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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경

사파정점, 남궁으로 환생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공모전참가작

공경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8
최근연재일 :
2024.06.26 22:59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100,542
추천수 :
1,649
글자수 :
226,666

작성
24.06.20 23:49
조회
1,325
추천
30
글자
12쪽

40. 오래됐기 때문에

DUMMY

소림은 분명 강하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허나 지금 고력의 주먹은 결코 단청의 몸에 닿지 않았다.


무(武)란 결국 서로의 의념을 숨기는 것과 동시에 간파하는 것.

즉, 의념을 서로 나누는 것.


이 행위에 있어 고력은 단청을 따라올 수 없었다.


그가 펼친 나한십팔권(羅漢十八拳)의 모든 초식을 여유롭게 피해냈다.


"으음······."


고력이 침음성을 흘렸다.


세상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벽'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말그대로 '벽'.

상대로부터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이것은 불자(佛者)에게 꽤나 충격으로 다가왔다.


반조궁달(反照窮達).

타심지(他心智).


불가의 수행으로 끝없이 반조하여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끝내 타인의 마음도 깨달을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여타 다른 후기지수들에 비하면 상대의 수를 읽어내는 능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났으니까.

다만 단청이 그보다 더 뛰어났을 뿐이다.


상대의 속을 들여다보면 그저 칠흑의 어둠에 갇힌 것처럼 몸이 무거워진다.


그때였다.

흐릿한 무언가가 시야에 들어온다.


꿀꺽-


저것은 한줄기의 빛이자, 희망인가.

저기로 가면 되는 것인가.

고력의 몸이 자연스레 앞으로 쏠렸다.


곧,


빠악-

그의 머릿속에 폭죽이 터졌다.

소리가 맑고 시원하기 그지없다.

그 덕분인지 잡념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스륵-


그의 몸이 바닥으로 허물어진다.


'아, 아니 이게 무슨······.'


팽무혁은 제 두 눈으로 본 게 맞는지, 두 눈을 끔벅거렸다.


나한십팔권의 초식 전부를 펼친 고력의 주먹이 단 하나도 단청의 몸에 닿지 않았다.


이후 홀린 듯, 무방비한 채로 앞으로 걸음을 한 나머지 단청의 목검이 그의 머리를 그대로 응징해버렸다.


'이거 마치···,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은······.'


고력의 눈빛이 약간 몽롱해져 있다.

맞았는데도 정신이 한없이 맑아진 탓에 시퍼렇게 보일 하늘이 괜스레 원망스럽기 그지없을 것이다.


와아ㅡ!


주변에서 곧 함성이 터져나왔다.


천년소림이라 했다.

시간의 축적은 곧 강함.

소림의 후기지수로 촉망받는 기재를 저렇게 쉬이 쓰러트린다고?


ㅡ역시 남궁룡 소협이다!

ㅡ이봐···, 저분은 남궁단청 소협일세. 룡 공자가 저보단 잘 생겼지.

ㅡ이크! 뭐, 하여튼 대단하군!


스윽-


아니 이것들이?


단청이 눈알을 부라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들 딴청을 피워댔다.


억울했지만 맞는 말이다.


'토룡이 주제에 잘 생겼지.'


아무리 '창천검존'이라 불렸다 한들, 여러 명의 아내를 두려면 그에 걸맞은 외모가 필요한 법.


남궁천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은 탓인지, 그의 젊었을 적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실제로 본 것은 반로환동한 30대 초중반의 모습이었지만.


"흐음······."


혜각의 입 밖으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비무의 결과는 명백했다.


'이 정도였나.'


남궁의 방계 아이가 숫제 괴물임은 이미 봤을 때부터 느끼던 바였다.


살풍객을 폐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결코 우연도 아니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다.


오로지 순수 실력.

후기지수 급을 이미 아득히 상회하고도 남았다.


"비무는 남궁단청 소협의 승리일세."


와아ㅡ!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혜각의 공언으로 다시 한 번 우레와도 같은 함성 소리가 터져나왔다.


엣헴-


"뭐, 애송이 하나 쓰러트린 것 갖고-"


단청이 허리춤에 두 손을 얹은 채 앞으로 가슴을 내밀었다.


아니, 저기요···.

소림의 고력이 어떻게 애송이입니까?


팽무혁을 비롯해 소림의 제자들의 눈빛이 그리 말하고 있었으나, 단청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애송이는 애송이었으니까.


"깨어 있는 거 다 아니까 일어나봐."

"······."


멍하니 누운 채, 하늘 위를 바라보고 있는데 마귀와도 다를 바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지, 저건 마귀 그 자체다.'


비무 후, 마음 속에 심마(心魔)가 생겼다.

마귀가 아니면 어떻게 인간의 마음 속에 심마를 심을 수 있겠는가.


거짓말이 아니다.


오만하게도, 이 순간 한맺힌 주유의 구절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왜 하늘은 주유를 낳고, 또 제갈량을 낳았는가?'


불자가 떠올릴 법한 구절은 아니다.


