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 그날 #1
내 이름은 탁진우.
난 사람이 죽는 게 싫다.
음······ 아마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한 공포인 것 같다.
운이 좋은 거라고 해야 할지 그 반대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태어난 후로 한 번도 친지의 죽음을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말이지.
학교 친구들 중에 불행한 일을 겪은 아이들이 없었다.
가끔 귀국하시는 조부모님은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정정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무척 젊고 건강하게 사셨고.
형제자매들 역시 지나치게 건강해서 잔병치레 한 번 없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형제 중 특히나 몸이 튼튼했던 난, 그 흔한 독감 한 번 걸린 적 없이 대학생이 되었다.
어쨌든 그 덕에 성인이 되도록 한 번도 상(喪)이라는 것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칼질만 좋아하는 탁씨 가문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그 점은, 꽤 만족스러웠다.
모호하게 정신이 들자마자, 순간적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서 다행이다······
하하, 설마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볼 줄은 몰랐는데.
돌이켜보면 참 멍청한 짓이었다.
청소부의 목을 확실히 끊어내지도 않은 채 스승님에게 뛰어가다니. 그렇게 뒤를 내주고서 뒤통수를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단 말이야?
어휴, 전생의 탁진우란 놈은 진짜 모자란 놈이군.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주제에 참 꼴좋게도 당했어.
아니 일단 달려갔더라도, 그 다음엔 바로 알아챘어야지.
무엇보다 스승님의 가슴에 칼날 팔이 계속 박혀있었는데.
그렇잖아? 죽고 나면 먼지가 돼서 사라지는 게 청소부의 특징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날 팔이 계속 가슴에 박혀있었던 거니까.
뭐, 이젠 됐다. 그걸 알아채지 않았던 덕분에 죽을 수 있었다. 덕분에 다시 0시로 회귀할 수 있었다.
만약에 내가 안 죽고 스승님만 잘못됐다면?
아마 난 지금쯤 어떻게 자살해야 제일 덜 아플지 고민하고 있었겠지.
전생의 탁진우가 멍청했던 덕분에 난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게 됐다.
음, 그런데 왜 이렇게 정신이 몽롱하지. 이상하다.
······ 아하. 그것도 그렇지 뭐. 충격적인 게 너무 많았다.
청소부가 여자 몸을 갖고 있질 않나, 갑자기 자기 팔을 뜯어서 내던지질 않나.
하하하, 정말이지 비현실성도 정도가 있는 건데 말이다.
음······ 슬슬 일어날까? 졸리긴 한데······ 오늘 하루를 또 준비해야 하니까······
오늘 하루······
오늘은 일요일······ 알바를 마치면, 판잣집에 가서, 고구현 스승님과 다시 한 번 제대로 수련을······
응?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극심한 통증이 가슴을 찌르르 울렸다.
잠시 후엔 왠지 등이 좀 축축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일단 좀 일어나자.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상황을 좀 확인해야지.
그리고 눈을 뜨자
어둠 속에서
몇 개의 별이 빛나고 있었다.
“뭐······ 어.”
눈을 감았다 뜬다. 그리고 부릅떴다.
그리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어······?”
이게 뭐지?
이게 대체 뭐야?
“스스······승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드러누운 곳은 침대가 아니었다.
그곳은 흙바닥. 판잣집의 마당이었다.
그리고 두 걸음쯤 떨어진 벽에 기대어, 피바다 위에, 고구현 스승님이 앉아있었다.
하하하, 이거 꿈인가?
뺨을 한 대 때리려고 손에 힘을 주는데, 오른손에 느껴지는 딱딱한 감촉.
그걸 들어서 눈앞으로 가져온다.
음······ 내 핸드폰이다.
이것도 피범벅이다. 정말이지 대체 어째선지 모르겠다.
화면을 켠다.
피로 점철된 화면 위로
「3월 20일 00:07」이라는 문자가 보였다.
······ 뭘까, 이건?
하하하, 진짜 꿈인가?
이럴 리가 없는데.
일요일이잖아? 눈을 뜨면 편의점이어야 하는데.
난 왜 흙바닥 위에 누워있고,
스승님은 왜 저런 꼴로 앉아있는 걸까?
음······ 정말 이상하네. 하하.
난 헛웃음을 지으며 몸을 일으켜서 스승님에게로
“으악······!”
등이, 너무 아팠다.
다시 몸을 일으켜서······ 윽. 으윽.
일어서는 건 좀 힘들어서, 무릎으로 걸어서 스승님에게 다가갔다.
“스승님?”
대답이 없다.
하지만, 분명히 눈을 뜨고 있다. 부릅뜬 눈으로 피바다가 된 흙바닥을······
불어온 바람에, 가슴팍의 옷깃이 살짝 흔들렸다.
한밤중이니까, 원래대로라면 몰랐을 텐데.
