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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크래커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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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크래커
작품등록일 :
2020.10.08 14:11
최근연재일 :
2020.10.23 18:10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453
추천수 :
24
글자수 :
61,640

작성
20.10.1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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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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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별거 아닌 일

DUMMY

딩동댕동.


정규수업이 끝나는 시간. 방과후 수업을 신청한 학생들은 남고, 학원이나 과외가 있는 학생들은 집으로, 동아리 활동이 있는 학생들이 있는곳은 특별동으로 향하는 시간.


"좋아."


그 특별동 구석 어느 작은 동아리방에서, 나는 목장갑을 낀 손을 가슴께로 들며 기세좋게 외쳤다.


"그럼 시작해 볼까!"


"시작해 볼까요!"


옆에서 들리는 낭랑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목장갑을 낀 여학생이 의지가 충만한 표정으로 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이름은 권세린, 이번에 새로 청춘문예부에 들어오게된 신입생이며 내가 오후의 방과후시간에 목장갑을 끼게만든 원흉이였다.


처음에는 내 개인시간을 뺏긴다는 원망에 으르렁 대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녀석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고 또 어찌됬든간에 폐부위기던 우리 청춘문예부의 구세주이기도 했기때문에 좋게 보기로 했다.


그래, 그런건 문제도 아니지.


문제는 이거다.


"많다..."


"많네요..."


어제 영서와 내가 옮기긴 했지만 이렇게 보니 진짜 많다. 우리 눈앞엔 박스가 조금 과장붙여 산처럼 쌓여있었다.


우리의 임무는 이 산처럼 쌓인 상자들 속에서 권세영 선배의 시 한편을 찾아내는것.


...암울하다. 언제 끝날지 모르겠는걸.


그러나 언제까지나 멍하니 서있을순 없는 노릇. 나와 세린이는 힘을 내서 탐색을 시작하기로 했다.


세린이는 문서들의 산을 잠시 멍하니 보더니 정신을 차리려는 듯 두 볼을 짝짝 때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어떤 상자부터 봐야 할까요?"


"일단은 아닌것 같은 상자들부터 골라내자."


탐색의 첫걸음은 바로 소거. 글이나 시와 관련이 없는 상자부터 빼내기로 했다.


"어디보자, 20xx년 학생출석부 이거는 빼고, 가입신청서 이것도 아니고...끄응, 이거 무겁네."


"동아리 비품신청서 이것도 아닌것 같아요....이익!"


낑낑대며 상자를 들려는 세린이. 팔다리에 힘이 없어보인다. 잘못하다가 다칠것 같아서 대신 들어주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세린이는 상자의 이름 확인을, 나는 상자를 치우는 걸로 역할분담이 됬다.


"끄응....어쩐지 돌쇠가 된 기분이야."


"우, 미안해요 찬솔오빠."


연신 미안하다며 힘들면 바꾸자고 하는 세린이. 마음은 고맙다만 네가 하면 하루종일 걸릴것 같아. 속마음은 삼켜두고 괜찮다며 분류를 진행했다. 아이고 허리야.


어느덧 한시간이 지나고, 우리앞에 있던 상자들의 산은 여전히 많긴하지만 분명하게 줄어들어 있었다. 동아리 운영이나 회계관련 문서들이 제법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게 행운이라면 행운이였다.


"좋아,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네."


나와 세린이는 책상과 의자 한쌍을 끌어다가 상자들의 산 앞에다 가져다두었다.


우리의 계획은 실로 간단했다. 상자를 뜯는다. 문서뭉치를 꺼낸다. 확인한다. 다시 상자에 넣는다.


그래, 정말 간단했다. 그 양이 문제지.


어쨋거나 우리는 의자에 앉아 작업을 시작했다. 팔랑팔랑. 둘밖에 없는 동아리실에 한동안 말없이 종이 넘기는 소리만 가득했다.


"....."


"....."


좋게말하면 평온한 분위기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어색한 분위기라는 소리였다.


그도그럴게 우린 만난지 하루밖에 안됐다. 단둘이서 웃고 떠들기엔 어색한 사이라는 것이다.


끄응


안되겠다. 아무래도 어색함을 참을 수 없던 나는 먼저 입을 열기로 했다.


"세린이 넌 취미라던가 있어?"


