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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엘 님의 서재입니다.

신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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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리엘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1
최근연재일 :
2023.08.19 19:20
연재수 :
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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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4
추천수 :
98
글자수 :
296,827

작성
23.06.0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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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에이전트 X

DUMMY

한국, 국정원 3처 2국.


이원섭 국장은 청와대 대테러 대책 회의에 참석한 후, 플라자 호텔 중식당 도원에서 국회 정보위원회 민주당 초선 한명섭 의원과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귀가 중이었다.


국정원에 몸담은 지난 20년 동안 고향 친구들이나 학교 동창과 만난 적이 없었다. 이제 그들의 얼굴도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어릴 적 동네 공터에서 구슬치기를 하고, 개울에서 송사리를 잡고, 대보름에 쥐불놀이를 하며 누구 불이 더 활활 타오르는지 마주보고 돌렸던 추억이 생각날 때 마다, 문득 그 친구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검정 교복을 입고 중국집 방에서 담배를 피며 빼갈을 나눠 마셨던 고교 시절 문예부 친구들은 또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문득 문득 궁금했지만, 잊고 살아 왔다. 국정원 핵심 요원들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오늘같이 빼갈을 몇잔 마시면 문득 그때의 장면들이 떠오르고는 했다. 그건 국정원 핵심요원이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이니까.


하지만, 지금같이 주머니 안에 있는 휴대폰의 진동음이 울리면 그는 다시 국정원 직원으로 돌아갔다. 서울의 밤 거리를 바라보며 추억에 젖어드는 한 순간도 허용하지 않는 인생, 좀 서글프기는 하다.


K의 전화였다.


“응, 김부장.”


K를 이국장은 김부장이라고 불렀다. 처음 그를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었을 뿐, 그의 본명이나 직책과 아무 상관없는 김부장이었다.


“자칼과 캐트는 잠복 중이던 우리 요원에 의해 지워졌습니다.”

“흠! 다른 일은 없었고?”

“유시열 대위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래? 역시 그자도 에이전트 X 소속이었다는다 얘기인가?”

“아뇨, 저희가 잘못 판단한 것 같습니다. 요원들에 따르면, 그들이 유대위의 여자를 인질로 잡고 있었고, 유대위가 구하려고 쫓아 왔던 것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자칼은 유대위에게 당했고, 캐트가 유대위를 쏘기 직전에 저희 요원들이 저격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우호 관계가 아니고 적대 관계였습니다.”

“예상 밖인데···.. 유대위가 총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야?”

“아뇨, 대검을 사용했는데, 자칼의 권총을 탈취해갔으니 이제 그렇다고해야겠죠.”

“군에서 사용하는 대검이었나?”

“아뇨. 시중에 흔히 구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흥미롭고 중요한 문제였다. 군에서 사용하는 대검이었다면 유시열 대위의 탈영이 우발적인 것이 아니고 계획적이었다는 의미가 되는데···.

그게 아니었다면···.. 우발적 탈영이었다는 말인데···..


“유대위와 여자 친구는?”

“도주했습니다. 산속이어서 추격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이국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에는 말야. 에이전트 X를 당장 잡아 들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인데. 김부장 의견은 어때?”

“그러면 배후를 놓칠 수 있습니다.”

“근데 말야. 피를 너무 많이 흘리고 있거든.”

“뭐, 그렇기는 합니다.”

“일단 잡아 들이자고. 그래서, 대가리를 비틀어 버리든지, 주리를 틀든지···.”



국정원은 오래 전부터 자생적 테러 조직에 대해 추적 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에이전트 X라는 인물을 연결고리로 하는 그룹이었다. 에이전트 X는 주로 특수부대를 불명예스럽게 떠난 인물들을 포섭한 후, 그들을 필요로 하는 실수요자들에게 연결시켜주고 알선 수수료를 챙기는 존재였다.


에이전트 X는 자신이 소개하는 배우들이 어떤 작품에 출연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배우들 또한 자신이 어떤 작품에 출연하는지 알려고도, 주연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감독이 지시하는 대로 짤막한 연기를 마치고 촬영장을 떠난 후 에이전트 X로부터 약속한 출연료의 잔금을 받으면 되었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가 흥행에 대박을 쳐서 연일 언론에 오르내려도 그들은 자신이 그 작품에 출연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을 움직이는 유일한 동력은 돈이었다. 그들은 그 돈을 벌기 위해 누군가를 제거할 뿐이었다.


