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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경

사파정점, 남궁으로 환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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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경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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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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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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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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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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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5. 이어짐

DUMMY

'폭군무존'이라는 위명을 얻고 천마와 동귀어진하여 산화하기 전까지, 지역과 천하를 다투는 숱한 미녀들을 봐왔었다.


그들과 견주어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피가 솟구치는 그 나이대의 남자라면 보는 것만으로 홀렸을 지도 모른다.


'나야, 뭐······.'


도합 100년의 인생을 넘게 산 탓일까, 반응이 무뎌졌다.

감정이 펄펄 끓지 않고, 뜨뜻미지근한 정도에 그쳤다.


사실 그녀의 특이한 부분은 외모만이 아니었다.


단청은 그녀가 발산하는 의념의 색을 보았다.

정말로 특이했다.


사람은 사실, 굉장히 복잡한 의념을 가지고 있다.

죽기 직전에도 '생존'의 의념이 비교적 커질 뿐이지, 가족 걱정, 나라 걱정 등 온갖 의념이 함께 묻어나온다.

사람은 원래 그런 복잡한 동물이다.


허나, 이 여자는 의념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했다.


저것은 그러니까······.

호기심, 그리고 호승심이다.

그 외, 나머지 의념들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


아니···. 저게 말이 되냐고.


곧 점심 시간인데, '오늘 뭐 먹지' 라는 생각조차 일체 안한다고?


뭣보다 단청이 본 사람 중에 현 남궁 전체를 통틀어 가장 무재(武才)가 뛰어났다.


'이 정도면 숫제 괴물이군.'


자연스레 누군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답은?"


단청이 한동안 멍하니 있자 여자가 되물었다.

사실 그녀에게 남자의 이런 반응은 무척이나 익숙했다.

다른 의미였지만.


"아니···, 우선 통성명부터 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남궁지약, 네 사고되는 사람이야."

"예···, 예?"


아, 그런 거였나. 그 미친 노인이 틈만 나면 말하던······.


"네 사고."


아니, 그건 알겠는데······.


"그러니까 붙자."


이 여자가 조옴ㅡ!


ㅡ지약 사고, 친누이는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많이 예쁜 편이지. 근데 성격이 좀··· 이상해. 많이.


네 말 하나 틀린 게 없다, 토룡아.


"지금은 안 돼요. 보시다시피 동생이랑 밥 먹으려고 나왔거든요."


퍽퍽퍽-


'뭐야, 이건?'


옆에서 같잖은 주먹질을 해온다.


제 핑계대지 말고 얌전히 저 여자와 어울리라는 것.

어처구니없어 실소가 흘러나왔다.


"그래······?"


의외인 것은 그녀의 반응이었다.


"알겠어, 그럼 다음에 보자."


의념만 보면 몇 번이고 끈질기게 달라붙을 것 같았다.


허나 어린 두 남매를 두어번 번갈아보던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에 찰나, 숨길 수 없는 감정이 드러났다.


그것은 '씁쓸함', 혹은 '자조(自嘲)'였다.


"······."

"아니, 오빠! 도대체 왜 그랬던 거야. 나랑 밥 먹는 건 나중에 해도 되지!"


단청이 객잔까지 말없이 걷는데, 옆에서 계속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오빤, 감각이 없어? 딱 봐도 오빠한테 관심있어서 그런 거잖아."


객잔 안으로 들어와서도 그 조잘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빌어먹을 동생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귀를 무척이나 아프게 한다.


도대체 누굴 닮아서인지, 쯔쯧.


"동생아, 나이 차이가 몇 살인데···."

"요즘엔 연하남이 대세인 거 몰라?"

"연하남 같은 소리하고 있네."


역으로 대략 75년 연상이다, 동생아······.



*



출관식.


본래대로라면 남궁성혁에게 뜻깊을 자리였어야 했다.