...맙소사. 나는 방금 스스로 내뱉은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뭐 소개팅 나왔냐!! 영서놈이 있었다면 대번에 박장대소하며 비웃었을 것이다. 그렇게 홀로 식은땀을 흘리고있자 세린이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음...저는 영화나 소설 보는걸 좋아해요. 요즘에 빠져있는 책이 하나 있거든요."


다행이도 대답하는 세린이의 표정은 나빠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워하는 표정일까. 착한녀석이라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빠져있는 책이라...


"제목이 뭔데?"


"오빠가 알고있을진 모르겠어요. '베로니카의 바다'라는 책인데..."


"아, 혹시 '내 영혼도 파도에 실려 저멀리' 그거야?"


"네, 맞아요! 오빠도 그거 읽었어요?"


동지를 찾았다는듯 세린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내가 말한 문장은 '베로니카의 바다'에 등장하는 구절중 하나였다.


'베로니카의 바다'는 네덜란드 작가가 쓴 로맨스 소설이다.


망망대해에 떠있는 한 섬에 홀로 외로히 살고 있는 주인공 베로니카가 또다른 주인공 이델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찾아간다는 이야기인데


내가 말한 '내 영혼도 파도에 실려 저멀리'는 바다에 구속된 베로니카의 자유를 향한 갈망을 나타내는 구절이었다.


서점에서 읽을만한 책을 뒤적거리다 우연히 보게됬었는데, 생각보다 재밌어서 끝까지 봤던게 기억이 났다. 그래, 결말이 진짜 인상적이였지.


"마지막에 베로니카가-"


"아! 안돼요! 저 아직 다 못읽었단 말이에요!"


급하게 막는 세린이의 외침에 나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하기사 스포일러는 돌맞을 짓이긴 하지.


"재밌긴 하더라. 심리묘사도 좋았던것 같고. 스토리도 좋고."


"그쵸? 요즘 밤이면 틈마다 읽고 있어요."


자기 말마따나 푹 빠진듯 세린이는 싱글벙글 웃고있었다. 묘하게 귀여운 모습에 나는 픽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조금 의외네요."


세린이의 말에 나는 물음표를 띄웠다. 뭐가.


"오빠도 책을 좋아한다는게요. 겉으로 보면 책은 쳐다도...헙!"


세린이가 실수 했다는 듯이 입을막고 도리질을 쳤지만 비수는 이미 내 심장에 꽂힌 상태였다. 아니 이거 너무한다. 나는 억울하다는 심정을 담아 입을 열었다.


"야, 나 문예부거든?"


그 말에 세린이가 쿡쿡 웃음을 터트린다. "아, 그렇죠.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눈가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매달고 웃는 모습에 나는 분노가 끓어 올랐다.


오호라 덤빈다 이거지?


"마지막에 베로니카가 이델한테 하는 말이-"


"아, 제가 잘못했어요! 항복, 항복!"


그렇게 특별동 한구석에선 작은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도대체 예전 선배들은 뭐하셨던 분이시길래 작품들이 이렇게 많은걸까요?"


상자를 네개째 텃을즈음일까, 세린이가 그런 말을 했다.


"원래 문예계열 동아리는 선배들의 유산이 많지."


"그치만요. 이게 다 1년치라니, 하루에 열편씩 쓴다해도 무리일것 같은걸요."


세린이가 잔뜩 쌓인 상자더미들을 넌더리가 난다는듯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세린이는 우리 동아리의 과거를 잘 모르는 모양이였다.


좋아. 귀여운 후배에게 유서 깊은 우리 동아리의 역사를 알려줘보실까. 나는 잘나가다 사업실패한 사람이 '왕년에 내가 말이야~' 하는 식으로 운을 뗐다.


"그때는 우리 동아리가 전성기였던 시절이었거든."


"전성기요?"


세린이가 잘 상상되지 않는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긴 그럴만도 했다. 세린이가 본 청춘문예부란 코딱지만한 동아리방에 부원도 2명밖에 없어 폐부위기에 직면한 초라한 모습이 전부였을 테니까.


으음. 어떻게 설명해 줄까. 나는 우리가 있는 동아리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가 지금 있는 이 교실봐바."


"네"


"어떻게 생각해?"


"음...다른교실들 보다는 조금 좁긴 하지만 그래도 동아리 활동하기엔 나쁘진 않은것 같은데요?"


