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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엘 님의 서재입니다.

신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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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리엘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1
최근연재일 :
2023.08.19 19:20
연재수 :
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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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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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글자수 :
296,827

작성
23.06.0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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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커피 한잔

DUMMY

에이전트 X, 본명 우천석.


그는 자해를 방지하기 위해 온통 사방의 벽이 매트리스 같이 푹신한 재질로 되어있는 방안에 수갑을 차고 앉아 있었다. 사실, 벽의 재질을 그렇게 해놓은 목적은 또 있었으니 간혹 조사 과정에서 약간의 물리력을 행사할 경우 피조사자가 지나치게 비명을 질러대기가 일쑤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은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에 대한 배려였다. 당사자는 일생에 한두번 겪는 일이겠지만, 그런 소음을 일상적으로 들어야 하는 직원들의 고충은 또 무슨 죄란 말인가.

조사실이 그렇듯, 한쪽 면은 벽면의 반이 넘도록 큼직한 거울로 되어 있었는데. 물론, 그 거울은 한방향이어서, 조명을 최대한 낮추어 놓은 옆방에서 보면 유리였다.


하지만, 지하 1층의 방들에는 피의자들이 본격적으로 비명을 질러댈만한 장치나 도구들은 없었다 그건 한층 더 아래였다.


조사관들이 ‘너 하나 여기서 죽어도 아무도 몰라’하는 그런 곳이었고, 그 방에 들어가면 대부분의 피의자들은, 정말 여기서 죽을 수 있겠다,는 공포를 느꼈다. 우천석이 어젯밤 검거된 직후, 아직 지하1층의 이 방에 있다는 것은 본격적인 심문 과정이 시작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김부장은 조명을 낮추어 놓은 옆방에서 유리창 너머의 그를 바라보고 서있었다.

옆에 서있던 요원이 들고 있는 서류를 보며 말했다.


“성명 우천석, 1980년 경북 칠곡 출생, 3사관 학교 출신, HID 근무 중, 민간인 살해 혐의로 이등병 강등 후 불명예 전역. 전역 전 계급 대위, 가족 사항, 처 정인숙, 자녀······ 계속할까요?


조사실로 들어가기 전에 의례적인 절차 같은 것이었다.


“됐어.”


우천석도 그의 배우들과 같이 불명예 전역 출신이었다.처음에는 스스로가 배우였겠지. 그러다가, 일손이 달리면서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을 것이고, 결국 배우들을 거느린 매니저가 된 것이고.


우천석은 후회 막급이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만 일을 정리하기로 했었는데···. 그때 마음을 되돌리지 말았어야 했다.


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그동안 들어오는 돈은 아주 적은 금액의 생활비와 활동비만 빼고 대부분을 무기명 채권으로 바꾸어 은행의 대여금고에 쌓아놓았었다. 집도 평범한 동네의 매우 소박한 스물 일곱평 아파트에서 버텨왔었다.


그런데, 제기랄! 이제 그 돈은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5년 전, 민간인 살해 사건으로 불명예 전역한 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기회가 되었다.


그때, HID 근무 당시, 군사분계선을 넘어 부대로 복귀한 그날, 그는 야밤에 작전에 투입되었던 대원들과 함께 울산 바위를 넘어 막걸리 한잔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수십번을 지나다니던 코스였기에 어두운 밤이었음에도 그들은 평지를 걷듯 산길을 달렸다.


그런데, 술 기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군사 분계선 북쪽에서의 긴장이 아직 풀리지 않아서였을까, 그는 민가 근처를 지나가다가 갑자기 나타난 북한군인 두명을 대검으로 찌르고 복귀했는데, 아침에 체포조가 찾아와서, 민간인 두명을 살해한 혐의로 그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었다.


그건 그 민간인들의 잘못이었다.


왜, 밤중에 북파 부대원들의 눈에 띄었느냐 말이다. 게다가, 야밤에 총으로 오인할 수 있는 농기구를 들고.


북한에 수십번 다녀온 그를 법정에 세울 수 없었던 군당국은 결국 불명예 전역 처리했었다.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던 그에게 어느 날, 누군가를 죽여달라는 청부가 들어왔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HID 같은 특수부대에서 떨려나와 비참하게 살고 있는 인물들을 찾았다. 그리고, 그들에세 재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전문직 고용 알선업자가 되었다.


그는 그것이 아주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모두 큰 돈을 벌 수 있었으니. 물론,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사람이 그이기는 했다.


얼마전부터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곧 손을 털게되면 해외로 나가거나 서해나 남해안의 조그만 소도시에 근사한 집을 짓고, 세상에서 잊혀진 채 두 딸과 아내와 함께 아주 평범해보이는 삶을 살 것이라 생각했었다. 물론, 금고에는 평생 빼먹어도 마르지 않을 자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꿈은 날아가버렸다. 작년에 그만둘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을 때, 그때 결행했었어야 했는데.


김부장은 수갑 열쇠를 들고 우천석이 앉아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수갑을 풀어 탁자 위에 놓고 마주 앉았다. 우천석은 손목의 수갑 자국을 문질렀다.


“우대위, 여기가 어디인지는 알죠?”


솔직히 몰랐다. 어젯밤, 수갑을 차고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내려오자마자, 승합차 바닥에 내던져졌고, 곧바로 얼굴이 가리워지고, 입에 재갈이 물려진 상태에서 의자에 앉은 몇몇 사람들이 그가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머리를 발로 누르고 있는 상태에서 끌려왔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우대위,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호칭이었다.

“경찰인가요?”

“국정원입니다.”


의외였지만 우천석은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뭔 대수겠는가.


경찰이든 국정원이든 징역 20년쯤의 결과에 이르는 데에 차이는 없을 것이다. 물론, 20년 후에도 곱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겠지.


