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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엘 님의 서재입니다.

신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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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리엘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1
최근연재일 :
2023.08.19 19:20
연재수 :
58 회
조회수 :
3,832
추천수 :
98
글자수 :
296,827

작성
23.06.21 07:2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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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비상 계단

DUMMY

최교연 중령은 출근하지 않았고, 아무런 연락도 해오지 않았다.


사단장 비서실 정인희 하사와 구일모 상병이 번갈아 가며 몇번씩 그와 그의 아내 휴대폰, 심지어 집 전화로도 몇번씩 연락해봤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서울 수송동 수사본부에도 오늘 아침 그와 통화를 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위병소에도 확인해봤지만 그렇지 않아도 오늘 아침 비서실장께서 통과한 기록이 없다는 대답 뿐이었다.


“어떡하죠?”


거의 20분 동안 전화기를 붙잡고 있던 구상병이 난감한 표정으로 정하사에게 물었다.


“미치겠네. 사단장님 출근 5분 전인데.”


난감하기는 정하사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교통 사고라도 난 게 아닐까요? 아니면···..”


구상병은 말을 맺지 못했다. 윤월호 중령 피살 사건으로 아직 사단 분위기가 흉흉한데, 또 그 비슷한 사건이 일어 났다면···.


“일단 내가 부관 장교께 보고할 테니까, 구상병은 당직 사령실에 전화하도록 합시다.”


장중위는 사단장 공관 앞 대기 중에 정인희 하사의 전화를 받았다.


“그래? 무슨 일이시지?”


사단장 박병태 소장이 공관을 나온 것은 장중위가 아직 휴대폰을 들고 있을 때였다.


“뭐야?”


장중위는 황급히 휴대폰을 끄고 보고했다.


“비서실장이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는 보고입니다.”

“그래?”


불길한 생각이 박소장의 머리 한가운데를 꿰뚫고 지나갔다.

어쩌면 사소한 일일 수도 있지만 오늘이 어떤 날인가? 혁명의 아침이 아닌가 말이다.

혹시, 정보가 새어나간 것일까? 그래서, 최교연이 체포된 것 아닐까?

아니지, 그랬다면 이렇게 조용할리가 없어. 벌써 뭔가가 들이닥쳐도 들이닥쳤겠지.

그건 아닐 것이고··· 그렇다면.

그 휴대폰 때문일거야. 유시열 그놈을 쫓느라고 연락할 수 없는 상황일거야.

그래, 그놈은 막아야 돼. 적어도 오늘 밤까지는.


“내가 시켜놓은 일이 있는데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군. 그만 출근하지.”


박소장은 차에 올랐다.


사단장실에 출근한 그는 당직 사령으로 지난 밤 사이의 동향에 대해 보고를 받은 후, 커피를 마시며 벽 시계를 바라보았다.


‘지금쯤 출근했겠지.’


그는 마시던 커피 잔을 내려놓고 직접 육본 참모총장실에 전화를 걸었다.

서승환 대장의 목소리는 금방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어, 박장군! 나요. 일전의 그건이요?”

“네, 그렇습니다, 총장님. 오늘 뵙고 보고드렸으면 합니다.”

“알겠소. 오후 두시에 이쪽으로 오시오.”

박소장은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고 아랫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제 일은 시작되었고, 예상대로라면 그 일은 오늘 자정 안에 모두 끝나게 될 것이다.

그는 인터폰에 ‘부관’이라고 적힌 단추를 눌렀다.


“네, 사단장님”

“들어와!”


곧 바로 장중위가 문을 열고 들어와 사단장 책상 앞에 부동자세로 섰다.


“부사단장, 참모장, 그리고 작전참모 도중령 오라고 해!”

“지금 말씀입니까?”

“그래. 지금!”

“네, 알겠습니다.”


부사단장 강세평 대령과 참모장 나재태 대령은 오분도 채 되지 않아 사단장실로 들어가 거수경례를 하고 회의용 테이블에 앉았다. 사무실이 가장 먼 작전참모 도상겸 중령이 곧 이어 들어와 역시 거수경례를 하고 황급히 앉았다. 세 사람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방금 총장님과 통화해서 오후 두시에 찾아뵙기로 했소.”


세 사람은 머릿속으로 어제 회의에서 사단장이 하달한 작전 계획을 빠르게 되돌려 보았다.


“나는 곧 수송동으로 가서, 그쪽 인원들을 준비시킬 것이니 이쪽은 부사단장이 책임지고 계획대로 진행시켜 주시요.”


