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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경

사파정점, 남궁으로 환생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공모전참가작

공경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8
최근연재일 :
2024.06.26 22:59
연재수 :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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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44
추천수 :
1,650
글자수 :
226,666

작성
24.06.18 02:40
조회
1,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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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글자
12쪽

39.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니까?

DUMMY

"아, 뭐야···. 소림이었어?"


단청의 삐딱한 시선이 위아래로 한차례 훑고 간다.


'아니, 이 녀석이···?'


혜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림말학이 대선배를 저렇게 건방지게 보는 것도 그랬지만, 저 시선의 의미가 너무나 명백했다.


천년의 소림.

태산북두의 소림.


소림에게 붙는 수식어다.


소림은 만인에게 추앙받고 숭배를 받는다.

그 이름만으로 중원무림 정파의 상징이었으니까.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불자로서 살생(殺生)을 자제한다지만, 때로는 무자비를 베풀기도 하는 법.


허나 이 아이의 눈빛엔 소림에 대한 추앙도, 숭배도, 두려움도 그 어떠한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굳이 읽는다면 그것은 얕봄에 가까웠고 아주 깊숙히는 '적개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소··· 소협, 나야 그렇다쳐도 이분은ㅡ"


팽무혁의 표정이 삽시간에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설마 소림한테도, 특히나 소림의 부방장이라 불리는 혜각한테도 이럴 줄은 몰랐다.


자칫 저 천방지축인 주둥아리를 냅뒀다간 무슨 사달이 날 지 모른다.


스윽-


그의 시선이 옆쪽 반짝반짝 빛나는 정수리를 지나 맑은 눈빛에 닿았다.


의외로··· 그렇게 화가 난 눈치는 아니었다.


"괜··· 찮네, 팽 소협. 크험···. 다시 소개를 하지, 나는 소림의 혜각이네."


화가 난 건 아니지만, 괜찮은 것 또한 아닌 것 같다.


대선배인 혜각이 먼저 예를 갖춰 인사를 하자, 단청 또한 마지못해 적당히 예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남궁의 단청이에요."


저런!


물론 이것 또한 누군가에겐 예의없음으로 느껴질 터.


혜각 뒤에 도열해있는 제자들의 눈빛이 불꽃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불도(佛道)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이미 그것이 밖으로 표출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크흠···. 다른 건 몰라도 시주가 불법을 믿지 않는다는 건 알겠군."

"불법이요? 원래 안 믿었는데, 이제 좀 믿어보려고요."

"음?"

"불법이 그거 믿는 거 아니에요? 윤회(輪回)."

"그렇지, 살생이란 곧 업을 쌓는 것이고, 그것이 후대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 윤회고 우리 불가는 그것을 따르지."


살생즉적업(殺生卽積業)

업연후대(業緣後代)

차즉윤회(此卽輪回)


불가의 사람들이라면 귀가 닳도록 듣는 구절이다.


전생의 단청은 불법을 믿기는커녕, 그와 아주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았었다.


깊게 따져볼 것없이 이미 너무나 많은 피를 그 손에 묻혔으니까.

적어도 다리에 난 털보단 많을 것이다.


그랬던 그였지만 지금 이렇게 떡하니, '윤회'라 할 수 있는 환생을 해버렸다.


'수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아무튼 악업(惡業)보다 선업(善業)이 더 크다는 것 아니겠어?'


증거가 곧 본인 그 자체였으니 아무리 믿음이 없더라도 조금은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소림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요."

"허어-"


혜각을 비롯한 제자들의 입 밖으로 얕은 탄식음이 터져나왔다.


이건 또 무슨 궤변이란 말인가.


불법을 믿어보려고 한다면서?


이 중원무림에 소림 이상으로 불법을 대표할 수 있는 불가가 있다는 것인가.


"뭐죠, 그 반응?"


그 반응이 우습기라도 한 지, 단청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가있었다.


