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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엘 님의 서재입니다.

신의 침묵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해리엘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1
최근연재일 :
2023.08.19 19:20
연재수 :
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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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0
추천수 :
98
글자수 :
296,827

작성
23.05.26 19:00
조회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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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도망가는 늘씬한 몸매

DUMMY

“그 고태성 경감의 부서가 디지탈 포렌식 센터야.”


그제서야, 시열은 세영이 하고 있는 말을 이해했다.


“다른 방법이 없다면, 지금으로선 그 휴대폰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혹시 그 친구에게 내 얘기를 한 건 아니지?”

“아니, 아직. 어제 만나자는 통화는 했어. 시간과 장소는 내가 다시 연락하기로 했고.”


시열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믿을 만한 친구야?”

“솔직히 모르겠어. 사람은 착해. 학교 때부터 바른 생활 사나이였거든.”


전도유망한 경찰 간부가, 전국의 경찰이 검거에 혈안이 되어있는 연쇄 살인 무장 탈영범으로 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는다면···. 약속 장소에 혼자 나올까?

하지만, 세영의 말마따나,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어차피 죽을 거라면, 대대장의 휴대폰을 열어 보고 죽는 것이 나았다.


“그래, 만나보자.”




유난히 눈썰미가 좋은 중학교 2학년 아이가 있었다.


네다섯살 때부터 ‘윌리를 찾아서’나 잡지의 숨은그림 찾기를 너무 잘해서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유명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유럽이나 미국의 대학에 유학가서 NASA같은 곳에서 일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선생님을 찾아뵐 때마다 아이의 머리가 아주 뛰어나고 집중력이 훌륭하다고 칭찬을 했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 수록 선생님의 평가는 ‘집중력은 뛰어나나 노력이 부족함’으로 바뀌었고, 중학교 진학 이후에 중간 이상을 넘어가본 적이 없는 성적이 반복되다보니 부모는 여전히 숨은그림 찾기를 잘하는 아들이 NASA에서 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따위의 농담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혹시,하는 마음에 노력이 부족하다는 아이의 공부 습관을 잡아주기 위해 집에 오면 두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 예습 복습을 하기로 아이와 약속을 하였다.


사실, 그 아이는 사춘기 아이들이 그렇듯, 학업보다는 성에 관심이 많았다.


그날 저녁도 책상에 앉아 컴퓨터의 오디오를 죽여놓고 유투브에 ‘섹시 댄스’, ‘아이돌 그룹’, ‘성인 동영상’등의 검색어를 넣고, 한손은 마우스를 잡고 다른 한손은 바지춤 안을 조물딱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이는 엄마의 인기척을 느끼고 얼른 바지춤의 손을 꺼내며 동시에 마우스를 클릭하여 화면을 바꾸었다.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비스켓과 딸기를 담은 접시를 들고 온 엄마는 모니터 화면을 보며 말했다.


“뭐 그런 걸 봐? 숙제야?”

“관심있게 읽은 기사 다섯개를 골라 무슨 내용이었는지 써오래.”


화면에는 어느 신문사의 기사가 떠있었고, 기사 중간에 현상수배 중인 유시열 대위의 사진과 함께 현상금 2천만원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아이는 기사를 읽고 있었던 척, 마우스로 천천히 화면을 내렸다..


“그런 것보다 우주 과학같은 것이 안좋아?”

“그것도 볼거야.”


아이는 2천만원이 생기면 학교 그만두고 장사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닫히는 소리를 듣자마자, 아이는 다시 화면을 바꾸고 검색창에 ‘늘씬한 몸매’를 입력했다. 여러 영상들의 리스트가 주욱 나오고, 그중에 조회수 20만이 넘는 도발적인 제목이 있었다. ‘도망가는 늘씬한 몸매’. 아이는 즉시 클릭했다.


곧바로, 동영상이 열리면서 사람들의 아우성소리가 들렸고, 몰려드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가는 하늘색 청바지 차림의 늘씬한 몸매가 나왔다. 제목처럼 야한 영상은 아니었지만, 재밌는 장면이었다. 오호! 뒤태가 죽이는구만! 아이는 집중했다. 그러다가, 화면 속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얼른 영상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다시 아까의 기사의 화면을 불러 ‘도망가는 늘씬한 몸매’ 동영상 옆에 놓았다. 두 화면 속에 등장하는 남자의 얼굴이 일치했다. 아이는 벌떡 일어나서 두팔을 번쩍 들고 입속으로 만세를 외쳤다. 우와! 자그마치, 2천만원!···.. 이걸로 뭘하지?


