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참치크래커의 서재

언니의 시를 찾아주세요!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추리

참치크래커
작품등록일 :
2020.10.08 14:11
최근연재일 :
2020.10.23 18:10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448
추천수 :
24
글자수 :
61,640

작성
20.10.13 18:10
조회
22
추천
1
글자
10쪽

눈동자 속의 거울

DUMMY

그래, 별거 아니였을 것이다.


조용히 내 말을 기다리고 있는 세린이에게, 나는 입을 열었다.


"친한 친구가 한명 있었어. ...아니, 친했던 친구가 한명 있었지."


'친했던'이란 말에 세린이의 눈썹이 살짝 흔들렸다. 나는 개의치않고 말을 이어갔다.


"어려서부터 친했던 친구였어. 집이 근처였거든. 학군이 같다보니까 자연스레 학교도 같이 다녔고, 나중에는 같은 고등학교에도 진학하게 됐지."


사실 이런 친구는 한 명 더 있다. 바로 내 악우이자 부랄친구인 영서. 하지만 지금은 그 녀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니 넘어가자.


"어쩌다보니 같은 동아리에 가입하게 됬고, 활동하게됬지. 나쁘진 않았어. 내가 왔을땐 이미 소규모가 되어서 보잘것없는 동아리였지만, 그래도 나름 소소하게 재밌고 즐거웠었거든. 이런것도 괜찮다고 생각했었지. ...다만, 그렇게 생각한건 나뿐이였을지도 모르겠어."


잘못된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종업식날, 2학년 선배들이 나간 뒤 얼마지나지 않아서 그 녀석이 탈퇴신청서를 가지고 동아리실로 오더라고. 똑같이 탈퇴신청서를 든 부원들을 뒤에 데리고 말이야."


"아..."


세린이가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말하더라고. '이런 가능성 없는 동아리에 더이상 있고 싶지않다. 우리는 나가서 새로운 동아리를 만들겠다.' 라고 말이야..."


세린이는 무슨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렇게 그 녀석과 부원들은 떠났고, 나랑 영서만 남게 되였지."


다행히도 네덕분에 폐부는 막았지만 말이야. 장난스럽게 덧붙인 말에 세린이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곤 잠시간의 침묵이 찾아왔다.


"...."


"오빠는...괜찮았어요...?"


세린이가 걱정스럽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참 착한 녀석이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배신감같은걸 느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실말이지. 종업식 전날, 그 녀석이 나한테 찾아왔었어. 자기랑 나가서 같이 새 동아리를 만들자고 말이야."


세린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나는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우리동아리는 어찌어찌 간신히 버티고는 있었지만,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한걸음씩 폐부에 가까워지고 있는 가망이없는 곳이라는걸.


버팀목이였던 과거의 영광은 구닥다리라는 이미지에 낡게 바래질 뿐이었고 규모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비유하자면 망망대해에서 바닥에 구멍이 송송 뚫린채 침몰하고 있는 난파선이라 해야할까.


아마 녀석들이 나가지 않았었다해도 분명 내후년 쯤에는 폐부가 확실했을 그런 상황이였다.


그런 와중에 녀석은 나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같이 이곳에서 나가자고. 나가서 다시 새롭게 시작해 보자고.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좋았을 미래는, 그때 녀석이 내민 손을 잡고 모두가 탈출하는 것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녀석의 제안을 거절했었다.


배신감은 오히려 녀석이 느꼈을 것이다. 그날 녀석은 나에게 엄청나게 화를 냈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갈라지게 되었다.


"...뭐, 잘하고 있는것 같더라고. 제법 유명한것 같기도 하고."


"...오빠는 왜 따라가지 않았던거에요?"


글쎄. 나는 왜 따라가지 않았던 걸까.


유독 동아리에 애착이 깊던 영서놈이 자긴 남겠다고 말해서였을까. 아니면 한조각 즐거웠던 기억들이 여전히 마음속에 걸려서 였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러게..."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뀐 지금도, 나는 그날의 내 생각을 잘 모르고 있었다.


"나도 잘 모르겠는걸"



음. 어느새 한 상자가 다 끝났다. '또 가져와야겠네'. 나는 의자를 끌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문득, 세린이에게 눈길이 갔다.


"...."


세린이는 말없이 종이뭉치들을 보고 있었다. 아까의 대화 이후로 줄곧 이런 상태였다. 어색하기도 했지만 계속 있다보니 익숙해진 상황. 그렇지만 계속 이 상태로 있고싶단 소리는 아니였다.


그나저나 제대로 보고있긴 한건가. 얼핏 보면 뭔가 생각에 빠져있는것 같기도 했다. 만약 그렇다면 무슨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나는 상자더미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어떤걸 가져와볼까. 부디 이번엔 있어줘야 할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상자를 고르고 있을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알것같아요."


...? 뜬금없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세린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를?"


영문모를 소리에 그렇게 말하자 세린이가 대답했다.


"오빠의 마음이요."


이게 무슨소린가. 순간 벙쪄 아무말이다 내뱉으려다가, 떠오르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잠깐, 이 녀석이 말하는 내 마음이란게 설마...


"...네, 맞아요."


세린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친구분의 제안을 거절하고 동아리에 남기로 결정했을때...그때의 오빠의 마음이요.