이런 삿된 감정이야말로 철저히 배제해야 하는 것이기에.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없어."

"···그게 무슨?"

"항상 불가 계열은 그렇더라고. 뭔가를 자꾸 잊으려고 해. 어차피 늙어 죽으면 다 잊는데."

"······."


망상(忘想), 망정(忘情)하여 선정(禪定)에 들어가는 것.

불가의 기본이다.


과거, 신선이라 불렸던 달마 대사께서도 읊었던 기본을 저렇게 매도한다고?


-아미타불.


들어선 안될 것을 들었는지, 곳곳에서 염불을 외우는 소리가 들렸다.


'시주는 마귀요······.'


"오욕칠정을 잊어? 다 부질없다, 그거. 결국 오욕칠정을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깨닫는 게 있을 거야."

"······시주가 이걸 내게 말해주는 이유는?"

"변덕이라 해둘 게. 착각하지 마. 난 땡중 녀석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

"······."


말문이 막혔다.

소림의 부방장인 혜각이 앞에서 두 눈을 뜨고 있고, 그 뒤에 도열해있는 소림 제자들 앞에서 대놓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작자는 이 마귀밖에 없으리라.


'심마(心魔)를 없애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하라고?'


마치 깨달음의 단서라도 되듯 툭 던져줬다.


허나 그것이 곧 주화입마 아니던가?


단청은 그런 고력의 의문을 뒤로한 채, 남궁지약에게 다가갔다.


비무를 지켜 본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딱히 없었다.


"뭐라도 건진 게 있는 것 같은데?"

"있어."

"오, 뭔데."

"약자를 괴롭히면 안된다는 것."


남궁지약이 무표정한 눈빛으로 새겨 들으라는 듯 이연, 이우 남매를 둘러보았다.


약자로서 남매와 고력이 다를 바 없다는 거냐?


"······."


아오, 키워봤자 이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단청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빠앙-

괜한 발길질이 흙바닥에 박힌 돌멩이를 걷어찼다.



*



"내가 왜 너를 데리고 강호를 주유하며 비무행을 하는 지 아느냐?"


혜각의 깊은 눈빛이 고력에 닿았다.


불과 반 시진 사이에 그의 등이 조금 작아져있었다.


"······처음엔 소림의 강함을 저를 통해 보여주기 위함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론, 수련의 연장선이라 보았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후후······."


심마(心魔)를 떠앉은 제자의 모습이 보였다.

천년소림의 기재라 불렸던 제자는 기가 죽어있었다.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있던가?

기억에 없다.


"너는 지금껏 잘해주었다. 과연 천년소림의 기재라 불릴 법했지. 적어도 중원무림의 후기지수들 중에선 너를 이길 만한 자가 없었으니."

"······."


순간, 오만하게도 본인을 주유라 지칭했던 것.

적어도 허구에서 비롯된 감정은 아니었다.


"다만 그 상태에서는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 아이가 말했던 대로다. 역설적으로 우리 불가의 종은 정(情)을 해소하는 것으로서 정을 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잊은 채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면 나아가는 것조차 할 수 없다. 달마 시조도 그것을 화두(話頭)라 하여 의문을 띄우고 끊임없이 참구(參究)하고 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 끝에, 열반(涅槃)의 경지에 오른 것이니······."


마음 속의 심마를 화두로.


칠흑의 어둠 속에서 보였던 흐릿한 무언가.


일단 그것을 좇아야 한다는 것일까.


고력의 두 눈이 감겼다.


깨달음의 시간이다.

단번에 많은 것을 얻을 순 없으리라.

운이 좋아야 뭣 하나라도 건지는 게 있을 테지.


혜각은 혜각대로 생각에 잠겼다.


소림이 강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제 답을 내놓았다.


'오래됐기 때문에.'


이유 같지 않은 이유일 수 있으나, 그것은 사실이다.


단순히 무(武)에 한정되는 것만이 아니라 연단(鍊丹)술, 영약제조술, 의술 등 모든 것이 과거의 것이 우월했다.

누군가는 고대 신화 속에 나올 법한 허구의 것으로 치부할 수 있으나, 혜각은 그리 보지 않았다.


신선(神仙)이라 불렸던 달마.

그가 남긴 유산이 그대로 고이 간직된 것.

소림의 강함은 그것이 전부였다.

마침 고력이라는 기재가 시조의 유산을 잘 이어받았던 것이고.


그 예로, 소림의 시작으로부터 시간이 천년이 넘도록 흘렀으나 여전히 전설 상의 영약으로 불리는 '극환단(劇還丹)'을 뛰어넘는 영약을 만들지 못했다.


무공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초상승무학이라 불리는 무상대능력(無上大能力), 달마역근경(達摩易筋經) 등은 그 시절로부터 단 하나도 발전한 것이 없었다.


그저 그 가치를 지켜냈을 뿐.


하여, 물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역사가 그리 길지 않았을 황산검문이 어떻게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안휘에서 존재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을까.


개방의 정보로는 문주 장백산이 전대고수의 비급을 얻었다고 한다.