"솔직히 좀 그렇잖아요. 천년소림, 태산북두 소림 다 좋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가만 보면 동냥이나 받아먹는 개방과 다를 바 없지 않나요? 조금 더 뽄새나게 받아먹는 것뿐이지. 부동심이라 했나요? 그 말답게 아주 가아아아만히 말이죠."


저, 저, 저 주둥아리ㅡ!


"소, 소협ㅡ!"


'이런 미친!'


팽무혁은 단청을 얕봤음을 실감했다.


어찌 14살 아이의 입이 저렇게나 매울 수 있을까.


자칫···, 아니지. 자칫이 아니다.


이 정도면 신변의 위험이 생길 것이다. 무림은 검끝으로도 은원이 생기지만, 말끝으로도 은원이 생기는 법이니.


아니나 다를까,


"감히 우리 소림을 거지 무리인 개방 따위와 비교해!?"


혜각 뒤에 도열해있는 제자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분을 터트리고 있었다.


단청은 그 분노가 가당치도 않은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웃기네요. 평소엔 '구파일방'으로 서로 동격이 모인 연맹임을 표방하더니. 지금은 소림이 거지들로 구성된 개방을 무시라도 하는 건가요?

"뭐뭣-!?"


분을 터트린 제자가 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저것은 분명 궤변이다.

하지만 그럴 듯했다. 굳이 따지고 본다면 그렇게 해석이 안될 것도 없었다.


스윽-


"······그만."


혜각이 위로 올린 손짓에 일순 적막이 흘렀다.


"시주가 불법을 떠나, 소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정도는 알겠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유가 궁금하세요?"

"어린 시주가 소림을 미워할 이유가 뭐 그리 있겠나. 시주의 말대로 가만히서 돈 받아먹고 모양새만 잡는 모습이 그리 좋지 않아보일 수 있겠지. 다 소림이 부덕한 탓일세."

"자, 장로님-!"


너무나 굽히는 모양새에 소림의 제자들이 목소리를 되려 높였다.


그것을 지켜보던 단청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미안한데···, 그거 아닌데요?"

"······."


아니라고?

그러면 도대체 뭔데 이 새끼야······.


혜각을 비롯한 뒤에 도열해있는 소림의 제자들의 눈빛이 그리 묻고 있었다.


'소협······.'


슬슬 단청과 선을 그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팽무혁까지도.


"······시주, 뭐 아무튼. 각설하고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하지."


스윽-

혜각이 바로 뒤에 서있는 고력에게 힐끗 시선을 던졌다.


고력이 기다렸다는 듯 그 앞으로 나섰다.


처음엔 장로님이 이 녀석을 왜 그렇게까지 의식했는지, 또한 안휘비무제를 식견할 정도인지.

그 모든 것이 의문이 들었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게 되었다.


"소림의 삼대제자··· 고력이라고 합니다. 소협을 통해 남궁의 검을 식견하고자 하는데요."


말은 에둘러서 표현했지만, 한 판 붙자는 뜻.


지금 마음 속에 든 감정이 분명 불자답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소림을 욕보였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다.


소림은 아무것도 없던 그에게 모든 것을 준 곳이었으니까.


"아이고, 저 같은 방계 나부랭이가 어떻게 남궁의 검을 대표할 수 있겠습니까. 남궁의 검이라면 바로 여기-!"


스윽-


단청의 과장된 손짓에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남궁지약에게 향했다.


당장 떠오른 생각은 몇몇 차이가 있겠으나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아, 예쁘다.

그 미모는 머리 민 스님도 인정하는 바.


도대체 왜 저런 천둥벌거숭이 놈과 어울리지?


그 의문에 답하듯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모르는 사람."


휙-


그렇게 말하곤 고개를 매몰차게 돌려버렸다.


"아니이이이-! 지약 사고, 이건 아니지!"


그 반응에 단청은 진심으로 억울한 듯 눈이 땡그랗게 떠졌다.


해명을 요구하는 그 눈빛에도 남궁지약은 꿋꿋이 시선을 외면한 채였다.


