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공경

사파정점, 남궁으로 환생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공모전참가작 새글

공경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8
최근연재일 :
2024.06.23 14:58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91,836
추천수 :
1,465
글자수 :
221,128

작성
24.05.18 23:30
조회
2,411
추천
38
글자
12쪽

14. 유난히 그리워지는 밤

DUMMY

남궁명은 운기조식을 위해 가부좌를 틀다 문득 머릿속으로 아주 중요한 사실이 떠올랐다.


"단청아! 네 할당량 아직 안했잖아!"


저대로 관주님을 따라 가면 놈이 쉬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크흠···!"


그 말에 남궁도가 헛기침을 하고.


스윽.


단청의 고개가 돌아가며 눈빛이 붉게 번뜩였다.


아, 명아 제발 눈치 좀!


저 괴물 새낀 알아서 잘하잖아!


이 이상의 지옥을 맛보고 싶지 않았던 삼대제자들의 섬뜩한 눈빛이 일순 남궁명에게로 향했다.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시무룩해진 남궁명은 얌전히 가부좌를 틀며 운기조식을 취했다.


"풉ㅡ"


순간 단청의 표정이 비웃는 것으로 바뀌며 실소를 흘렸다.


사형들이 지금 뭘 할 수 있는데?


그 표정과 실소가 마치 그리 말하고 있는 듯했다.


저 악마 같은 새끼!


요망하게 혀 내미는 것 보소!


얄미워서 당장 뛰쳐나가 단청의 이마에 꿀밤이라도 놔주고 싶었지만, 되려 머리가 터질 수 있으니 얌전히 있어야 한다.


"크흠······. 이만 가자꾸나."

"네, 관주님."


'내가 봐도 이리 띠꺼운데, 쟤네들은 어떻게 참고 사냐······.'


남궁도는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꼰대라서 단청의 행동이 영 못마땅한 그였지만, 어쩌면 가문의 큰 어른이라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가 단청의 사형이었거나, 혹은 그 아래인 사제였다면···.


나가 뒤져야지.


아니 뒤지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가문 탈출 시도를······.


사아아아ㅡ


남궁가의 장원(莊園)에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어느덧 추웠던 겨울은 가고 시퍼런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크흠······. 하늘이 참 푸르구나."

"그렇네요."


창천(蒼天).


남궁가는, 남궁천은 왜 창천을 남궁의 상징으로 했을까.


백 년 전, 마교혈사(魔敎血史) 당시 하늘은 저주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핏빛으로 물들어있었다.


"관주님, 그래서 저에게 하실 말씀이?"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맞는지 지금도 조금, 아니 많이 고민이긴 하다만."

"괜히 뜸들이지 마시고요."

"······."


단청의 말투나 태도가 꼰대 그 자체인 남궁도를 벅벅 긁어놓았으나, 이젠 이것도 나름 익숙해졌는지 정신적 타격이 덜해졌다.


"너는 남궁의 무공이 사실상 실전되었다는 것을 아느냐?"

"···아뇨오오? 모르는 뒈요오오?"

"너··· 알고 있었지?"

"······."


심각한 수준의 연기에, 남궁도의 콧날이 씰룩거리며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그냥 국어책 읽기로 모른다고만 대답해도 이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모르는 척 연기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이 사실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니까."


심지어 외부에서도 의심을 넘어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남궁의 상황이 단순히 인재의 문제가 아니라, 무(武)가의 기본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비전무학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스윽.


"무애검법(無涯劍法)이다. 방계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무학 중 하나지."


단청은 남궁도가 건넨 비급서를 받아들었다.


사본인지 비급서의 상태가 양호했다.


"내용 좀 보겠느냐?"

"······네."


비급서를 건네 받자마자 단청의 입가에서 장난스러운 미소가 걷히고 얇은 입술이 꾹 다물어졌다.


그 상태로 비급서의 내용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녀석······.'


또 이렇다.


이게 어떻게 12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가질 수 있는 기백일까.


남궁도는 단청이 비급서를 다 볼 때까지 느긋히 기다려주었다.


시간은 많았고, 당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오지 않았던가.