강세평 대령이 결연한 표정으로,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도중령은 오후 두시부로 사단에 비상출동대기 명령 하달하는 것 잊지 말고.”


도중령도 역시 결연한 표정으로, 네, 알고 있습니다, 사단장님,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박소장이 일어서자, 세 사람은 따라 일어섰다.

사단장과 세명의 부하들은 입을 꾹 다문 채, 서로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차례로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박소장은 인터폰을 눌러, 차 대기시켜!라고 말한 뒤,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사단장실을 나갔다.

박소장이 수송동 수사본부에 도착한 것은 열한시 삼십분이었다. 차안에서 부관 장중위가 미리 연락을 해놓았기에, 최일암 중령과 원상철 준위는 박소장이 수사본부장실에 도착했을 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박소장이 들어가자 그들도 따라들어갔고, 박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앞에 서있는 두 사람에게 낮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 부로 유시열 대위 사건은 일단 중단한다.”


원준위가 의아해하며 최일암 중령을 쳐다봤는데, 그는 이미 무언가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오늘 오후 두시에 내가 참모총장님을 뵈러 갈 것이다. 원상철 준위는 즉시 수사관들을 특전사와 9공수 여단에 보내 정희용 중장과 최성섭 준장의 동태를 감시한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부대 밖으로 나온다면 즉시 내게 보고한다. 만약, 내가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부사단장 강세평 대령에게 보고하고. 알았나?”


최일암 중령이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으나 영문을 모르는 원준위는 대답하지 못했다. 박소장이 원준위를 쏘아보며 다시 물었다.


“원준위,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원준위는 그렇게 대답은 했으나 도대체 무슨 일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특전사령관을 감시하라니.

혹시···.. 유대위가 들려준 그 상황이 시작되는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였다. 최일암 중령이 곧 바로 이렇게 물었기 때문이었다.


“그 두사람, 체포하는겁니까?”

“그래! 어제 하달한 계획대로만 하고, 상황별 지시는 총장을 만나고 와서 내가 직접 하겠다. ”


원준위가 그냥 듣고만 있을 수 없어, 박소장에게 물었다.


“체포라면, 어떤 혐의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박소장이 일어나서 원준위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더니 나즈막히 말했다.


“군사 반란이다.”


그리고, 그는 원준위의 어깨에 손을 얹고 노려보며 말했다.


“그동안 수고했어. 개별 행동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게.”


원준위는 자신이 그동안 박소장에게 농락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윤월호 중령의 녹음에서 나온 그 쿠데타는 사실이었고, 이제까지 유시열 대위의 이름으로 벌어진 그 사건들은 모두 이 자가 그 쿠데타를 위하여 깔아 놓은 사전 포석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동안 나는 이 빅병태 소장이 원하지 않는 ‘개별 행동’을 하고 돌아다닌 것이다.

나도 유시열 대위처럼 이용당해 왔던 것일까? 그럴 것이다. 아니, 그렇다.

어쨌든,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유시열 대위에게 쿠데타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자는 지금 내가 그럴 것을 우려하여 나를 협박하고 있다. 내 주변에 감시자를 깔아 놓았을 수도 있다. 그들에게 여차직하면 사살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려놓았을지도 모른다.


최일암 중령은 본부장실을 나오자 마자, 원준위를 따로 불렀다.


“지금 당장 외부에 나가 있는 수사관들을 모두 불러 들이시오. 내가 직접 작전 계획을 하달할테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의 눈빛은 평소와 다르게 싸늘했고, 정년 퇴임을 앞둔 노장 군인에 대한 예의바른 말투도 없었으며, 수사팀장으로서의 권한 존중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원준위는 자리로 돌아가 모든 수사관들에게 즉시 복귀 명령을 하달했다.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최일암 중령의 시선을 느껴졌다.

그는 화장실로 갔다.

그가 소변기 앞에 서서 바지의 지퍼를 내릴 때, 최중령 휘하의 하사관 하나가 화장실을 들어와 옆에 서서 목례를 하고 지퍼를 내렸다.

그는 아까 원준위가 최일암 중령과 본부장실에서 나왔을 때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십분도 채 않되는 시간, 그것은 비워진 방광에 다시 오줌을 채우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나는 감시당하고 있다.


****


최교연 중령은 샤워기의 손잡이를 돌려 물을 끊은 다음, 욕조에서 나와 큼지막한 목욕 타월로 몸의 물기를 닦았다. 흰색의 그 타월에 파란 색의 ‘성호 호텔’ 로고가 박혀 있었다.

