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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엘 님의 서재입니다.

신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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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리엘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1
최근연재일 :
2023.08.1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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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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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글자수 :
296,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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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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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동대문 시장

DUMMY

“벌써 일어난거야?”


모로 누워있던 아내가 만삭의 몸을 돌아 보이며 물었다.


“더 자. 내가 준비하고 나갈게.”

“아냐, 아침 준비할게.”

“무리하지 말라니까. 더 자.”


고태성은 아내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침대에서 빠져 나왔다.


주방으로 간 그는 원원두 커피 봉지를 꺼내, 커피 메이커에 한 스푼 반을 넣고, 냉장고에서 꺼낸 생수병의 물을 절반이 조금 넘게 부었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 커피가 다 되기를 기다리며 휴대폰으로 신문기사를 검색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세영이 맡겨 놓은 그 휴대폰의 비밀번호 해제를 부탁했던 직원이었다.


“어, 홍세철씨, 이 시간에 웬일이야?”

“고경감님, 이렇게 날밤 새게 해놓으시고 웬일이냐고 물으시니 섭섭합니다.”


고태성은 홍세철의 느긋한 농담을 듣자마자 그가 드디어 그 휴대폰을 풀었음을 직감했다.


“풀었어?”


급한 마음에 고태성은 휴대폰을 입 가까이에 바짝 당기고 물었다.


“제가 한번 뭐에 꽂히면 끝장을 보는 성격 아닙니까. 그 휴대폰 풀었구요. 경감님 자리에 놓고 저는 이제 해장국이나 한그릇하러 나가겠습니다. 아침 먹고 사우나에서 목욕 좀 하고 올건데, 그건 봐주시겠죠?”

“물론이지, 천천히 쉬었다 와.”


고태성은 통화를 끝내자 마자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가 양치질을 하고, 전기 면도기로 수염을 깎으며 옷을 입었다. 혹시 다른 직원들이 먼저 출근해서 그 휴대폰을 보기 전에 먼저 도착해야 한다.


그는 경찰청으로 들어가자 마자, 평소처럼 경찰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라커룸으로 들어가지 않고, 곧 바로 12층의 디지털 포렌식 센터로 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ID카드가 달려있는 목걸이를 꺼내 목에 걸며 센터 출입구로 가는데,


센터의 유리 문 앞에 양복을 입은 두명의 남자가 벽에 기대고 서있었다. 그들은 고경감이 다가오자 벽에서 어깨를 떼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휴대폰의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들이 분명했다.


“고태성 경감이시죠?”

“그렇습니다만, 어디에서 오셨죠?”


김부장이 신분증을 보여주며 말했다.


“국정원에서 왔습니다.”


역시 하이에나들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복도에서 말씀드리기는 좀···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엇, 죄송합니다. 들어 오시죠.”


고태성은 목에 걸고 있는 ID카드로 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들을 회의실로 데리고 갔다.


그는 앞장 서 걸으며 유리 칸막이로 되어있는 자신의 사무실을 힐끔 보았다. 책상 위에 그 휴대폰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시사 주간지 하나가 펼쳐진 채 엎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홍세철씨가 휴대폰을 책상 위에 놓고 주간지로 덮어놓았을 것이다.


회의실에 들어서자 김부장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항상 이렇게 일찍 출근하세요?”

“그런 편이죠. 근데, 국정원에서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로 오셨죠? 급한 일인가 보죠?”


김부장은 테이블 위에 두손을 얹고 깍지를 끼고 물었다.


“유시열 대위 아시죠?”


역시 그랬다. 이 자들도 그 휴대폰을 찾고 있다.


도대체 그 안에 무엇이 있길래.


“그···. 무장 탈영범 말인가요? 물론 알죠.”

“두분이 학교 동문이던데, 혹시 유대위가 무슨 부탁같은 것 해오지 않았습니까?”

“부탁이요? 무슨······.”

“예를 들어, 어떤 휴대폰의 잠금장치를 해제해달라고 했달지···..”


정곡을 콕 찍어 묻는 질문에 고경감은 뜨끔했다. 하지만, 그 당황스러움이 얼굴에 나타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 최선은. 아침부터 찾아와서 무슨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냐는 듯, 허허 웃는 것이었다.


“무장 탈영범이 경찰청에 있는 간부에게 뭘 부탁을 했다···.. 재미있네요. 뭐, 경찰로서는 오랜만에 대박 하나 터뜨릴 수 있겠군요.”


김부장은 고경감의 너스레에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뱀같이 차가운 표정으로 고태성 경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태성은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한 얼굴 모드로 바꾸었다.


“어떨게 찾아오셨는지 모르겠지만, 말씀하신 대로 그 유모라는 친구가 제가 나온 대학 출신이라는 것은 저도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근데, 아시다시피 그 학교는 매년 수천명이 들어가고 나오는 곳입니다. 전국에 동문 숫자가 아마 수십만명이 되겠지요. 게다가, 같은 학과가 아니라면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녔어도 서로 만날 일이 없지요. 그자가 정치외교학과를 다녔었나요?”

