또 한바탕 놀려먹겠네. 한숨을 내쉬며 간 열람실에는 의외로 현우가 책상에 엎드려 단잠에 빠져있었다.


그러고보니 현우도 숙제때문에 밤을 샜다고 했었지. 평소처럼 한칸 옆의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았다.


팔을 배고 새근새근 잠이든 현우를 보니 왠지 괘씸하게 느껴졌다. 흐응. 이 누나는 뼈빠지게 청소하고 왔는데 그렇게 단잠에 빠져 계셨단 말이지?


몰래 미소를 지은 나는 필통에서 유성매직을 꺼냈다. 나중에 거울을 봤을때 우스꽝스러운 낙서가 있다면, 꽤나 볼만할 것이다. 음, 그래도 유성매직은 조금 너무한것 같으니 수성으로 할까.


나는 컴퓨터용 수성싸인펜을 꺼내 뽁 하고 뚜껑을 빼들었다. 으흐흐. 나조차도 음흉하다고 생각할만한 웃음을 지으며 싸인펜을 든채 현우에게로 다가갔다.


팔을 밴채 잠든 현우의 볼이 보였다.


내 마수가 다가오는 것도 모른채 순진하게 새근새근 잠든 모습이었다. 무방비하고 허술했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그런 모습.


"...."


왠지 맥이빠져 그만두었다. 필통에 싸인펜을 돌려놓았다. 대신 현우의 옆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흐음"


나는 팔에 얼굴을 묻고 현우를 바라보았다.


현우와 알게된지도 어느새 1년이 지났다. 학교가 끝나면 항상 이곳에서 함께 공부를 했다.


나름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서로에 대해 알게되었고, 몰랐던 점들도 많았었다.


현우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첫인상은 어쩐지 공부만 알것같은 냉혹한 인상이었는데, 알고보니 알게모르게 뒤에서 신경써주고 챙겨주는 타입이였다.


내가 모르는 문제가 있어 질문하면 언제나 기꺼이 가르쳐주고, 혼자 끙끙 앓고 있으면 어느새 등 뒤에 서있어 넌지시 힌트를 던져주곤 했었다.


저번 기말고사때 내 성적이 확 올랐을때는 기쁜듯 웃으며 축하도 해줬지. 이렇게 보면 참 정이 많은 애인데, 어째서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었을까? 물론 이런 말, 현우 앞에서는 말 못하지만.


"으음..."


현우가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살짝 뒤척였다. 그 표정이 우스꽝스러워 나도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현우와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낀다.공부에 지치고 외로움에 지친 마음에, 따스한 태양빛이 감도는 느낌.


그래서 일까, 나는 여태동안 이 열람실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쁠것도 없잖아?' 나는 생각했다.


그래, 그렇다고 딱히 나쁠것도 없다. 사람이 없어 공부에 집중하기에도 좋았고, 모르는 문제는 현우에게 물어볼 수도 있었다.


실제로 여기서 공부한 뒤로 내 성적은 눈에 띄게 올라갔기도 했고.


또 이곳 분위기가 이젠 익숙해져 편하다는 이유도 있었다. 다른곳으로 옮기면 익숙해지는 시간도 걸릴테니까..하지만...그리고 무엇보다....


"...."


나는 가슴께에 손을 올렸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느껴졌다. 평소보다 조금 빠른 템포였다.


언제부터였을까,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 현우를 보면 가슴이 빨리 뛰곤 했다.


아니, 공부하고 있을때만이 아니었다. 공부할때, 쉬고있을때, 이야기를 나눌때, 장난칠때, 딴청피울때, 그리고...


조심스레 손을 뻗어 현우의 머리칼을 만졌다.


짧은 머리칼에 손가락이 간지러워 웃음이 나왔다.


마음이 간지러웠다.


그래,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이때가 내 첫사랑이였을지도 모르겠다. 모든게 좋았던 시절이였다.


가족은 화목했고, 학교생활도 나름 괜찮았다. 친한 친구가 없는건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따금 말을 나누는 정도는 있었다. 성적도 올랐고 선생님들도 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홀로 가지고 있는 마음이지만, 좋아하는 사람도 생겼다. 저쪽 눈치를 보면, 딱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닌듯 했다.


공부를 하고 있으면, 이따금씩 이쪽을 보곤 하는 현우의 시선이 느껴지곤 했으니까. 그때마다 웃음을 참는게 힘들기는 했지만 말이야.


즐거웠다. 내일이 기대되는 하루하루였다. 정말로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그래서 그땐 생각치 못했다. 그 행복한 순간들이, 이렇게 한순간에 끝나버리리라곤 말이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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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별거 아닌 일 20.10.12 20 1 11쪽
4 사탄도 거를 놈 +2 20.10.11 33 3 8쪽
3 그녀의 이야기 +2 20.10.10 43 3 10쪽
2 폐부위기의 청춘문예부 +3 20.10.09 76 3 9쪽
1 프롤로그 +1 20.10.08 69 3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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