최교연 중령은 수사본부 상황실 안으로 들어갔다. 근무자 몇명이 일어나 거수경례를 하자 신경쓰지 말고 계속 일하라고 손짓을 했다. 그러다, 일어나지 않고 수화기에 대고 통화를 계속하고 있는 근무자를 무심코 쳐다봤고, 그가 제보전화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최중령이 다가가자 근무자가 수화기를 손으로 가리고 일어나서 거수경례를 했다.


“무슨 일인가?”

“어떤 애가, 인터넷에서 현상수배범을 본 것 같은데 그래도 현상금 주냐고 묻습니다.”


유시열 대위 제보였다.


“이리 줘봐.”


최중령이 전화기를 받고 말했다.


“여보세요.”

“현상금 줄 건지만 말해요. 아니면 끊을래요?”


변성기가 진행 중인 남자 아이의 목소리였다.


최중령은 탁상용 전화기의 발신자 전화번호를 보며 말했다.


“네 전화번호가 3285 맞지?”


아이는 침묵을 지켰다.


“아저씨가 네 번호를 알고 있거든. 무슨 내용인지 말해주면 너희 집이나 학교로 찾아가는 일은 없을거다.”


그제서야 아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 유툽에서 그 현상수배범을 봤어요.”

“어느 동영상을 말하는거냐?”

“도망가는 늘씬한 몸매,요.”

“장난전화면 너 아주 혼날 거다.”


겁먹은 아이는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최중령은 옆에 서있는 상황실 근무자에게 장난전화였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수화기를 내려놓고 돌아섰다. 그리고, 자신의 사무실 책상에 앉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도망가는 늘씬한 몸매’를 검색했다.


곧 이어, 아우성치는 사람들 속에 윌리처럼 숨어있는 한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


“유시열 대위, 거기 있었구만.”


이 동영상의 여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댓글에 나와있었다. 도망가는 늘씬한 몸매는 산하 일보 이세영 기자였다.


최중령은 즉시 전화기를 들었다.





고태성은 2년 만에 걸려온 세영의 전화를 받았을 때, 자신이 아직 그녀를 완전히 잊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었다.


두번째 통화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가슴이 뛰었다. 만날 시간과 장소를 얘기할 때 그녀의 목소리에서 특유의 명랑함 대신 수줍음이랄까,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영도 나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보였다.


2년 전, 세영과의 그 실망스런 밤 이후에 견뎌내기 쉽지 않은 시간을 지냈지만, 결국은 그녀를 잊기로 했었다. 처음에는 농락당했다거나 배신당했다는 느낌이었지만, 차츰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을 돌아보아도 충분히 가능한, 아니 당연한 것이었다. 내 마음에 어떤 여자가 아주 오래 동안 들어와 앉아 있다면, 그리고 내 스스로 그 여자를 완전히 몰아내지 못한다면, 나 또한 그 자리를 다른 여자가 침범하고 들어올 때, 거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그에게도 그 거부반응이 툭 튀어나오는 경험들이 있었다.


행정고시 합격 후 경찰에 몸담고 나서 여러 중매쟁이들이 그의 부모를 통해 조건이 아주 좋은 혼처 자리를 들고 왔고, 그 중에 썩 괜찮아 보이는 사진의 여성들을 골라 만났을 때 였다.


그 중에는 몇번의 만남을 더 이어간 여자들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에 쾌활하고 직설적이며 학창 시절, 늘 좌중의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끌었던 세영이 가슴 한 구석에서 툭 튀어나와, 태성아, 얘는 아냐!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경험은 지금의 아내와도 가끔 있었다. 세영을 잊기로 하고, 결국, 그는 강남의 어떤 부자의 딸,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지만, 어둠 속에 아내와 잠자리를 가질 때, 머리 속에 세영을 떠올릴 때가 많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의사의 당부에 따라 임신 초기의 아내와 부부관계를 자제하고 있는 기간에도 성욕이 불끈거리면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 해결하곤 하는데, 그때도 태성은 가슴 한 구석에 있는 세영을 불러내곤 했다. 그건 윤리의 문제가 아니고 감정의 문제여서, 다른 누가 개입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는 순수성에 관한 것이었다.


고태성 경감은 벽시계의 바늘이 6시 20분을 이르자 책상에서 일어났다. 락커룸으로 가서 양치질을 다시 하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후 스킨로션을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얼굴과 목덜미에 발랐다. 그리고 경찰청 건물을 나와 마침 들어온 택시를 잡고 구기동으로 가자고 하며 시계를 보았다.


십오분 남짓 걸릴테니 일곱시까지는 충분했다. 그는 구기동 ‘예사랑’에 일곱시 오분전에 도착하여 칸막이가 있는 창가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 근처 골목에서 세영은 시열과 함께 그가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세영은 막상 시열과 함께 고태성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시열을 설득했던 자신이 후회되었다.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아무래도 이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 그냥 가자.”