단청은 허탈했다.


지난 한 달 간 얼마나 성심껏 무공을 알려줬던가.


모든 훈련생을 공평하게 대하려고 했다지만, 아끼는 훈련생이 생길 수밖에 없는 법.


바위에 가까운 짱돌도 가장 많이 굴려주고, 육체 훈련도 가장 열심히 시켰다.


뭣보다 직계의 창궁무애검법까지.


이보다 더 잘할 수 있겠냐고.


이래서 딸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거겠지.


'아, 이럴 때 쓰는 말은 아닌가?'


"소협, 대답은······?"


이미 고력은 충분히 무시를 당했다고 여긴 나머지, 미간이 좁혀져 있었다.


불가에 귀의한 이후, 불가 사람이 아니길 바랐던 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세속에 귀의하여 마음껏 녀석을 흠씬 두들겨 팼으면 하는 생각이.


"아니······. 말이 식견이지, 그냥 때리고 싶다는 거 아니에요?"


맞아.


"······그런 건 아닙니다."


단청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그냥 솔직히 말하시죠. 저랑 싸우고 싶다고."


고력의 눈빛이 지긋이 단청을 향했다.


아직 수행이 부족한 탓인지 깊지는 않았지만 크게 흐트러짐은 없었다.


'이 녀석도 숫제 괴물이군.'


단청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역시 천년소림이란 건가?

인재가 많으니 그 중에 천외천이라 불릴 법한 이들이 주기적으로 등장한다.

물론 남궁지약만큼은 아니었지만.


"글쎄요···. 소협과 싸우고 싶은 것도 있지만, 몸소 부딪혀가며 소협에게 소림의 불도를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뭐, 그 말이 그 말이지."

"······."

"아무튼 제대로 싸우겠다는 거죠? 저를 상대로?"

"물론입니다. 저, 고력은 누구를 상대로 하든 그에 맞춰 최선을 다합니다."


단청의 비릿한 미소가 진해졌다.


이렇게 나와야지.

그래야 뒷말이 안나오니까.


곧장 객잔 앞에 비무를 하기 위한 자리가 만들어졌다.


과거 살풍객과 손옥량이 비무를 했던 위치였다.


'고력은 후기지수 중에서도 단연 군계일학-'


고력을 바라보는 팽무혁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구파일방인 그가 오대기전에 나오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익히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다.


지금 이렇게 단청과 비무를 하듯, 심심찮게 강호행을 나와 후기지수급 강자들과 비무를 벌이곤 했다.


그때마다 고력은 큰 격차를 보이며 상대를 꺾었다.


독룡이라 불리는 당우민조차 고력에게 패배했다.

물론 비무인 만큼, 치명적인 독을 사용하진 않았지만.


"오라비는 어떻게 생각해?"

"뭐?"

"둘 중에 누가 이길 것 같아."

"그야ㅡ"


팽옥영의 물음에, 팽무혁은 자연스레 고력을 떠올렸다.


물론 그가 단청에게 패배하긴 했어도 소림은 소림이었으니까.


소림에서도 고력을 불세출의 천재라고 띄워주고 있기도 하고.


그런데 왜일까···.


'왜 저 녀석이 이길 것 같지?'


애초에 고력과 살풍객이 맞붙는다면 누가 이길 것인가.


그건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들리는 소문의 단청처럼 살풍객을 압도하진 못할 것이다.


"나는 단청 소협이 이길 것 같은데."


팽옥영이 먼저 말했다.


"···이유는?"

"감."


답은 추상적이었지만, 사실 그렇게나 어울리는 답도 없었다.


팽무혁의 머릿속에 당장 떠오른 건 고력의 승리였지만, 그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단청이 이길 것이라고.


"자알 지켜보라고 너희들.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이니."

"예, 은인-!"


단청의 말에 이연, 이우 남매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객잔에서 밥 먹을 겸, 둘의 무공을 봐주려했던 것인데 좋은 기회가 생겼다.


