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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경

사파정점, 남궁으로 환생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공모전참가작

공경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8
최근연재일 :
2024.06.26 22:59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100,638
추천수 :
1,651
글자수 :
226,666

작성
24.06.06 04:39
조회
1,874
추천
34
글자
11쪽

32. 은인(恩人)

DUMMY

우걱우걱-


단청이 정신없이 밥을 먹는 데, 아련한 옛 기억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오른다.


의식적으로 떠올린 것이 아니다.

숨을 마시고 내뱉는 것처럼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 장면들이 맺힌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이백년 전.


전생에 있었던 일이다.


"아악! 놓으라고!"


11~13살로 보이는 어린 점소이는 귀를 붙잡힌 채 허공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소년의 몸이 가볍다고는 하지만, 귀 하나만 붙잡고 저리 농락한다?


일반인의 악력이 저리 셀 수는 없으니 상대는 무림인이었다.


삿갓을 쓴 무림인은 질린 듯한 표정으로 어린 점소이를 바라보았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중원의 전 인구 대비, 무공을 익힌 무림인은 극소수다.


무(武)에 입문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당연히 그들의 세계는 일반인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에겐 여러가지 특혜가 있다.


대표적인 것 하나.


관(官)을 대신해 치안을 담당한다는 이유로 허리춤에 대놓고 칼을 찰 수 있었다.


무림인에게 살인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는 없지만, 일반인들은 허리춤에 칼 찬 무림인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명분은 만들기 나름이다.


왜 죽였나?

만에 하나 관의 포두가 그리 묻는다면 치안 핑계를 댈 수 있다.

관은 무림인과 척지는 것을 그닥 반기지 않기에, 대학살을 벌이지 않는 이상 그들을 내버려둔다.


이런 관, 무림의 관계는 수백년 전부터 내려오던 관례였다.


그런데······.

이 어린 점소이는 겁대가리를 제대로 상실했는지, 무림인인 그를 무시하려고 했다.


요지는 이렇다.

주문 순서는 밀려 있었고, 무림인은 먼저 자신에게 음식을 내오라 시켰다.


그러면 보통의 반응은 이렇다.


ㅡ아, 예···. 먼저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찰나 표정이 일그러지지만 허리춤에 찬 칼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떻게든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이게 옳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세상의 섭리에 타협한다.


허나 저 어린 점소이는 이와 달랐다.


오히려 허리춤에 찬 칼을 보고 눈알을 부라렸다.


"왜요? 아, 무림인? 그래도 안 돼요. 먼저 주문한 사람이 있잖아요. 기다려주세요."


당연히 심사가 뒤틀렸다.

제 정신인 건가?

목숨이 여러개라도 있지 않은 이상 저러긴 쉽지 않을 것이다.


신기한 것은 살기로 압박을 줘도 전혀 물러섬이 없다는 것.


그래서 무력을 행사했다.


퍼억ㅡ!


명치에 주먹이 꽂히자 점소이의 허리가 꺾였다.

두 손으로 제 배를 부여잡으며 숨 쉬기 곤란한 듯 꺼억꺼억거렸다.


허나 꺾이진 않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일어나 무림인을 노려보았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소년의 몸은 분명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


비록 일(一)성 공력을 실은 것이었으나 엄연히 기가 실린 일격이었다.


그걸 맞고도 버틴다니.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금나수법으로 목을 붙잡으려 했다.


이 와중에도 반응하여 몸을 틀어 피하려 시도했다.


그래서 귀가 잡혀버렸다.


'이 녀석은 위험하다······.'


살심(殺心)이 동했다.

무림은 은원을 철저히 해야 한다.

그것이 곧 본인의 목숨을 살리기도, 앗아가기도 하기에.


어린 점소이의 무재(武才)는 상식을 뛰어넘었다.


훗날 무공을 익힌다면 반드시 절대고수의 반열에 오를 터, 지금 여기서 목숨을 끊어야 한다.


그때였다.


"그 손 놓으시게."


어마어마한 중압감이 그의 전신을 짓눌렀다.


고개를 돌리니 객잔에서 식사 중이었던 백발의 노괴가 보였다.

그 눈빛이 흉흉히 빛나고 있었다.


전신에 식은 땀이 흘렀다.

이러한 감각은 살면서 느껴본 적이 없었다.

절대고수임이 분명했다.


'놓아야 한다.'


안 놓으면 죽는다.

생존 본능이 그리 경고하고 있었다.


붙잡은 귀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의 전신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사라졌다.


이대로 사라지자.


삿갓을 쓴 그는 점소이를 죽이려 했지만, 정체모를 노괴(老怪)는 점소이의 재능을 높게 평가하여 제자로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다.


고개를 돌려 자리를 벗어나려는 순간,

익숙한 수법의 금나수가 그의 목을 움켜잡으려 하고 있었다.


설마 노괴는 자비를 베풀려던 게 아니었나?


추측은 틀렸다.

그가 펼치던 금나수법을 서투르게나마 흉내내는 괴물이 있었다.

어린 점소이였다.


작디작은 체격이었지만, 눈빛이 붉게 번뜩이는 그 모습은 그의 식은 땀을 흐르게 했다.


