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참치크래커의 서재

언니의 시를 찾아주세요!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추리

참치크래커
작품등록일 :
2020.10.08 14:11
최근연재일 :
2020.10.23 18:10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454
추천수 :
24
글자수 :
61,640

작성
20.10.18 13:05
조회
17
추천
1
글자
9쪽

청춘이란 낯선 단어다

DUMMY

'청춘(靑春)'이란 낯선 단어다.


내 나이때가 청춘이라고 듣기로는 자주 들었어도, 정작 내가 청춘을 누리고 있나 생각해본다면 별로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청춘이란 무엇인가. 공부에 치이고 시험에 치이고, 곧 3학년이 되면 야자와 강제 주말학습에 치이게될 이 황량한 운명이 과연 청춘이라는 것일까.


흔히 말하기를 청춘은 직접 밟고 지나오기 전까진 와닿지 않는 오솔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미래의 나는 지금을 떠올릴때 청춘의 한조각으로 생각하며 회상할것인가.


"저기, 찬솔오빠."


지금의 이 무지막지한 상황도, 나중에 생각했을땐 그리웠던 한편의 추억이 되는 것일까.


"콜라가 좋아요, 주스가 좋아요?"


낭랑한 목소리에 옆을 돌아본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촉촉해보이는 단발머리. 세린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보고 있었다. "아이스티도 있는데"


아닌게아니라 아까부터 목이 마르긴 했다. 대접해준다니 감사히 받도록 하자.


"...그럼 아이스티로"


"네, 그럼 타올테니까 책꽂이의 책이라도 보고 계세요."


세린이가 나가고 방문이 닫힌다. 그제서야 나는 묶여있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아..."


뭐 한것도 없는데 진이 빠진다. 흔히들 처음 외국을 가면 이런증상이 나타난다는데 내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낯선 공기, 낯선 장소, 낯선 분위기. 의자대신 앉아있는 침대의 감촉마저도 낯설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외국은 아니라는 점일까.


내가 지금 있는 곳은 세린이의 집, 정확히는 2층의 세린이의 방이였다. 요즘세상에 2층주택이라니. 그것도 꽤나 넓었다. 우리의 후배님은 의외로 유복한 집안의 아가씨였던 모양이였다. 아니, 그러니까 그 행동력이 나왔던건가. 흐음.


"....."


머리가 멍했다.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 뒤죽박죽인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상황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먼저, 금요일. 세린이의 언니, 세영 선배의 시를 찾았다.


그 다음, 세린이가 다같이 시를 읽어보자고 했다.


그 다음, 시를 보던 세린이가 갑자기 당황하더니 먼저가버렸다.


그날 저녁, 세린이에게서 자기집에 와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오늘, 나는 세린이의 방에 있었다.


음, 과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냉정한 상황분석과 마음의 혼란스러움은 의외로 관계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좋아, 책이나 보자. 나는 그냥 다 잊기로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책꽂이로 향했다. 벽 한쪽을 차지하는 책꽂이에는 다양한 책들이 꽂아져 있었다. 드문드문 나도 아는 제목들이 눈에 띄었다. 어, 이건.


문득 한 권에 눈이 갔다. 나는 그 책으로 손을 뻗었다.


'베로니카의 바다'


며칠 전 세린이와의 대화에서 언급되었던 책이였다. 요즘 푹 빠져있던 책이라고 했었나. 나도 재밌게 읽었었지. 왠지모를 향수에 젖어 페이지를 넘기고 있으니 책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아..."


떨어진것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바닥에 떨어져있는 것은 한송이의 말라있는 꽃이였다.


압화인가. 들꽃같은걸 눌러 건조시켜서 책갈피로 쓰는 경우도 있다고 들은 기억이 있다. 의외로 고상한 취향이군.


다행이도 책갈피가 떨어진 페이지는 기억하고 있었다. 거의 마지막 부분이다. 아, 이 부분. 반전이 드러나는 바로 전 파트다. 다 끝나가는 줄 알았는데 꽤나 놀랐었지. 순간, 나는 짖궂은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내가 책갈피를 반전 뒷부분에 꽂아놓으면 어떻게 될까. 책을 끝까지 읽고나선 이해가 안돼 당황하진 않을까.


물음표를 띄며 당황하는 세린이의 얼굴이 상상되서 피식 웃고 말았다. 하지만 뭐, 내가 볼 수 있는것도 아니고.


나는 책갈피를 제자리에 끼워넣었다. 아무리 그래도 실천으로 옮기기엔 너무한것 같았다. 그 녀석 왠지 화낼것같기도 하고 말이야.


책을 제자리에 두고 다른 책들을 살펴볼때쯤 세린이가 다시 돌아왔다. 한손으로 쟁반을 들고 문을 여는 모습이 위태로워보여 얼른 다가갔다. 아니, 문이라도 열어달라하지.


"휴, 고마워요 오빠."


생긋 웃는 모습이 귀엽다. 왠지 다시 긴장되는 기분이었다.


아이스티를 한모금 마셨다. 시원하고 달콤한 복숭아 향이 마른 목을 적셔갔다. 휴. 한숨 돌린 나는 세린이에게 묻기로 했다.


"...그래서, 왜 오라고 한거야?"


황금같은 토요일에 말이야. 내 토요일 오전의 스케쥴이래봐야 늦잠밖에 없지만, 그리말하면 괜히 초라해보이니 한마디 덧붙여 보았다. 내 말에 세린이는 미안한듯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빠가 도와주셨으면 하는게 있거든요."