강화된 시각은 피범벅이 된 옷을 알아봤다.
강화된 후각은 비릿한 피냄새를 구분해냈다.
강화된 청각은 이미 멎어버린 숨소리를 파악했다.
강화된 내 몸은······ 스승님의 시신을 끌어안았다.
동이 틀 무렵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게 된 건 갑자기 분주해진 주변 때문이었다.
판잣집 근처에서 작은 걸음소리가 몇 차례 오가더니, 목소리가 오가고, 한참 뒤엔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다가왔다.
그때에야 스승님의 몸을 놓아주고 이성을 되찾았다.
사이렌 소리, 분주한 발걸음 소리.
아마······ 구급차가······ 아니······ 이건 경찰이겠지.
급히 생각한다.
경찰이 도착하면 어떻게 되지?
지금 스승님은 시신. 그리고 난 그 곁에서 칼과 함께 뒹굴고 있던 부상자. 그러면······ 청소부는? 여기 있나?
이제야 떠올린 게 웃기긴 하지만 급히 고개를 돌려 마당을 둘러봤다.
역시 청소부는 없었다.
이 마당엔, 살아남은 나와 스승님의 시체밖에 없다.
경찰이 여기 도착하면 어떻게 되냐고?
뻔하지. 내가 살인범으로 몰린다.
내가 살인범이 되면 어떻게 되냐고?
뻔하지.
내가 자살할 수 없게 된다.
나는 마당을 뒹굴던 검을 집어들어
칼날 중간쯤을 잡고
내 목에 쑤셔넣었다.
크······ 더럽게······ 아프······
몽롱한 정신. 눈을 뜬다.
새까만 하늘과 별. 눈을 감는다.
오른손의 핸드폰을 들어올려 눈앞으로 가져온다.
눈을 뜬다.
「3월 20일 00:07」
“······발······ 씨발······ 왜! 왜 또!”
등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무시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여전히 기대어 앉아있는 스승님을 바라봤다.
“스승님!”
제발 아니라고 해줘, 제발, 이거 아니잖아?
이건 진짜 아니잖아?
무릎걸음으로 스승님께 다가간다. 최대한 이성을 유지하려 애쓰며, 환부를 살······핀······ 씨발!
피고름이 앉은 가슴팍은 부정할 수 없는 참극의 증거.
그 빌어쳐먹을 개좆같은 청소부의 칼날이······ 들어찼던 자리.
호흡과 심박을 살핀다.
완전 정지 상태.
청소부가 나타났던 19일 19시로부터 지금까지 약 5시간.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이미 소생불가라는 건 너무도 자명했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칼날을 잡았다.
그리고······ 아 이거 진짜 더럽게 아픈데······
내 목에 꽂았다.
정신이 든 순간 곧바로 눈을 떴다. 그리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3월 20일 00:06」
좋아, 1분 당겼다!
최대한 빠르게 칼날을 붙잡고,
목에······ 크아으으!
몇 번의 죽음을 반복했을까.
나는 결국 결론에 도달했다.
결코 도달하고 싶지 않았던 결론에.
나는, 0시 6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 씨바아아아알! 왜! 왜, 왜, 커, 커억, 커어어으억······.”
거친 기침과 함께 가래를 뱉어낸다. 피가 섞여있는지는 모르겠다. 핸드폰을 들어 피를 닦아낸다. 어렵사리 119를 눌렀다.
[네, 동작소방]
“동작구 흑석동, 큭, 278-2번지! 긴급환자! 지금 바로, 진짜 지금 바로 달려와주세요! 제발, 사람 죽어요!”
[······ 예, 알겠고요, 일단 자세한 상황이랑, 신고자분 신원]
“지금 그딴 게 문제야! 당장 앰뷸런스 보내요! 안 보내면 나도 자살할거야! 진짭니다! 그리고 응급처치, 응급처치 할 수 있는 사람······ 아니······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심장이 멎었고, 과다출혈······ 호흡이 없는데, 어떡해요?”
[저기······ 어휴. 일단 출동조치 하겠고, 심폐소생술부터 해보세요. 제세동기 있어요?]
“없어요! 제발 빨리!”
[······ 일단 부상자 편안한 곳에 눕히고, 강하게 흉부압박하시면서······]
내 힘으로 강하게 하면 살아있던 사람도 죽는다. 적당한 힘······ 적당하면서도 적절하게······
흉부압박은 그저 환부에서 죽은피만 뿜어냈다.
인공호흡은 잔뜩 부푼 풍선을 부는 것처럼 답답했다.
스승님의 갈비뼈 한 대를 부수고, 스승님의 입 속에서 뿜어지는 반쯤 굳은 피를 마시고 나서야······ 난 심폐소생술을 포기했다.
그리고 스승님의 시체를 끌어안았다.