입관 때부터 이대제자를 상대로도 이기며 두각을 드러내었던 광검 사형조차 삼십여 년 동안 못했던 일이었으니 말이다.


'겉핧기만 한 느낌이군.'


단청은 무애검법의 1초인 낙천을 보고 그리 평가했다.


기사멸조란 이런 게 아니겠는가?


무덤에 안치되어 있을 선조가 그 평가를 듣기라도 한다면 스스로 무덤을 파헤쳐서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죽은 이는 들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


'남궁천, 대(大) 남궁세가를 만든다더니. 정작 자식 농사는 실패했나보군.'


ㅡ그러는 형님은 결혼도 못했고 애도 없잖아요.


뭐, 이 새끼야?


곧 단청의 입가에 쓸쓸한 미소가 걸렸다.


폭군무존이자 하오문주로 무림에 이름을 떨쳤으나, 정작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것이 그의 전생이었으니······.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뭣 좀 보이는 게 있느냐?"


비급서를 보며 집중하다가, 화를 내다가, 이내 씁쓸한 미소를 짓는 단청을 보며 더 이상 참지 못한 남궁도가 물었다.


"형편없는데요?"

"이놈아······, 기사멸조인 건 알고서 하는 말이냐?"

"아이코! 이게 선조님이 쓰신 비급서였군요오오. 몰라뵈었습니다!"

"······."


이 새끼··· 분명 알고서 하는 말이다.

관주직을 걸고서 자신할 수 있다.


"후우······. 그래. 너라면, 이걸 조금 더 개량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솔직히 기대가 되지는 않는다.


이 쬐끄마한 놈의 싹수가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광검 사형의 삼십 년을 바로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진 않았으니까.


"글쒜요?"

"음······?"

"개량이야, 뭐······ 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헤헤헤."


남궁도의 눈이 부릅 떠졌다.


저 놈의 콧구멍이 벌렁거리는 것 좀 봐라.


아주 증기를 뿜어대고 있다.


설마 가문 무공의 발전을 논하는 데,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을 탐하는 것인가?


······뭐, 그 부분에 있어선 그 역시 크게 할 말 없긴 하다.


'어린 놈이 벌써부터 못된 것만 배워처먹어가지고는······.'


"뭐··· 원하는 것이라도 있더냐?"


남궁도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가문의, 그리고 원로원의 숙원과도 같은 일이다.


그걸 해결할 수 있다면 가문 차원에서 못해줄 것도 없었다.


상을 줘도 모자라지 않을 일이긴 한데, 왜 이렇게 찝찝하고 얄미운 건지


스윽.


단청이 검지와 엄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보였다.


'설마······ 돈?'


얼마를 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남궁은 요즘 부쩍 가난하다.

후원을 끊는 상회가 매년마다 늘고 있고, 그마저 있는 곳도 수입이 좋지 않다며 후원금을 적게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크흠······. 돈은 가문의 상황이 여의치ㅡ"

"아이, 그게 아니라 영약이요, 영약!"

"아. 영약."


저 동그라미는 대체로 둥근 영약의 생김새를 뜻하는 것이었다.


"평소 생각하는 것만 눈에 보인다고 하더니, 에휴!"

"······."


꼰대에 속물이라 미안하다, 이놈아!


"어느 정도의 영약을 원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가문의 상황이ㅡ"

"알았어요! 알겠으니 밑밥은 그만 깔아도 돼요. 가문이 아주 망해버렸나, 에휴."


아니, 이놈이 이제 아주 대놓고 기사멸조를!?


······이리도 고마울 데가. 이러면 보상을 논하는 데 있어 한결 수월해지지 않겠는가.


"크험험······. 아주 자신이 있나보구나? 그래, 개량은 어떻게 될 것 같으냐?"


남궁도는 광검 사형의 무애검법 개량 과정을 수도없이 지켜봐왔다.


인당혈(印堂穴)과 풍지혈(風池穴)을 이렇게 연결하여, 젠장할! 이게 뭔 낙천이냐. 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빌어먹을.


차라리 극천혈(極泉穴)과 곡지혈(曲池穴)의 흐름에 변화를 준다면? 으아아악! 팔꿈치가 뒤로 돌아갔어어억!