에이전트 X가 특수부대 출신들을 포섭 대상으로 하는 이유는 명백해보였다. 기술적 능력면에서도 탁월했지만, 무엇보다 규율을 지키는 것에 익숙하여, 고객과의 계약 관계를 정확하게 지키고 고객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는 양아치 짓은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렇게 신뢰를 쌓음으로서 스스로 피를 묻히기는 싫고, 그렇다고 믿을 수 없는 폭력배들과 엮이기도 원치않는 돈많은 고객들의 수를 늘려갔다. 말하자면 살인청부업의 신개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들의 고객들이 큰 돈을 빚지고 있는 채무자나 바람핀 남편에 앙심을 품고 있는 아내를 넘어서 국가와 사회의 정상적인 시스템을 교란하기를 원하는 인물들까지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국정원이 에이전트 X 그룹에 주목하는 이유였다.


가장 대표적인 최근의 경우가 바로 엊그제 한교식 대표의 피살 사건이었다. 국정원은 즉시 사회적 테러로 규정하고, 범행을 저지른 특전사 출신 배대정의 뒤를 파고 들었다. 그 결과, 그가 에이전트 X의 배우였음이 드러났지만 아직 에이전트 X가 검거되지 않아, 아니, 정확하게는 아직 검거하지 않아, 실수요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국정원은 배대정 대위가 무장 탈영범 유시열 대위와 친분이 있다는 점, 그의 권총을 사용했다는 점등을 근거로, 유시열 대위가 에이전트 X 그룹에 이미 들어 갔거나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었다.


그런데, 오늘 그가 에이전트 X의 배우들로부터 오히려 살해될 위험에 처해 있었다면 그가 배우가 아니고, 목표였었었다는 결론이 된다.


진위여부는 에이전트 X 를 잡는다 해도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워낙 복잡한 점조직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이니까.


그러나, 김부장이 말한 대로 피를 너무 많이 흘리고 있다. 더 이상, 본명이 우천석인 그 에이전트 X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이제 그만 잡아 들여야 할 때가 됐다.




돈암동 뒷편,


아파트 단지 안을 걸어가는 우천석의 한 손에는 두 딸이 좋아하는 치즈 케익 상자가 들려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네, 그럼.”


통화를 마치자 마자, 그는 익숙한 동작으로 들고 있던 휴대폰의 배터리를 제거하고 철제 하수구 덮개의 구멍으로 툭 던져 버렸다.


그가 벌어들일 4억은 총 금액의 30%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까짓 핸드폰 가격에 비교할 바는 물론 아니었다.


308동 9층,


두 딸과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곳. 스물 일곱평 아파트.


아니~. 아니나 놀지는 못하리라.

콧노래가 흘러 나왔다. 귀가하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가장처럼. 단지, 위장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즐거웠다. 모든 비즈니스가 그렇지만 일을 즐기지 못하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우천식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즐겼다. 게다가, 건당 수억이 왔다 갔다 하는 일.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죽어야만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 죽는 것. 그건 세상의 법칙일 뿐. 그 세상의 법칙을 실행하는 대가로 약간의 생활비를 얻어 쓰는 것, 그게 뭐가 문제인가?


물론, 그냥 생활비라고 하기에는 다소 크기는 했다.


세상 사람, 누구한테 물어 봐라. 평균 건당 수억의 사업가가 이렇게 누추한 서민 아파트에 살고 있는게 말이나 되냐고.


물론, 잠깐 동안이다. 몇년 후, 이 위험천만한 사업을 접는 날, 나는 세상의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삶을 누릴 것이다.


낮은 곳으로 임하라. 아무도 찾지 못하는 낮은 곳으로.

몇년 후, 너는 궁궐에서 살게 될 것이니 오늘의 이 겸손한 삶을 쪽팔려 하지 마라. 알겠냐. 우천석. 아멘!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는 스물 일곱평 아파트를 향해 복도를 걸어갔다.

그런데···


씨발···


꼭 안좋은 일은 최고의 순간에 찾아온다더니, 맞은 편 기역자의 두 복도가 마주치는 코너의 계단 쪽에서 두 사내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뒤돌아보니, 또 다른 두 사내가 복도를 막아서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 중의 한명이 한 손으로 자켓을 살짝 열어 가슴에 있는 권총을 보여줬다. 뛰어 내리기에 9층은 너무 높았다.


“후우!”


낮은 탄식이 입술에서 새어나왔다.


우천석은 포기하고 치즈 케익을 든 채 두 손을 들었다.

마주 걸어오는 두 사내가 바로 앞까지 다가 왔다.