“아뇨, 경제학과였죠. 이세영씨가 정치외교였고.”


고태성은 세영의 이름이 나오자 다시시 뜨끔했다.


이 자들이 뭔가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일단 밀어붙여 보는 수 밖에.


“산하일보 이세영 기자 말인가요? 그 친구가 이 대목에서 왜 등장하죠?”

“유시열 대위를 은닉하고 있었더군요. 그래서 여쭤보는 겁니다. 이세영 기자를 통해서 그가 연락을 해해왔었는지.”


이 자들은 수사본부에서 왔었다는 그 최중령이라는 자와 정보 교류가 없었음이 분명했다. 그랬다면 구기동과 인사동에서 있었던 그일을 모를리 없었다.


“그 말씀은 이 기자가 그 친구와···..”

“내연 관계···.. 그냥 여자 친구라고 해 두죠.”


고태성이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날리자, 김부장이 물었다.


“짚이는데가 있습니까?”

“아뇨, 오래 전 일이지만, 학교 다닐 때 저도 그 친구를 마음에 둔 적이 있었거든요. 졸업 후에도 사회부 기자와 경찰 간부가 그렇듯이 가끔 만나서 정보를 주고 받았었구요. 근데···. 그런 관계였다니 좀 그렇군요. 친구로서 안타까운 마음도 있네요.”

“최근에 연락해온 일은 없다, 그런거군요.”

“그렇습니다. 설령 그 유모라는 대위가 제게 연락해온다해도, 저는 국정원에 알리지 않을 겁니다.”

“무슨 말씀이죠?”

“당연히 경찰이 검거해해야죠. 안그렇습니까?”


김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회의실의 시계를 힐끔 보고 선선히 일어섰다.


“다른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떠나는 것이 좋겠군요.”


그들은 회의실을 나왔다. 그리고, 사무실을 가로질러 센터 입구 쪽으로 걸어 가다가 한쪽을 돌아보았다. 경감 고태성이라고 써있는 명패가 걸려 있는 유리문이었다.


“저기가 고경감님 사무실인가요?”

“그렇습니다.”

“잠깐 안을 봐도 될까요?”


고태성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아침부터 저를 찾아온 것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만하시죠. 선을 넘으신 것 같습니다.”

“혹시 그 휴대폰이···..”

“압수 수색 영장 갖고 오시면 기꺼이 보여드리죠.”


고태성이 강경하게 나오자 김부장은 선선히 물러섰다. 하긴, 매너없는 부탁이기는 했다. 게다가, 여기는 경찰청청 본부. 자존심 문제가 있기도 했다.


“제가 실례를 했군요.”


그리고, 그는 전화번호가 적힌 카드를 꺼냈다.


“아까 국정원에 연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혹시 유대위한테서 연락오면 전화부탁드립니다. 저희가 추적하는 다른 일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주 중요한 일이죠”

“그러죠.”


두 사람은 센터를 떠났다.


고태성은 그들이 나가자, 사무실로 들어가 주간지를 살그머니 들춰 보았다.

역시 휴대폰은 거기에 있었다. 그는 얼른 그것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마침 유리문 밖으로 출근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세영이에게 어떻게 연락하지?


아침 업무 회의가 끝나는대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


아침 일곱시경, 세영은 이마에 누군가의 부드러운 키스를 느끼며 눈을 떴다.


굿 모닝!


시열이었다.

세영은 누운 채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굿 모닝, 도망자 아저씨.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세영은 어깨에 뻐근한 통증을 느끼며 다시 풀썩 누워버릴 수 밖에 없었다.


“괜찮아?”


그제서야, 세영의 머릿속에 어제의 긴박했던 순간들이 슬라이드처럼 지나갔고, 그녀는 자신이 누워있는 곳이 아파트 침실이 아니고, 북한산 인근 모텔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일어 나야했다.


세영은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시열은 그녀의 어깨 부위에서 멍자국을 발견하고 셔츠의 목부분을 들춰보았다. 어젯밤 캐트가 권총으로 내리친 어깨 부분. 이미 검은 색으로 변한 멍자국 안에 빨간 핏빛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실핏줄이 터진 것 같았다.


“우선 얼음찜질 부터 해야겠다.”


세영이 셔츠를 잡아올려 어깨를 가리며 말했다.


“배고파. 밥부터 먹자.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이른 아침에 옷을 살 수 있는 곳은 동대문 시장이었다. 그들은 모텔을 나와 동대문 시장으로 갔다.


시장은 다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밤을 새운 청계천 의류 도매 상가의 대부분 점포들이 이미 문을 닫았지만, 몇몇 점포는 소매 손님들을 위해 아직 문을 열고 있었고, 지난 밤의 끄트머리였던 그들을 시작으로 소매 상가의 아침이 시작되며, 밤과 낮의 바톤 터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종로 쪽 광장시장의 먹자 골목도 그랬다.