그 천재조차도 재능의 벽에 가로막혀 주기적으로 울부짖고 있는데, 과연 이 돌변연이가 무엇을 봤는지 당장 궁금했다.


"에헤이! 좀 기다려주세요. 무공의 개량이란 게 어디 쉬운 일이에요?"

"그건 맞지."

"한 달! 한 달만 시간을 주세요. 그럴 듯한 결과물을 만들어 올 테니까."


어느덧 단청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평소엔 저 표정이 그렇게 얄밉고 재수없어 보였는데, 지금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느껴졌다.


'녀석, 하기만 한다면 네가 가문을 살린 것이다.'



*



늦은 밤.


단청은 어깨를 주무르며 연무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아오······. 힘들어 죽겠네. 아침으로, 낮으로, 저녁으로 훈련하고······ 밤 늦게는 연구하고. 이게 참 뭐하는 짓이람."


삼대제자의 훈련을 봐주고는 있지만, 단청은 그의 훈련에 타협을 두지 않는다.


언제나 늘 극한으로 스스로를 몰아부쳤다.


'이럴 때, 영약이라도 있으면 참 좋겠는데.'


그것은 비단, 단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궁도의 이야기가 무조건 틀린 것도 아닌 게, 계속 이렇게 고된 훈련을 하다보면 분명 부상자가 나오게 되어있다.


고효율적이지만 위험도도 높다는 것.


그걸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영약'이다.


잘만 흡수하면 회복과 더불어 극적인 성장을 노릴 수도 있으니까.


"뭐, 영약은 일단 됐고!"


단청은 검을 바로 잡았다.


ㅡ저도 잘났지만, 형님 같은 무인은 정말 처음 봅니다. 어떻게 보는 것만으로 무공의 본질을 꿰뚫어 봅니까?

ㅡ성격이 파탄난 이유가 그 눈을 얻기 위해 악마와 계약이라도 한 것은 아닌지······. 아이코!


아주 먼 옛 이야기다.


그 말을 듣고 곧바로 남궁천의 머리를 응징한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무(武)에 있어서 단청의 재능은 규격 외였다.


타인이 보는 데서 무공을 보이지 마라.


이 격언은 어쩌면 단청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단청은 견식하는 것만으로 나름대로의 해석을 거쳐 무공을 구현해낼 수 있었으니까.


그는 그렇게 견식해서 얻은 정보들을 토대로 오직 단청만이 익힐 수 있는 '혼원공(混元功)'과 '수라선천기공(修羅仙天氣功)'을 만들었다.


'어떻게 해야 될까······. 네 낙천과 내 낙천은 달라.'


남궁천의 검은 제왕적인 패도를 담고 있지만, 그렇기에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었다.


허나 단청의 검은 그저, 상대를 죽이는 필살(必殺)의 검이다.


그의 별호에 괜히 '폭군'이라는 단어가 붙었겠는가.


중요한 것은······.


어차피 이 둘의 검은 지금 남궁가의 검수들이 절대로 따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저 지향해야 할 목표점으로 두면 되는 것.


그렇다면 무엇으로 기록을 남겨야 하는가.


비급서를 둘로 나누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뻔하지, 훈련 방식이나 시간 같은 시덥잖은 걸로도 직계와 방계가 다투는데, 비급서가 2개로 나뉘면······.'


북송 시대 계피 논쟁보다도 더한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ㅡ알아서 하시오.


'뭐······?'


ㅡ어차피 남궁천의 남궁이든, 형님의 남궁이든. 뭐 그리 중요하겠소? 중요한 건 남궁 그 자체이지 않겠소.


'······멋있어 보이려고 등장한 거지?'


단청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맞는 말이긴 했다. 뭘 하더라도 중요한 것도 아니고 하등 의미도 없었다.


남궁이 남궁으로 오롯이 있으면 되는 것.


"······그러니 내 취향 듬뿍 좀 넣을게."


ㅡ······.


"꼬우면 알지? 다시 살아나보시던가."


단청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답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비급서를 살펴보았다.


그것을 토대로 남궁천이 검을 휘둘렀던 기억을 되짚는다.