“누구시죠?”


그는 여유있게 물었다.


카리브 해의 어느 나라로 가겠다는 계획. 그건 십년 후로 밀어 놓으면 된다. 재능있는 변호사 대여섯명을 쓰면, 7년 쯤이 될 수도 있겠지.


“우천석씨가 짐작하는 그곳에서 나왔습니다.”

“그렇군요.”


그는 저항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손에 든 케익 상자를 올려보였다.


“이 케익을 908호 앞에 놓아줄 수 있습니까?”


마주 보고 서있던 사내 중의 하나가 케익을 받아 들었다. 그러자 곧 바로, 뒤에 서있던 두 사내가 달려들어 그의 양팔을 뒤로 꺾어 제압하고 얼굴을 바닥에 처박고 수갑을 채웠다.


“변호사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 있고···. 그런 것, 얘기 안해줍니까?”


우천석은 손목에 통증을 느끼며 신음하듯 물었다. 하지만, 사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미란다 고지 모르냐고 묻지 않습니까?”


상황이 바뀔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너무 허망하게 잡혀버린 것이 원망스러워 비아냥댔을 뿐이었다.


케익을 받아 든 사내가 말했다.


“두 딸 아이들이 이 호두 케익을 좋아 하지? 집사람도 그렇고. 실론 티를 곁들여서.”

“......”

“조용히 가자. 애들 한테 험한 꼴 보이기 싫으면.”


우천석은 체념했다. 그러자, 사내들이 그를 엘리베이터로 끌고 갔고, 케익을 든 사내는 908호 문 앞에 그것을 내려 놓고 뒤돌아 섰다.



시열은 북한산을 내려와 한참을 찾은 후에, 드디어 아직까지 문을 닫지 않고 있는 약국을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그리고, 세영이 차를 내려 약국에 들어갔다.


그녀는 젊은 여자 약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더니 약국 이름이 적혀있는 비닐 봉지 하나를 들고 나왔다.


시열이 시동을 걸고 출발하자 세영은 거울을 보며, 총을 맞고 죽어버린 여자에 대해 욕설을 뱉으며 얼굴에 연고를 바르고, 곧바로 마스크를 썼다.


북한산 뒷 자락에서 모텔을 찾기는, 세영의 말대로, 약국 찾는 것보다 쉬었다.


다행히 프론트 직원은 일주일 째 면도를 하지 않은 유시열 대위를 알아보지 못했고, 마스크를 쓰고 있는 세영이 간간히 밭은 기침을 하자, 일처리를 빨리하고 서둘러 207호실의 키를 내주었다.


두 사람은 방에 들어가자 마자, 배고픔을 느낄 사이도 없이 침대에 그대로 몸을 던져 드러누웠다. 세영이 나란히 누운 시열을 바라보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고, 시열은 누운 채로 세영의 어깨 뒤로 팔을 둘러 안아주었다.


잠시 후, 그녀가 잠든 것을 확인하자 시열도 눈을 감고 곧 잠에 빠져들었다.


후우우!


피곤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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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특전사령관 체포 23.06.22 48 1 9쪽
50 체포 명령서 23.06.22 48 1 14쪽
49 공항 경비대 23.06.21 43 1 10쪽
48 비상 계단 23.06.21 44 1 12쪽
47 아홉번째 문 23.06.18 48 1 11쪽
46 부드러운 손길 23.06.18 47 1 12쪽
45 죽을 텐가, 나를 따를 텐가 23.06.12 47 1 11쪽
44 재생되는 녹음 23.06.12 50 1 12쪽
43 커피 한잔 23.06.09 49 1 11쪽
42 종로 약국 23.06.09 54 1 10쪽
41 동대문 시장 23.06.06 48 1 13쪽
40 새벽 조깅 23.06.06 50 1 11쪽
» 에이전트 X 23.06.02 53 1 11쪽
38 보지 마. 23.06.02 46 1 12쪽
37 결국, 두 손을 들고 나온 시열 23.06.01 59 1 10쪽
36 자칼과 캐트의 뒤를 쫓다 23.06.01 48 1 12쪽
35 세영이 붙잡히다 23.05.31 48 2 11쪽
34 함정 23.05.31 54 1 11쪽
33 고민하는 고태성 경감 23.05.28 46 2 9쪽
32 킬러들 23.05.27 50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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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유시열 대위, 진범이 아닐 수도 23.05.26 50 3 9쪽
29 시열이 살아있다 23.05.25 52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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