아마도 이때 내 표정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였을 것이다. 말을 하던 세린이의 어깨가 일순간 흠칫 떨렸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세린이는 말하는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거든요."


이해하실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세린이는 그렇게 덧붙였다. 나는 복잡한 감정을 맛보며 세린이에게 물었다.


"...무슨 경험인데"


세린이는 자그맣게 숨을 마시며 대답했다.


"저도..."


덤덤한 목소리.


"언니의 방을 남겨놓기로 했었거든요."


세린이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세린이는 나에게 이해할 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였다. 나는 세린이가 무슨말을 하는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때문에 나는 세린이가 입을 열때까지 잠자코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 나에게 세린이는 고맙다는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언니가 떠나고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부모님은 언니의 방을 정리하자고 하셨어요."


그때는 아직 언니를 기리는 의미로 언니의 방을 손대지 않고 남겨두고 있었거든요. 세린이가 덤덤히 말했다.


"그런 언니의 방을, 부모님께서는 이제 정리하자고 하셨어요. 분명 나쁜 의도는 아니셨을 거에요. '언니가 떠난건 슬프지만, 이제 그만 그 슬픔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힘차게 미래를 살아가자.' 그런 의도셨죠. 좋은 뜻이였어요. 옳은 선택이기도 했고요. 언제까지고 슬픔에만 젖어있을 순 없었죠. 시간도 어느정도 흘러 저도 익숙해질 즈음이었거든요. 아마 가족 모두를 위한 좋은 선택이였을 거에요."


세린이는 "그렇지만" 이라고 말을 덧붙였다.


"저는 언니의 방을 남겨놓고 싶었어요. 그리곤 부모님께 부탁했어요. 아뇨, 떼를 썼죠. 제가 관리 같은건 다 할테니 부디 언니의 방을 남겨놓자고요."


'떼를 썼죠' 부분에서 조금 부끄러웠던지 세린이의 고개가 조금 숙여졌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부모님도 저를 타이르려고 했지만 제가 말을 듣지 않자 결국에는 다투기도 했어요. 제가 생각해도 전 고집불통이였죠. 그렇게 생각해보면 저희 부모님은 마음이 참 넓으신 분들 같아요."


세린이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결국 부모님은 제 고집을 꺾지 못하셨고 제 부탁을 들어주셨어요. 그렇게 7년이 지난 지금도 언니의 방은 그대로 남아있죠."


나는 조용히 세린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최선의 선택은 아니였어요. 언니의 방이 남아있는 이상, 그 앞을 지나갈때마다 부모님도 저도 어쩔 수 없이 언니를 생각해내겠죠. 추억과 기억과 그 상처까지도요. 지금도, 그때도. 저는 분명히 그걸 알고 있었어요."


"...그럼 너는 왜 그런 선택을 한거야?"


나도 모르게 말했다. 그리고 그건 동시에 나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했다. 1년전,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내 질문에, 세린이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줬다.


"저는 안주하고 있었어요."


안주. 그 단어에 내 가슴도 섬짓했다.


"저는 망설였어요. 이대로 언니를 잊는것도, 언니를 잊지않고 계속해서 추억하는것도."


무서웠거든요. 세린이가 말했다.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녀는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제 선택으로 변하게될 모든 것들이요."


가슴에 쿵 충격을 받는듣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한쪽을 선택한다면, 분명히 변하게 된다. 상황도 다른사람들도 그리고 자신도.


그녀는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녀의 언니를 잊겠다고 선택한뒤 찾아올 변화가, 잊지않고 하염없이 추억하겠다고 선택한 뒤 찾아올 변화가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선택을 미뤘다. 언니의 방을 남겨두고 안주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겐 두가지 선택지가 있었을 것이다. 과거의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시작을 하거나, 과거의 흔적을 재건해 새로운 현재를 쓰던가.


그러나 나는 어떤 선택을 했던가. 그 녀석처럼 새로운 시작을 위해 동아리를 떠나는건 거절했지만, 그렇다고 동아리에 애착을 지닌 영서처럼 동아리를 재건하기 위해 열정을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망설인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랬다.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세린이의 눈동자가 보였다.


"...."


그것은 동정의 시선이 아니였다. 나를 탓하는것도, 나를 불쌍히 여기는것도 아니였다. 그녀는 나에게서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언니의 시를 찾아주세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모든것이 20.10.23 32 1 8쪽
15 심장의 의미 20.10.22 14 1 7쪽
14 평소와 다른 모습 20.10.21 18 1 7쪽
13 그녀의 회상 20.10.20 18 1 11쪽
12 까미와 난쟁이 : 반대 20.10.19 18 1 11쪽
11 청춘이란 낯선 단어다 20.10.18 17 1 9쪽
10 그녀의 시 20.10.17 22 1 12쪽
9 찾아내다 20.10.16 15 1 11쪽
8 브레인스토밍 20.10.15 18 1 6쪽
7 선택의 가능성 20.10.14 13 1 10쪽
» 눈동자 속의 거울 20.10.13 23 1 10쪽
5 별거 아닌 일 20.10.12 20 1 11쪽
4 사탄도 거를 놈 +2 20.10.11 33 3 8쪽
3 그녀의 이야기 +2 20.10.10 43 3 10쪽
2 폐부위기의 청춘문예부 +3 20.10.09 76 3 9쪽
1 프롤로그 +1 20.10.08 69 3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