그는 거울을 보며 헤어 드라이어로 짧은 머리를 말린 후, 방으로 나와 침대 위에 미리 꺼내둔 속옷을 입었다.


상쾌하군.


옷장으로 가서 그곳에 걸려 있는 하늘색 남방 셔츠와 옅은 베이지색 여름용 자켓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호텔 책상 위에 플어둔 손목 시계를 집어 팔목에 두르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의 저 사람은 더 이상 대한민국 육군 중령 최교연이 아니었다. 한국인도 아니었다.


필리핀 교민 사이에서 저 사람에 대한 소문은 있겠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치안이 비교적 훌륭하기로 소문난 마닐라의 고급 주택 단지의 근사한 집에서 하인들 몇명 거느리고 사는 것으로 보아 제법 큰 사업을 하고 있을 것이라 짐작 정도는 하겠지.


아이들을 필리핀의 최상급 사립 국제학교에 보내고, 가끔 아내와 함께 동남아의 다른 나라로 일주일 정도 여행을 다니며, 필리핀 구호단체에 제법 큰 돈을기부 하는 것으로 보아, 매우 가정적이고 인품도 훌륭한 누군가로 평판이 날거야.

가만, 이름도 바꿔야 하나. 제임스? 마틴?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마카오에 있는 7백만불과 얼마가 될지 아직 모르겠지만, 다음 주 정도에 더 들어올 추가 금액이라면 거울 속의 저 남자를 그렇게 만들기에 충분할거야.


우선 필리핀 국적으로 살다가 아이들을 유럽 어느 나라의 대학으로 유학 보낸 후 아내와 함께 그쪽으로 옮기면 한국과의 인연은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 대회를 TV중계로 볼 때 정도가 되려나.


최교연은 세면도구를 여행 가방 안에 넣고 자켓 안주머니에서 비행기표를 꺼내 출발 시각을 다시 확인했다. 마닐라행 캐세이 퍼시픽 인천공항 출발 시각 2시 25분. 최교연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10시 45분. 택시를 타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같은 호텔 1804호, 시열과 세영은 호텔 방에 혹시 흔적을 남긴 것은 없는지 다시 확인하고, 방을 나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는데 세영이 뭔가 깨달은 듯 시열에게 말했다.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어. 어제 그 벨보이···..”


하긴, 그렇다.


만약, 그 친구가 지금 근무 중이고 12층 로비에 있다면, 어제 비즈니스 미팅 때문에 잠깐 찾아온 방문객 남녀가 하룻밤을 보내고 호텔 방에서 나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관심을 끌 필요는 없다.


두 사람은 비상 계단의 문을 열고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태권도 선수 출신인 세영의 다리는 18개 층 정도의 계단은 가볍게 견뎌낼 것이다. 하지만 5층을 지날 때 조금 힘들어했다.


드디어 모든 계단을 끝내고, 시열은 숨을 헐떡이는 세영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괜찮아?”

“물론.”


그녀는 생긋 웃었다.

시열은 로비로 향하는 비상계단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로비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곧 바로 문 뒤로 몸을 숨겼다.


“왜? 뭐가 있어?”


세영이 물었다.

시열이 내다보고 있는 문틈으로 누군가가 캐리어를 끌고 로비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옅은 베이색 자켓을 입은 남자.


“누군데?”

“최교연 중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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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특전사령관 체포 23.06.22 48 1 9쪽
50 체포 명령서 23.06.22 48 1 14쪽
49 공항 경비대 23.06.21 43 1 10쪽
» 비상 계단 23.06.21 45 1 12쪽
47 아홉번째 문 23.06.18 48 1 11쪽
46 부드러운 손길 23.06.18 47 1 12쪽
45 죽을 텐가, 나를 따를 텐가 23.06.12 47 1 11쪽
44 재생되는 녹음 23.06.12 50 1 12쪽
43 커피 한잔 23.06.09 50 1 11쪽
42 종로 약국 23.06.09 54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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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에이전트 X 23.06.02 53 1 11쪽
38 보지 마. 23.06.02 4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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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자칼과 캐트의 뒤를 쫓다 23.06.01 49 1 12쪽
35 세영이 붙잡히다 23.05.31 48 2 11쪽
34 함정 23.05.31 54 1 11쪽
33 고민하는 고태성 경감 23.05.28 46 2 9쪽
32 킬러들 23.05.27 51 2 10쪽
31 도망가는 늘씬한 몸매 23.05.26 51 3 12쪽
30 유시열 대위, 진범이 아닐 수도 23.05.26 50 3 9쪽
29 시열이 살아있다 23.05.25 52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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