남궁의 가까운 미래를 책임질 이대의 대제자인 그가 본격적으로 남궁의 대소사에 참여하겠다고 외치는 자리였을 것이다.


허나 예상과는 달리 출관식은 조촐했다.


겸사 입관식을 같이 치르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가문의 전원 대신,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들만 이 자리에 있었다.


"폐관수련을 나간 이대제자의 출관식을 진행하겠다. 대표, 남궁성혁 앞으로."


진행을 맡은 남궁도의 말에, 남궁성혁은 앞으로 나아갔다.


"······앞으로도 남궁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폐관수련의 경험을 살려 가문을 빛내주길 바란다."


행사 진행을 위한 형식적인 언사가 오고갔다.


스윽-


단청은 두 손을 뒷머리에 얹은 채 느긋하게 출관식을 지켜보고 있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남궁지약이었다.


눈빛에 광기가 느껴졌다.


'그만 좀 쳐다봐라, 부담스럽게시리-'


딱 봐도 행사가 다 끝나고 나면 바로 비무를 요청해오겠지.


남궁성혁이 단상 아래로 내려가고, 남궁설이 위로 올라갔다.


"흐음······."


남궁위의 눈빛에 이채가 서린다.


'네가 그 녀석의 여동생?' 마치 이런 눈빛.


평소 당돌하기 그지없던 남궁설조차 긴장된 기색이 역력했다.


'안 어울리게.'


단청은 히죽 미소를 지으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앞으로 남궁의 제자로서 수련에 정진하고 가문을 빛내주길 바란다."

"네, 가주님."


남궁설이 무릎을 꿇으며 답했다.


본래 이런 행사가 끝나고 나면 늘 식사 자리가 생기기 마련.


이번에도 크게 다를 것 없었다.


술잔을 곁들여 적당히 해후할 시간을 가진다.


그 자리에서 자연스레 남궁성혁이 건배사를 맡게 되었다.


건배사는 보통, '남궁을 위하여' 등 사실상 아무런 의미없는 대사로 마무리 짓는 게 일반적이다.


허나 그런 것 치고는 남궁성혁의 표정이나 분위기 등이 미묘했다.


"이대의 대제자, 남궁성혁입니다. 오늘처럼 뜻 깊은 날에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가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4년 동안, 폐관수련을 하며 부족했던 저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스윽-


건배사 이후, 짠- 하기 위해 시선을 정면으로 하고 있던 이들의 눈빛이 남궁성혁에게로 쏠렸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리도 사전작업을 치는 것인가.


적어도 '남궁을 위하여' 따위나 내뱉으려고 저렇게 길게 말을 끄는 것은 아닐 터.


"저는 남궁의 가까운 미래를 책임질 이대의 대제자로서 언제나 그 자리의 막중함을 느껴오고 있었습니다. 눈을 바로 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거, 드높았던 창천은 주저앉고 있지요. 현재 삼분하고 있는 안휘의 상황을 보자면 그렇지 않습니까? 본래는 전부 남궁의 것이었습니다."


스윽-


그 말에 이제까지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남궁무위와 남궁지약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그들의 눈빛 역시 그리 묻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여, 이 자리를 빌려 이대의 대제자로서 건의하는 바입니다. 안휘성주의 협조를 받아 '안휘비무제(安徽比武祭)'를 개최하여 지난 4년간 폐관수련의 결과를 증명하고 싶습니다."

"······!"


역시 길게 말을 끄는 이유가 있었다.


허나 적어도 이러한 술자리에서 할 법한 말은 아니었다.


남궁성혁의 시선이 무표정한 단청에게로 향했다.


"최근 생긴 황산검문과의 불화도 무(武)가답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곧 모인 이들의 시선이 가주에게로 향했다. 그에 대한 답을 요구하듯.


"네 뜻은 알겠다. 다만···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어 이야기하도록 하지."



*



남궁성혁의 발언 이후 연회장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탓에, 자리가 길게 가지 못했다.