'정말 죽여야······!'


저 눈빛의 의도가 무엇이겠는가.

훗날 복수하러 올 게 분명했다.


다만······.


스아아아악ㅡ!


어느 순간 그의 사지가 순식간에 잘려나갔다.

듣지도, 보지도, 반응하지도 못했다.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본 군(君)은 기회를 두 번 주지 않네."


노괴는 객잔에서 사지를 잘라 사람을 죽였음에도 평온한 기색이었다.


그에게 이런 것들은 그 어떠한 동요, 흥미도 주지 못했다.


발걸음을 하며 깔려 죽는 벌레들의 생명 따위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삿갓을 쓴 무림인의 죽음도 그에겐 마찬가지였다.


허나 저 아이는 다르다.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흥미가 돋는다.

절대적인 무재(武才)를 가진 아이를 키우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말년에 접어든 그는 그것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꺄아아아악ㅡ!

미, 미친-!

도망쳐ㅡ!


흥미로운 구경거리였었다.

삿갓을 쓴 무림인이 단청의 귀를 붙잡고 있을 때만 해도.


허나 사방으로 핏물이 터지며 사람이 죽자, 객잔 안의 손님들은 사색이 되어 필사적으로 현장을 도망쳤다.

저 미친 노괴한테 괜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으니.


순간 객잔 안에 적막이 흘렀다.


정체불명의 노괴, 어린 점소이, 그리고 객잔의 지배인만이 남아있었다.


노괴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아이야···, 방금 내가 한 수법을 파악했느뇨?"

"그렇다면요."

"좋은 눈을 지녔구나."


어린 점소이는 사람이 잔혹히 죽었음에도 크게 미동이 없었다.


노괴는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그의 자리는 이런 심력(心力)을 지닌 자가 어울렸으니까.


"네 이름이 뭐지?"

"단청(緞淸)."

"비단 같은 맑음이라······. 좋은 이름이구나."


언제부터 시작됐는 지도 모르는 이름이다.


단청은 천애고아였으니 말이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나는 사도련주(邪道連主) 독야성(毒夜星)이다. 세간에서는 괴군(怪君)이라 불리고 있지. 날 따라오거라. 내 제자가 되어 나의 진전을 이어받거라. 너의 재능이라면 사도천하를ㅡ"

"싫은데요?"


단청이 그의 말을 잘랐다.


그 순간, 일반적으로 단청의 목은 잘렸을 것이다.


괴군은 인내심이 그리 좋지 않다.

정확히는 인내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위치였다.

이 세상에 그의 인내심이 부족하다 하여,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


그가 누가인가?

몇십여 년 만에 분열된 사파를 규합하여 그 정점에 오른 자, 괴군 독야성이다.


"이유는?"

"그쪽을 따라갔다간, 못볼 꼴 다 보면서 살 것 같은데요. 미쳤다고 거길 제가 왜 가요."


단청의 시선이 혈편(血片)이 되어버린 것에 잠깐 머물렀다.


사람을 저 지경으로 만드는 자를 미쳤다고 따라가나?


"···강해지고 싶지 않나?"

"강해지고 싶죠."

"그렇다면 날 따라오거라."

"싫다고요."

"날 안 따라오면, 널 이 자리에서 죽일 수도 있다."


사실 죽일 마음이 전혀 없었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괴군은 이 단청이라는 아이가 더욱 마음에 들었으니.


지금 이 밤하늘에 떠있는 그 어느 별보다도, 찬란히 빛나는 별이 제 눈 앞에 있었다.


"죽이던가요, 그럼-!"

"흐음······."


그건 그렇다치더라도 계속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어린 점소이는 다소···, 아니 상당히 막무가내였다.

심지어 허세도 아니고 진심으로 저러는 것 같았다.


수혈을 짚어 데려올까, 아니면 설득을 계속 이어가야 할까, 아니면 적당한 폭력을 행사해야 할까······.

괴군의 머릿속에 여러가지 방법들이 스쳐지나갔다.

그 중 하나는 통하는 게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아이고, 노야! 제발, 이 쓸모도 없는 것 좀 데려가주십시오. 매일 사고만 치고, 수습하느라 아주 이골이 났습니다."


상황을 지켜보던 객잔의 지배인이 나섰다.


그는 바닥에 대뜸 엎드려 고개를 아래로 조아렸다.


"아니, 제가 뭘 사고를 그렇게 쳤다고ㅡ"


지배인의 고개가 슬쩍 올라갔다.


"혹시 양심에 털 났니?"

"······."


말문이 막혔다.

대책도 없으면서 무림인의 속을 긁어댔으니 말이다.


"그러니 제발 데려가주십시오. 쓸데없이 정이 많고, 말 많은 이 녀석 탓에 아주 질려 죽겠습니다. 그냥 꼴도 보기 싫습니다."

"······."

"그렇다는데?"


단청은 바닥에 바짝 엎드려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지배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렇게 쥐 죽은 듯이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단청의 시선이 계속 거기에 머무르다 떼어졌다.


단청은 그를 등진 채 입을 열었다.


"후회 안할 거죠? 저 가도."