"사고도 마찬가지야. 백문불여일견 알지? 원래 무공의 깨달음이란 건, 다양한 변수 환경 속에서 시작되는 법ㅡ"

"···알겠으니 그만."


남궁지약은 여전히 특유의 무표정인 채였다.


어째 그녀의 아버지보다 더 꼰대처럼 느껴지긴 했지만 틀린 말은 없었다.


뭣보다 기시감이 느껴졌다.


'마치 이렇게 될 걸 알았다는 느낌-'


그건 나중에 물어봐야 할 것이다.


"시주······. 준비는 다 된 것이오?"


고력은 삿된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다.


그가 이 자리에 서면서 혜각에게 '최선을 다하라' 라는 말을 들은 걸 제외하면 뭘 한 게 딱히 없었다.


허나 저 녀석은 무어란 말인가?


비무에 앞서 그들에게 스승 행세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무시를 하고 있고, 욕을 보일 생각이면 저럴까.


"준비는 오래 전부터 되었지."


단청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 모습도 그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시주, 너무 원망치 마시오. 어리석은 중생을 구제하는 것도, 우리 같은 불가의 종이 해야 할 일이니."

"구제한다라······."

"불가의 권법을 마주하다보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자연스레 깨닫게 될 것이오."


단청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아! 원래 불법을 좀 믿어보려고 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안그래도 될 것 같아."

"······?"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니까?"


······미친놈.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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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2. 남궁의 부산물 +4 24.06.26 705 25 12쪽
41 41. 당연히 남궁이 최고죠! +6 24.06.23 1,181 33 12쪽
40 40. 오래됐기 때문에 +5 24.06.20 1,326 30 12쪽
» 39.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니까? +8 24.06.18 1,463 31 12쪽
38 38. 부동(不動) +8 24.06.15 1,563 40 12쪽
37 37. 망할 선조 같으니라고 +5 24.06.13 1,637 31 11쪽
36 36. 못따라가겠다 이것들아 +6 24.06.11 1,617 35 12쪽
35 35. 이어짐 +5 24.06.10 1,774 34 12쪽
34 34. 한 대만 찰지게 때려보자 +6 24.06.08 1,693 27 12쪽
33 33. 조금만 더 떠들어보란 말이다 +6 24.06.08 1,804 32 12쪽
32 32. 은인(恩人) +8 24.06.06 1,872 34 11쪽
31 31. 검수(劍手)들의 대화 +5 24.06.05 1,930 30 11쪽
30 30. 약자(弱者) +6 24.06.04 1,979 30 13쪽
29 29. 소면 한 그릇의 가치 +5 24.06.03 1,958 34 12쪽
28 28. 이것저것 다 따질 필요없다고 +2 24.06.02 2,003 36 12쪽
27 27. 답은 사형들이 맞혀야지 +4 24.06.01 2,059 37 12쪽
26 26. 의념(意念) +4 24.05.31 2,099 36 13쪽
25 25. 토룡이 +6 24.05.30 2,210 38 11쪽
24 24. 화가 난 이유 +6 24.05.29 2,305 38 11쪽
23 23. 짓밟을 생각으로 오셨으면, 짓밟힐 각오도 했어야죠. +5 24.05.27 2,272 38 12쪽
22 22. 정신나간 내 새끼 +6 24.05.26 2,261 39 14쪽
21 21. 옥의 티 +2 24.05.25 2,351 36 11쪽
20 20. 쫄리면 뒤지시던지 +5 24.05.24 2,389 42 11쪽
19 19. 대연신공 +4 24.05.23 2,520 40 12쪽
18 18. 구애 +4 24.05.22 2,503 38 12쪽
17 17. 미친 노인과 미친 강아지 +2 24.05.21 2,479 39 11쪽
16 16. 꿈 깨 +6 24.05.20 2,449 39 12쪽
15 15. 극강의 둔재(鈍才) +5 24.05.19 2,537 39 12쪽
14 14. 유난히 그리워지는 밤 +4 24.05.18 2,572 4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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