그러면서 서랍을 열고 뭔가를 꺼내는 세린이. 세린이의 손에 들린것은 한 장의 종이였다. 낯이 익었다. 그도그럴게 그 종이는 어제 우리가 찾아낸 세영 선배의 시였으니말이다.


"오빠는 이걸 읽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왠지 낯익은 질문이다. 영서와도 어제 이런 이야기를 나눴었지. 어떤 생각이라. 여러가지가 떠올랐다. 영서가 말해준 표현기법이라던지 내가 말한 초조한 느낌이라던지.


흐음. 나는 아이스티를 한모금 마셨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건...


"제목이 특이하다고 생각했지."


'까미와 난쟁이 : 반대'라니. 까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시에 난쟁이는 등장하지도 않는다. 백번 양보해서 난쟁이가 시의 화자라고 친다해도, '반대' 라는건 무엇인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말하자 세린이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언니가 무슨생각으로 이런 제목을 지었을까. 하고 당황했었죠. 그러다가 문득 한가지 기억이 떠올랐어요."


세린이는 거기까지 말하고 말을 멈추었다. 나는 말없이 아이스티를 한모금 마셨다. 잠시 뭔가를 고민하던 세린이는 이내 고개를 들고 내게 말했다.


"오빠, 잠깐 저를 따라와주시겠어요?"


거부해 뭐할까.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세린이를 따라 방에서 나왔다. 나는 문을 닫고는 얌전히 세린이의 등을 따라갔다. 세린이는 자기 방과 조금 떨어진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세린이가 작게 속삭였다.


"저희 언니의 방이에요."


나는 조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말에 실린 무게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세린이는 조심스레 손잡이를 돌렸다.


끼익.


경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또다른 낯선 공기가 내 코를 간질였다. 방은 깨끗했다. 사람이 살지않는 방이라는게 와닿지 않을 정도로 먼지한톨 없이 깔끔했다. 아마 세린이가 잘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죽은 사람의 방이라는게 연상되어 싸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기묘한 기분이었다.


"찬솔오빠, 오빠는 미니북이라는걸 아시나요?"


침묵 속에서 세린이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나는 물음표를 띄울 수 밖에 없었다.


"미니북?"


"네, 도화지 한장으로 만드는 작은 책이요. 초등학생때 만들어 보셨을거에요."


아아. 초등학생때 라는 말에 간신히 떠올랐다.


도화지 한장으로 만드는 책. 초등학교 실과시간에 만들었던게 기억이 났다.


도화지한장을 8칸이 되도록 접고, 가운데 2칸만큼을 칼로 자른다. 그리고 접힌 주름대로 접어주고 테이프같은걸로 붙여주면 표지제외 6p짜리 손바닥만한 작은 책이 완성되는것이였다.


떠오르는 기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기억나. 어렸을때 자주 만들었던것 같은데."


내 말에 세린이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서랍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손바닥만한 작은 미니북. 색연필로 알록달록하게 색칠된 그 미니북에는 아기자기한 손글씨로 제목이 적혀져 있었다.


'까미와 난쟁이'


"이건..."


내 중얼거림에 세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언니의 시 제목이에요. 이 미니북은 제가 초등학교때 과제로 만든거였어요. 간단한 동화책을 만들어오는 과제였었는데, 저는 손재주가 좋지 못해서 책도 만들지 못한채 울상이였답니다. 그때 언니가 저를 도와서 이 책을 만들어주었어요. 언니는 손재주가 좋았거든요. 저는 무척이나 기뻤어요. 세상에서 제일 멋진 우리 언니였죠."


세린이가 추억에 잠긴듯 눈을 감으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언니의 시를 읽고 이게 떠올랐을때, 저는 조금 진정할 수가 없었어요. 우연일 수도 있지만, 분명 이 미니북과 무언가 관련이 있을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곧장 집으로 와 언니의 방에서 이 미니북을 찾아냈어요."


과연, 그때 당황하던 세린이의 모습은 이것 때문이였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린이는 조금 침울해진 눈치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찾는것까진 괜찮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어요. 아무리 살펴봐도 언니의 시와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었거든요. '반대' 라는 말에 동화책을 거꾸로도 읽어보고 뒤집어서도 읽어봤지만 무엇인가 관련될만한 건 찾을 수가 없었어요."


아. 나는 그제서야 세린이가 나를 부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세린이는 '까미와 난쟁이'를 두손으로 내밀며, 간절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도와주시겠어요, 오빠?"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언니의 시를 찾아주세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모든것이 20.10.23 32 1 8쪽
15 심장의 의미 20.10.22 14 1 7쪽
14 평소와 다른 모습 20.10.21 18 1 7쪽
13 그녀의 회상 20.10.20 19 1 11쪽
12 까미와 난쟁이 : 반대 20.10.19 18 1 11쪽
» 청춘이란 낯선 단어다 20.10.18 18 1 9쪽
10 그녀의 시 20.10.17 23 1 12쪽
9 찾아내다 20.10.16 15 1 11쪽
8 브레인스토밍 20.10.15 19 1 6쪽
7 선택의 가능성 20.10.14 13 1 10쪽
6 눈동자 속의 거울 20.10.13 23 1 10쪽
5 별거 아닌 일 20.10.12 21 1 11쪽
4 사탄도 거를 놈 +2 20.10.11 34 3 8쪽
3 그녀의 이야기 +2 20.10.10 43 3 10쪽
2 폐부위기의 청춘문예부 +3 20.10.09 76 3 9쪽
1 프롤로그 +1 20.10.08 69 3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