"내가 미쳤다고 후회를 하겠느냐."


지배인은 고개를 들지도 않고서 말했다.


"······칫."


지배인의 의념(意念)이 보였다.


의념엔 색(色)이 있다.

붉은색, 파란색, 보라색 등.


그 색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자신을 괴군이라 소개한 저 노괴를 따라가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으니 따라가라고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진심으로 단청이 노괴를 따라가길 원하고 있었다.


질려서? 꼴도 보기 싫어서?


그게 아니었다.


단청에겐 천상의 무재가 있었다.


무림인이 아닌 그가 봐도 알 수 있었다.


단청이 저 노괴를 따라가면 평생 점소이로 사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터.


무조건 보내는 게 맞았다.


'다 보인다구요······. 저한텐.'


파밧.


단청은 애궂은 발길질로 바닥에 굴러박힌 돌멩이를 걷어찼다.


"······주인이 쫓아내겠다는데 점소이가 어떻게 버티겠어요. 나가야죠."

"그래, 잘 결정했다."


괴군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근 몇십여 년 동안의 강호행 중, 오늘이 가장 큰 소득이 있는 날이다.


'우리 단청, 부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괴군을 따라가던 단청의 고개가 뒤로 슬쩍 돌아갔다.


여전히 바짝 바닥에 엎드려있는 지배인이 있었다.


그와 대면한 기억들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ㅡ에끼, 이놈아 이걸 훔쳐먹어? 돈이 없으면 말하지 그랬느냐.

ㅡ안 뺏어갈 테니 천천히 먹거라.

ㅡ너, 힘 좀 쓰는 것 같구나.

ㅡ점소이로 일 좀 해볼 테냐?

ㅡ네 문제가 아니다. 사내라면 할 말은 해야 하는 것이다.

ㅡ제발, 이놈아 사고 좀 그만치거라!

ㅡ어후! 내가 이런 놈을 왜 데려와가지고!


"······."


'그 동안 감사했어요, 은인(恩人).'


과거의 기억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아씨, 무슨 맛으로 먹은 건지 기억도 안나네."


단청은 어느덧 식탁 위의 모든 음식을 다 먹어버렸다.


이연은, 점소이들은 분주하게 음식들을 나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단청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아직 쉬는 시간이 오려면 멀었나.'


이제 한창 점심 시간이니 가장 바쁠 시간이긴 했다.


그때였다.


"삼대제자 중에 단청이라는 아이가 있는데······"


다섯칸 뒤 즈음에 제 이야기가 들려와 단청의 귀가 쫑긋거렸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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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2. 남궁의 부산물 +4 24.06.26 709 26 12쪽
41 41. 당연히 남궁이 최고죠! +6 24.06.23 1,184 33 12쪽
40 40. 오래됐기 때문에 +5 24.06.20 1,329 30 12쪽
39 39.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니까? +8 24.06.18 1,464 31 12쪽
38 38. 부동(不動) +8 24.06.15 1,565 40 12쪽
37 37. 망할 선조 같으니라고 +5 24.06.13 1,641 31 11쪽
36 36. 못따라가겠다 이것들아 +6 24.06.11 1,621 35 12쪽
35 35. 이어짐 +5 24.06.10 1,779 34 12쪽
34 34. 한 대만 찰지게 때려보자 +6 24.06.08 1,696 27 12쪽
33 33. 조금만 더 떠들어보란 말이다 +6 24.06.08 1,807 32 12쪽
» 32. 은인(恩人) +8 24.06.06 1,875 34 11쪽
31 31. 검수(劍手)들의 대화 +5 24.06.05 1,931 30 11쪽
30 30. 약자(弱者) +6 24.06.04 1,981 30 13쪽
29 29. 소면 한 그릇의 가치 +5 24.06.03 1,959 34 12쪽
28 28. 이것저것 다 따질 필요없다고 +2 24.06.02 2,004 36 12쪽
27 27. 답은 사형들이 맞혀야지 +4 24.06.01 2,061 37 12쪽
26 26. 의념(意念) +4 24.05.31 2,101 36 13쪽
25 25. 토룡이 +6 24.05.30 2,212 38 11쪽
24 24. 화가 난 이유 +6 24.05.29 2,307 38 11쪽
23 23. 짓밟을 생각으로 오셨으면, 짓밟힐 각오도 했어야죠. +5 24.05.27 2,274 38 12쪽
22 22. 정신나간 내 새끼 +6 24.05.26 2,262 39 14쪽
21 21. 옥의 티 +2 24.05.25 2,352 36 11쪽
20 20. 쫄리면 뒤지시던지 +5 24.05.24 2,390 42 11쪽
19 19. 대연신공 +4 24.05.23 2,522 40 12쪽
18 18. 구애 +4 24.05.22 2,505 38 12쪽
17 17. 미친 노인과 미친 강아지 +2 24.05.21 2,480 39 11쪽
16 16. 꿈 깨 +6 24.05.20 2,451 39 12쪽
15 15. 극강의 둔재(鈍才) +5 24.05.19 2,539 39 12쪽
14 14. 유난히 그리워지는 밤 +4 24.05.18 2,574 4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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