단청은 어수선해진 틈을 타, 백화주 세 병을 품 속에 꿍쳐두었다.


'헤헤헤.'


상상만 해도 미소가 걸린다.

안그래도 요새 술맛이 당기긴 했다.


그때였다.


스윽-


"비무하자."


남궁지약이었다.


무표정한 그녀가 단청의 앞을 막아섰다.


"아니, 오늘처럼 술도 마신 날에 왜 그러는 거에요."


단청의 미간이 좁아졌다.


"술 안마셨어. 너도 안마셨고. 아직 품 속에 있잖아."

"······."


아, 계속 쳐다보고 있었지.

하여간 그 귀찮음이 동생보다 더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럼 먼저 갈게."


뭐-?


남궁지약은 답도 듣지 않고서 목검을 휘둘렀다.


몸을 틀어 피했다.

목검이 지나간 경로로 풍압이 강하게 일었다.


적어도 가문 전체를 통틀어 이 정도의 검을 보여줄 수 있는 이는 얼마 없을 것이다.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순식간에 변(變)의 묘리로 휘둘러진 검의 경로가 옆으로 꺾여왔다.


의념의 변화가 찰나였다.


'숫제 괴물' 급이라 평가하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재능'.


실력은 낮춰서 보고 있었기에, 단청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스아아악ㅡ!


몸을 숙여 피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맞을 뻔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변(變)의 묘리.


관성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그 속도 그대로 검을 내려치고 있었다.


바닥을 구르지 않는 이상, 피할 방법이 요원해보였다.


'거참ㅡ'


단청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찾았다. 드디어.

아니, 정확히는 찾아온 것이다.


'웃어?'


남궁지약은 여유로운 단청의 분위기에 위화감을 느꼈다.


전혀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까앙ㅡ!


단청이 목검을 뽑았다.

하단세로 내려치는 검을 후려쳤다.


동시에 역공을 가한다.


'과연 어떨까-'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 일(一)초 낙천(落天).


후려친 검이 그대로 천단세로 이어진다.


수십가지의 의념이 단청의 상단전에서 비산한다.


상대하는 입장에선 하늘이 한 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십번이 떨어지는 것으로 느껴질 터.


남궁지약의 눈빛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까앙ㅡ!


정확히 허초를 읽어내어 실초를 검으로 막아섰다.


다만,


"크읏ㅡ!"


도저히 14살 아이의 것이라 할 수 없는 무게감이 그녀의 몸을 바닥에 짓누르고 있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스윽-


언제 다가왔는지도 모를 단청의 검이 그녀의 목 언저리에 놓여있었다.


비무의 승패가 갈리는 순간이었다.


사실 승패 따위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미친-'


단청은 소름이 돋았다.


선홍색의 의념.

저 색이 보여주는 것은 명백했다.


저 광인(狂人)은 지금 이 순간을 너무나 즐거워하고 있었다.



*



늦은 밤.


단청은 백화주 세 병과 술잔을 들고 황산의 절벽 끝에 올라왔다.


절벽에 걸쳐있는 구름이 절경이다.


혼자 술 마시기에 이보다 적합한 곳이 없다.


쫄쫄쫄쫄-


꿀꺽-


"크으-"


이 맛이지.

연거푸 몇 번을 더 들이마신다.


취기가 적당히 오를 때면, 비로소 남궁단청이라는 '인겁'을 벗어던지고 전생의 단청이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가 본모습일까.


피식-


어리석은 질문.


전생의 것도, 현생의 것도 모두 다 본모습인 걸.


쫄쫄쫄쫄-


꿀꺽-


크으-!


"이어졌구나."


찾고 있었다.

남궁천의 의지를 이어받은 아이를.


물론 쉽지 않았다.

가장 뛰어나다는 남궁무위조차 남궁천의 의지를 이어받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가주인 남궁위도 마찬가지였다.


허나 곧 볼 수 있었다.