시열은 돌아서는 세영의 팔을 잡고 눈빛으로 안심시켰다. 그리고, 예사랑으로 걸어갔다.


고태성은 창밖을 보며 앉아 있었다. 2년전 소파 밑으로 굴러떨어져 거실 바닥에 멍하니 앉아 있던 그 민망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렇게 앉아 있다가, 세영이 ‘나 왔어.’하면 창밖을 보던 고개를 돌려서 ‘어, 왔구나.’하고 일어설 참이었다. 그러나, 그런 계획에도 불구하고 입구에 손님들이 들어올 때 마다 슬그머니 돌아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동안 두 커플의 남녀가 들어왔었고, 방금 한명의 남자 손님이 들어왔지만 아직 세영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손목의 시계를 보았다. 일곱시가 조금 넘기는 했지만, 아직 늦었다고 할 수는 없는 시간이었다.


그가 홀안에 앉아있는 손님들을 둘러 보고 다시 문으로 눈을 돌렸을 때, 드디어 세영이 들어왔다. 2년전 모습 그대로였다.


태성은 계획과 달리 얼른 일어나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변했네.”


세영은 막상 그를 보니,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으슥한 카페나 차안에서 그와 나눴던 키스가 생각나서 어색함을 완전히 가릴 수가 없었다.


“결혼식에 못가서 미안했다. 가기가 좀 그렇더라. 잘 지내지?”


역시 세영이답다. 구차한 핑계를 대지 않았다.


“신부보다 예쁜 사람 오는 것, 그건 예의가 아니지. 축의금 보내준 건 잘받았어.”


세영이 그 다음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떻게 본론을 꺼내야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태성이 먼저 말했다.


“데이트하자면 나야 좋지만···.. 무슨 일이야?”


태성은 말해놓고 후회했다. 세영과 미리 생각해놓았던 근사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밤거리를 걸으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을 먼저 배제해버리다니! 남자로부터 이런 멘트를 듣고 너와 데이트를 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했어,라고 말할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세영이 잠시 머뭇대다 입을 열었다.


“요즘 그 사건 말야. 무장탈영한 유시열 대위···..”


결국, 일 얘기였나.


태성은 살짝 실망감이 들었다. 한편,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에 대해 미안함을 거두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하기도 했다.


“나한테 너무 기대하지마. 군이 하고 있어서 우리 경찰은 그냥 보조야. 잘몰라.”

“그게 아니고···.. 그 유시열 대위가···..”


세영이 머뭇거리자 고태성은 물 컵을 들며 여유있게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너를 만나고 싶어 하는데, 네가 한번 만나줬으면 해서.”


태성이 잠시 세영을 쳐다보더니 하하하, 웃었다.


“나야 고맙지. 그 친구 만나고 싶어하는 경찰들이 수십만명인데···..”

“먼저 약속해줘. 너희 회사 안의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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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대마는 살아있다 23.08.19 56 1 12쪽
57 엄습해오는 불안감 23.08.19 50 1 9쪽
56 육본 상황실 23.06.28 49 1 8쪽
55 목표는 광화문 23.06.28 53 1 8쪽
54 추격전 23.06.27 49 1 12쪽
53 한밤의 체포작전 23.06.27 46 1 11쪽
52 돌아올 수 없는 출동 23.06.25 49 1 11쪽
51 특전사령관 체포 23.06.22 48 1 9쪽
50 체포 명령서 23.06.22 48 1 14쪽
49 공항 경비대 23.06.21 43 1 10쪽
48 비상 계단 23.06.21 44 1 12쪽
47 아홉번째 문 23.06.18 48 1 11쪽
46 부드러운 손길 23.06.18 47 1 12쪽
45 죽을 텐가, 나를 따를 텐가 23.06.12 47 1 11쪽
44 재생되는 녹음 23.06.12 50 1 12쪽
43 커피 한잔 23.06.09 49 1 11쪽
42 종로 약국 23.06.09 54 1 10쪽
41 동대문 시장 23.06.06 48 1 13쪽
40 새벽 조깅 23.06.06 50 1 11쪽
39 에이전트 X 23.06.02 53 1 11쪽
38 보지 마. 23.06.02 4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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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자칼과 캐트의 뒤를 쫓다 23.06.01 49 1 12쪽
35 세영이 붙잡히다 23.05.31 48 2 11쪽
34 함정 23.05.31 54 1 11쪽
33 고민하는 고태성 경감 23.05.28 46 2 9쪽
32 킬러들 23.05.27 51 2 10쪽
» 도망가는 늘씬한 몸매 23.05.26 51 3 12쪽
30 유시열 대위, 진범이 아닐 수도 23.05.26 50 3 9쪽
29 시열이 살아있다 23.05.25 52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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