'직접 지켜봐야 할 것이 많구나······.'



*



"이제 곧이다."


남궁혁이 음식을 입 안에 밀어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이길 수 있겠지?"


남궁진이 그 말을 받았다.


그러자 남궁명이 학을 떼며 입을 열었다.


"이겨야지, 이기지 못하면 그 녀석이ㅡ."


응? 맞은 편에 앉아있는 두 사람의 눈빛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시꺼멓게 타들어갔다.


설마······.


"그 녀석이이이이-?"


호에에엑ㅡ!


단청의 손이 남궁명의 머리통을 잡았다.

그대로 꺾어 눈에서 불을 뿜어대는 시선을 마주한다.

저게 마귀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마귀일까.


"다, 단청아······ 그러니까 나는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말하려고ㅡ"

"당연히 무조건 이겨야지! 내가 어떻게 굴렸는데에! 지고 싶어도 못 질 걸?"


단청의 두 눈이 불을 뿜어댔다.


세 동기의 표정이 슬퍼졌다.


아······.

밥 먹을 땐 개새끼도 안 때린다는데, 역으로 뭔 광견 한 마리가······.


"함 두고보라고. 이대는 몰라도, 삼대는 절대로 안 져."

"······."

"대답이 없네에에? 설마 지고도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알겠다고!! 이기면 되잖아."

"그렇지."


단청은 그제서야 대답이 마음에 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선,


후롤롤롤

얌냠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워대기 시작했다.


감히 삼대제자가 할 법한 짓이 아니었으나, 그 누구도 뭐라 하는 이가 없었다.


"······."


다만······.

남궁성혁은 멀찍이서 그런 단청을 부정적인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폐관수련을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궁강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넌 나를 이어, 원로원주가 될 재목이다. 네가 그 녀석한테 밀린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

"하하······."


남궁강은 헛웃음을 흘렸다.


원로원주요······?

진지하게 저 괴물이 가주하겠다고 나서면, 정말 어떻게 될 지 모르는 판국에.


물론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순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삼대 제자들의 주도권이 그 녀석한테 넘어간 것이지?"

"사숙, 그러니까 이건ㅡ"

"하여간 두고보거라. 내가 구상한 그림이 전부 다 그려지고 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테니."

"······."


그러니까요,


왜 다들 처맞기 전에, 계획이 그렇게나 탄탄하신 건지······.


남궁성혁의 성격을 아는 남궁강은 굳이 진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작가의말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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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2. 남궁의 부산물 +4 24.06.26 705 25 12쪽
41 41. 당연히 남궁이 최고죠! +6 24.06.23 1,181 33 12쪽
» 40. 오래됐기 때문에 +5 24.06.20 1,326 30 12쪽
39 39.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니까? +8 24.06.18 1,462 31 12쪽
38 38. 부동(不動) +8 24.06.15 1,563 40 12쪽
37 37. 망할 선조 같으니라고 +5 24.06.13 1,637 31 11쪽
36 36. 못따라가겠다 이것들아 +6 24.06.11 1,617 35 12쪽
35 35. 이어짐 +5 24.06.10 1,774 34 12쪽
34 34. 한 대만 찰지게 때려보자 +6 24.06.08 1,693 27 12쪽
33 33. 조금만 더 떠들어보란 말이다 +6 24.06.08 1,803 32 12쪽
32 32. 은인(恩人) +8 24.06.06 1,872 34 11쪽
31 31. 검수(劍手)들의 대화 +5 24.06.05 1,930 30 11쪽
30 30. 약자(弱者) +6 24.06.04 1,979 30 13쪽
29 29. 소면 한 그릇의 가치 +5 24.06.03 1,958 34 12쪽
28 28. 이것저것 다 따질 필요없다고 +2 24.06.02 2,003 36 12쪽
27 27. 답은 사형들이 맞혀야지 +4 24.06.01 2,059 37 12쪽
26 26. 의념(意念) +4 24.05.31 2,099 35 13쪽
25 25. 토룡이 +6 24.05.30 2,210 38 11쪽
24 24. 화가 난 이유 +6 24.05.29 2,305 38 11쪽
23 23. 짓밟을 생각으로 오셨으면, 짓밟힐 각오도 했어야죠. +5 24.05.27 2,272 38 12쪽
22 22. 정신나간 내 새끼 +6 24.05.26 2,261 39 14쪽
21 21. 옥의 티 +2 24.05.25 2,351 36 11쪽
20 20. 쫄리면 뒤지시던지 +5 24.05.24 2,389 42 11쪽
19 19. 대연신공 +4 24.05.23 2,520 40 12쪽
18 18. 구애 +4 24.05.22 2,503 38 12쪽
17 17. 미친 노인과 미친 강아지 +2 24.05.21 2,479 39 11쪽
16 16. 꿈 깨 +6 24.05.20 2,449 39 12쪽
15 15. 극강의 둔재(鈍才) +5 24.05.19 2,537 39 12쪽
14 14. 유난히 그리워지는 밤 +4 24.05.18 2,572 4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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