남궁룡에게서 그 빛나는 마음을.

그 아이는 누구보다도 남궁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마음 속에 창천(蒼天)의 의지가 실려있었다.


하지만 무재(武才)는 아쉬웠다.

냉정히 표현하면 반쪽짜리였다.


그렇다면 끊어졌나?


아니었다.


남궁지약을 보고서 알았다.

그 아이가 남궁천의 무재를 이어받았다는 것을.


두 후손이 선조의 것을 나눠 받은 것이었다.


천주산에 올라 읊었던 첫 시구의 내용처럼.

단청이 그러하듯 남궁천의 유산도 그 둘에게 이어진 것이다.


다행이다.

나중에 녀석을 볼 면목이 생겼다.


"그곳에서 잘 지켜보고 있냐?"


ㅡ······.


이럴 땐 꼭 대답이 없더라, 싱거운 녀석.


"안심하고 지켜보고 있으라고. 아직은 부족한 네 후손을 내가 잘 이끌어 줄 테니."


남궁의 창천은 미약하게나마 여전히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모든 일을 다 끝내고 나면 나 역시 그곳으로ㅡ'


"고맙소······."


응?

환청이 아니라 정말 들린 것만 같은······.


단청의 두 눈이 부릅 떠진 채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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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1. 당연히 남궁이 최고죠! NEW +2 12시간 전 503 20 12쪽
40 40. 오래됐기 때문에 +5 24.06.20 978 26 12쪽
39 39.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니까? +8 24.06.18 1,227 27 12쪽
38 38. 부동(不動) +8 24.06.15 1,359 37 12쪽
37 37. 망할 선조 같으니라고 +5 24.06.13 1,460 28 11쪽
36 36. 못따라가겠다 이것들아 +6 24.06.11 1,441 32 12쪽
» 35. 이어짐 +5 24.06.10 1,611 32 12쪽
34 34. 한 대만 찰지게 때려보자 +6 24.06.08 1,534 25 12쪽
33 33. 조금만 더 떠들어보란 말이다 +6 24.06.08 1,647 30 12쪽
32 32. 은인(恩人) +8 24.06.06 1,719 32 11쪽
31 31. 검수(劍手)들의 대화 +5 24.06.05 1,779 28 11쪽
30 30. 약자(弱者) +6 24.06.04 1,827 28 13쪽
29 29. 소면 한 그릇의 가치 +5 24.06.03 1,806 32 12쪽
28 28. 이것저것 다 따질 필요없다고 +2 24.06.02 1,840 34 12쪽
27 27. 답은 사형들이 맞혀야지 +4 24.06.01 1,898 34 12쪽
26 26. 의념(意念) +4 24.05.31 1,941 33 13쪽
25 25. 토룡이 +6 24.05.30 2,045 35 11쪽
24 24. 화가 난 이유 +6 24.05.29 2,138 34 11쪽
23 23. 짓밟을 생각으로 오셨으면, 짓밟힐 각오도 했어야죠. +5 24.05.27 2,113 35 12쪽
22 22. 정신나간 내 새끼 +6 24.05.26 2,106 36 14쪽
21 21. 옥의 티 +2 24.05.25 2,195 33 11쪽
20 20. 쫄리면 뒤지시던지 +5 24.05.24 2,229 37 11쪽
19 19. 대연신공 +4 24.05.23 2,351 36 12쪽
18 18. 구애 +4 24.05.22 2,340 34 12쪽
17 17. 미친 노인과 미친 강아지 +2 24.05.21 2,313 34 11쪽
16 16. 꿈 깨 +6 24.05.20 2,292 35 12쪽
15 15. 극강의 둔재(鈍才) +5 24.05.19 2,373 35 12쪽
14 14. 유난히 그리워지는 밤 +4 24.05.18 2,411 38 12쪽
13 13. 밑져도 본전···, 맞겠지······? +3 24.05.17 2,448 3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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