늘어선 좌판들에 지난 밤을 마무리하는 사람들과 오늘 아침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따끈한 오뎅 국물과 김밥으로 헛헛한 속을 달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동대문 근처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먼저 청계천 시장 쪽으로 갔다. 어제의 그 험난했던 고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옷을 그대로 입고 거리를 돌아다닐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정체 모를 저격수들에게 이미 노출이 되기도 하였고.


세영은 평소 즐겨입던 몸매가 드러나는 타이트한 바지 대신 헐렁한 바지, 그리고 역시 헐렁한 셔츠와 챙이 넓은 모자를 샀다.


시열은 남들의 이목을 끌지 않을 만한 평범한 하늘색 셔츠를 골랐다.


옷값을 지불하면서 두 사람은 지갑 속 현금이 줄어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카드를 이용하여 현금을 인출할 수는 없었다. 카드를 기계에 넣는 순간, 그들을 뒤쫓는 추적자들에게 고스란히 위치를 노출시키는 꼴이 될 터이니. 그저, 하루빨리 이 황당무계한 사건이 해결되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두 사람은 주차장으로 돌아와 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어때? 괜찮아?”


위 아래 옷을 모두 갈아입은 세영이 모자 마저 머리에 올려 놓고 물었다.


“옷, 잘못산 것 같다.”

“왜? 이상해?”

“너는 뭘 입어도 티가 나.”

“.... 무슨 소리야?”

“예쁘다고.”

“그건, 뭐, 어쩔 수 없잖아. 타고 난 거니까.”


세영은 싫지 않은 실소를 피식 날렸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균형잡힌 늘씬한 몸매에 태권도로 다듬어진 건강미, 아무리 평범하고 허름한 옷가지로 덮어 놓는다 해도 가려질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열이 어울리지 않게 닭살 돋는 멘트를 날려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어제의 멍자국과 상처가 그녀의 얼굴과 주변에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젯밤 응급처치를 했지만 아무래도 상처가 덧나지 않게 뭔가를 발라야 할 것 같았다.


광장 시장으로 갔다. 옷을 샀으니 배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먹자 골목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아우성을 그들의 위장이었다. 어제부터 아무 것도 들여 넣어 준 것이 없었으니 그럴 만했다. 하지만, 고소한 빈대떡 냄새를 이겨내고 들어간 작은 식당은 순대국밥 집이었다.


뜨끈한 국물. 그것이었다.


순대국밥 두 그릇을 주문하고, 세영은, 모듬 순대 한 접시도···., 덧붙이려다 목구멍 안으로 삼켰다. 얼마나 더 이어질지 모르는 도망자에게 현금은 아껴써야 할 가장 중요한 무기였으니.


뜨끈한 순대국밥이 들어가니 쪼그라 들었던 위장이 고맙다고 감격했고, 머리 속의 뇌도 정신을 차리고 기지개를 켜는 듯 하다.


세영은 고개를 처박고 순대국밥에 집중했다. 그러다, 문득 시열을 쳐다보았는데, 숟가락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세영이 물었다.


“고경감 말야.”

“고태성?”

“그 친구가 그걸 풀었다 해도 말야. 우리한테 어떻게 연락하지?”


세영이 생각해봐도 그랬다. 도청되고 있을 것이 뻔하니 태성은 전화를 하지 않을 것이고, 같은 이유로 세영도 그에게 전화할 수 없었다. 아니, 하면 안된다.


막상 그렇게 생각하니 그가 가져간 휴대폰의 잠금 장치가 이미 풀려 있을 것만 같았다.


세영은 숟가락을 다시 뚝배기 안으로 넣으며 말했다.


“일단 먹어. 내가 연락해 볼게.”

“어떻게? 도청 당하고 있을텐데···.”


세영은 개의치 않고, 시열의 뚝배기에 깎두기를 넣어주며 말했다.


“내가 알아서 한다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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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돌아올 수 없는 출동 23.06.25 49 1 11쪽
51 특전사령관 체포 23.06.22 49 1 9쪽
50 체포 명령서 23.06.22 48 1 14쪽
49 공항 경비대 23.06.21 43 1 10쪽
48 비상 계단 23.06.21 45 1 12쪽
47 아홉번째 문 23.06.18 48 1 11쪽
46 부드러운 손길 23.06.18 4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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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세영이 붙잡히다 23.05.31 48 2 11쪽
34 함정 23.05.31 54 1 11쪽
33 고민하는 고태성 경감 23.05.28 46 2 9쪽
32 킬러들 23.05.27 51 2 10쪽
31 도망가는 늘씬한 몸매 23.05.26 51 3 12쪽
30 유시열 대위, 진범이 아닐 수도 23.05.26 50 3 9쪽
29 시열이 살아있다 23.05.25 52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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