곰곰히 생각하며 말하는 세린이. 피식.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이 교실 말이야, 옛날 우리 동아리가 창고로 썼던 교실이래."


"네?"


정말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는 세린이.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웃겨 저절로 웃음이 나와버렸다.


"그래, 옆에 바둑부랑 서예부 있지? 예전에는 거기 교실 두개를 통째로 쓰곤 했었나봐. 그래도 교실이 모잘랐다니, 어마어마한 규모지."


세린이가 상상이 안된다는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솔직히 나도 1학년때 여기 들어왔을때, 선배들이 해준 이야기를 듣고 믿지 못했었다. 몇년전 단체사진이라고 앨범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거기엔 과연 카메라에 꽉찰듯한 부원들의 사진이 잔뜩 붙여져있었다. 정말 대단했었지. 페이지를 넘길수록 급격히 초라해지는 모습에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말이다.


"정말 대단했네요...어...그런데 왜..."


어, 음. 왠지 내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리는 세린이. 뭔가 말하기를 망설이는 눈치다. 왜 그러지. ...아하. 세린이가 머뭇거린 이유를 눈치챈 나는 속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아무래도 나한테 실례가 될까봐 망설이는 모양이였다. 딱히 아무렇지도 않는데...흠. 좋아, 배려심 깊은 후배님을 위해 나는 내가 먼저 나서주기로 했다.


"하하. 세린이 넌 그 대단했던 동아리가 왜 지금와선 궁상맞은 단칸방에 당장 쓰러질듯 지저분한 거지꼴을 못면하고 있는거냐고 묻고 싶은거지?"


"그,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한순간 굉장히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짓는 세린이. 그 모습에 나도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리자 세린이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째려보았다. 크흠. 큼. 나는 모르는 척 시선을 스윽 피했다.


"...그래서, 정말 물어봐도 괜찮은 거에요?"


뭔가 포기한듯한 목소리로 세린이가 입을 열었다.


"혹시 안좋은 기억이였다거나 그런거면 말해주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뭔가 걱정하는듯한 세린이의 말에 나는 픽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괜찮아. 뭐 대단한 사정도 아닌걸."


그래, 그리 대단한 사정도 아니었다.


전성기가 지난 동아리는 매력에 비해 그 규모가 너무 커져버렸고,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기엔 너무 무거운 몸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고리타분한 동아리를 떠나 다른 곳들을 세웠고, 새로운 사람들은 새로운 매력에 그곳으로 끌려가면서 어느순간부터 신입생들도 잘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신입생이란 동아리의 생명줄과도 같은것. 생명줄을 잃은 동아리는 시름시름 제 살을 깎아먹고 앓아가다 우리때까지 오게 된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르지못한 거인의 흔하디 흔한 결말이었다. 솔직히 예전에 그렇게 아무리 잘나갔었다고 해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별로 슬프다거나 한탄스라운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야 내가 겪은 청춘문예부는 작년 1년 뿐이였는걸.


...다만 아쉬운 생각이 든다고 한다면...




"작년엔....어떤 일이 있었나요...?"




망설이며 묻는 세린이도 아마 짐작했을것이다.


올해 우리 청춘문예부는 최소인원을 맞추지 못해 폐부위기에 놓여있었다.


그 말은 즉슨, 올해에 들어서면서 상당수의 부원들이 갑작스럽게 빠져나가버렸다는 것.


말마따나 실제로 3학년으로 올라가 수능준비에 들어서는 2학년들의 탈퇴와 2학년으로 올라가는 기존 1학년들의 대거탈퇴가 일어났었다.


2학년들의 탈퇴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기존1학년들의 대거 탈퇴는 정말로 예상치 못한일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떠나가는 이와 남는 이 사이에서는 갈등이 일어나는 법.


작년의 마지막에 장식하지 못한 따뜻한 추억의 빈자리에 나는 여전히 씁쓸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냥, 별 거 아니였어..."


세린이가 말없는 시선을 내게 던지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말을 삼켰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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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거 아닌 일 20.10.12 21 1 11쪽
4 사탄도 거를 놈 +2 20.10.11 34 3 8쪽
3 그녀의 이야기 +2 20.10.10 43 3 10쪽
2 폐부위기의 청춘문예부 +3 20.10.09 76 3 9쪽
1 프롤로그 +1 20.10.08 69 3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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