사형일 수도 있고. 흠, 생각해보니 그 쪽이 더 현실적이겠구만. 걸어다니는 흉기를 세상에 내놓을 수는 없을 터이니.


김부장은 별로 겁을 먹는 것 같지 않은 우천석의 표정을 보면서, 그가 곧 지하2층으로 내려가면 자신에게 그런 얼굴이 있었던가, 기억도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는 매우 신사적인 지하 1층이었다.


“여기 왜 잡혀 왔어요?”

“······.”


우천석의 별 시덥지 않은 질문이라는 표정, 하지만 여유를 잃지 않고, 이어갔다.


“본인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니, 그건 차차 대답하면 되고, 질문을 바꿔볼까요?”


상체를 뒤로 젖히고 다리를 꼬았다.


“몇년 형 받을 것 같아요? 20년, 25년, 아니면 무기?”


우천석은 좋은 신호라고 생각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지 않을 수 있다는 신호.


이자가 혹시, 형량을 적당한 선에서 네고하는 조건으로 정보를 요구한다면 응해줄 용의가 있었다. 어차피, 내가 접촉한 배우들은 나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었고, 고객들에 대해 갖고 있는 정보, 또한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그전에 이 질문은 어떨까요? 우대위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겠지요.”

“네,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젯 밤 두 딸내미에게 주려고 케익을 산 이후에 실종된 우천석이라는 사람이 몇달 후에 난데없이 법정에 나타나는 일은 없을겁니다. 저희는 그런 방식을 좋아하지 않지요. 특히, 현재 진행형인 국가 테러 혐의자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HID에 있었으니 잘 아시겠군요. 작전 중에 맞닥뜨린 적군을 생포해와서 법정에 세우지는 않지요. 안그렇습니까?”


말하자면, ‘너 하나 여기서 죽어나가도 아무도 몰라’와 같은 뻔한 수작이었다.


“협박하는겁니까?”

“저희가 공개적으로 법정에 세울 수 없는 국가 테러범을 다루는 방법은 두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저희 정보원이 되든지, 아니면 분쇄기에 들어갔다가 돼지 사료로 나오든지.”


기대했던 제안이었다.


“정보원이 되면, 나갈 수 있다는 말로 들리는 군요.”

“당장은 아니죠. 저희가 알고 싶어하거나, 알고 있으면 좋을 법한 내용들을 다 토해내고 서로 신뢰 관계가 충분히 쌓였다고 판단될 때죠. 몇달이 걸릴 수도 있고, 몇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본인 하기 나름이지요.”


몇년? 웃기는 얘기다.


평생, 지져 먹고 삶아 먹고 단물이 다 빠져서 너덜 너덜해질 때까지겠지.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다행이고.


하지만, 지금 분쇄기에 들어가 죽는 것 보다는 나았다.


“나쁘지 않네요. 알고 싶은 게 뭡니까?”


김부장은 대화가 빨리 끝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많이 있지만, 우선, 유시열 대위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그 유대위와 윤월호 중령, 그리고 운전병을 살해하라고 한······.아, 미안합니다. 고객 관련 사항이니 우대위는 당연히 모르겠군요. 그럼 이렇게 물어보죠. 유대위 사건 전에, 혹은 그 후에, 우대위에게 배우를 주문해온 고객에 대해 아는대로 말해보시죠.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접촉했는지, 아니면 접촉을 해왔는지.”

“······.”


이런 경우 침묵은 두가지 중의 하나다. 무덤까지 입을 열지 않겠다는 것, 또는 조금 있다가 입을 열겠다는 것. 김부장은 두번째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가 정보원이 되면 나갈 수 있냐고 물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천석의 침묵은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고, 표정은 고민에 쌓여 있었다. 그것은 그 고객이 다른 고객과 다르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발설할 경우 가족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등의 불이익이 있거나, 아니면 특수 관계인일 경우다.


“우리 직원이 그러는데, 어젯밤에 케익을 문 앞에 놓아달라고 했다면서요? 딸내미들이 시집가서 애낳고 사는 건 봐야하지 않겠어요.”


망설임 끝에 우천석이 입을 열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그럽시다.”


김부장은 자리에서 문쪽으로 걸어가려다가 돌아섰다.


“커피 한잔 하겠어요?”


어젯밤부터 물한모금 못마신 우천석이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김부장이 문으로 걸어가자, 철컥! 자물쇠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부장이 문을 열고 나가자, 다시 철컥 소리가 들렸다.


우천석은 자유롭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어젯밤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이 누구를 죽인 것도, 죽이라고 시킨 것도 아니었다. 적당히 타협만 하면 저자의 말대로 아무 일 없었 것 처럼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도 있는 문제였다. 필요하면, 10년, 아니, 20년 정도 교도소에서 썩는 것은 받아들일 만 하다다. 어쨌거나, 열명이 넘는 살인 사건에 개입되었으니 말이다다.


분쇄기에 넣어버리겠다고 협박했다가, 금방 커피 한잔으로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저자는 프로다. 프로에게 걸린 이상 쓸데없이 버티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친구의 이름을 불어버리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지만, 이 마당에 와서, 솔직해지자. 나는 이미 그러겠다고 마음 먹은 것 아닌가? 친구가 내 두 아이보다 더 소중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내가 너무 쉽게 그 친구의 이름을 불어 버린다면, 내 정보의 신뢰성이나 가치가 평가절하될 것이다.


어느 정도 고민의 시간을 갖자.


잠시 후, 어느 남자가 들어와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놓고 나갔다. 우천석은 얼른 한모금을 마셨다. 설탕과 크림이 듬뿍 들어있었다.

그냥 포기하기에 너무 달콤한 향기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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