그리고 그 기억에 동화되어 그것을 직접 몸으로 하나하나 구현한다.


1초, 낙천(落天)

2초, 횡천(橫天)

3초, 창천(蒼天)

4초, 열파(裂破)

5초, 단풍(斷楓)

6초, 축지(逐地)

7초, 격류(激流)

8초, 절영(絶影)

9초, 척지(斥地)

10초, 분산(奔散)

11초, 철장(鐵障)

오의(奧義), 천화(天火)


방계의 무애검법은 직계의 창궁무애검법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길목.


무애검법을 진정한 의미로 완성한다면 창궁무애검법을 익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아하아ㅡ"


1초부터 12초 오의까지 전부 펼쳐낸 단청의 입에서 뜨거운 숨이 흘러나왔다.


무엇 하나 대충 펼친 것이 없었고 진의를 그대로 담기 위해 검형(劍形)에 진기를 꾹꾹 흘려보냈다.


단청은 얼굴에 흐른 식은 땀을 손으로 훔쳤다.


"어라라라······."


손에서 느껴지는 것은 단순 땀만이 아니었다.


코가 시큰거렸다.


'······주책이군.'


함께했던 기억을 되짚으며 초식의 전부를 펼친 탓인지,


다시는 못볼 그가, 유난히도 그리워지는 늦은 밤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파정점, 남궁으로 환생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 변경 2024.5.24.)남궁환생기 -> 사파정점, 남궁으로 환생하다 24.05.16 1,226 0 -
41 41. 당연히 남궁이 최고죠! NEW +2 12시간 전 504 20 12쪽
40 40. 오래됐기 때문에 +5 24.06.20 978 26 12쪽
39 39.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니까? +8 24.06.18 1,227 27 12쪽
38 38. 부동(不動) +8 24.06.15 1,359 37 12쪽
37 37. 망할 선조 같으니라고 +5 24.06.13 1,461 28 11쪽
36 36. 못따라가겠다 이것들아 +6 24.06.11 1,442 32 12쪽
35 35. 이어짐 +5 24.06.10 1,611 32 12쪽
34 34. 한 대만 찰지게 때려보자 +6 24.06.08 1,534 25 12쪽
33 33. 조금만 더 떠들어보란 말이다 +6 24.06.08 1,647 30 12쪽
32 32. 은인(恩人) +8 24.06.06 1,719 32 11쪽
31 31. 검수(劍手)들의 대화 +5 24.06.05 1,779 28 11쪽
30 30. 약자(弱者) +6 24.06.04 1,827 28 13쪽
29 29. 소면 한 그릇의 가치 +5 24.06.03 1,806 32 12쪽
28 28. 이것저것 다 따질 필요없다고 +2 24.06.02 1,840 34 12쪽
27 27. 답은 사형들이 맞혀야지 +4 24.06.01 1,898 34 12쪽
26 26. 의념(意念) +4 24.05.31 1,941 33 13쪽
25 25. 토룡이 +6 24.05.30 2,045 35 11쪽
24 24. 화가 난 이유 +6 24.05.29 2,138 34 11쪽
23 23. 짓밟을 생각으로 오셨으면, 짓밟힐 각오도 했어야죠. +5 24.05.27 2,113 35 12쪽
22 22. 정신나간 내 새끼 +6 24.05.26 2,106 36 14쪽
21 21. 옥의 티 +2 24.05.25 2,195 33 11쪽
20 20. 쫄리면 뒤지시던지 +5 24.05.24 2,229 37 11쪽
19 19. 대연신공 +4 24.05.23 2,351 36 12쪽
18 18. 구애 +4 24.05.22 2,340 34 12쪽
17 17. 미친 노인과 미친 강아지 +2 24.05.21 2,313 34 11쪽
16 16. 꿈 깨 +6 24.05.20 2,292 35 12쪽
15 15. 극강의 둔재(鈍才) +5 24.05.19 2,373 35 12쪽
» 14. 유난히 그리워지는 밤 +4 24.05.18 2,412 38 12쪽
13 13. 밑져도 본전···, 맞겠지······? +3 24.05.17 2,449 36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