나는 그저 스승님을 생각했다.
앰뷸런스가 도착해 우리를 병원으로 이송하고, 내 등을 응급처치하겠다는 의사들을 떨쳐내고, 스승님의 임종선언을 듣고, 참고인으로서 동작경찰서에 끌려가, 출동 당시 상황을 지켜본 소방관과 의사의 증언에 따라 날 살해용의자로서 구금한다는 형사들의 얘길 들으며,
나는 그저 스승님을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고작 이틀 전 알게 된 사람이다.
내 아버지의 사제이자, 내 스승님.
우리 사이에 개인적인 교류라고 할 만한 건 존재하지 않았다.
유족에게 연락해야 하는데 소지품이 없다는 어느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알았다.
내가 스승님의 가족관계조차 모르고 있다는 걸.
그저 내 반복되는 하루에 대한 생각에 가득 차, 여태껏 인간 고구현에 대해 조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걸.
그런 생각은 정말
너무나 날카롭고
잔뜩 녹이 슨······ 비수였다.
그런 내게 스승님은 어떻게 대했더라.
······ 생각하니 웃음만 나왔다.
탁신환의 아들이니 내 조카나 다름없다고 말하던 고구현. 제자가 되어 아버지처럼 모시라고 얘기하던 고구현.
그에게서 난 정말 아버지를 보았다.
내 미심쩍은 말들을 한 점 의심 없이 믿고, 날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내 스승님, 고구현.
임종선언이 있은 직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스승님의 손아귀 피부가 완전히 벗겨져 있었고, 오른손은 뼈까지 어긋나 있었다는 것······
의사들은 대체 뭐가 사람 손을 그렇게 만들 수 있느냐며 황당해했다.
대체 뭐가 그랬냐고······ 하하하하.
의지가, 그랬지.
그의 의지가 그의 손을 짓뭉갰다.
가공할 반탄력으로 모든 공격을 튕겨내는 그 괴물의 보호막을 향해 온힘을 다해 수십 번의 검격을 날리며, 그는 스스로 자신의 손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날 구하기 위해 스승님이 그렇게 검을 휘두르는 동안······
인간으로서 다다를 수 없는 경지의 몸을 가진 제자는 뭘 하고 있었더라.
유일하게 괴물을 해치울 수 있는 그 초인은 뭘 하고 있었더라.
그 괴물이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격에 온 힘을 쏟지 못했고
확실한 기회를 잡았는데도 주춤거리며 치명타를 날리지 못했고
스승님의 가슴에 칼이 꽂혔을 때에는······
한심하고 멍청하게 대응해 공멸했다.
다 내가 한 짓이다.
평범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싸움에 그를 끌어들였다.
다시 돌아올 수도 있었을 3월 19일의 가능성을 날려버렸다.
아무런 가능성도 없는 3월 20일을, 맞이해버렸다.
회귀라는 기적 같은 능력을 가지고도······ 단 한 명의 인간을 구하지 못했다.
그게 내가 인간 고구현에게 한 짓이었다.
내가 그를 죽인 것이다.
구금된 채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이 됐을 무렵, 탁신환이 도착했다.
고구현 스승님의 사형인 그 사람은······ 나를 유치장에서 끄집어냈다.
이상한 일이었다. 경찰들은 그를 막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자신의 차 조수석에 태우고, 탁신환은 말했다.
“사제에게 갔다 오느라 늦었다. 너······ 휴. 일단, 좀 자라. 자고 일어나면 익산에 도착해있을 거다. 이 썩을 서울에 있지 말고, 앞으론 집에서 지내라.”
대답 없이 허공을 보는 날 보며 아버지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고속도로에 접어들 무렵 난 그에게 말했다.
“살려야 되는데요.”
“······ 미친놈.”
“고구현 스승님, 살려야 되는데요. 아버지······ 우리 집안은 힘이 있다면서요? 살릴 수 없어요? 그런 거, 뭐, 초능력 같은 거, 없냐고요!”
“이 새끼야! 씨발, 나는 안 슬퍼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아? 너 이 새끼, 대체 내 사제한테 뭔 짓을 했어! 대체 왜 조용하게 잘 살던 놈이 너 만나고 하루 만에 부고를 알려오는데? 니가 지금 대체 뭘 잘했다고······!”
아버지의 분노는 올바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 분노는 말뿐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그의 눈물을 보며, 난 알게 됐다.
우리 집안은 그런 게 아니구나.
살해 용의자를 경찰서에서 빼올 수 있는 힘은 있지만,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초능력은 없는 거구나.
그 사실이 더없이 서럽고 서러워······
나도 그와 함께 울었다.
- 작가의말
이 파트는 연속으로 보셔야 좋을 것 같아 끝까지 쓰느라 늦었습니다.
고맙습니다.
Comment ' 7